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사양》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흔히 일본 현대문학의 원류(源流)로 불린다. 네 번에 걸친 자살 시도 끝에 결국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한 개인적인 이력뿐 아니라, 작품 전반에 흐르는 허무와 자기파괴, 데카당스적인 분위기 때문에 영원한 '청춘의 작가'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니기도 한다. 그가 죽기 직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던 유작 <굿 바이>를 번역, 수록한 것이 이번 단편선집이다.
다자이 오사무 하면 '생의 어두운 그림자' 혹은 칙칙하고 울적한 작풍을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이번 작품집에서 보듯이 풍부한 유머와 풍자정신도 아울러 가지고 있었다. 사실 《인간실격》 같은 작품에서도 그의 해학과 유머, 유희적인 기질이 번득이긴 했다. 하지만 유작 <굿바이>에서는 세상과 인간에 대해 고별인사라도 하듯 그의 재치와 풍자가 절정을 이루고 있다.
이번 단편선집에는 <굿 바이> 외에도 다자이 특유의 유머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단편들(<추억><역행><망치소리><아침><내 반생을 말하다>)을 작품이 발표된 순서대로 수록했다. 특히 <추억><역행> 그리고 <내 반생을 말하다>는 자전적 요소가 강한 작품들이다. <추억>은 평생 그를 짓눌러온 부채의식의 조각들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으로, 일본이 시대의 전환기에 접어들 때 맞이한 그의 청춘시절을 되짚고 있다. 또한 <역행>에서는 도쿄대 불문과 재학 시절 유급을 당한 그의 행적이 그대로 드러나며 스토리 전개가 생생하고 사실적이다. <내 반생을 말하다>는 문단에서의 자신의 위치와 주변 인물들에 대한 솔직한 평가 등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는데, 그의 꾸밈없는 내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자료로서의 가치가 큰 작품이다. 이번 신간 《굿 바이》에서 독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익살맞은 표정으로 말하는 유쾌한 '익살꾼'으로서의 다자이 오사무를 만나게 될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 그의 절망이 타고 남은 자리에는 '익살'이 살아 있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그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요시모토 바나나, 무라카미 하루키 등 후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그러하다. 예컨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는 다자이 오사무의 한없는 상실감과 우울을 다시 한 번 재현한 듯한 작품이다. 또 다자이 오사무가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순수이성을 동경했다는 점에서 근대 초기 한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의 이미지가 겹쳐지기도 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고리대금업으로 급성장한 대지주 가문에서 태어났다. 이처럼 졸부 냄새를 풍기는 자신의 출신 계급은 평생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였고, 이것이 그의 작풍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가족과 집안에 대한 피해의식은 그의 자의식을 짓눌렀다. 그가 네 번에 걸쳐 자살시도를 했다는 사실은 끝없는 자기부정과 상실감으로 몸부림쳤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라는 인격체와 그의 작품 속 화자는 분리해서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무척이나 닮아 있다. 화자가 펼치는 이야기 또한 그의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양》에서 보여준 슬픔과 불안, 《인간실격》에서 보여준 절망, 그리고 그의 문학 전반에 흐르는 우울은 세상과 맞서지도 등돌리지도 못하는 인간, 바로 다자이 오사무 자신이 느끼는 삶에 대한 감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문학에 데카당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단편선집 《굿 바이》에 수록된 <추억><역행><망치소리><아침><내 반생을 말하다><굿 바이>, 이 6개의 단편들 속엔 다자이 특유의 유머와 풍자 감각이 곳곳에 숨어 있다. 특히 유작 <굿 바이>는 그의 '익살꾼'으로서 면모를 새롭게 확인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작품이다. 그가 자살하지 않고 창작활동을 지속해 왔다면, 우리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삶을 마주하라고 할지 그의 행보를 궁금하게 만드는 작품이 바로 <굿 바이>다.
삶을 억압하려 하지 말라. 드러내고 한껏 웃어버리면 된다!
