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소비사회는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동안 그에 대한 비판이 없지 않았다. 그러한 비판들이 현재의 구조들을 바꾸어놓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후기 과소비사회가 도래할 것인가? 지금으로서는 과소비사회를 대체할 믿을 만한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현대 과소비사회는 지금보다 더 큰 규모로 발달할 것이라는 게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다.
과소비사회를 살아가는 과소비자는 단순히 물과소비자의 심리를 세밀하게 분석한다! 과소비사회는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동안 그에 대한 비판이 없지 않았다. 그러한 비판들이 현재의 구조들을 바꾸어놓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후기 과소비사회가 도래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과소비사회를 대체할 믿을 만한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현대 과소비사회는 지금보다 더 큰 규모로 발달할 것이라는 게 지금으로서는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다. 과소비사회를 살아가는 과소비자는 단순히 물질적인 탐욕을 품은 사람이라기보다 정신적 안락함과 내적 조화, 주관적인 행복을 요구하는 자다. 감각적이고 경험적인 마케팅(감정과 정서, 과거에 대한 향수, 신화와 유희, 시민 의식이나 환경, 동물적 본능)과 더불어 창조적 이미지인 예술과 아름다움, 스타일, 미학적 경험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시대다. 질적인 탐욕을 품은 사람이라기보다 정신적 안락함과 내적 조화, 주관적인 행복을 요구하는 자다. 감각적이고 경험적인 마케팅(감정과 정서, 과거에 대한 향수, 신화와 유희, 시민 의식이나 환경, 동물적 본능)과 더불어 창조적 이미지인 예술과 아름다움, 스타일, 미학적 경험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시대다.
<행복의 연설>은 과소비사회의 소비심리를 분석한 미래사회 전망 보고서이다. 이 책은 대중소비사회 제3단계, 즉 과소비 사회의 현상과 주요 사안을 탐색하여 '과소비사회의 종말'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히고, 과소비사회 이후에 찾아올 다른 유형의 삶의 새로운 목표와 의미 그리고 전망을 발견함으로서 미래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한다.
기획 의도 이 책의 목적은 과소비사회의 기능과 과소비사회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살펴봄으로써 과소비자의 심리를 분석하고 그 미래를 전망해보는 데 있다. 소비 문명은 역사적으로 3단계를 거치며 변화해왔다. 대중소비사회 제1단계는 1880년대 무렵부터 시작되어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막을 내렸다. 이 단계는 부르주아만이 주체가 되는 불안전한 대중소비사회를 형성했으며 대량생산이 확산되면서 대중 마케팅과 현대적 의미의 소비자가 생겨났다. 제2단계는 1950년대 무렵 시작되어 전후戰後 30년에 걸쳐 자리를 잡았다. 이 단계는 놀라운 경제성장, 노동생산성 향상, 포드주의 경제 시스템의 확장을 그 특징으로 하며 ‘풍요로운 사회’와 동일시된다. 대중소비사회의 완벽한 모델로 등장한 제2단계는 소비수준이 향상되고 소비구조가 변했으며 내구재 구매가 거의 모든 계층에 널리 퍼진다. 풍요로운 사회는 ‘인위적인 수요 창조’, 조직적인 ‘낭비’, 끊임없는 유혹과 욕망을 자극하는 시대의 모습을 드러냈다, 소비사회는 대대적으로 신상품에 대한 열정과 상품 구매욕을 부추기고 소비 바이러스를 퍼트리며 물질적 가치에 치중하는 생활양식을 창조해냈다. 그렇게 제2단계는 미래의 방향을 ‘현재의 삶’과 즉흥적인 만족을 향한 시대로 변경해버렸다. 하지만 오늘날은 이 단계 역시 막을 내렸다. 1970년대 말 이후 제3단계 소비자본주의 시대가 열리며 자유주의 사회의 소비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모험에 새로운 미래가 시작되었다. 이 책은 대중소비사회 제3단계, 즉 과소비hyperconsommation사회의 현상과 주요 사안을 탐색하여 ‘과소비사회의 종말’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밝히고, 과소비사회 이후에 찾아올 다른 유형의 삶의 새로운 목표와 의미 그리고 전망을 발견함으로서 미래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한다.
