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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형(전거형, Authority) | 생물정보 | 이형(異形, Variant) | 소속 | 직위 | 직업 | 활동분야 | 주기 | 서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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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사진]
이 책을 내면서 / 김종식
일러두기
목차
제1부 독도의 유래 14
No1. 독도현황 표준고시 15
No2. 시마네현, 오키도 명칭 19
No3. 독도 명칭의 유래 21
No4. 독도의 역사적 근거 23
No5. 가산도의 비밀 25
No6. 중국사에 나타난 울릉도 31
No7. 신라 우산국 정벌 33
No8. 탐라국 백제에 복속 36
No9. 세종실록지리지 37
No10.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인다 38
No11. 왜 무릉도라 했을까? 39
No12. 일본인의 잘못된 인식 41
No13. 우리 학자들의 반박 44
No14. 우산국의 독도지배 47
No15. 박이종도 우산국을 정벌했다 49
No16. 지증왕의 결혼 53
No17. 일본도에는 안도 55
No18. 일본도(日本圖) 55
No19. 후소국지도(扶桑國之圖) 58
제2부 고려시대와 독도 60
No20. 고려 왕건에 방물을 바친 우산국 61
No21. 울릉도에 관한 최초의 일본기록 '권기' 63
No22. 거란의 침입 67
No23. 거란의 1차 침입 67
No24. 거란의 2차 침입 67
No25. 거란의 3차 침입 68
No26. 여진족의 울릉도 침략 68
No27. 이원구의 활약 70
No28. 우릉성주, 고려에 방물을 바치다 72
No29. 대마도에서도 고려에 방물을 바쳐오다 73
No30. 이양실의 활동 74
No31. 울릉도 명칭이 등장 75
No32. 김유립의 보고서 76
No33. 고려사 지리지 76
No34. 최충헌, 최우의 이주정책 80
No35. 왜구들의 약탈 81
No36. 울릉도 이주정책 실패 82
No37. 대마도를 종(宗)씨라는 혈통이 지배하다 83
No38. 권형윤과 사정순을 울릉도 안무사로 파견 83
No39. 박순. 울릉도로 도망? 84
No40. 대마도에 사절단을 재차 파견하다 86
No41. 몽고 앞잡이 이추 86
제3부 고려 말, 조선초기시대 88
No42. 왜구(倭寇) 89
No43. 여몽 일본정벌 실패 91
No44. 고려 말의 울릉도 기록 92
No45. 왜구의 극성 94
No46. 왜구 침입의 대강 97
No47. 대마도는 고려의 속방 99
No48. 고려말기에 난장판을 친 왜구 101
No49. 막부란 무엇인가? 103
No50. 이성계가 고려의 실권을 쥐다 106
No51. 박위의 대마도 정벌 108
제4부 태종시대 110
No52. 재위 기간 111
No53. 김사형의 대마도 정벌 111
No54. 조선의 공도정책 115
No55. 공도가 아니고 쇄환이다 116
No56. 대마도 도주의 야욕 117
No57. 무릉도(武陵島)와 무릉도(茂陵島) 118
No58. 왜관 설치 118
No59. 유산국도와 백가물 120
No60. 박습의 계언 123
No61. 무릉등처안무사로 김인우를 임명하다 123
No62. 김인우를 울릉도에 파견하다 124
No63. 문제의 우산도 126
No64. 우산무릉등처안무사 김인우, 2차 파견 127
No65. 1도 2명설 128
No66. 우산도에 대한 한일 간의 논쟁 130
No67. 춘추필법 133
No68. 우산도와 무릉도를 도둑질한 왜구 135
No69. 왜관 증설 137
제5부 세종대왕시대 138
No70. 태종과 세종대왕 139
No71. 왜구가 비인현과 해주에서 약탈하다 139
No72. 양식이 떨어진 울릉도서 온 이주민 140
No73. 대마도 정벌작전 141
No74. 대마도는 본래 우리나라 땅이다 142
No75. 이종무의 대마도정벌 143
No76. 왜관폐쇄 145
No77. 대마도, 경상도에 예속되다 145
No78. 2포 개항 148
No79. 바다 사나이 김인우 149
No80. 초혼제를 지내다 152
No81. 실종 선군 10명이 살아서 돌아오다 152
No82. 김인우는 누구인가? 155
No83. 경상도지리지 157
No84. 3포 개항 158
No85. 요도를 찾아라 159
No86. 옛 지리지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162
No87. 신찬팔도지리지 163
No88. 잘못된 공도정책 166
No89. 대마도에서 식량요청 166
No90. 유계문에게 내린 교서 167
No91. 두 명의 경차관을 임명하다 168
No92. 요도를 찾도록 강원도에 지시하다 169
No93. 요도를 찾도록 함길도에 지시하다 170
No94. 계해조약 171
No95. 세종대왕의 끈질긴 요도집착 173
No96. 고려사 편찬 178
No97. 세종실록지리지 편찬 179
No98. 유수강, 우산과 무릉에 읍의 설치를 건의 181
제6부 성종시대 184
No99. 삼봉도를 찾아라 185
No100. 함선준비를 지시 189
No101. 삼봉도행 계획서 191
No102. 여진족이란? 193
No103. 박종원, 삼봉도를 탐험하다 195
No104. 노의순, 삼봉도를 봤다고 보고하다 199
No105. 김자주, 삼봉도를 탐색하다 201
No106. 삼봉도가 독도다 204
No107. 삼봉도 포기를 주장 206
No108. 6정승 삼봉도행을 반대하다 208
No109. 우산도 거주민 1천명이 넘었다 210
No110. 성종의 홍보전략 214
No111. 삼봉도는 독도였다 215
No112. 경차관 임명에도 암투가 있었다 216
No113. 조위를 경차관에 임명하다 217
No114. 조위의 삼봉도 전략 218
No115. 성종의 유시문 220
No116. 조위에게 내린 지시 222
No117. 조위의 중간보고서 224
No118. 조위, 삼봉도로 출발 227
No119. 영안도관찰사에 이극돈을 임명하다 228
No120. 삼봉도에서 돌아온 김한경 230
No121. 국문을 받은 김한경 232
No122. 경차관을 초무사로 233
No123. 삼봉도 초무사에 심안인을 임명하다 236
No124. 삼봉도 파견에 반대한 지식층 237
No125. 초무사 심안인에게 교서를 내리다 240
No126. 삼봉도를 찾으려는 이극돈의 계책 243
No127. 김한경 처형당하다 246
No128. 동국여지승람 249
No129. 동국여지승람 강원도 울진현 조 249
No129-1. 중국 고지도 조선부 251
No130. 성종실록 252
제7부 왜란(倭亂) 254
No131. 삼포왜란 255
No132. 무릉도에 불빛 257
No133. 임신조약 257
