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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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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발자크’이병주, 도도하고 유장한 문학 인생에 마침표를 찍다.
소설가 나림(那林) 이병주의 미완성 유작《별이 차가운 밤이면》출간.


이병주의《별이 차가운 밤이면》은 계간《민족과 문학》1989년 겨울호부터 1992년 봄호까지 총 10회에 걸쳐 연재되던 중 작가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결말을 맺지 못한 미완의 장편소설이다.

“그동안 무려 10회(2년 6개월)에 걸쳐 독자들의 관심과 기대 속에 연재를 계속해 오던 이병주 선생님의 장편 연재소설《별이 차가운 밤이면》이 필자의 갑작스런 별세로 인하여 본의 아니게 중도에 끝을 맺게 된 점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슬프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민족과 문학》, 1992년 봄호

이 작품은 생전 원고지 10만여 장 분량에 달하는 단행본 80여 권을 펴낼 정도로 쉼 없이 글쓰기에 몰두하며 ‘한국의 발자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던 소설가 이병주의 유장한 문학 인생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기에 더욱 의미 있다.

일찍이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던 시절, 이병주는 자신의 책상 앞에 ‘나폴레옹 앞엔 알프스가 있고, 내 앞엔 발자크가 있다’고 써 붙여 두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이 오연한 기개가 나중에 파란만장한 생애와 체험, 박학다식과 박람강기, 이야기의 재미와 웅장한 스케일, 박진감 있는 구성 등으로 뒷받침 된다는 면에서 이병주는 생전의 바람대로 ‘한국의 발자크’라 부를 만하다.
이러한 작가로서의 면모를 다시 떠올려 볼 때, 그리고 우리 문학사에 그의 성향 및 성취에 필적할 만한 작가를 찾는 일이 거의 무망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우리는 유명(幽明)을 달리한 지 16년에 이른 그의 작품을 다시 확인하고 평가해야 할 필요성을 강렬하게 느끼게 된다. -엮은이 김종회


1920년∼1945년에 걸쳐 한국·일본·중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대서사.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 최고 학부 동경대학을 거친 후
일본인 엔도오 대위, 중국인 방세류로 살아가는 한 인물의 자아를 찾아가는 고독한 여정


이 책에는 학(도)병 세대인 이병주의 역사적 체험이 고루 녹아 있다. 학병들은 주로 부유한 집안에
서 자라 전문학교, 대학 이상의 교육을 받은 고학력자로 세계정세나 이데올로기, 민족의식에 대한

자의식이 단순 지원병에 비해 강했기 때문에 군에 징집되어 일본군에 편입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다. 따라서 양반의 피가 섞인 노비 출신으로 최고 학부에까지 오른 주인공의 일본군으로서의
활약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설정부터 매우 흥미롭다. 특히 한국, 일본, 중국을 넘나드는 소설의 광범위한 공간적 배경과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주인공의 모습은 역사에 대한 독자의 호기심과 이야기에 저절로 빠져드는 즐거움을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1920년대 경상도 한 산골마을에서 노비의 자식으로 살던 주인공 ‘나(박달세)’는 어느 ‘별이 차가운 밤에’ 자신이 마을 유지 최 진사의 아들이라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노비의 아들이면서 또한 양반의 핏줄이라는 정체성의 혼란 속에 자신을 노비의 아들로만 취급하는 최 진사 가족에 대한 분노를 키우며 일본으로 떠나 고학을 하여 동경대학 법학부에까지 들어가 최고 엘리트가 되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자신이 노비 출신이란 자각과 그것이 세상에 밝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노비 출신 따위가 무슨 일을 하겠는가 하는 무력감이 가득하다. 일본 경찰과의 친분을 동원하여 최 진사 집안에 대한 복수를 감행한 후 중국으로 건너간 ‘나’는 일본군 엔도오 대위이자 중국인 방세류로서 이중, 삼중의 삶을 살아간다. 수시로 부딪히게 되는 조선인 독립 운동가들의 당당한 모습을 보며 ‘나’는 노비 출신인 자신은 그러한 삶을 살아봤자 웃음거리밖에 안 될 거라며 합리화하고, 그러한 자신의 태도를 ‘노예근성’이라 표현하며 자조한다.