‘소비사회’라는 개념은 오늘날 경제 체계와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현상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아무런 의문이나 회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소비사회의 종말을 말하기도 했다. 그와 달리 한편에서는 대중소비사회라는 이상주의에 문제 제기를 하는 의견도 있다. 그중 두 가지를 살펴보면, 첫 번째는 정보통신기술의 혁명을 강조하는 새로운 유형의 사회가 도래했는데, 그것이 바로 소비자본주의의 뒤를 잇는 정보자본주의와 네트워크 사회라는 견해다. 두 번째는 우리 사회의 태도와 가치 변화다. 이에 따르면 물질적 행복, 부유함, 신체적 안위를 중요시하던 시대는 가고 이제는 삶의 질, 자아 표현, 정신적 가치, 삶의 의미를 중요시하는 시대가 왔다. 물질문화 시스템에서 ‘포스트-물질주의’ 세계관으로 옮겨감으로써 정보사회, 포스트-물질사회의 등장과 함께 ‘물질’의 신성화는 조금씩 사라져갔다. 민주주의 사회는 지난 20여 년 동안 생활양식의 상업화라는 새로운 시대로 옮겨갔다. 이제 소비행위는 사물과 타인과 자아와의 새로운 관계를 표현한다. 욕구는 계속해서 활발하게 팽창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집단이나 개인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세 번째 유형’의 소비자가 등장해 거대한 쇼핑센터를 활보하고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며, 유기농 또는 저지방 상품과 고급품을 원하고 인터넷에 접속하고 휴대전화로 음악을 내려 받는다. 대중소비 시대는 자연스럽게 모습을 바꿈으로써 새로운 역사적 단계로 접어들었다. 새로운 경제 질서와 소비문화가 등장했다고 역사가 완전히 달라졌다고는 할 수 없다. 후기 대중소비사회는 역사의 지속성 내에서의 단절 또는 변화로 이해해야 한다. 포스트-포드주의 시스템은 수요 자극방식, 판매 전략, 소비자들의 행동 양식과 상상력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19세기의 마지막 몇십 년 전부터 시작된 경제적 역동성을 지속시키며 개인의 행복 추구라는 문명의 긴 흐름 위에 놓여 있다. 오늘날 산업과 서비스들이 선택 논리, 제품과 가격의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고, 대규모 유통업체도 차별화와 세분화 전략을 실시하지만 이러한 모든 변화는 생활양식을 보다 상업화시키고 광적인 욕구를 더욱 증가시킨다. 또 지난 50년간 이미 성공을 거둔 ‘항상 더 많이, 더 새롭게’라는 논리를 한 단계 높여 놓았을 뿐이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소비사회의 ‘종말’이나 포스트-물질주의가 아니라 과잉물질주의로의 이행을 생각해봐야 한다. 결국 현대사회는 ‘탈-소비’사회가 아니라 과소비사회다.
