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국회도서관 홈으로 정보검색 소장정보 검색

목차보기


머리말 4
책머리에 7

제1장 왕이 살다
1 영희전, 세조의 잠저 20
현덕왕후, 세조에게 침을 뱉다 21
세조, 문수보살을 만나다 23
의숙공주와 음나무 25
여섯 왕의 어진을 모시다 28
영희전을 그리다 31

2 이현궁, 광해군의 잠저 34
서자가 왕위에 오르다 35
파란만장했던 광해군 37
계운궁에서 훈련도감까지 41
"이현궁은 넓고 커서 항상 미안하다" 42
그곳에 은행나무만 서 있다 44

3 어의궁, 인조와 효종의 잠저 48
효종이 태어난 상어의궁 49
정조가 하어의궁에서 반송시를 짓다 50
왕실의 가례소, 하어의궁 53
어의궁에서 인조반정을 일으키다 55
<인평대군방전도>에 나타난 하어의궁 56

4 창의궁, 영조의 잠저 62
효종의 지극한 '공주 사랑' 63
창의궁과 양성헌 65
영조의 요절한 후손들의 사당 68
역사의 산 증인, 통의동 백송 73
조선시대 길을 따라 75

5 운현궁, 고종의 잠저 77
'2대 천자지지'와 '형산의 옥벼루' 78
신정왕후는 왜 명복을 익종의 양자로 삼았을까? 81
궁궐에 버금가는 운현궁 85
인현왕후가 꿈에 나타나다 87
팔려나간 운현궁 90

제2장 왕을 낳은 부모가 살다
1 도정궁, 덕흥대원군의 궁가이자 선조의 잠저 98
중종의 막내아들 덕흥군 99
창빈 안씨의 음덕을 받다 101
역모로 죽은 이하전 104
운경기념관과 경원당 107
긍구당과 담연정을 거닐다 112

2 누동궁, 전계대원군의 궁가 114
사도세자의 후궁, 양제 임씨 115
역모와 순교 속에서 살아남다 116
강화도령 원범, 왕이 되다 119
전계대원군을 받들다 123
누동궁에 들어선 한옥들 126

3 경모궁, 사도세자의 사당 129
창경궁의 정원, 함춘원 130
사도제사, 8일 만에 죽다 131
정조, 아버지 묘를 천장하다 137
서양 의료와 의학 교육을 실시한 '대한의원' 142

4 칠궁, 숙빈 최씨의 사당과 정빈 이씨의 사당 146
칠궁의 주인들 147
어머니의 은혜를 온전히 하는 육상궁 150
지사에게 묏자리를 묻다 152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함께 모신 연호궁 155
김신조 사건과 칠궁 158

5 저경궁, 인빈 김씨의 사당 162
서모의 은혜를 잊지 않다 163
순강원 169
달성위궁 170
조선은행이 된 저경궁 173

6 대빈궁, 희빈 장씨의 사당 176
숙종의 여인들 177
천민에서 왕비가 된 장옥정 179
후궁은 왕비에 오를 수 없다 182
268년 만에 숙종 곁으로 가다 183
경종의 사모곡 186
대빈묘와 대빈궁으로 남다 188

7 선희궁, 영빈 이씨의 사당 191
아들을 사지로 내몰다 192
의열묘에서 수경원으로 193
의열묘에서 선희궁으로 196
세심대와 감류천 197
영조의 배려와 정조의 안타까움 201

8 경우궁, 수빈 박씨의 사당 205
"내가 죽은 뒤에는 행록을 짓지 마라" 206
아름답고 경사스러운 묘 208
경사스러움을 돕는 사당 210
고종이 피신하다 213
학교를 열다 214

9 덕안궁, 순헌황귀비 엄씨의 사당 218
명례방의 명례궁 219
시위상궁에서 황귀비까지 222
비운의 황태자, 영친왕 224
경성부민관에서 국회의사당까지 228

제3장 왕자와 공주가 살다
1 자수궁, 무안대군의 궁가 232
장인 때문에 세자가 되지 못하다 233
후궁들이 모여 살다 237
명나라 궁녀, 굴씨가 살다 239
북학과 병원을 세우다 241
자수궁을 찾아서 243

2 소공주궁, 경정공주의 궁가 249
소공주댁, 재산 싸움에 휘말리다 250
호화스러운 남별궁 252
환구단과 황궁우가 들어서다 253
환구단인가?, 원구단인가? 257

3 안동별궁, 영응대군의 궁가 262
세종, 영응대군 궁가에서 숨을 거두다 263
왕의 자손이 대대손손 살다 267
정명공주가를 바치다 269
옥새를 치마 속에 감추다 270
궁중 나인들의 거처로 변하다 271

4 순화궁, 길안현주의 궁가 275
구수영과 길안현주 276
"나는 어필을 보고 싶다" 278
현종이 사랑한 여인, 경빈 김씨 280
태화관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다 284

