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숨겨진 궁가 이야기 : 역사도 몰랐던 조선 왕실 가족사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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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62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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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운현궁은 ‘궁궐'일까? '궁가'일까? 조선의 사라진 궁가를 찾아서! 조선시대 때 한양에는 많은 궁가가 있었다. 궁가는 왕의 가족들이 사는 집으로, 왕이 살던 곳은 ‘궁궐', 왕실 가족들이 사는 집은 '궁', 즉 '궁가'라 했다. 다시 말해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은 '궁궐'이고, 흥선대원군의 집이자 고종이 태어난 '운현궁'은 '궁가'다. 1937년 헬렌 켈러가 방문한 서울맹아학교는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의 사당 선희궁이었고, 고종의 정치 고문 묄렌도르프가 살았던 곳은 순회세자의 궁가였던 용동궁이었다.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태화관 별유천지는 영응대군의 딸 길안현주와 사위 구수영이 살았고, 헌종의 후궁 경빈 김씨가 나와 살던 순화궁이었다. 왕실에서 일어난 처남 매부간의 재산 싸움의 주인공인 조무영과 김중겸은 태종의 딸 경정공주의 아들과 사위로, 소공주궁에 살았던 후손들이었다. 청와대 내에 있는 칠궁은 아들이 왕위에 오른 후궁들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고, 경우궁은 아들이 왕이 되는 것을 본 유일한 어머니 수빈 박씨의 사당이었다. 이렇듯 궁가에 대해 알아가다 보면, 조선의 역사와 조선 왕실의 가족사가 보인다. 이 책은 서울시문화유산해설사로 활동하는 저자가 다소 생소한 ‘궁'이라는 문화재에 호기심을 갖고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저자는 지도 한 장 들고 서울 시내에 있던 '궁가'를 찾아다녔다. 대부분은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으므로 실망도 많이 했다. 그러나 저자는 답사와 자료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궁가의 역사와 사연을 알아가는 재미에 뒤늦게 역사 공부에 매진하게 되었고, 사라져가는 궁가의 역사와 운명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되었다.
궁가란 무엇인가? 잠저, 왕위 계승자가 아니었으나 왕이 된 경우, 왕이 살던 옛 집을 ‘잠저潛邸’라 한다. 세조가 혼인하여 살았던 영희전, 광해군이 살았던 이현궁, 인조가 살았고 효종이 태어나 살았던 어의궁, 영조가 살았던 창의궁, 고종이 태어나 살았던 운현궁 등이 있다.
사당, 왕비가 아닌 후궁에게서 태어난 왕자가 왕이 될 경우 왕의 어머니는 왕비가 아니기 때문에 죽은 후에 신주를 종묘에 모시지 못한다. 또 왕위 계승자가 아닌 왕자가 왕이 되었을 때 그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왕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시는 사당을 ‘궁’이라 불렀다. 칠궁 내에 있는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사당 육상궁, 경종의 생모 희빈 장씨의 사당 대빈궁과, 선조의 생부 덕흥대원군의 사당 도정궁, 철종의 생부 전계대원군의 사당 누동궁, 정조의 생부 사도세자의 사당 경모궁 등이 있다.
궁, 혼기가 차서 출가한 왕의 자녀들인 왕자나 대군이 살던 집, 공주나 옹주가 혼례 후 부마와 살던 집도 ‘궁’이라 불렀는데, 용동궁·계동궁·사동궁·소공주궁·창성궁·죽동궁 등이 있다.
궁가,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 1937년 헬렌 켈러가 방문한 서울맹아학교는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의 사당 선희궁이었고, 고종의 정치 고문 묄렌도르프가 살았던 곳은 순회세자의 궁가였던 용동궁이었다.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태화관 별유천지는 영응대군의 딸 길안현주와 사위 구수영이 살았고, 헌종의 후궁 경빈 김씨가 나와 살던 순화궁이었다. 왕실에서 일어난 처남 매부간의 재산 싸움의 주인공인 조무영과 김중겸은 태종의 딸 경정공주의 아들과 사위로, 소공주궁에 살았던 후손들이었다. 청와대 내에 있는 칠궁은 아들이 왕위에 오른 후궁들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고, 경우궁은 아들이 왕이 되는 것을 본 유일한 어머니 수빈 박씨의 사당이었다. 이렇듯 궁가에 대해 알아가다 보면 조선의 역사와 조선 왕실의 가족사가 보인다.
