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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불효자는 웁니다 7
박수를 치다 18
안개 26
집을 나서다 33
거기서 네 이름을 처음 불러보다 45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56
이팔청춘 63
개구리 다음에 악어 76
안녕하세요? 코뿔소 87
코끼리에 대한 오해 96
분홍 메밀꽃 필 무렵 108
고흐가 그린 농부의 초상 120
연탄은 깨져 있었다 128
이것이 인도다 137
박구라와 오무자 146
무슨 문제라도? 157
술나무 164
유마힐이 될까나, 딸꾹! 172
그 망고나무는 아름다웠다 181
시장이 반찬이지 195
쇠똥구리 207
미치도록 사랑하고 싶을 때 218
아버지와 아들 238
연꽃 피어나다 248
어머니와 아들 258
죽 한 그릇, 나무 그늘 한 자리 278
수갑 찬 다섯 마리 양 292
우리가 양들을 보기는 본 걸까? 303
What your name? 317
긴 밤 짧은 밤 330
오래된 미로 336
에히 빅쿠! 344
홀로 걸어가거라 355
한없이 투명한 중도 380
맨발의 나무 391

후기: 먼 길을 걸었다, 그러나 410
부처의 길, 백일간의 여정 416
발문: 그리운 나를 찾아가는 발걸음의 황홀함 또는 신비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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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미치도록 걷다 : 방랑작가 박인식의 부처의 길 순례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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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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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정신이여
걸어라, 걷는 것이 수행이다


무소유가 고수익 상품으로 변해가는 세상에 카필라 성에서 쿠시나가르를 향해 가는 순례자의 맨발은 말한다. 무소유는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임을. 부처가 거쳐 간 일생의 시간을 길 위의 공간으로 환산하는 저 발바닥의 산술. 왼발이 미래를 맞아 포옹하고 애무하면 오른발은 집착도 깨우침도 과거 속으로 버리고 길을 튼다. 길 위의 미래와 과거 사이에서 현재의 모공이 열리고 세포가 깨어난다. 투명한 정신이여, 걸어라. 걷는 것이 수행이다.
-김화영(문학평론가)

방랑작가 박인식은 누구인가?

산이 많은 땅 청도에서 태어난 박인식(1951년 생)은 산악인이자 미술평론가이며 소설가다. 연세대 산악부 출신인 그는 월간 『산』, 월간『사람과 산』(발행인 및 편집인) 등에서 일하다 1991년부터는 직장을 그만두고 네팔 히말라야, 톈산산맥, 쿤룬산맥, 카라코람 산맥, 유럽 알프스 등을 떠돌아다녔다.
1985년 장편소설 『만년설』을 발표하며 소설가로 데뷔했고 15년간의 산악기자 경험을 녹인 대하소설 『백두대간』을 발표한 이래 『대륙으로 사라지다』, 산악인 평전 『사람의 산』 등을 출간하며 우리나라의 대표적 산악문학 작가로 활동해왔다.
또한 인상파 화가를 찾아가는 미술기행문 『햇살 속에 발가벗은』,『그리움은 그림이다』, 기행산문집 『방랑보다 황홀한 인생은 없다』 등을 펴내며 미술평론가 및 에세이스트로서 전방위적 글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박인식은 인사동을 즐겨 찾는 문화예술인들 사이에 잘 알려진 인사동 터줏대감이다. 스물네 해 동안 그가 인사동에서 만난 예술가들과 기인들의 이야기는 2003년부터 『경향신문』에 ‘인사동 블루스’라는 제목으로 인기리에 연재되기도 했다. 지금도 그는 서울 안국동 헌법재판소 옆 한 아담한 한옥에 와인 집을 차려놓고 아내와 함께 술벗들을 맞이하고 있다.

산쟁이 박인식, ‘산의 아들’ 부처를 만나다

박인식이 이번에는 부처의 길을 걸었다. 네팔과 인도에 걸친 천이백 킬로미터를 백일간 걸은 이 여정에 사진가 심병우, 시인 권경업, 그리고 두 명의 현지인이 함께했다.
어째서 삼십대에 이미 스무 번이나 다녀온 히말라야 산맥이 아니라 네팔 고원 아래 인도 동북부 지역에 걸친 부처의 길인가? 그것은 그가 문득 히말라야를 품은 네팔의 카필라 성에서 태어난 부처를 ‘산의 아들’로서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의 만년설을 넘어 네팔과 인도의 테라이 평원을 끝없이 걸어가는 한 산사나이’(13쪽, 불효자는 웁니다)에게서 함부로 방랑해온 자신의 모습을 겹쳐 읽은 것이다. 그리하여 박인식은 기원전 5세기경 깨달음을 위해 길을 떠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죽은 ‘길 위의 인간’을 만나기 위해 떠나야 했다.

