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속 삼장법사의 모델이자 동아시아 불교를 꽃피운 최초의 구법승 현장법사의 5만 리 불교 순례길을 추적하다
629년, 스물일곱 살의 한 젊은 승려가 구법 여행을 떠난다. 진정한 깨달음을 찾아 혈혈단신으로 중국을 떠난 그는 16년 동안 장장 5만 리를 걸어 인도까지의 불교 성지를 순례한다. 그가 돌아왔을 때는 떠날 때와는 달리 큰 환영을 받으며, 중국 황제는 그를 나라의 보배라 칭한다. 그가 바로 지금까지도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승려이자 세계적 여행가로 알려진 현장법사다. 서역을 거쳐 인도까지 다녀오면서 막대한 양의 불교 경전을 모은 현장은 이후 죽을 때까지 불경 번역에 힘쓰며 중국 불교 확립에 기여해, 당나라 때 중국 불교는 절정기를 맞이하고 동아시아 불교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된다. 1500년 전 현장이 밟았던 길을 따라 그의 삶과 깨달음을 생생하게 그려 낸 이 책은 당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인도 등의 생활상이나 불교문화까지 아울렀다. 깊은 종교적 감성을 지닌 승려이자 강인한 인품을 지닌 모험가였던 현장법사의 생애가 다시 실크로드 위에 펼쳐진다.
불교를 세계에 전파한 ‘중국의 보배’
오늘날 이토록 불교가 널리 퍼진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7세기의 당나라 승려 현장법사의 목숨을 건 구법행과 그의 불교 경전 번역 덕분이다. 불교의 모든 경전에 능통해 삼장법사라고도 불리는 현장법사는 서유기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실제 현장법사는 서유기 속의 나약한 중이 아니었다. 이 책은 서유기 속에서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용감한 모험가, 번역가, 외교가, 법상종의 창시자로서 불교의 창달에 힘쓴 현장법사의 진짜 모습을 그의 실크로드 구법 여행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 낸다. 그에 더해 현장법사의 여행길을 따라 펼쳐진 주옥같은 불교 미술품들과 불교 성지, 그리고 당시 인도 등의 생활상 등을 자세히 서술하고, 책 끝부분에서는 오늘날까지 현장이 남긴 고고학적, 미술사적, 경전 번역 사업, 불교사적, 세계사적 유산을 재평가한다.
“마음은 멀리로는 여래를 따르고, 가까이로는 유법(遺法)을 빛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유교적 가치관 속에서 유학의 고전을 읽으며 자란 책벌레 소년 현장은 13세에 불가에 귀의했다. 그는 20세가 되자 장안으로 가서 외국어를 공부하고 여러 불교 종파의 가르침을 터득하였다. 그러나 당시 산스크리트어로 쓴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번역본들마다 내용이 상충하고 왜곡되거나 불충분한 것을 보고,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진정한 불교 경전인 원전을 직접 구해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오로지 구법을 위해 먼 여행길을 홀로 떠나게 된다.
5만 리 여행길은 시작부터 험난했다. 당시 중국의 황제인 태종은 백성들이 위험한 서역으로 나가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은 마침내 당 제국의 마지막 경계인 옥문관을 지나고, 사막의 봉화대를 목숨을 걸고 몰래 통과하고, 사막에서 길을 잃는 등 천신만고 끝에 열렬한 불신도인 고창 왕을 만난다. 이후 현장은 고창 왕의 공식적인 후원을 받으면서 순례를 할 수 있게 된다. 중앙아시아와 사막의 여러 나라의 불교 성지를 여행한 후 현장은 드디어 인도 불교 중심지인 날란다 승원에 도착한다.
인도 불교 중심지인 날란다 사원은 각국에서 온 유학승들이 수학하던 곳으로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승원이면서 대학이기도 하였다. 현장은 이곳에서 유학하는 동안 그동안 의문을 품어 왔던 불교의 정통 교리를 실라바드라 정법장에게 배우고, 여러 불교 성지를 순례하면서 드디어 깨달음에 이른다. 날란다에서 수학하는 수천 명의 승려 중에서도 최고의 인재였던 현장은 학식 높은 불교 학자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고, 대승불교나 소승불교를 가릴 것 없이 여러 종파의 경전을 섭렵했다. 불교에 대한 이러한 깊은 학문적 접근은 그가 중국으로 돌아와 방대한 양의 경전을 번역하고 불교를 확립하는 데 큰 자산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가 창시한 법상종은 오늘날 일본의 홋소슈[法相宗]에서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현장은 중국으로 돌아오면서 엄청난 양의 불상과 경전을 직접 가지고 돌아왔다. 이후 현장은 남은 생애를 불경 번역에 매달렸는데, 그이 불교 경전 번역 사업은 그 규모나 내용 면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분량으로는 모두 천 권이 넘었다. 그중 『반야심경』과 『금강경』은 오늘날까지도 일상 예불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전이다. 또한 현장의 구법행을 결심하게 한 『유가사지론』이라는 경전의 번역본은 지금도 여전히 불가에 귀의하는 사람들에게 불교 입문서로 쓰이고 있다.
『서유기』의 구법승 현장법사, 용감한 탐험가이자 불심 깊은 역사적 인물로 생생히 살아나다
대중에게 현장법사는 중국의 대서사시 『서유기』에 영감을 불어넣은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21세기를 사는 이 시대에 그가 재조명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첼리스트 요요마가 “고대의 인터넷”이라고 묘사했던 그 험난한 실크로드를 종횡으로 누비면서 불교가 세계 종교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뛰어난 모험가이자 구법승이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 위치한 1500년 된 세계에서 가장 큰 불상이 탈레반에 의해 파괴된 후로 불교 미술에 대한 그의 기록은 더욱 가치 있는 미술사적 유산이 되었다. 더욱이 빼놓을 수 없는 그의 업적은 『반야심경』과 『금강경』과 같은 경전을 한역한 일인데 그의 번역은 불교 경전 전체를 망라할 정도이다. 이제 현장은 더 이상 고고학자나, 역사학자, 불교학자에게만 의미 있는 인물이 아니다. 진리를 끈질기게 추구하는 굳은 의지로 이루어 낸 그의 업적은 다양한 형태로 다양한 분야에서 재평가되어 오늘날 대중 저변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현장은 이처럼 중국 불교의 상징으로서 불교를 세계에 전파하는 데, 그리고 중국 문화 교류의 사자로서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진리를 향한 열정을 가지고 불교를 절정으로 끌어올려 꽃피운 현장, 그의 생애를 실존적으로 다룬 이 책은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책이다.
나는 그의 실크로드 여정을 되밟아 감으로써, 또 여행에서 돌아온 뒤 중국에서의 그의 삶을 수록함으로써, 강렬한 심성과 깊은 종교적 감성을 지니고 종교와 세속의 양쪽 세계에 모두 익숙하고 강인한 인품을 지닌 모험가로서 현장을 재발견하고자 했다. 나에게 있어서 한 가지 도전은 인간으로서의 현장을 아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가 보았던 훌륭한 불교 미술을 통해 그의 여정을 조명하고 인도와 중국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아시아 문화라는 맥락 속에서 그를 바라보는 것이다.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