No134. 신증동국여지승람 259
No135. 사량진 왜변 266
No136. 을묘왜변 267
No137. 조선과 일본어부들의 마찰 268
제8부 강성해진 일본 270
No138. 오다 노부나가 271
No139. 도요토미 히데요시 일본 천하통일 272
No140. 임진왜란 273
No141. 일본의 팔도총도 280
No142. 에도막부 281
No143. 기유조약 283
No144. 울릉도를 다시 욕심낸 에도막부 286
No145. 변례집요 288
No146. 이수광의 지봉유설 291
No147. 마타이 돌려보내다 292
제9부 죽도(울릉도) 도해면허 294
No148. 끊이지 않는 당파싸움 295
No149. 죽도 도해면허 295
No150. 인조반정 298
No151. 누루하치의 청나라 298
No152. 청나라 중국통일 299
No153. 일본선박 표류해 오다 300
제10부 송도(독도) 도해면허 302
No154. 송도 도해면허 303
No155. 일, 고유영토 주장 304
No156. 면허받은 오다니 가문 306
No157. 여지지 311
제11부 일본의 기록과 지도들 312
No158. 7세기 일본 승려 쿄키가 만든 일본도 313
No159. 끊임없는 일본의 불법어로 314
제12부 은주시청합기 316
No160. 은주시청합기 317
No161. 신용하 교수의 주장 322
No162. 시모조 교수의 주장 322
No163. 이케우치의 검증 323
No164. 나이토 교수의 번복 325
No165. 동북아재단의 번역논란과 시비 327
No166. 오십맹신 330
No167. 일본여지노정전도 334
No168. 동여비고 340
No169. 무릉도를 울릉도로 344
No170. 삼국접양도 345
No171. 오가사와라 제도 348
No172. 초량왜관 설치 351
No173. 해산조륙도 353
제13부 안용복 1차 활약 356
No174. 조일 어민들의 충돌 357
No175. 일본에 잡혀간 안용복 360
No176. 독도비사 362
No177. 월간 WIN의 기사 363
No178. 안용복 일본에 가다 368
No179. 안용복의 담판 371
No180. 울릉도, 일본영토 아니라고 인정하다 372
No181. 안용복의 행적 둘로 갈라지다 373
No182. 에도막부란? 375
No183. 안용복 에도막부에 가지 않았다는 주장 376
No184. 울릉도만 조선 땅으로 인정했다고 주장 381
No185. 대마도의 역사 385
No186. 대마도 도주 안용복을 체포구금 388
판권기 394
표제지
[사진]
목차
제13부 안용복 1차 활약 406
No186. 대마도 도주 안용복을 체포구금 406
No187. 외교문서의 별칭 408
No188. 대마도 도주가 보낸 제1차 서계 409
No189. 의문에 쌓인 대마도 도주의 성씨 410
No190. 동래부에 넘겨진 안용복과 박어둔 411
No191. 홍중하를 대마도 사신 귤진중에게 보내다 415
No192. 1차 서계에 대한 답서 418
No193. 대마도주, 공격외교 420
No194. 사관들의 반발 423
No195. 성초형의 설진건의 426
No196. 장희빈과 기사환국 427
No197. 대일강경파의 승리와 갑술옥사 430
No198. 제1차 서계에 대한 답서를 회수하라 431
No199. 제2차 서계 434
No200. 유집일의 활동 438
No201. 새로운 답서 439
No202. 끈질긴 귤진중 441
No203. 상선연 442
No204. 독도 바라본 장한상 444
No205. 울릉도 설진을 상소한 이수언 448
No206. 이준명을 징계하라 449
No207. 대마도 도주의 죽음 450
No208. 대마도 도주의 공식 직함 452
No209. 귤진중의 힐문 453
No210. 귤진중의 힐문에 대한 답서 458
No211. 귤진중, 분노의 재발론 463
No212. 기죽도 각서 471
No213. 에도막부 조선영토로 인정하다 474
No214. 도해면허를 취소한 에도막부 476
No215. 시모조의 억지주장 480
No216. 에도막부 지시를 은폐한 종의진 481
제14부 안용복의 2차 활약 483
No217. 다시 도일한 안용복 484
No218. 안용복, 동행할 선원들을 규합하다 485
No219. 안용복, 계획적인 2차 활약 489
No220. 자산도란 없었다 490
No221. 안용복 관직을 사칭 495
No222. 안용복, 울릉도와 독도지도 소지했다 500
No223. 도쿠가와시대 '조선국도' 새로 발견 502
No224. 글 잘 쓰는 이인성 503
No225. 대마도 도주의 비리 505
No226. 일, 안용복을 강제 출국시켰다고 주장 514
제15부 안용복 처벌논쟁 521
No227. 안용복 2차 활동 후 돌아와 감옥행 522
No228. 안용복의 처형론 523
No229. 비변사에 기록된 안용복의 목소리 525
No230. 안용복 처형에 대한 정치적 논쟁이 치열 528
No231. 미적거린 대마도 도주 535
No232. 문상차 건너가서 서계를 필사해오다 537
No233. 대마도 도주의 성씨 538
No234. 대마도 종씨(宗氏)의 유래 539
No235. 종의륜의 문상 547
No236. 대마도, 공식문서 조선에 전달 549
No237. 안용복의 유배 552
No238. 안용복은 누구인가? 555
No239. 안용복의 나이 558
No240. 일, 안용복의 허구 563
제16부 수토정책의 변화 565
No241. 2년마다 정기적으로 수토실시 566
No242. 조선, 감사서한을 일본에 보내다 567
No243. 흉년으로 수토 연기 568
No244. 감사서한 에도막부에 전달되다 568
No245. 대일본지명사서 569
No246. 수토관 전회일 토산품을 바치다 571
No247. 장희빈 사약을 받다 572
No248. 조선은 우산도로, 일본은 송도라 했다 573
No249. 이준명 수토에 나서다 574
No250. 대마도의 역관사 조난 위령비 578
No251. 평해에서 보낸 수토관 등 익사 580
No252. 김만채 울릉도에 군영설치를 건의 581
No253. 이광적도 군설 건의 582
No254. 울릉도 그린 박석창 584
No255. 백두산정계비 584
No256. 조석명 방어책 건의 586
No257. 이만견, 수토정지 요청하다 588
No258. 김창집 수토정지 요청 591
No259. 울릉도에 입도한 죄로 사형당한 세 사람 593
제17부 영조시대 597
No260. 수토정책 계속되다 598
No261. 키친의 조선지도 602
No262. 죽도도설 604
No263. 신경준의 강계고 606
No264. 울릉도 보다 큰 독도 607
No265. 인삼의 고장 울릉도 609
No266. 홍명한 인삼 유출 611
No267. 동국문헌비고 614
제18부 정조시대 617
No268. 개정일본여지노정전도와 문제의 병풍 618
No269. 하야시의 삼국접양도 623
No270. 프랑스, 울릉도를 다즐렛으로 명명하다 625
No271. 매춘부 서일월 625
No272. 채복허가를 내어준 관리를 구속하다 632
No273. 영국, 울릉도를 '아르고노트'로 명명 633
