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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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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전소설에는 이본(異本)이 매우 많고, 같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이본에 따라 작품의 의미와 세부 내용이 달라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뿐 아니라 각각의 이본들은 필사(筆寫) 또는 가필(加筆)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를 다소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하나하나의 작품마다 주요 이본들을 찾아 꼼꼼히 서로 대비해 가며 시시비비를 가려 하나의 올바른 텍스트, 즉 정본(定本)을 만들어 내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한국 고전소설들은 대부분 정본을 만드는 작업을 생략한 채 번역, 출간되어 왔다. 특정 이본 하나를 현대어로 옮겨 놓은 수준에 머무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정본 없이 이루어진 이 결과물들은 신뢰하기가 어렵다. 정본이 있어야 한글로 제대로 옮길 수 있고, 제대로 된 한글 번역이 있어야 비로소 영어나 기타 외국어로의 번역도 올바로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 고전소설을 세계에 소개하는 일도 정본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千년의 우리소설은 편역자 박희병 교수(서울대 국문과)가 6년의 노력 끝에 지난 2005년, 83편의 소설을 모아 펴낸 <한국 한문소설 교합구해(校合句解)>를 바탕으로 번역되었다. '교합'이란, 현재 남아 있는 모든 자료를 이본(異本)으로 간주하고 그것들을 비교 검토해서 하나의 표현이나 문장을 정하는 작업을 말한다. '구해'는 '교합' 과정을 설명하거나 글자와 문장의 뜻을 해설하는 각주를 붙이고, 작품마다 해제를 달았다는 뜻이다. 이처럼 문장 하나, 단어 하나까지 치밀하게 분석하는 학문적 정밀성을 토대로 만들어진 정본을 저본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리즈는 기존의 한국 고전소설 선집과는 완전히 차별화된다.

한국 고전소설, 특히 한문으로 쓰인 고전소설은 원문을 얼마나 쉽고 유려한 현대어로 옮길 수 있는가의 여부에 따라 작품의 가독성은 물론이고, 감동과 흥미가 배가될 수도 반감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문을 임의로 각색, 왜곡하거나 원문의 정확성을 손상시켜서는 결코 안 된다. 이 두 조건은 동시에 쫓아야 하는 두 마리의 토끼와 같은 것이다.

千년의 우리소설은 쉽고 정제된 우리말로 표현해야 한다는 대전제와 원문의 의미를 정확히 옮겨야 한다는 또 다른 대전제, 번역 과정에서 종종 상충하는 이 두 가지 전제를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 고전문학 전공자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모니터링을 시행하여 의견을 수렴하고, 어려운 한자어와 낯선 단어의 사용을 최대한 줄이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고전 문장의 맛과 멋을 최대한 살린 쉽고 정확한 번역을 통해 독자들에게 우리 고전소설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십분 전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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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가 그 책을 밤낮으로 익혀 묘리를 터득하매 변화무쌍한 요술을 부릴 수 있게 되어 하지 못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대부의 집이나 궁궐 안을 출입하며 인류에 어긋나고 의롭지 못한 짓을 많이 벌이고 다녔으나,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전우치는 이제 온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꺼림칙하게 여기는 존재라곤 오직 서화담과 윤군평 두 사람 뿐이었는데, 이 두 사람만 제압할 수 있다면 온 나라를 누비고 다니며 가는 곳마다 무슨 일이든 뜻대로 할 수 있다고 여겼다.
전우치는 먼저 항교동에 있는 승지 윤군평의 집을 방문했다. 윤군평은 작은 대청에 혼자 앉아 있었다. 전우치가 들어가 인사하고 이렇게 물었다.
"듣자니 영감께선 요술을 부리실 수 있다고들 하던데, 한번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윤군평이 말했다.
"나는 모르는 일이오."
전우치는 자기 재주를 자랑하고 싶어 이렇게 말했다.
"소생이 작은 재주를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고는 소매 속에서 붉은 부적을 하나 꺼내 주문을 몇 마디 중얼대며 던지자 부적이 참새로 변해 날아갔다. 이윽고 커다란 구렁이가 솔숲에서 꿈틀꿈틀 기어 나와 혀를 재빨리 향해 곧장 다가와 거의 무릎 앞까지 이르렀다. 윤군평이 앉은 자리를 향해 곧장 다가와 부적 하나를 집어 던지자 구렁이는 곧바로 방향을 돌려 전우치를 향해 기어갔다. 전우치가 너무 놀라 엎어져 기절했다가 잠시 후에 정신을 차리니 구렁이는 온데간데없었다.

- '전우치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