학병 세대 이병주의 글쓰기를 관심 있게 천착한 김윤식 교수의 작품 해설 수록

이 책의 마지막에는 학병 세대 이병주 문학의 3부작으로《관부연락선》,《지리산》,《별이 차가운 밤이면》을 꼽은 김윤식 교수의 자세한 해설이 수록되어 있다. 이병주의 학병 세대 글쓰기의 포문을 연《관부연락선》은 학병으로 징집된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워 소설을 전개함으로써 학병 세대의 의식 구조를 확연히 드러내 보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지리산》에서는 학병 거부자의 의식 형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 나가 순수 학병 세대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그런데 학병 세대 글쓰기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는《별이 차가운 밤이면》에서는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작가의 계급의식에 대한 성찰을 확인할 수 있다. 한평생 역사와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으며 역사가 빠뜨린 것을 문학으로써 채워 온 이병주는 말년에 이르러 ‘학병 세대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다시 접근한다. 그리고 대부분 부유한 계층으로 구성되었던 학병 세대의 성격에서 탈피해 양반의 피가 섞인 노비의 자식인 박달세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소설은《관부연락선》,《지리산》에 이어 학병 세대 글쓰기 3부작을 완성하는 마지막 작품이다. 앞의 두 작품에 비해 계층의식이 뚜렷하며, 노비의 자식(나=박달세)이 학병 세대의 일원으로 될 수 있었겠는가 하는 계층의식이 ‘박달세=엔도오 대위’ 같은 엽기성으로 처리되어 그것이 허구라 하더라도 일종의 환각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억지를 내세움이 학병 세대 글쓰기로 일관해 온 작가 이병주의 마지막 정직성이 아니었을까. -김윤식, '노비 출신 학병 박달세의 청춘과 야망-1940년대 상해'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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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란, 아니 어린아이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심리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하염없이 갈티로 가는 길을 걸었다. 벼를 거둬들인 논은 강낭수수를 벗겨 먹은 뒤의 강낭수수 같았고, 메뚜기 한 마리 눈에 뜨이지 않았다.
나는 울고 있었다. 왜 울었는가.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감쪽같이 감추고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은 어미가 불쌍해서 울었는지 모른다. 이것저것 모르고 험한 밤길을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간
아비가 불쌍해서 울었는지 모른다.
하늘과 산 그리고 들은 어제와 같은데 그날 내 눈에 비친 산과 들은 어제의 산, 어제의 들이 아니었다. 언제나 허허하게 넓기만 한 하늘도 어제의 하늘이 아니었다. 보다도 내 자신이 어제의 내가 아닌 것이다. - 본문 중에서
[P. 190~191] 열차는 달리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농촌의 풍경이 스친다. 꼭대기까지 벗겨진 산, 을씨년스런 들, 말라붙은 시내, 멀게 가깝게 옹졸하게 웅크리고 있는 초가지붕의 취락. 그런데다 하늘은 침울한 빛깔로 찌푸리고 있었다. 앙상하고 쇠잔한 겨울의 풍경이다. 며칠 전 산양선을 타고 오며 보아 온 일본의 겨울 풍경이 상기되었다. 일본의 겨울 풍경엔 그런대로 살아 있는 사람들의 보람 같은 것이 있었다. 검은 기와, 하얀 벽으로 된 아담한 집들이 상록수 또는 낙엽수의 숲 사이에 다소곳한 차림이었고, 작물을 걷은 후 노출된 논바닥은 정연하게 경지 정리된 흔적으로 하여 문화文化의 내음마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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