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있다 : 유승도 산문집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1253834
811.88 ㅇ425ㄱ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불가
0001253835
811.88 ㅇ425ㄱ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불가
출판사 책소개
강원도에 있는 망경대산 중턱에서 자급자족적인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시인이 있다. 근래 들어 산속으로 들어가 나 홀로 자연과 벗 삼으리라 삶을 영위하는 문인들이 늘고는 있다지만 이렇게도 삶이고, 이렇게도 생존이고, 이렇게도 자연이 된 시인이 또 있을까 싶다. 그가 바로 시인 유승도다. 그리고 여기 유승도 시인의 두 번째 산문집을 펴낸다. 첫 번째 산문집이었던 『촌사람으로 사는 즐거움』이후 두 번째 이야기는 바로 『고향은 있다』다. 이 빤한 제목을 짓고도 나름 당당할 수 있었던 데에는 어느 순간부터 잃어버린 그것이 바로 ‘고향’이기 때문이다. 제 고향은 어디입니다, 라기보다는 저 어디 살아요, 라는 대답에 충실해져버린 우리에게서 고향은 그저 배꼽으로만 증명되듯 나자마자 잘라버린 탯줄처럼 호적 속의 기록으로 흐릿해버린 지 오래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살림을 접고 직접 벌을 치며 사는 그의 삶은 우리가 죽음을 향해 가까워져가는 것과는 반대로 낢을 향해 가까워져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펜대를 굴리는 데서보다는 몸을 부리는 데서 오는 생생한 삶의 감동을 적어 내려간 글의 숨구멍 속으로 고이는 부끄러움, 이 붉음 안에서 우린 순간순간 안 아픈 혼남을 경험하게 된다. 이를 반성이라 한다면 아주 건강할 그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아주 담백하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농촌 생활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경도 권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옳음도 말하지 않고 다만 그저 심심하면 심심한 대로 호젓하면 호젓한 대로 느끼는 바로 그만큼만 적어내려 감으로써 그 국물 맛이 심히 짜지 않다는 것이다. 이 짜다는 표현 속에는 억지가 있다. 정도를 놓쳤을 때가 그렇다. 유승도가 산골로 들어와 글을 쓰면서 염두에 두었던 것도 바로 그 점이 아니었나 하는 것을 다음 그의 서문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다.
“사람들은 곧잘 환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사람들이 머릿속에 그려 넣은 자연이나 시골 마을의 모습도 그러한 환상에 다름 아닌 경우가 많다. 그럴듯하게 연출된 영상 제작물이나 잡지들에 실린 글 등을 통해 그러한 환상은 지금도 폭넓게 퍼지고 있다. 국내는 물론 세계 곳곳의 오지 마을 취재나 체험담을 통해 유포되는 그런저런 아름다운 환상들은 사람들의 충족되지 않는 욕망 속에 또 하나의 허상을 심어주는 상품으로 유통되는 측면이 많다. 내 글 도한 그런 종류의 글이 되지나 않았는지 곰곰 되새겨본다.”
유승도에게 있어 고향이라 함은 비단 나고 자란 유년의 뜰 같은 데서 머물지 않을 것이다. 그가 있다, 라고 말한 고향 속에는 다분히 있어야 한다는 당위에서 비롯한 어떤 근원적인 마음들을 지시함에 더 클 것이다. 예를 들어 이웃 간의 정이나 형제간의 우애나 가족 간의 화목이나 뭐 이런 평화로움 있지 않은가. 진정한 스승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보여주는 사람이라니, 그래서 그는 그렇게 묵묵히 자연을 살고 사람을 살고 그리고 글을 살았나보다. 누구보다 충실하게, 아주 소박하게, 그로 저리 환하게 웃을 수 있나 보다. 그 앞에 죽음이라 한들.
고향에서는 죽음이 보인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만 보아도 무덤들이 사람의 집 주위에 있다. 죽은 사람의 집과 산 사람의 집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곳, 그곳이 고향이다.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얘기하는 것도 여기에서 그 매듭의 한 가닥이나마 풀어볼 수 있을 것이다. 함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만물이 곧 나임을 인정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죽음을 극복해내려는 몸짓이 아닐까?
책속에서
어머님의 뒤를 따라 아버지마저 사고로 돌아가신 그해, 셋째 형과 누나까지 포함된 동생 셋의 생활부터 교육까지, 인생의 대부분을 책임지게 된 두 형님의 나이는 각각 스물셋과 스무 살이었다(호적 나이로는 두세 살 더 적었다). 동생들을 어떻게 하냐며 면사무소와 병무청을 오가며 매달린 끝에 겨우 군대를 가지 않을 수 있었던 큰형님과는 달리, 어린 내 앞에서 기어이 눈물을 흘리며 어쩔 수 없이 군대 훈련소로 향하는 차에 오르던 둘째 형님의 눈물 젖은 눈망울을 나는 이제껏 기억한다.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부탁하며 큰형님의 손을 잡고 돌아서던 둘째 형님의 뒷모습은, 제대 후 사우디아라비아로 가는 공항에서의 모습으로 이어졌다. 뒤를 이어서 큰형님도 사막의 땅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고, 어른이 된 셋째 형님도 이라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형님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