No274. 영토방위의 친시 634
No275. 가지도 636
No276. 가지어 645
No277. 인삼재배, 국가시책 647
No278. 이병모 채삼금지를 주장하다 649
제19부 세계속의 독도지도들 653
No279. 장생죽도기 654
No280. 천주교인 대학살 655
No281. 울릉도, 반역기지로 656
No282. 만기요람 657
No283. 신정만국전도 658
No284. 조선국약도 659
No285. 대일본연해여지전도 661
No286. 은기고기집 663
No287. 죽도고 664
No288. 김정호의 청구도 665
No289. 울릉도나 독도에 가면 사형에 처했던 일본 668
No290. '독도는 한국 땅' 새겨진 목판 경매 672
No291. 어해서어제본장 674
No291-1. 지볼트의 일본도 677
No292. 김대건의 조선전도 679
No293. 미국 포경선 독도발견 679
No294. 프랑스는 독도를 '리앙쿠르 암'으로 680
No295. 독도표기 세계적으로 오류 투성이 681
No296. 울릉도가 또다시 반역 기지로 683
No297. 미일수호 통상조약 685
No298. 독도 명칭 총정리 686
No299. 미, 다즐레락·대길락 692
No300. 독도 없는 대동여지도 692
제20부 저물어가는 조선시대 699
No301. 고종과 민비 700
No302. 천주교 박해와 쇄국정책 702
No303. 제너럴셔먼호 사건 703
No304. 병인양요 704
No305. 메이지유신 705
No306. 흥선대원군 일, 사신 접견을 거절하다 707
No307.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 708
No308. 일, 폐번치현 단행 713
No309. 신미양요 715
No310. 정한론 716
No311. 정한론 반대 717
No312. 고종의 친정으로 대원군이 퇴진하다 721
No313. 운양호사건 723
No314. 삼국통람도설 724
No315. 일본 군부가 발행한 조선전도 725
No316. 강화도조약 727
No317. 개화파의 집권 731
No318. 조선동해안도 732
No319. 송도개척지의 733
No320. 일 내무성, 태정관에 올린 질품서 737
No321. 태정관 지령문 741
No322. 기죽도약도 모사도 744
No323. 소학필휴일본전도 745
No324. 송도개척청원 쇄도 746
No325. 일본외무성, 송도를 울릉도로 확인 751
No326. 리앙쿠르암으로 바뀐 독도 753
제21부 울릉도 수토관 이규원 757
No327. 임한수와 이규원 758
No328. 죽도고증 761
No329. 송도이견 762
제22부 울릉도 검찰일기 765
No330. 이규원의 활약 766
No331. 이규원의 검찰일기 768
판권기 789
표제지
[사진]
목차
제22부 울릉도 검찰일기 802
No331. 이규원의 검찰일기 802
제23부 울릉도 개척령 806
No332. 신사유람단 807
No332-1. 북양대신 이홍장 808
No333. 조미수호통상조약 809
No334. 임오군란 809
No335. 대원군의 부활 811
No336. 삼군부 항의서한 812
No337. 민비의 부활 815
No338. 개척령과 전석규 817
No339. 동판조선국전도 발행 819
No340.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821
No341. 제물포조약 822
No342. 돈이 없으면 독도라도 달라 824
제24부 김옥균의 등장 826
No343. 일본 태정관 독도를 조선영토로 인정 827
No344. 동남제도개척사 김옥균 828
제25부 개척 이주민 울릉도에 들어가다 832
No345. 개척 이주민 첫 입도 833
No346. 조일통상장정 834
No347. 울릉도에서 일본인들 완전히 철수 835
No348. 일본 해군 수로국에서 만든 환영수로지 837
No349. 경북대감에도 독도는 조선땅 839
No350. 천수환 사건으로 전석규를 파면하다 841
No351. 전라도 사투리에서 유래된 독도명칭 844
No352. 전라남도 남해안에 독도가 있다 848
No353. 전라남도 남해안에 죽도가 있다 849
No354. 김옥균의 활동 852
No355. 이경열의 상소 853
No356. 갑신정변 854
No357. 청·일 텐진조약 861
No358. 만리환 사건 863
No359. 일본인들의 횡폭 865
No360. 조일통어장정 867
제26부 동학혁명 870
No361. 동학혁명과 청·일 간의 대립 871
No362. 갑오개혁 873
No363. 청일전쟁 875
No364. 울릉도 수토를 폐지 877
No365. 초대 도감에 배계주 878
No366. 호사카 교수가 공개한 지도 880
No367. 1894년 프랑스 신문에 난 우산도 882
No368. 민비 시해사건 885
No369. 아관파천 888
No370. 러시아에 넘어 가버린 벌채권 891
No371. 불운의 대한제국 탄생 892
No372. 칙령 제12호 893
No373. 배계주의 활동 894
No374. 대한여지도와 대한전도 898
No375. 우용정의 활약 899
No376. 난장판 친 일본인들 901
No377. 파렴치한 일본공사 903
No378. 칙령 제41호 독도를 석도로 905
No379. 울릉도에 학교설립 909
No380. 제1차 영일동맹 910
No381. 울릉도에 일본인 어촌과 주재소 설치 912
No382. 문제의 나카이 913
No383. 대한제국에서도 울릉도에 경찰관을 파견 915
No384. 일본에서 만든 옛 세계지리 교과서 916
No385. 일본, 동해안 죽변만을 해군 정박기지로 918
제27부 무너지는 대한제국 920
No386. 강성해진 일본 921
No387. 러일전쟁 923
No388. 대한제국과 일본 간의 의정서 923
No389. 대한제국 칙선서 발표 925
No390. 일본, 울릉도에 우편수취소 설치 928
No391. 바짝 긴장한 일본 928
No392. 제1차 한일협약 931
제28부 독도를 일본령으로 934
No393.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그 원인 935
No394. 나카이의 계획 937
No395. 나카이의 청원서 938
No396. 독도에 망루설치 계획 943
No397. 조선은 독도, 일본은 랑코도 945
No398. 러시아함대 독도관찰 946
No399. 일본군 최초로 독도에 상륙하다 946
No400. 침탈할 섬의 소속과 명칭 948
No401. 일본, 독도편입결정 950
No402. 시마네현 고시 40호 957
No403. 독도를 일본영토로 번복하다 963
No404. 일, 국제공법을 악용, 독도를 편입함 965
No405. 일,무주지 주장 966
No405-1. 오키신보 969
No406. 나이토 교수, 일본의 영토주장은 날조 971
No407. 야마베 겐타로 고찰 976
No408. 일, 독도를 시마네현 토지대장에 등기 977
제29부 독도가 해전 요충지로 980