과소비사회란 무엇인지 그 정의를 살펴보자. 새로운 근대의 시작은 20세기 후반에 형성된 ‘욕망의 문명’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 혁명은 수요와 상품화, 무한히 증가하는 욕구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성향과 뗄 수 없다. 즉 생산 경제의 자리에 소비자본주의가 등장했다. 몇십 년 사이에 풍요로운 사회는 관습은 물론 삶의 유형과 목표를 완전히 바꿔놓았으며 물질, 시간, 자아, 타인과의 새로운 관계를 탄생시켰다. 미래에 대한 기대 대신 현재를 중시하는 삶이 자리를 잡았고 정치적 참여 대신 쾌락주의가 주를 이루었다. 안락함에 대한 열정이 국가주의적인 열정을 대신하고 여가 생활이 혁명 정신의 자리를 차지했다. 삶의 조건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새로운 신앙처럼 등장하면서 더 나은 삶의 추구라는 트렌드가 대중의 열정, 즉 민주 사회의 최종 목표이자 거리 곳곳에서 발산되는 이상이 되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삶의 양식, 취향, 동경, 무한히 증가하는 욕구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성향, 행동 양식이 근본적으로 바뀐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중소비사회가 자유주의 경제사회의 새로운 인간에 기여한 바는 어떤 표현으로도 불충분하다. 겉보기에는 별로 달라진 점이 없다. 우리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대형 상점과 광고, 자동차, 영상 매체들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지난 20여 년을 돌아볼 때 새로운 ‘지각변동’은 공급 구조는 물론 일상의 습관이나 근대 소비자 운동의 정신세계까지 변화시키면서 오랫동안 이어오던 소비문화 사회의 종말을 가져왔다. 소비문화 혁명 자체가 혁명적인 변화를 겪었다. 이렇게 해서 자본주의 사회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과소비사회가 그것이다. 과소비사회의 특징인 ‘다양성의 경제’와 ‘반응의 경제’는 제품의 질뿐만 아니라 ‘혁신’과 ‘신상품 출시’가 기업 경쟁력의 기준이 되었다. 동시에 유통과 마케팅, 홍보가 시장 공략의 새로운 도구로 떠올랐다. 이 때문에 경제는 공급의 축에서 수요의 축으로 중심 이동했다. 브랜드 전략,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 단골 고객 확보 전략, 급격한 시장 세분화, 커뮤니케이션 발달로 제품 중심의 기업에서 시장과 소비자 중심의 기업으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이루어졌다. 이는 기업들의 전략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경제의 총체적인 구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최근의 유가 폭등은 생산자에서 연유한 것이 아니라 수요, 특히 미국과 중국의 수요 급증에 따른 현상이다.
소비자들의 행동 양식과 소비 이미지도 혁명적인 변화를 보였다. 이른바 ‘소비 인간’이라는 유형이 탄생했다. 이 신종 소비자들은 유동적이고, 융통성 있게 행동하고, 과거의 계급 문화와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으며, 기호나 구매 성향이 즉흥적이다. 이제 소비자가 직접 자신의 시간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모습을 개조하며, 각자 삶의 방식을 창조해나가며, 소비의 주체로 등장하여 세계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소비 정신은 가정과 종교, 정치와 노조, 문화와 여가 시간에까지 침투했다. 앞으로도 소비 인간 속의 유희 인간Homo ludens들의 소비는 무한한 제국으로 군림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겨우 과소비사회의 전반부에 와 있다. 지금으로서는 그 무엇도 경험과 생활양식의 상품화 현상을 막을 수 없다. 이제 곧 세계는 수백만 명의 중국인과 인도인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생되는 재화와 풍요로운 서비스의 소용돌이 속으로 진입할 것이다. 환경론자들의 끊임없는 경고도, 좀 더 검소한 새로운 소비 성향도 증폭되는 상품 세계의 주도권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 소비를 향한 고속철도에서 벗어나게 하거나 점점 더 수명이 짧아지는 신상품들의 대대적인 등장도 제지하지 못할 것이다.