1929년 대공황, 1931년 만주사변, 1945년 태평양전쟁에서의 패망을 바라보며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 사회에 대한 절망감과 진실에 대한 갈구를 그의 문학 속에 열정적으로 담아냈다. 1933년 <추억>에서부터 1948년 <굿 바이>에 이르는 15년 동안 그는 자기 앞의 세계에 공포를 느끼고 스스로를 질책하면서 내면으로 파고드는 한편으로, 자신이 끌어안고 있는 모순과 카타스트로프(파국)를 하나씩 격파해 내고자 하는 생의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글 속에 진실은 단 하나도 없었다. 정원의 묘사는 누나의 작문 노트에서 베껴낸 것이었고, 무엇보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공부를 한 적은 전혀 없었다. 학교가 너무 싫어서 교과서 공부는 아예 하지도 않았다. 그저 흥미 위주의 책만 읽었다. 집안사람들은 책만 보고 있으면 공부를 한다고 믿었다.”___<추억> 중에서
“진흙투성이 구두는 헛되이 허공을 걷어찼을 뿐이었다. 꼴사나운 내 모습을 깨닫자 슬퍼졌다.(…) 진흙탕에 엎드려 지금이야말로 엉엉 소리 내어 울어야 한다고 안달했지만 비참하게도 눈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___<역행> 중에서
“사치스러운 고민입니다. 별로 동정이 가지 않습니다. 열 손가락이 가리키고 열 눈이 바라보는 바, 어떠한 변명도 성립되지 않을 추태를 당신은 애써 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정한 사상은 예지보다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___<망치소리> 중에서
"물론 그 비밀 사무실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일도 대부분 예정대로 진행된다. 그래도 오후 3시쯤이 되면 피곤도 몰려오고 사람도 그리워지는데다 놀고도 싶어서 적당히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가는 도중에 선술집에 붙들려서 한밤중이 되어서야 돌아간 적도 있었다."___<아침> 중에서
“벌써 서른아홉 살이 됩니다.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생각해 보면 그저 막막하기만 할 뿐, 아무런 자신이 없습니다. 결국 이런 겁쟁이가 처자식을 부양한다니 오히려 비참하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습니다.”___<내 반생을 말하다> 중에서
이번 선집의 가장 큰 특징은 풍자와 날카로운 아이러니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다자이 오사무의 새로운 면모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독하게 자기를 부정하고 패배감에 시달린 작가로 알려진 그가, 소설 속 화자와 동일화되어 주절주절 치부를 고백하다가도 곰살맞게 웃거나 조롱하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는 삶을 독하게 까발리지도 않고, 쉽사리 삶과 화합하지도 않으면서 무엇이 인간의 실체인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우리가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를 향해 던진 연민이 결국엔 우리 자신에 대한 위안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일 것이다. 고뇌로 점철된 삶을 자살로 끝낸 '청춘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 《굿 바이》를 통해 독자들이 자기에 대한 채찍을 멈추고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책속에서
[P.142-143] 다지마는 의외의 날카로운 공격에 쩔쩔맸다. “알아.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 부탁하는 거잖아, 될지 안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번거롭게 안 해도 싫어졌으면 그냥 안 만나면 되잖아?” “야박하게 그런 짓을 어떻게 해? 그네들도 앞으로 결혼할지 모르고, 새로운 애인도 생길 텐데. 여자의 마음을 잘 다독거려 주는 게 남자의 책임이지.” “풋, 책임은 무슨. 헤어지네 어쩌네 하다가 다시 만나려는 거지? 정말로 바람둥이 같은 상판떼기나 갖고 있으면서.” “이봐, 이봐. 함부로 말하면 화낼 거야! 정도껏 해야지. 그렇게 계속 먹기만 할 거야?” “여기 생과자도 되지?” “뭐! 더 먹는다고? 위가 늘어난 거 아니야? 그럼 병인데…. 병원에 한번 가보지 그래? 아까부터 잔뜩 먹었는데 이제 적당히 좀 끝내자구.” “이런 짠돌이가! 여자가 이까짓 정도 먹는 건 예사지. 얌전 빼는 아가씨가 많이 먹었다며 젓가락을 내려놓지만 그거 다 내숭이라고. 교태부리는 거야. 난 얼마든지 먹을 수 있어.” “그만, 그만. 이걸로 끝. 여기 싼 데 아니란 말이야. 당신, 항상 그렇게 많이 먹나?” “아이, 농담도 잘하셔. 다른 사람이 사줄 때나 이렇게 먹지.” “그럼, 앞으로 내가 먹을 거 다 사줄 테니까 부탁 좀 들어줘.” “어쩌지? 장사를 쉬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