No409. 러시아 발틱함대, 동해서 대패 981
No410. 일, 독도에 망루를 987
No411. 일본 신문들 러·일 간 동해전투 대서특필 988
No412. 가쓰라-태프트밀약 991
No413. 일, 독도편입 후 조선영토로 인정한 자료 994
No414. 제2차 영일동맹 994
No415. 포츠머스조약 996
제30부 일본이 독도를 도둑질 한 것을 알게 되다 1002
No416. 을사조약 1003
No417.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외국에 알린 전보 1009
No418. 심흥택의 보고서 1011
No419. 황성신문 1016
No420. 일본 학자, 석도가 독도임을 입증해야 1026
No421. 신용하 교수의 독도 단정설 1028
No422. 매천 황현 선생 1029
No423. 1905년 이전에도 독도라고 했다 1032
No424. 울릉군의 명칭 1033
No425. 독도의 물개 몰살시키다 1034
제31부 조선 간판 내리고 식민지 시대로 1038
No426. 고종황제의 강제퇴위 1039
No427. 순종 즉위 1041
No428. 정미 7조약 1041
No429. 울릉군수 심흥택 어찌됐나? 1042
No430. 조선수로지 1044
No431. 장인환, 스티븐스를 사살하다 1045
No432. 증보문헌비고 1047
No433. 한국수산지 1048
No434. 간도협약 1050
No435. 안중근 장군, 이토 히로부미 사살 1054
No436. 한일합방 부당성 세계에 호소 1056
No437. 한일병합 1061
No438. 황현선생 절명 1066
제32부 독도를 조선령으로 표기한 많은 지도들 1068
No439. 일, 제주해녀 강제노역 1070
No440. 총독부가 만든 지도에도 조선 땅 1071
No441. 소학국사회도 1072
No442. 지도구역일람도 1076
제33부 중국의 변화 1078
No443. 청나라의 멸망과 중화민국 탄생 1079
No444. 원세개와 손문 1079
No445. 러시아가 소련으로 1083
No446. 중국 국민당 장개석 1083
No447. 관동지진과 한국인 대학살 사건 1084
No448. 만주전쟁 1086
No449. 중일전쟁 1087
No450. 독도, 오키군에 편입 1088
제34부 제2차 세계대전 1090
No451. 진주만 공격과 태평양전쟁 1091
No452. 카이로 회담 1092
No453. 카이로선언 1093
No454. 얄타회담 1100
No455. 미, 트루먼 대통령 1103
No456. 포츠담선언 1103
No457. 원자폭탄 투하 1106
No458. 3·8군사분계선 책정 1108
No459. 일본의 항복 1109
제35부 광복과 미군정시대 1110
No460. 일본의 항복조인 1111
No461. 미, 초기 대일정책 1113
No462. 포고 제1호로 분단된 한국 1114
No463. 맥아더라인 1116
No464. 모스코바 3상회의 1121
No465. 스캐핀 제677호 1123
No466. 스캐핀 제677호의 부속지도 1133
No467. 스캐핀 제1033호 1135
No467-1. 대장성령 654호 1141
No468. 한국, 학술조사단 독도에 파견하다 1144
No469. 일, 울릉도도 일본땅이라고 로비 1145
No470. 독도 폭격사건 1150
No471. 불발탄이 증거 1157
No472. 미, 돼지 1마리 값의 위자료 지불 1158
제36부 이승만 대통령 시대 1160
No473. 대한민국 정부수립 1161
No474. 울릉군의 변경과정 1162
No475. 변경된 맥아더라인 1163
No476. 일본의 로비전략 1166
No477. 중국 두 국가로 분열 1169
No478. 6.25 한국전쟁 1170
제37부 샌프란시스코조약 1174
No479. 미국이 일본을 독립시키기로 결정 1175
No480. 연합국의 대일강화조약 1176
No481. 5차 초안까지 독도를 한국영토로 1176
No482. 독도가 일본영토로 될 수 없는 이유 1179
판권기 1184
표제지
[사진]
목차
제37부 샌프란시스코조약 1198
No483. 일본 편에 선 시볼드 1198
No484. 시볼드 로비로 미국은 독도를 일본에 1202
No485. 대장성령 제4호 1204
No486. 한국을 도와준 영국 1207
No487. 총리부령 제24호 1210
No488. 두 법령을 보는 일본의 냉담한 반응 1214
No489. 일본 감시선을 나포 1218
No490. 조난어민 위령비 1219
No491. 미국과 영국 독도를 빼버리다 1219
No492. 김동조의 회상 30년 1220
No493. 러스크 서신사건 1222
No494. 샌프란시스코조약 체결 1227
No495. 독도를 일본땅이라 우기는 단초 1232
No496. 힘없는 대한민국 1234
No497. 야비한 미국 1234
No498. 일본영역도 1238
No499. 러시아 고지도, 독도는 한국 땅 1239
No500. 밴플리트 특명보고서 1240
No501. 미 공군의 항법지도 1249
제38부 인접 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 선언 1251
No502. 제1차 한일회담 1252
No503. 평화선 선포 1252
No504. 평화선 선언문 내용 1256
No505. 평화선, 독도 지켰다 1263
No506. 실패로 끝난 제1차 한일회담 1264
제39부 미 공군 독도 재폭격 1267
No507. 시마네마루호 위령비 파괴 1268
No508. 미, 폭격연습장으로 1269
No509. 한국이 독도를 미 공군 폭격연습장으로 승인 1273
No510. 일 수산시험청 선박, 독도에 침범 1275
No511. 의문의 독도폭격 1276
No512. 폭격연습장 폐쇄 1279
No513. 미국, 애매모호한 행동 1279
No514. 일본의 ABC라인 1282
No515. 클라크라인 1283
No516. 대한민국 대통령 긴급명령 제12호 1289
제40부 독도의용수비대 1291
No517. 홍순칠, 그는 누구인가? 1292
No518. 홍재현의 무용담 1294
No519. 독도의용수비대 결성 1299
No520. 홍순칠의 제안 1303
No521. 민병대 결성 1305
No522. 양공주도 애국자였다 1308
No523. 독도의용수비대 편성 1311
제41부 의용수비대 독도로 1313
No524. 제2차 한일회담 1314
No525. 독도의용수비대 독도로 가다 1314
No526. 독도의용수비대 임무개시 의문 1317
No527. 의용수비대, 일본 경비정에 첫 사격 1318
No528. 애국가를 부른 일본 학생들 1321
No529. 의용수비대 일본 경비정에 발포하다 1322
No530. 독도문제개론 1323
No531. 변영태 장관의 성명 1327
No532. 국회 결의문 채택 1327
제42부 파행 거듭한 한일회담 1329
No533. 제2차 한일회담 결렬 1330
No534. 6.25전쟁 휴전 1331
No535. 제3차 한일회담 1332
No536. 이승만 대통령이 보낸 박격포 1334