과소비사회의 소비는 실존적 시간과 관계가 깊다. 물질주의는 이미 지나갔다. 그 자리에 영혼을 위한 시장, 자아 존중과 균형을 추구하는 시장이 등장했다. 내면의 행복이야말로 오늘날 마케팅의 주요 대상이며 상업의 주요 분야가 되었다. 감각적이고 경험적인 마케팅과 더불어 창조적 이미지인 예술과 아름다움, 스타일, 미학적 경험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시대다. 쾌락주의와 안락함에 대한 열정이 국가주의에 대한 열정을 대신하고, 여가 생활이 혁명 정신의 자리를 차지했다. 즉 상품을 통해 얻는 만족감이 행복을 위한 지름길이 되었다. 삶의 조건을 개선하려는 노력 또한 새로운 신앙처럼 등장했으며,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트렌드가 대중의 열정과 이상이 되었다. 이러한 가치 기준에 지배받는 한 생태적, 경제적 재앙은 어느 정도 극복하겠지만 과소비사회는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물질적이고 즉흥적인 기쁨을 평가하는 새로운 방법들이 등장할 것이고, 새로운 교육 시스템이 요구되므로 과소비사회는 다른 유형의 문화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다. 삶의 새로운 목표와 의미, 새로운 전망, 우선시해야 할 것들을 발견함으로써 미래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생산방식의 혁명보다 가치의 혁명 또는 즉흥적인 기쁨을 재평가하는 문화적 변화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소비 인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사치스런 이미지나 기세등등한 중심축을 잃게 될 것이다.
“행복을 말하는 사람의 눈에는 흔히 슬픔이 묻어 있다.”고 아라공Louis Aragon은 말했다. 사회에 적용되는 진실은 개인에게도 적용된다. 모든 해결책은 동시에 새로운 딜레마를 제공한다. 우리 사회는 점점 부유해지고 있으나 상당수는 열악한 조건에서 산다. 우리는 예전보다 더 나은 치료를 받고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만성 우울증에 시달린다. 걱정과 실망, 사회적, 개인적 불안감은 증폭된다. 과소비사회가 될수록 역설적 행복의 문화가 자리 잡아간다. ‘불행한 삶’을 나타내는 현상들이 증가하는 반면, 개개인은 그만큼 과거보다 더 빠르게 ‘재기’할 수 있는 기회도 누린다. 희망을 버리지 않을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상품에 대한 욕구는 커지고 있지만 개인은 여전히 일시적인 물질적 안락 이외의 것을 위해 살아간다. 사랑, 진리, 정의, 애타주의와 같은 이상이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한다. 그 어떤 완벽한 허무주의도, ‘최후의 인간’도 과소비사회의 지평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삶의 기쁨이다. 소비의 일시적인 천국 밖에서 정체성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새로운 유형의 교육과 일을 개발해야 한다. 역설적 행복의 시대는 해결책도 역설적이다. 지속적인 경제 발전뿐만 아니라 덜 불안하고 소비로 인한 만족감에 덜 집착하기 위해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소비를 늘려야 한다’. 빈곤 퇴치뿐만 아니라 노인들을 돕고 시민들을 잘 보살피고 시간과 서비스를 더 적절히 사용하고 세상을 향해 문을 열고 새로운 경험들을 맛보기 위해 소비를 늘려야 한다. “소비의 진보 없이는 구원도 없다”는 말은 다음과 같이 바뀌어야 한다. 즉각적이고 온전한 만족감 대신 상품의 욕구만을 따른다면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은 없다. 정치적 혁명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소비문화를 재조정하고 소비와 생활 방식을 지속적으로 창출해야 하는 시대다.