그 많던 궁가는 다 어디로 갔을까?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황실 재산을 국유화하면서, 고종이 토지개혁을 하면서 대부분의 궁가가 사라졌다. 그나마 남아 있던 궁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변하면서 사라졌다. 길 이름이나 동 이름으로 남아 있었으나 개발과 도로명 주소로 바뀌면서 그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 자리가 궁가였음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남아 있는 곳도 있지만 그것조차 없는 곳도 있다. 그 많던 궁가는 세월이 지나면서 이렇게 자취를 감추었지만, 서울 시내에 유일하게 현존하는 궁가가 있다. 바로 운현궁이다.
그럼, 조선시대에 궁가가 있던 자리는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 세조의 잠저였던 영희전에는 서울중부경찰서, 인조와 효종의 잠저인 어의궁에는 롯데시네마 피카디리극장, 사도세자의 사당이었던 경모궁에는 서울대학의학박물관, 선조와 인빈 김씨의 소생 정원군이 살고 인빈 김씨의 사당이었던 저경궁에는 한국은행(화폐금융박물관),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의 사당인 선희궁에는 국립서울농·맹학교, 순헌황귀비의 사당인 덕안궁에는 서울시의회와 코리아나호텔, 세종의 여덟째 아들 무안대군의 궁가이자 세종대왕이 눈을 감은 안동별궁에는 풍문여자고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세종의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파의 종가는 고급 한정식집 필경재가 되었다. 덕흥대원군의 궁가이자 선조의 잠저인 도정궁의 사랑채 경원당은 건국대학교 내에 있다.
책속에서
[P.20] “영희전永禧殿은 한성부 남부 훈도방에 있던 궁가로 세조가 수양대군 시절 살았던 곳이다. 세조는 세종과 소헌왕후의 둘째 아들로 1428년 윤번의 딸과 혼인하면서 이곳으로 나와서 살았다. 그리고 의경세자와 해양대군(예종)과 의숙공주를 낳았다. 그 후 왕위를 찬탈한 세조가 가족들을 이끌고 경복궁으로 들어가면서, 왕이 살던 이 집은 세조의 궁가로 불렸다. 이곳은 그 후 혼인한 의숙공주와 정현조에게 내려주어 의숙공주가家가 되었다. 광해군 이후에는 사당이나 왕의 어진을 모신 곳이 되기도 했다." (제1장 왕이 살다 20p)
[P. 34] “이현궁梨峴宮은 한성부 동부 연화방에 있던 궁가로 광해군이 유자신의 딸과 혼인하여 나와 살던 곳이다. 임진왜란의 발발로 광해군은 이곳에서 세자로 책봉되었고, 피란길에서 돌아온 광해군은 선조와 함께 궁궐로 들어갔다. 광해군과 문성군부인(폐비 유씨)은 이현궁에서 5년 남짓 살았다. 한때 이현궁에 광해군의 생모 공빈 김씨의 신주를 모시고, 광해군의 딸을 살게 하여 광해군의 제사를 모시게도 했다." (제1장 왕이 살다 34p)
[P. 62] “창의궁彰義宮은 한성부 북부 순화방에 영조가 연잉군 시절에 살던 궁가다. 이곳은 원래 효종의 딸 숙휘공주와 부마 정제현이 살았는데, 숙종이 연잉군에게 하사했다. 경종이 후사 없이 죽자 왕세제 연잉군이 경종의 뒤를 이어 영조로 즉위했다. 그 후 이곳에 효장세자가 죽자 효장묘를 세우고, 의소세손이 죽자 의소묘를 세웠다. 순조 때는 효명세자의 사당인 문호묘를 세우기도 했다. 1900년에는 의소묘와 문희묘를 영희전으로 옮기면서 창의궁은 폐궁되었다.”(제1장 왕이 살다62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