No537. 일, 국제재판소로 가자고 제의 1336
No538. 독도우표 발행 1337
No539. 한국, 국제재판소행 일언지하에 거절 1339
No540. 홍순칠의 독도대첩 1339
No541. 일본 수상 제3국에 조정요청 1341
No542. 독도의용수비대 임무 끝 1342
제43부 홍순칠 대장의 진실 1343
No543. 독도의용수비대 의문 1344
No544. 김윤배 기자의 논증 1344
No545. 문경미 기자의 논증 1350
제44부 일본, 독도에 세금을 1355
No546. 제4차 한일회담 1356
No547. 일, 독도에 세금을 1357
No548. 기시 노부스케 항의 1358
No549. 제5차 한일회담 1359
No550. 대장성령 제43호 1360
제45부 박정희 대통령 시대 1361
No551. 제6차 한일회담 1362
No552. 독도를 폭파하겠다 1362
No553. 김종필의 독도 폭파설 1363
No554. 우리영토 간도, 북한이 중국에 넘기다 1369
No555. 일, 순시선 불안 조성 1371
No556. 한일회담 성사를 위한 미국의 역할 1372
No557. 6.3사태 발발 1374
No558. 박정희의 독도 폭파설 1375
No559. 한일 기본조약 타결 1376
No560. 국제사법재판소로 가려는 일본 1381
No561. 밀약의혹 드러났다 1382
No562. 일본에 약점 잡혔다 1386
No563. 일, 밀약설 부인 1387
No564. 독도의용수비대 훈·포장 1387
No565. 독도 최초주민 최종덕 1388
No566. 현재까지도 시행되고 있는 대장성령 1390
No567. 대장성령 제37호 1391
No568. 독도를 국유지로 등기 1395
No569. 박정희의 진노 1395
No570. 후쿠다 수상의 망언 1398
No571. 한국도 12해리 영해를 설정하다 1399
제46부 전두환·노태우 시대 1401
No572. 자연환경보전지역 1402
No573. 유엔 신해양법협약 1402
No574.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 땅 1404
No575. 미의회도서관, 독도를 공식 주제어로 사용 1406
No576. 최종덕의 업적 1407
No577. 일, 돗토리현도 독도영유권 주장 1408
No578. 최초 독도 태생의 조한별 양 1410
No579. 독도에 전화개통 1412
제47부 김영삼 대통령 시대 1415
No580. 무라야마 총리 담화 1417
No581. 유엔 백과사전 오기 1420
No582. 문제가 된 유엔해양법 1421
No583. 배타적 경제수역(排他的經濟水域) 1423
No584. 하시모토 또 망언 1425
No585. 일본 교과서 왜곡 1429
No586. 일, 선거철만 되면 거듭되는 망언 1430
No587. 독도, 카드식 전화개통 1431
No588. 김영삼 정부의 과오 1433
No589. 차니교수 기점의 조건 1435
No590. IMF 경제위기 1440
제48부 김대중 대통령 시대 1441
No591. 독도를 중간수역에 1442
No592. 일본의 압박외교 1442
No593. 중간수역에서 독도의 명칭이 빠졌다 1445
No594. 김대중 정부의 실책 1447
No595. 분노한 신용하 교수 1448
No596. 일본영토로 인식이 되는 단초 1454
No597. 영문판 동북아지도 1457
No598. 독도로 표기한 일본의 지도들 1458
No599. 옛 서양지도 한국표기 1459
No600. 서양 최초의 한국전도 1460
No601. 동해냐 일본해냐? 1461
No602. 마테오리치 1462
No603. 동해의 원래 이름은 조선해였다 1464
No604. 러시아 지도에도 동해 1466
No605. 독도로 호적을 옮긴 일본 사람들 1468
No606. 독도리 신설 1470
No607. 모리 총리 망언 1470
No608. 독도박물관 문 닫다 1471
No609. 유인도의 조건 1471
No610. 모리의 방한과 규탄 1472
No611. 모리 망언 삭제사건 1475
제49부 일본의 역사왜곡 1479
No612.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 왜곡 1480
No613. 시마네현 지사 망언 1482
No614. 경상북도, 시마네현과 교류중단 1482
No615. 말썽꾼 고이즈미 총리 1484
No616. 독도 생태계 정밀조사 1484
No617. 독도 방문제한에 대한 행정소송 각하 1485
No618. 고이즈미 신사참배 TV 생중계 1486
No619. 독도 방문제한에 대한 헌법소원 각하 1488
No620. 독도와 삽살개 1489
No621. 시마네현의회, 독도관련 항의 1490
No622. 고이즈미 총리 방한 1491
No623. 독도영유권, 한일어협과 무관 1493
No624. 광업권설정출원서 1493
No625. 일, 고등교과서 왜곡 1495
No626. 캐나다 지도에 동해와 독도로 표기 1497
No627. 독도를 국립공원으로 1497
No628. 가스하이드레이트 1498
No629. 캘리포니아대학도서관 한국해로 1499
No630. 독도에 우편번호 1500
제50부 노무현 대통령 시대 1501
No631. 노무현 대통령에 당선되다 1502
No632. 이종학 송덕비 1503
No633. 독도는 한국 땅인가? 1504
No634. 독도서 광복절 행사 1504
No635. 독도로 위장 전입한 여류시인 1505
No636. 독도우표 발행과 일본총리 망언 1506
No637. 내 아내는 그냥 말 안 해도 내 아내다 1508
No638. 독도우표, 발매 2시간 만에 완전매진 1509
No639. 독도개발 신중론 1511
No640. 독도의 첫 이장 1511
No641. 일, 독도우표 이미 발행했다 1512
No642. 독도사랑협의회 활동 1513
No643. 각 단체들의 활동 1514
No644. 북한, 독도우표 발행 1514
No645. 애틀라스, 동해 병기 1515
No646. 독도 국립공원 반대 1516
No647. 일 극우, 독도상륙추진 1518
No648. 돈에 눈먼 아틀라스 1519
No649. 삼봉호 독도 취항 1521
No650. 노무현·고이즈미 회담 1521
No651. 대마도를 조선에 1523
No652. 울릉도에서 독도를 헤엄쳐 건너다 1524
No653. 일, 외무성 독도위한 예산 요청 1525
No654. 유람선 첫 취항에 일본경비정 출현 1525
No655. 일, 다케시마의 날 제정 청원 1527
No656. 우리 공식자료에 일본해로 되다니? 1528
No657. 독도와 다케시마로 공동표기 1529
No658. 독도의 날, 청원서 1529
No659. 독도 해상국립공원 계획 사실상 백지화 1530
No660. 독도의 날 제정위해 서명운동 전개 1531
No661. 일, 다케시마의 날 행사 홍보 1532
No662. 한일협정 문서공개 1533
No663. '다케시마의 날' 규탄열풍 1535
No664. 허준영 경찰청장, 독도행 무산 1537
No665. 다케시마는 일본땅, TV광고 1538