네팔 오지와 인도 비하르 주를 가로지르는
천이백 킬로미터의 무모하고 위험한 여정


『너에게 미치도록 걷다』는 오직 걸어서 부처가 지난 길을 되밟은 순례의 기록이다. 혜초 스님을 비롯한 구법승들이 걸었던 불교 성지의 실태와 현지 주민들의 꾸밈없는 모습이 도보순례객의 시선을 통해 생생히 소개된다. 물론 룸비니(부처의 탄생지), 보드가야(첫 깨달음을 얻은 곳), 사르나트(최초의 전법지) 및 쿠시나가르(열반지)의 사대성지에는 세계 여러 불교국의 사찰이 세워져 있고 방문객도 많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버스와 기차 등 교통수단을 이용해 순례지를 돌 뿐이다.
박인식이 걸은 ‘부처의 길’은 초유의 길이자 그만큼 무모하고 위험한 여정이었다. 네팔의 타망족, 타루족 등의 오지 부족 마을을 거쳐, 인도에서도 가장 가난한 불가촉천민이 모여 사는 비하르 주를 가로질러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비하르 주의 천민들은 가진 자와 외국인에 대한 적개심이 뿌리 깊은 데다 무장혁명세력과 강도떼들이 활보하는 극도로 위험한 길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보드가야 근처 둥개수와리 지역에 정토회가 세운 수자타 아카데미에 방문한 저자는 사오십 명씩 패거리를 짠 무장 강도들의 습격을 세 번이나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경악한다.

너를 만나기 위해 걸었다!
부처의 길을 따라 만난 사람들


다행히도 박인식과 일행은 그런 위험과 맞닥뜨리지 않았다. 부처가 태자의 지위를 버리고 누더기 걸친 구도자가 되어 맨발로 걸었던 보드가야로 가는 길에서 농촌공동체의 원시적 순결성에 젖줄을 댄 땅의 사람들, 삶 그 자체가 종교인 사람들을 만났다. 코끼리와 코뿔소가 출몰하는 마을을 들를 때마다 난생 처음 보는 외국인을 서로 접대하려는 소동이 일어나고(69쪽, 이팔청춘), 길을 멈춰 세우고 질문 공세를 퍼붓는 정 많은 호인들을 따돌려야 했다.
빔비사라 왕의 비극이 서린 라즈기르, 경국지색 암라팔리가 망고나무 숲을 바친 바이샬리를 거쳐, 불법의 탄생지이자 첫 제자를 거둠으로써 승단의 탄생지가 된 사르나트까지의 여정에서는 형형색색의 색물을 뿌려대는 광기의 ‘홀리 축제’에 휩쓸려 낭패를 볼 뻔하기도 하고(224~227쪽, 미치도록 사랑하고 싶을 때) 백 살이 넘은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고위 공무원직을 그만두고 귀향한 우펜드라의 지극한 효심을 목격하기도 한다. 또한 아킬레스 부부가 끓여준 유미죽을 맛보며 수자타가 부처에게 바친 유미죽 일화를 떠올리고, 열흘 만에 잃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부처의 출가 동기가 아니었을지 추측해보기도 한다(198~199쪽, 시장이 반찬이지).
특히 사르나트에서 부처가 열반을 맞은 쿠시나가르까지 삼백 킬로미터의 시골길은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 할 정도로 감탄을 자아내는 길이었다(384쪽, 한없이 투명한 중도). 깨달음의 기쁨마저 버리고 열반을 위해 고향 카필라바스투로 향하던 부처의 마음을 느끼며 순례길의 대단원을 향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 기행문학의 독특한 성취!
시처럼 소설처럼 펼쳐지는 이야기의 향연을 만나다