5 용동궁, 순회세자의 궁가 288
공회빈 윤씨의 시신이 없다 289
박동궁이 되다 292
'교육'을 통한 부국강병 294
최승희의 '숙명여자전문학교 설립 모금 운동' 296
묄렌도르프가 본 용동궁 298

6 창성궁, 화유옹주의 궁가 301
영조, 딸들을 지극히 사랑하다 302
화유옹주와 창성위 황인점 308
엄황귀비, 진명여학교를 설하다 310

7 죽동궁, 명온공주의 궁가 314
단경왕후, 일주일 만에 폐위되다 315
죽도를 들고 춤을 추다 317
죽동궁 폭탄 테러 사건 320

8 계동궁, 남연군의 종가 324
명당 중의 명당 325
남연군의 종가를 이어가다 326
갑신정변, 3일 천하로 막을 내리다 328
'계동궁 연못'과 번댕이 330

9 사동궁, 의친왕의 궁가 334
홍역과 독살설 335
'범숙의궁'에서 태어난 의친왕 337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의친왕가 339
"나의 아버지 의친왕" 341

10 수진궁, 왕자와 공주를 모신 사당 346
평원대군과 영풍군 347
인성대군과 제안대군 349
용성대군과 의창군과 낙선군 352
숙신공주와 명혜공주와 명선공주 353
귀신이 모여 있던 수진궁 357

궁가 주소 359
참고문헌 360
조선왕조 가계도 363
찾아보기 371

이용현황보기

조선의 숨겨진 궁가 이야기 : 역사도 몰랐던 조선 왕실 가족사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1606567 951.5 -11-23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1606568 951.5 -11-23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1622618 951.5 -11-23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이용가능
0001622619 951.5 -11-23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제공
운현궁은 ‘궁궐'일까? '궁가'일까?
조선의 사라진 궁가를 찾아서!

조선시대 때 한양에는 많은 궁가가 있었다. 궁가는 왕의 가족들이 사는 집으로, 왕이 살던 곳은 ‘궁궐', 왕실 가족들이 사는 집은 '궁', 즉 '궁가'라 했다. 다시 말해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은 '궁궐'이고, 흥선대원군의 집이자 고종이 태어난 '운현궁'은 '궁가'다.
1937년 헬렌 켈러가 방문한 서울맹아학교는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의 사당 선희궁이었고, 고종의 정치 고문 묄렌도르프가 살았던 곳은 순회세자의 궁가였던 용동궁이었다.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태화관 별유천지는 영응대군의 딸 길안현주와 사위 구수영이 살았고, 헌종의 후궁 경빈 김씨가 나와 살던 순화궁이었다. 왕실에서 일어난 처남 매부간의 재산 싸움의 주인공인 조무영과 김중겸은 태종의 딸 경정공주의 아들과 사위로, 소공주궁에 살았던 후손들이었다. 청와대 내에 있는 칠궁은 아들이 왕위에 오른 후궁들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고, 경우궁은 아들이 왕이 되는 것을 본 유일한 어머니 수빈 박씨의 사당이었다. 이렇듯 궁가에 대해 알아가다 보면, 조선의 역사와 조선 왕실의 가족사가 보인다.
이 책은 서울시문화유산해설사로 활동하는 저자가 다소 생소한 ‘궁'이라는 문화재에 호기심을 갖고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저자는 지도 한 장 들고 서울 시내에 있던 '궁가'를 찾아다녔다. 대부분은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으므로 실망도 많이 했다. 그러나 저자는 답사와 자료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궁가의 역사와 사연을 알아가는 재미에 뒤늦게 역사 공부에 매진하게 되었고, 사라져가는 궁가의 역사와 운명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되었다.

궁가란 무엇인가?
잠저,
왕위 계승자가 아니었으나 왕이 된 경우, 왕이 살던 옛 집을 ‘잠저潛邸’라 한다. 세조가 혼인하여 살았던 영희전, 광해군이 살았던 이현궁, 인조가 살았고 효종이 태어나 살았던 어의궁, 영조가 살았던 창의궁, 고종이 태어나 살았던 운현궁 등이 있다.

사당,
왕비가 아닌 후궁에게서 태어난 왕자가 왕이 될 경우 왕의 어머니는 왕비가 아니기 때문에 죽은 후에 신주를 종묘에 모시지 못한다. 또 왕위 계승자가 아닌 왕자가 왕이 되었을 때 그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왕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시는 사당을 ‘궁’이라 불렀다. 칠궁 내에 있는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사당 육상궁, 경종의 생모 희빈 장씨의 사당 대빈궁과, 선조의 생부 덕흥대원군의 사당 도정궁, 철종의 생부 전계대원군의 사당 누동궁, 정조의 생부 사도세자의 사당 경모궁 등이 있다.