책 내용 과소비 시대에서는…개인적인 구매 동기가 사회적 지위 과시보다 한참 앞서는 현상이다. 이제 사람들은 과시를 위한 물품보다 ‘더 나은 삶을 체험하게 해주는’ 물품을 선호한다. 감정적, 신체적, 감각적, 미학적이고 관계를 중시하며 건전하고 재미있고 기분을 전환해주는 상품들이 바로 그것이다. 기존에는 상품이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었다면 이제는 서비스로 작용한다.…이제 소비는 개인의 행복과 건강, 그 밖에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해주는 수단이나 사적인 시공간의 확보 따위와 관련하여 결정된다.…이와 같이 제3단계는 오락적인 가치가 명예의 가치를, 자아 유지가 서로 간의 비교를, 감각적인 안락함이 과시적인 기호들을 누르는 시대다.…이와 더불어 마케팅 주체나 이론가들도 정서적이고 감각적인 체험에 도움이 되는 수많은 방법을 소비자들에게 연이어 제시한다. 감각적?경험적 마케팅이 바로 그것이다. 제품의 합리성과 성능을 강조하던 기존의 마케팅과 달리 오늘날의 많은 브랜드는 감정과 정서, ‘근원’, 과거에 대한 향수鄕愁라는 카드를 내민다(복고 마케팅). 신화와 유희를 강조하는가 하면 시민 의식이나 환경, 또는 동물적 본능에 호소하기도 한다._44쪽~48쪽
사람들이 사회적 지위에 열광하던 시대는 지나고 이제 건강 문제에 집착하는 시대가 왔다.…신소비자는 더 이상 사회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는가에 신경 쓰기보다 의료 기술을 통해 자신의 몸을 더 많이 통제하기를 원한다. 이렇듯 소비는 인간의 운명에 저항하는 하나의 방식이 되었다.…의료 혜택 덕분에 인간의 자신의 삶을 주관하는 힘을 넓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기력한 소비자’가 되었다._59쪽
이전에 소비는 남과 나를 구분하는 행위였다. 이제는 점점 ‘즐기고’ 기분 전환을 하고 일상의 생활공간에서 장식 하나를 바꿈으로써 작은 기쁨을 느끼는 행위로 변한다.…소비는 스스로 자신을 보상해주는 놀이와 같다.…오늘날 소비 인간 속에는 유희 인간만이 남아 있어 소비의 즐거움은 놀이의 즐거움과 가까워진다._74쪽
소비자본주의 제3단계에서는 ‘초저가’ 전략만으로 다양한 고객층을 만족시킬 수 없다. 이제는 구매 행위를 축제로 즐기도록 매장을 ‘삶의 공간’으로 꾸며야 한다. 이전에는 ‘판매 공장’처럼 극도로 기능적이고 공간을 최소화하는 환경이 지배적이었지만 이제는 소비 여흥의 시대, 상품의 ‘판매 환경이 극대화된’ 시대다. 고객들이 쇼핑을 즐거운 체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양한 콘셉트로 제품을 연출한다._92쪽
제3단계는 끊임없이 개인적 선택의 폭을 넓힘으로써 개인의 행동이 집단의 틀을 넘어서게 했고 가정용 설비를 개인화했다. 제3단계는 선택의 시대에서 극단적 선택의 시대로, 단일 설비에서 복합 설비로, 간헐적인 소비주의에서 지속적인 소비주의로, 개인주의적인 소비에서 극단적인 개인주의 소비로의 이동을 보여준다._115쪽
터보-소비자는 모든 것을 즉석에서 언제든지 원한다. 실시간 수요와 공급이 확대되면서 소비 인간은 즉각적이고 긴급한 상황에 눌려 잠깐의 기다림도 참지 못한다.…그렇다면 터보-소비자는 ‘실시간’의 노예로 전락해 조급증이라는 질병을 앓는 환자가 되었을까?…과소비자는 동시에 좀 더 느리고 질적이며 감각적인 시간에 가치를 두는 행동과 욕구들도 증가했다. 슬로푸드, 음악 감상, 걷기, 산책, 스파, 증기탕, 명상, 긴장 완화라는 말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제3단계는 다원적인 시간의 소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_123쪽~125쪽