『너에게 미치도록 걷다』는 기행기를 문학적 차원으로 승화시킨 점에서 기행문학의 전통을 잇고 있다. 특히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의 도보 여행을 다룬 베르나르 올리비에의『나는 걷는다』는 전직 언론인 출신의 작품이라는 점 등에서 비견될 만하다.
문학평론가 구중서는 발문에서 이 책을 일러 ‘소설도 시도 아니면서 그 모두를 포함한 듯한 기행문학’으로 평하고 있다. 자연풍광을 따라가며 쓴 것이라기보다 부처가 걸어간 길 천오백 킬로미터가 소재이되 그 행적을 통해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겹쳐지는 글이기에 그러한 형식이 요청되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카필라 성에서 쿠시나가르로 이어지는 여행길은 삶과 죽음, 현재와 과거, 순간과 영원, 구체적 장소이면서도 추상적 명상의 공간이 혼재해 있다. 시처럼 소설처럼 풀어져 나오는 길 위의 이야기들은 그 독특한 형식과 함께 우리나라 기행문학의 새로운 성취로 독자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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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곳은 많은 듯하면서도 쉬 나타나지 않았다. 맨 먼저 남들처럼 ‘산티아고 가는 길’을 떠올렸다. 하지만 곧 고개를 가로젓게 되었다. 전체는 아니지만 일부 구간을 걸어본 적이 있다. 더 없이 아름다운 길이고 또 걸어볼 만한 길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이 길은 이미 오래전부터 유럽 문명이 관리하고 있다. 그 길에서는 진정한 자아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씻기 어려울 듯했다. 거기서는 무모함도 찾을 수 없을 듯했다. 그 길은 다만 유행이 되어버렸다.
……
내가 찾는 그 길은 무엇보다도 신비로워야 한다. 그 신비는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절로 배어나야 한다. 그 아름다운 길에는 자연의 신비에 감응하는 인간의 열정이 용솟음쳐야 한다. 그 열정 때문에 그곳 삶이 현대화에 뒤처졌다 해도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선택했다는 자부심을 지닌 땅이어야 한다. 그곳에서는 종교라 해도 경전으로 전해지는 관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삶 그 자체가 종교인 땅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현대문명에 어느 정도 노출되어 있다 해도 삶의 근본은 아직 농촌공동체의 원시적 순결성에 젖줄을 대고 있어야 한다.(14∼16쪽. 불효자는 웁니다)

떠날 곳은 많은 듯하면서도 쉬 나타나지 않았다. 맨 먼저 남들처럼 ‘산티아고 가는 길’을 떠올렸다. 하지만 곧 고개를 가로젓게 되었다. 전체는 아니지만 일부 구간을 걸어본 적이 있다. 더 없이 아름다운 길이고 또 걸어볼 만한 길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이 길은 이미 오래전부터 유럽 문명이 관리하고 있다. 그 길에서는 진정한 자아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씻기 어려울 듯했다. 거기서는 무모함도 찾을 수 없을 듯했다. 그 길은 다만 유행이 되어버렸다.
……
내가 찾는 그 길은 무엇보다도 신비로워야 한다. 그 신비는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절로 배어나야 한다. 그 아름다운 길에는 자연의 신비에 감응하는 인간의 열정이 용솟음쳐야 한다. 그 열정 때문에 그곳 삶이 현대화에 뒤처졌다 해도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선택했다는 자부심을 지닌 땅이어야 한다. 그곳에서는 종교라 해도 경전으로 전해지는 관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삶 그 자체가 종교인 땅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현대문명에 어느 정도 노출되어 있다 해도 삶의 근본은 아직 농촌공동체의 원시적 순결성에 젖줄을 대고 있어야 한다.(14∼16쪽. 불효자는 웁니다)
나는 헤타우다 시가지의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있다. 삼십일 만에 사백 킬로미터를 걸어 부처가 인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는 이곳에 도착한 직후다.
그간 거울도 없이 지냈고 한 번도 내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시설을 갖춘 숙소에서 머문 적이 없었다. 한사코 노숙자에 다름없는 텐트 생활을 고집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보았다.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도회의 욕망에 번들거리는 눈빛만 낯익었다. 연탄 얼굴을 폐사 직전의 닭 모가지가 간신히 받치고 있었다. 곧 꺾어질 듯 가느다란 목은 자글자글 주름져 축 처졌다. 오갈 데 없는 육십 노인네가 그 가게 유리창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 쇼윈도 속의 연탄 얼굴이 내게 물었다.
너는 어디에서 왔으며, 너는 누구이고, 너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130∼131쪽, 연탄은 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