궁,
혼기가 차서 출가한 왕의 자녀들인 왕자나 대군이 살던 집, 공주나 옹주가 혼례 후 부마와 살던 집도 ‘궁’이라 불렀는데, 용동궁·계동궁·사동궁·소공주궁·창성궁·죽동궁 등이 있다.

궁가,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
1937년 헬렌 켈러가 방문한 서울맹아학교는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의 사당 선희궁이었고, 고종의 정치 고문 묄렌도르프가 살았던 곳은 순회세자의 궁가였던 용동궁이었다.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태화관 별유천지는 영응대군의 딸 길안현주와 사위 구수영이 살았고, 헌종의 후궁 경빈 김씨가 나와 살던 순화궁이었다. 왕실에서 일어난 처남 매부간의 재산 싸움의 주인공인 조무영과 김중겸은 태종의 딸 경정공주의 아들과 사위로, 소공주궁에 살았던 후손들이었다. 청와대 내에 있는 칠궁은 아들이 왕위에 오른 후궁들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고, 경우궁은 아들이 왕이 되는 것을 본 유일한 어머니 수빈 박씨의 사당이었다. 이렇듯 궁가에 대해 알아가다 보면 조선의 역사와 조선 왕실의 가족사가 보인다.

그 많던 궁가는 다 어디로 갔을까?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황실 재산을 국유화하면서, 고종이 토지개혁을 하면서 대부분의 궁가가 사라졌다. 그나마 남아 있던 궁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변하면서 사라졌다. 길 이름이나 동 이름으로 남아 있었으나 개발과 도로명 주소로 바뀌면서 그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 자리가 궁가였음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남아 있는 곳도 있지만 그것조차 없는 곳도 있다. 그 많던 궁가는 세월이 지나면서 이렇게 자취를 감추었지만, 서울 시내에 유일하게 현존하는 궁가가 있다. 바로 운현궁이다.

그럼, 조선시대에 궁가가 있던 자리는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
세조의 잠저였던 영희전에는 서울중부경찰서, 인조와 효종의 잠저인 어의궁에는 롯데시네마 피카디리극장, 사도세자의 사당이었던 경모궁에는 서울대학의학박물관, 선조와 인빈 김씨의 소생 정원군이 살고 인빈 김씨의 사당이었던 저경궁에는 한국은행(화폐금융박물관),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의 사당인 선희궁에는 국립서울농·맹학교, 순헌황귀비의 사당인 덕안궁에는 서울시의회와 코리아나호텔, 세종의 여덟째 아들 무안대군의 궁가이자 세종대왕이 눈을 감은 안동별궁에는 풍문여자고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세종의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파의 종가는 고급 한정식집 필경재가 되었다. 덕흥대원군의 궁가이자 선조의 잠저인 도정궁의 사랑채 경원당은 건국대학교 내에 있다.

책속에서

알라딘제공
[P.20] “영희전永禧殿은 한성부 남부 훈도방에 있던 궁가로 세조가 수양대군 시절 살았던 곳이다. 세조는 세종과 소헌왕후의 둘째 아들로 1428년 윤번의 딸과 혼인하면서 이곳으로 나와서 살았다. 그리고 의경세자와 해양대군(예종)과 의숙공주를 낳았다. 그 후 왕위를 찬탈한 세조가 가족들을 이끌고 경복궁으로 들어가면서, 왕이 살던 이 집은 세조의 궁가로 불렸다. 이곳은 그 후 혼인한 의숙공주와 정현조에게 내려주어 의숙공주가家가 되었다. 광해군 이후에는 사당이나 왕의 어진을 모신 곳이 되기도 했다." (제1장 왕이 살다 20p)
[P. 34] “이현궁梨峴宮은 한성부 동부 연화방에 있던 궁가로 광해군이 유자신의 딸과 혼인하여 나와 살던 곳이다. 임진왜란의 발발로 광해군은 이곳에서 세자로 책봉되었고, 피란길에서 돌아온 광해군은 선조와 함께 궁궐로 들어갔다. 광해군과 문성군부인(폐비 유씨)은 이현궁에서 5년 남짓 살았다. 한때 이현궁에 광해군의 생모 공빈 김씨의 신주를 모시고, 광해군의 딸을 살게 하여 광해군의 제사를 모시게도 했다." (제1장 왕이 살다 34p)
[P. 62] “창의궁彰義宮은 한성부 북부 순화방에 영조가 연잉군 시절에 살던 궁가다. 이곳은 원래 효종의 딸 숙휘공주와 부마 정제현이 살았는데, 숙종이 연잉군에게 하사했다. 경종이 후사 없이 죽자 왕세제 연잉군이 경종의 뒤를 이어 영조로 즉위했다. 그 후 이곳에 효장세자가 죽자 효장묘를 세우고, 의소세손이 죽자 의소묘를 세웠다. 순조 때는 효명세자의 사당인 문호묘를 세우기도 했다. 1900년에는 의소묘와 문희묘를 영희전으로 옮기면서 창의궁은 폐궁되었다.”(제1장 왕이 살다62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