1970년 보드리야르는 소비사회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썼다. “소비사회에는 ‘반성’과 자신에 대한 관점이 부재한다…. 오로지 진열장만 있어, 개인은 더 이상 스스로 사고하지 않고 수많은 상품/기호를 바라보는 일에 흠뻑 빠져 있을 뿐이다.” 그런데 상품에 대해 적정한 거리를 두고 경계의 눈으로 판단하는 제3단계는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을까?…제3단계에서는 구매 상품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수집한 다음 현명하게 판단한다. 결코 아무런 생각 없이 구매하지 않는다. 단지 생각만 하던 단계에서 더 나아가 의심스러운 것을 꼼꼼하게 따진다. 제3단계는 소비를 하나의 세계이자 문제, 골칫덩이이자 신중한 인식으로 지칭한다._151쪽~152쪽
현대사회의 삶은 행복과 기쁨의 기호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건축물처럼 보인다.…오늘날 사회의 행복과 기쁨을 보여주는 다섯 가지 패러다임의 모델을 살펴보고자 한다. 각각의 모델마다 그에 상응하는 신화의 이미지를 포함한다. 페니아_물질적 쾌락과 실존적 불만_소비주의 사회는 끊임없이 욕구를 자극한다. 사람들은 행복이 손에 닿을 만큼 가까이 있기 때문에 더 심한 절망과 상실감을 경험한다. 흥분을 억제하지 못해 안달하며 불만족과 우울증에 시달린다. 지나치게 행복한 축제의 사회야말로 가장 심한 결핍감으로 절망하는 사회다. 이것이 바로 페니아의 원리다. 디오니소스_쾌락주의와 반디오니소스 사회_유희-축제의 가치기준이 확산될수록 사회는 사실상 완전히 반디오니소스적이 된다. ‘지금 그리고 여기’의 욕구를 우선시하는 디오니소스적인 쾌락주의 시대에 개인주의적 태도와 갈망이 거부할 수 없는 파도처럼 몰려온다. 디오니소스적인 가치의 부활이 아니라 초현대사회의 개인주의적인 역설적 세계의 발명이다. 슈퍼맨_완벽에 대한 집착과 감각의 기쁨_현대사회는 쾌락주의 풍습에 지배받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경쟁력, 훌륭함, 유능함, 적극성 등이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는 사회다. 힘을 과시하고 잠재력을 최대한 계발하여 자기 초월을 시도하는 시대다. 유능함을 중시하는 사회의 현판에는 수치로 환산된 영웅 슈퍼맨의 이름이 적혀 있다. 네메시스_행복의 과다 노출과 욕망의 후퇴_오늘날 행복을 중시하는 문화가 사람들의 감정을 길들이기는커녕 증오심, 질투심, 경쟁 심리를 더 부추겼다.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가 그러한 욕망을 상징한다. 여신은 인간들이 지나치게 많은 부와 행복을 누리는 것을 벌한다. 호모 펠릭스_유토피아의 위대함과 불행_소비문화와 대중 커뮤니케이션이 부각되면서 전통적 관습이 사라지고 공동체가 무너지고 불신이 증폭되자, 개인화된 대중들은 지나치게 쾌락에 집착했다. 육체적 심리주의 숭배, 독립성과 개인적 성취감, 소비주의에 대한 열정이 강화되었고 개인의 자아도취 성향은 심화되었다._169쪽~173쪽
1960년대부터 지식인들 사이에서 그 유명한 ‘풍요의 저주’라는 주제가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신소비자는 끊임없이 결핍의 상태로 몰아가고 주기적으로 불만족을 느끼게 만들어 평온함과 기쁨을 앗아간다고 주장했다.…욕망의 사회는 기쁨을 맛볼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할수록 소비자를 만족의 상태에서 더더욱 멀어지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풍요 속의 빈곤, 페니아의 강박증이다.…정말 과소비자는 탄탈로스처럼 참을 수 없는 좌절감 속에서 살면서 즐거움을 빼앗기는 고통을 영원히 견뎌야 하는가?…소비 욕구는 끝이 없으며 자원이 증가할수록 욕구도 커진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흥미로운 점은 바로 소비자의 욕구가 자신의 구매 한도를 지나치게 넘지 않는다는 점이다.…과소비자는 페니아를 확대하기보다 기대 수준을 상황에 맞추려고 노력한다._204쪽~207쪽