No666.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 시마네현의회 통과 1539
No667. 일, 독도자원에 눈독 1540
No668. 시마네현 지도엔 독도가 없었다 1542
No669. 프랑스 TV, 독도를 일본영토로 1543
No670. 일본 경비행기, 우리영공에 진입 1545
No671. 일본편에 선 미국 CIA 1548
No672. 한국 대일 강경노선으로 선회하다 1549
No673. 한국 사회단체들 일본에 가서 항의 1551
No674. 다케시마의 날, 시마네현 의회 통과 1552
No675. 활빈당의 분노 1554
No676. 월드맵, 독도는 일본땅 1555
No677. 마산시의회, 대마도의 날 제정 1557
No678. 일, 기독교 유감표명 1558
No679. 일, 독도영유권 주장은 억지와 생떼 1558
No680. 쓰즈미 가즈오, 비판 1560
No681. 아가와, 독도망언 1563
No682. 파란눈 금발머리, 독도 강연회 1563
No683. 독도에 관광허용 1566
No684. 영국, 다케시마로 잘못 표기 1568
No685. 일, 왜곡교과서 검정통과 1570
No686. 다카노대사 불러 강력항의 1571
No687. 때려놓고 만져 주는 얄미운 일본 1572
No688. 독도에서 결혼식 1574
No689. 양심가 일본인 요시다 1574
No690. 최초 독도에 간 장관 1576
No691. 나이토 세이추의 실토 1576
판권기 1579
표제지
[사진]
목차
제50부 노무현 대통령 시대 1594
No691. 나이토 세이추의 실토 1594
No692. 나카야마 또 망언 1594
No693. 신풍호 사건 1595
No694. 독도 위치와 좌표 표준고시 1604
No695. 뉴욕타임즈, 독도광고 1605
No696. '독도는 한국 땅' 일본에서 출간 1606
No697. 일본 방위백서에 '독도는 일본 땅' 1607
No698. 조오련 3부자, 헤엄쳐 독도횡단 1608
No699. 독도 뒤덮은 태극기 1609
No700. 사이버독도를 일본 해커들이 집중공격 1610
No701. 독도수호대, 10월 25일을 '독도의 날'로 1610
No702. 해저지명 1611
No703. 독도지킴이 부부 탄생 1612
No704. 시마네현, 다케시마의 날 1주년 광고 1612
No705. 해류조사 1614
No706. 바다사자 복원 계획 1615
No707. 김성도씨 부부 다시 독도에 돌아오다 1617
No708. 시마네현, 다케시마의 날 1주년 기념행사 1618
No709. 세계일주 요트 항해단 독도에 도착 1620
No710. 일, 고교 교과서 왜곡 1621
No711. 일, 독도주변의 탐사계획을 세우다 1624
No712. 아베 신조의 망언 1626
No713. 아베 신조는 한국계 1627
No714. 일, 수로측량 말썽 1628
No715. 울릉분지 1630
No716. 노무현 독도독트린 1633
No717. 일, '불법점거'라는 용어를 사용키로 1636
No718. 독도에 민간전화 개통 1637
No719. 독도, 첫 부재자 투표 1638
No720. 한국, EEZ 기점 독도로 확정키로 1639
No721. 일본 탐사선, 돗토리현 도착 1643
No722. 독도 해류조사 1645
No723. 고이즈미, 메세지 1650
No724. 주일 외신기자, 독도방문 강행 1652
No725. 일본의 고유영토로 1653
No726. 일본, 방사능 단독조사 계획 1654
No727. 독도와 동해표기 뒤늦게 제작 1655
No728. 고이즈미 총리 신사참배 강행 1656
No729. 일, 프랑스TV에 압력을 넣다 1657
No730. 일장기 꽂힌 독도과자 1659
No731. 한일, 공동조사 합의 1661
No732. '일본의 독도침탈 자료집' 발간 1662
No733. 전국체전 성화 최초로 독도에서 채화 1663
No734. 경상북도 의회 독도에서 첫 회의 1663
No735. 하타노 교수, 일본 억지주장 비난 1665
No736. 독도 바다사자 화면 첫 공개 1666
No737. 물개, 물범, 바다사자의 구분 1670
No738. 지방해양경찰청 동·서·남해에 신설 1673
No739. 독도 울릉분지에 태극기동판 설치 1674
No740. 돗토리현 의회도 다케시마의 날 추진 1675
No741. 망신당한 시모조 1676
No742. 일, 부교재 '고향 오키' 1679
No743. 독도문제, 미국은 일본편? 1680
No744. 광풍의 시마네현 1682
No745. 안용복연구소 열다 1684
No746. 말썽의 해장죽전도 1684
No747. 시마네현 제2회 다케시마의 날 1695
No748. 돗토리현에서도 독도침탈 본격화 1698
No749. 경찰청장 독도 방문 1699
No750. 일, 새 교과서 검정통과 1700
No751. 독도 이장에 김성도 1701
No752. 독도의용수비대 진실규명 지시 1701
No753. 일, 두 해양법 제정 1719
No754. 독도는 일본 땅, 부교재 배포 1721
No755. 독도역사 한국이 일본보다 더 강해 1722
No756. 미, 일본해로 표기 1724
No757. 독도 물 걱정 없다 1725
No758. 불타는 얼음 1727
No759. 독도 표기한 일 방위백서 1728
No760. 일본, 위성으로 독도 사진을 찍다 1729
No761. 일, 기상청 독도관측 1732
No762. 독도에서 대통령선거 첫 부재자 투표실시 1733
No763. 미, 운전면허 안내문에 한글로 1734
No764. 정광태, 홍보대사로 1736
No765. 다케시마의 날 존속 1736
제51부 이명박 대통령 시대 1738
No766. 일, 정상회담 앞두고 독도는 일본땅 1739
No767. 이명박 대통령 기념우표에 '사라진 독도' 1742
No768. 이명박의 철학 1743
No769. 이명박, 미·일 방문 1744
No770. 세진호 사건 1750
No771. 일, 덕양호 납치 1751
No772. 일, 교과서 왜곡망령 1754
No773. 독도 바다에 태극기 띄우다 1757
No774. 이명박·후쿠다 환담 1759
No775. 구린 냄새 풍기는 홋카이도 회담 1760
No776. 가수 김장훈, NYT에 독도광고 1762
No777. 김장훈 고지도 구입 1765
No778. 이명박, 후쿠다 환담이 문제 1767
No779. 한국 여야국회의원 앞다퉈 독도로 1770
No780. 일, 독도를 '일본영토'로 명기할 것을 결정 1773
No781. 독도는 북방4도와 다르다 1775
No782. 주일대사 소환령 1776
No783. 일, 독도침탈은 정략적 수단이다 1778
No784. 각계각층의 성명과 쏟아진 사료들 1779
No785. 이미 독도 왜곡했다 1780
No786. 동도 첫 주민 허원신 1782
No787. 권철현 주일대사 소환명령 받고 귀국 1783
No788. 미, 의회도서관 독도명칭을 변경 1784
No789. 미국의회 도서관, 리앙쿠르록스로 1785
No790. 미 의회도서관 독도명칭변경 보류하기로 1790
No791. 버시바우, 중립발언 1790
