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한 편의 영화라고 한다면, 때때로 “컷!”이라고 외치고 싶은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쉼 없이 흘러가는 우리 인생은 리허설도 없고, 잠깐 멈출 수도 없다. 이 순간을 어떤 이는 ‘얏!’ 하고 세찬 기합을 넣으며, 어떤 이는 ‘휴~’ 하고 깊은 숨을 내쉬며, 어떤 이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어떤 이는 욕설을 마구 퍼부으며 지나가기도 한다. 또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인생을 바로 ‘컷’ 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여기,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한 소녀가 있다. 세상을 등지고 말문을 닫은 채, 자신의 몸에 칼을 대어 죽는 것도 사는 것도 아닌 묘한 경계에 서 있는 캘리,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이다. 『컷』은 열다섯 살 소녀 캘리가 상담실에서 첫 자해 장면을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작품은 두 개의 이야기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캘리가 정신병원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이슈를 가진 또래 게스트들과 함께 지내며 서서히 치유되는 과정을 그린 현재 이야기이자, 관계 중심의 이야기이다. 또 하나는, 캘리가 무엇 때문에 자해를 하게 되었는지 밝혀가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과거의 이야기이자, 외로움과 상처의 내력이다. 그래서 『컷』은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십대 후반 소녀들의 감성을 묘사하는 하나의 이야기와 캘리가 왜 자해를 하게 되었는지 추리해 가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서로 얽혀 있어 독자들에게 감동과 긴장감을 동시에 맛보여 주는 탁월한 소설이다. 이것이 『컷』이 출간되자마자 미국도서관협회 ‘올해의 책’, 뉴욕도서관 선정 ‘최고의 책’ 등에 뽑히고, 뉴욕 타임스, 퍼블리셔스 위클리, 혼 북 매거진 등에 앞다퉈 리뷰되며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충분한 이유일 것이다.
▶ 상처가 상처를 치유한다
그거 알아? 옛날에는 사람들이 아프면 일부러 피를 내곤 했대. 그러면 엔도르핀이 생성된다는 거지. 몸이 붕 뜨는 기분이 들어요. 정말 끝내 줘요. 그 전에 기분이 아무리 엉망이었더라도 그 순간에는 씻은 듯이 사라져 버리죠. 갑자기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아만다 (자해로 인한 행동적 이슈 게스트)
있잖아, 캘리. 나한테 말 안 해도 괜찮아. 제발 부탁인데, 네 몸을 아프게 하지는 마. 내가 뭐 하나 말해 줄까? 그건 네 잘못도 아니야. -시드니 (마약으로 인한 약물 남용 이슈 게스트)
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알고 있니? 우린 모두 문제를 가지고 있어. -타라 (거식증으로 인한 식습관 이슈 게스트)
마음만 먹으면 이 세상에는 상처 내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얼마든지 있단다. 모든 것이 무기로 변할 수 있지. 그것들을 모두 모아 내게 가져다 준다고 해도, 항상 다른 무언가는 남아 있을 거야. 너도 알잖니? 난 너를 안전하게 지켜줄 수 없어. 그건 오직 너만이 할 수 있어. -당신 (상담 의사)
캘리는 자해하는 행동이 발각된 후, ‘시파인즈’라는 정신병원에 보내진다. 그 곳에서 상담 치료를 받으며, 여러 문제점들을 지닌 또래 여자애들과 함께 지내게 된다.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침묵으로 일관하던 캘리는 자신과 동일한 문제(자해)를 지닌 아만다를 만나며 충격을 받는다. 상처를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아만다를 보며 자기 모습을 객관화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엄마와 통화하며 불안하고 혼란스러워진 캘리는 그 날 밤 다시 손목을 긋는다. 하지만 여느 때와 달리 아찔하거나 편안한 느낌이 들지 않고 격렬하게 고동치는 아픔만을 느끼게 되자, 캘리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스스로 ‘당신(상담 의사)’을 찾아간다. 거식증, 마약 중독, 자해 등 ‘시파인즈’의 소녀들은 거부감이 들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너무 여려서 상처 받은 영혼들이 자리잡고 있다. 소녀들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서로를 통해 배우고, 서로를 회복시켜 간다. 말문을 꽉 닫아 버렸던 캘리도 소녀들이 건네는 따뜻한 말 한 마디에, 진정한 모성애의 본이 되는 간호사 루비의 따뜻한 품에, 캘리가 진정한 자아를 찾도록 도와 주는 상담 의사의 따뜻한 지지에 점차 마음을 열고 결국 말문도 열게 된다.
그런데 저는 이 상처들을 없애고 싶지 않을지도 몰라요. 이것도 제 자신을 말해 주는 일부니까요. -캘리 (자해와 선택적함구증로 인한 행동적 이슈 게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