과소비사회 모델은 ‘디오니소스적’ 본질을 지니고 있는가? 현대 문화에는 탈개인화, 열광적인 황홀경,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강렬한 쾌락주의라는 특징이 있을까?…전통문화에서 인간은 디오니소스를 숭배함으로써 개인주의에서 해방될 거라고 기대했다.…하지만 이것은 과소비사회가 보이는 완전히 상반된 행복의 모델이다. 과소비사회는 공동체적 기쁨 대신 여가 생활을 소비하는 개인적인 기쁨으로 대체되었다.…황홀한 디오니소스적 축제가 아니라 여가 생활과 소비를 즐기는 사적인 시간들로 이루어진 세계다._235쪽~236쪽
초현대사회의 개인은 정말 더 나은 자아, 자신을 넘어서는 자아를 원할까?…과소비사회에서 사람들은 가정생활, 이성 관계, 휴식, 바캉스, 여행, 여가 활동, 그 밖의 다른 취미나 동호회 활동에 특히 많은 관심을 갖고 즐거움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실제로 일 외의 시간이 자신에게 더욱 소중하고 근본적인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갖기도 한다. 기꺼이 도전하는 긍정적 태도가 무조건적으로 일에 열광케 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_294쪽~298쪽 장 피에르 뒤피는 질투가 ‘현재의 경제학 분야를 사로잡고’ 있다고 밝혔다.…어떤 유형의 억제된 적대감이 소비자본주의를 부추겼을까?…기존의 사회는 질투심을 부추겼다.…그렇기 때문에 ‘부끄러움의 문명’이 ‘죄책감의 문명’과 같은 자격으로 질투의 문명처럼 여겨졌다. 이런 차원에서 과소비사회는 하나의 단절을 기록한 셈이다. 질투로 인한 두려움이 더 이상 사회나 개인의 행동을 지배하지 않는 것은 물론, 타인의 것을 빼앗고 싶어 하는 욕구 또한 심리적인 경제체제에서는 단지 아주 작은 자리를 차지할 뿐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질투의 고통이 줄어드는 것을 보게 되었다고 너무 기뻐하지는 말자. 악의에 찬 기쁨은 줄어들었지만 그만큼 타인에 대한 무관심은 증가했다._348쪽~376쪽
과소비사회는 행복의 이름으로 발달한다. 재화 생산, 서비스, 미디어, 여가 생활, 교육, 도시 개발 등 모든 것이 좀 더 큰 행복을 위해 돌아간다.…지나치게 행복을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새로운 공포심을 유발하지는 않을까?…소비주의 행복에 제기된 비난은 개인적인 불행의 틀을 훨씬 넘어선다. 환경 파괴 문제는 인류의 미래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대죄가 아닐 수 없다.…제3단계는 바로 시민 의식을 지닌 책임감 있는 소비자가 필요한 시대다.…경제개발과 환경보호를 동시에 감당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필요하다.…이러한 변화는 과소비사회의 종말을 고하기보다 생산과 소비구조가 서비스 활동을 중심으로 달라지게 만들고 있다._381쪽~388쪽
오늘날 제3단계를 대신할 해결책이 없다고 해서 제3단계가 ‘역사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하지만 언젠가 소비에서 얻는 행복이 지금과 같은 매력을 발산하거나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쾌락주의 이후는 어쩔 수 없이 교육 시스템과 미래를 생각하고 준비하는 방식, 그리고 훌륭한 삶의 정의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렇다고 소비 인간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극도의 상품주의 사회를 단순히 비판하기보다 수정하고 재정립해야 한다. 과소비의 문어발식 질서가 다양한 삶의 수평선을 짓밟지 않도록 새롭게 균형을 잡고 정립해나가야 한다.…어느 것도 안전한 모델은 없다.…이것은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매우 고된 작업이다. 행복의 정복에 끝이 있을 수 없다._417쪽~4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