No792. 두 여성이 독도명칭 지켜냈다 1791
No793. 신용하, 이명박 질타 1792
No794. 외무회담 제의 거절 1797
No795. 북한, 이명박은 역적 1798
No796. 독도에 웬 자위대? 1800
No797. 일본 배우, 독도 한국에 줘라 1803
No798. 일, 독도표기 삭제해야 갈등해소 1804
No799. 미국, 한국은 현재의 상태가 유리하다 1806
No800. 대마도 아리랑축제에 한국 불참 1807
No801.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충고적인 한마디 1807
No802. 묵인하면 빼앗긴다 1808
No803. 미, 독도를 주권 미지정 지역으로 변경 1810
No804. 이명박 대통령 격노 1814
No805. 동해를 일본해로 1817
No806. 아시아 공동행동 일본연락회의 1819
No807. 국무총리 독도방문 1821
No808. 부시, 독도 회복 지시 1823
No809. 일본, 한국시위대를 강제연행 1826
No810. 들쭉날쭉 프랑스 지도 1827
No811. 조오련, 독도를 33바퀴 헤엄쳐 돌다 1830
No812. 한미정상 서울에서 독도환담 1831
No813. 독도에서 건국 60주년 행사 1832
No814. 베이징 올림픽의 실수 1833
No815. 한양대 광고, 동해를 일본해로 1836
No816. 워싱턴포스트지에 독도 광고 1838
No817. 뉴욕타임스 독도 소개 1840
No818. 후쿠다 일본총리, 돌연 사임 1842
No819. 전혀 변함없는 일본 방위백서 1843
No820. 이명박, 일본 의도에 말려들면 안 돼 1845
No821. 망언제조기 아소 다로가 일본 총리로 1846
No822. 울돌목 거북선, 독도를 방문하다 1848
No822-1. 안재영의 '영토문화관, 독도' 1850
No823. 국회국방위원회소속 국회의원 독도로 1853
No824. 초중고 교과서 7종 독도관련 오류 1855
No825. 2008 코리아컵 국제요트대회 1861
No826. 일 역사왜곡규탄 남북토론회 평양에서 1862
No827. 미 교포들 독도열풍 1863
No828. 일 네티즌, 한국에 돈 꿔 주지 마라 1864
No829. 일, 고교학습지도요령에 독도 안 넣기로 1867
No830. 일, '독도는 일본땅' 팸플릿 각국 배포 1867
No831. '미안하다 독도야' 영화 개봉 1868
No832. 일본 아소 다로 총리 방한 반대시위 1868
No833. 이시하라 망언 1870
No834. 유럽연합(EU)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 1872
No835. 독도경비대원 영결식 1875
No836. 독도를 지키는 경찰, 광복 후 7명 순직 1876
No837. 독도야욕비판 학자 서울대 교수로 임용 1877
No838. 해동여지도 1878
No839. 헌재, 중간수역협정 합헌으로 판결 1880
No840. 독도의용수비대 기념사업회 현판식 1880
No841. 국제해양법 재판관에 백진현 교수 1882
No842. 일본해로 표기된 멍청한 사회교과서 1884
No843. 독도에 납세자 탄생 1886
No844. 뉴욕 거리에 '독도는 우리땅' 비닐백 1887
No845. 독도관리선 명칭 '독도 평화' 1889
No846. 독도에 온 물개, 온몸 부상으로 탈진 1891
No847. 세계지도에서 점점 사라지는 동해표기 1894
No848. 아소 총리, 야스쿠니에 두 차례나 경의 1896
No849. 독도 홍보황제 서경덕 교수 1899
No850. '미안하다 독도야' 재개봉 확정 1901
No851. 성신여대 현장체험 탐방대원 독도방문 1902
제52부 웬 날벼락인가? 1904
No852.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905
제53부 안용복, 홍순칠 대장을 추모한다 1908
No853. 안용복장군 충혼비 1909
No854. 독도의용수비대를 추모한다 1912
제54부 한일간 독도논쟁 총정리 1915
1. 독도의 인지공방 1916
2. 독도의 위치 공방 1919
3. 은주시청합기의 공방 1920
4. 독도의 문헌공방 1921
5. 독도의 외교공방 1923
6. 도해면허의 공방 1925
7. 안용복의 진술공방 1926
8. 대한제국칙령 제41호 공방 1927
9. 독도 시마네현에 강제편입 공방(1) 1929
10. 독도 시마네현에 강제편입 공방(2) 1932
11. 스캐핀 제677호와 제1033호 공방 1935
12. 연합국의 대일강화조약(샌프란시스코조약) 공방 (1) 1937
13. 연합국의 대일강화조약(샌프란시스코조약) 공방 (2) 1940
14. 이승만라인과 독도영유권 공방 1946
15. 미군 독도폭격연습지 지정공방 1948
16.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문제 공방 1951
17. 한일협정 공방 1956
18. 후쿠다의 망언공방 1957
19. 실효적 지배공방 1959
20. 우리의 대책과 결론 1960
참고문헌 1966
판권기 1974
vol.1 13
사진1. 독도현황 표준고시 17
사진2. 독도와의 거리 18
사진3.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인다 45
사진4. 일본도 56
사진5. 후소국지도 58
사진6. 조·일 팔도총도 101
사진7. 영안도에서의 독도 탐색로 204
사진8. 삼봉도 205
사진8-1. 중국고문헌의 독도 251
사진9. 신증동국여지승람 260
사진10. 팔도총도 265
사진11. 일본이 만든 팔도총도 280
사진12. 은주시청합기의 해설도 328
사진13. 일본여지도 335
사진14. 일본여지노정전도 336
사진15. 일본이 조작한 글씨 337
사진16. 동여비고 울진현지도 341
사진17. 울진현지도 확대 342
사진18. 대마도는 조선땅 343
사진19. 삼국접양도 345
사진20. 오가사와라 제도 349
사진21. 프랑스어판 삼국접양 부분도 350
사진22. 해산조륙도 354
사진23. 일본 서부 구역도 370
vol.2 405
사진24. 우자가 자자로 변한 과정 491
사진25. 성호사설 천지문 492
사진26. 조선국도 502
사진27. 안용복의 활약경로 513
사진28. 호패견본 561
사진29. 역관사조난추도비문 578
사진30. 막부찬향보일본지도 589
사진31. 키친의 조선지도 603
사진32. 환영지와 조선팔도총도 607
사진33. 문제의 병풍 618
사진34. 삼국접양도 일부분 624
사진35. 바다사자 646
사진36. 에도시대의 조선 659
사진37. 조선국약도 660
사진38. 청구도 666
사진39. 청구도-울릉도 667
사진40. 조선 땅 독도 내용의 목판 673
사진41. 울릉도·독도와 관련한 19세기 고문서 675
사진42. 리앙쿠르 암 682
사진43. 대동여지도 694
사진44. 고종황제 699
사진45.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 709
사진46. 조선전도 726
사진47. 조선동해안도 732
사진48. 태정관의 지령문 742
사진49. 이와쿠라 도모미 743
사진50. 기죽도약도모사도 744
사진51. 울릉도 약도 779
vol.3 801
사진52. 동판조선국전도 820
사진53. 자유신문 825
사진54. 죽도 830
사진55. 환영수로지 838
사진56. 전라도의 독도 849
사진57. 고흥소재 독도와 죽도 850
사진58. 조선여지도 860
사진59. 호사카 교수가 공개한 지도 880
사진60. 프랑스 신문에 난 독도 883
사진61. 일본지도의 독도 917
사진62. 시마네현 960
사진63. 최장근 교수 966
사진64. 오키신보 970
사진65. 나이토 세이추 972
사진66. 발트해 982
사진67. 러일 동해해전 986
사진68. 을사조약 부당성 알린 전보문 1010
사진69. 황현 1032
사진70. 한국수산지 1049
사진71. 한일합방 부당성 호소문 봉투 1058
사진72. 초등지리서부도 1071
사진73. 소학국사회도 1072
사진74. 소학국사회도 부분확대 1073
사진75. 지도구역일람도 1076
사진76. 맥아더라인 1117
사진77. 스캐핀 677호 부속지도 1133
사진78. 스캐핀 1033호 맥아더라인 1138
사진79. 맥아더라인 변경부분도 1139
사진80. 대장성령 654호 1142
사진81. 이승만 1160
vol.4 1197
사진82. 대일강화조약(샌프란시스코 조약) 초안 작성일 1203
사진83. 영국 초안의 지도 1209
사진84. 이양수 1210
사진85. 대장성령과 총리부령 1212
사진86. 일본영역도 1239
사진87. 글루쉬코프 1240
사진88. 평화선(이승만라인) 1259
사진89. 클라크라인 1287
사진90. 독도의용수비대의 사진 1320
사진90-1. 일본인 독도에 표목을 설치 1324
사진91. 독도우표 1337
사진92. 최헌식 1352
사진93. 박정희 1361
사진94. 김종필과 오히라 1366
사진95. 김종필과 오히라 메모 1367
사진96. 독도 최초 주민 최종덕 1389
사진97. 독도 등대 1396
사진98. 전두환과 노태우 1401
사진99. 최경숙과 딸 1411
사진100. 김영삼 1415
사진101. 김대중 1441
사진102. 중간수역에 들어간 독도 1444
사진103. 영문판 3국지도 1457
사진104. 노무현 1501
사진105. 한양대 학생회 주문의 독도우표 1509
사진106. 고이즈미&노무현 1522
사진107. CIA보고서의 지도 1548
사진108. 배용준 1555
사진109. 월드맵 1556
사진110. 요시다 고조 1559
사진111. 존 던컨 1564
사진112. 홍인숙 1566
사진113. 이코노미스트의 지도 1568
사진114. 요시다 선생 1575
vol.5 1591
사진115. 신풍호 사건 1597
사진116. 독도에 초대형 태극기 1609
사진117. 김성도씨 부부 1617
사진118. 다케시마의 날 조례 폐지하라 1619
사진119. 레이디 알리아호 대원들 1620
사진120. 일본이 측량을 하려는 수역 1629
사진121. EEZ 기점 1639
사진122. 한국 해류관측선 운항 경로 1647
사진123. 영문표기 세계지도 1656
사진124. 다케시마과자 만쥬 1660
사진125. 일본의 독도 해양정책 자료집 1662
사진126. 독도에서 의회 열다 1664
사진127. 하타노 교수 1665
사진128. 전유형의 기획물 바다사자 영상 1667
사진129. 바다사자 포획장면 1669
사진130. 바다사자 1672
사진131. 점박이 물범 1672
사진132. 지방해양경찰청 관할도 1673
사진133. 미국 정부의 웹싸이트 1680
사진134. 울릉도 도형 1686
사진135. 해장죽전도 1687
사진136. 울릉 동해안도 1688
사진137. 울릉도-청구도 1694
사진138. 일본주장의 배타적 경제수역 1719
사진139. 가스 하이드레이트 1727
사진140. 일본이 만든 독도지형도 1730
사진141. 일본 기상레이더 관측망 지도 1732
사진142. 미국 운전면허 안내문 1734
사진143. 이명박 1738
사진144. 일본외무성 홈페이지 1740
사진145. 이명박 대통령 기념우표 1742
사진146. 일본 우익 차량시위 1749
사진147. 한·일 양국 경비정 대치 1751
사진148. 덕양호 나포지점과 EEZ 1752
사진149. 일, 후소샤의 공민교과서 내용 1756
사진150. 바다에 띄워진 태극기 1758
사진151. 얄팍한 의도 1761
사진152. 뉴욕타임스에 독도광고 1763
사진153. 김장훈이 구입한 삼국접양도 1766
사진154. 가수 김장훈 1767
사진155. 등대지기 허원신 1782
사진156. 김하나, 김영기 교수 1792
사진157. 신용하 교수 1793
사진158. 국방부의 일, 방위백서 번역본 1801
사진159. 주권 미지정, 표기된 독도 1811
사진160. 독도·다케시마 검색한 화면 1812
사진161. 월드 아틀라스, 동해를 일본해로 1817
사진162. 한승수 총리 1821
사진163. 한승수 총리 독도방문 1822
사진164. 부시와 이명박 1831
사진165. 독도서 만세삼창 1833
사진166. 동해바다가 일본해로 방영 1834
사진167. 한양대학 큰 실수 1836
사진168. 워싱턴포스트에 독도광고 1839
사진169. 뉴욕타임스지의 르포기사 1841
사진170. 후쿠다 총리 1842
사진171.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 연표 1844
사진172. 아소 다로 1846
사진173. 거북선 1848
사진174. 독도서 강강술래 1849
사진174-1. 영토문화관 1851
사진175. 국회 국방위원회 독도함 방문 1853
사진176. 국회 국방위원회 독도시찰 1854
사진177. 독도관련 기술오류의 사례 1856
사진178. 독도실측 현황표 1858
사진179. 독도와의 거리 1859
사진180. 코리아컵 국제요트대회 1861
사진181. 남북 공동토론회 1863
사진182. 독도 간판을 단 댈러스의 한 식당 1864
사진183. 일본총리 방한 반대 1869
사진184. EU웹사이트에 실린 일본지도 1873
사진185. 고 이상기 경사 1875
사진186. 기미지마 교수 1877
사진187. 해동여지도 1878
사진188. 백진현 교수 1883
사진189. 일본해로 된 사회교과서 표지 1885
사진190. 세탁물 비닐백 1888
사진191. 독도 평화호 1890
사진192. 찾아온 물개 1891
사진193. 전충진 기자 1893
사진194.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된 지도 1895
사진195. 일본해, 아니라는 반박광고 1900
사진196. 성신여대 독도체험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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