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천히, 천천히 발을 내딛어야 자신을 보여주는 곳, 히말라야는 그런 곳이었다. 지나간 일상에 대한 집착도, 다가올 미래에 대한 성급한 염려도 모두 버리게 되는 곳. 지금의 공기와 하늘, 그리고 바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껴지는 바로 그 순간, 비로소 히말라야의 문이 열렸다. 그래, 그렇구나! 이왕 빼앗기고 사는 것이 인생이라면, 욕심을 빼앗기고 집착을 빼앗기며 사는 것이 훨씬 큰 행복일 것이다. 히말라야! 그곳을 다시 간다면 그때는 정말 천천히, 더 천천히 오르고 싶다. 땅의 순례자가 되고, 바람의 순례자가 되고, 영혼의 순례자가 되어…….
모양도 색깔도 다르지만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며 살아가는 세렝게티는 우리 가족을 철학자로 만들었다. 세차게 내리던 빗줄기, 짠하게 나타난 무지개, 그리고 무심하게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던 사자까지……. 평원에서의 시간은 그간 바쁘기만 했던 내 삶을 돌아보게 했다. 변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느리디 느린 속도의 자연은 더 아름답고 올곧게 자라고 있었다. 한 박자 느리게 산다는 것은 곧 도태되는 것이라고 여겼던 우리 가족에게 세렝게티는 천천히, 더 천천히 살아가라고 말해주었다.
남아메리카 여행은 황홀한 대자연이 안겨주는 환희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청춘’을 앞둔 세 아이의 현재와 미래를 가슴으로 함께 이해할 수 있어서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청춘이란 그런 게 아닐까? 때로는 드넓은 우주를 향해 패기에 찬 꿈을 꾸다가도, 작고 소소한 걱정금심에 꿈이 꺾이는 그런 시간, 자신을 보듬어준 부모의 품을 떠나 스스로 노를 저어 인생이라는 항해를 경주해야 하는 시간. 남아메리카의 구석구석을 두 발로 밟는 동안 우리 부부는 어느새 사랑스러운 세 사이들이 부모와 함께 여행을 하며 키도 마음도 훌쩍 자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3박 4일의 안데스 트래킹. 끝이 보이지 않는 힘든 여정이었지만, 가족이 있었기에 함께 걸을 수 있었던 길. 우리 가족은 서로를 향해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던 사랑과 믿음이라는 끈끈한 마음을 묵묵히 길을 걸으면서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남아메리카는 그 물리적 크기만큼 마음밭도 넓어서 매사에 불평을 늘어놓은 속 좁은 우리 가족에게 단 한 번도 성내지 아니하고 마음과 영혼을 활짝 열어 따뜻하게 품어주었다. 남미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새롭게 이어지는 희망의 길을 바라볼 수 있었다.
늘 쫓고 쫓기는 ‘톰과 제리’는 만화 속에만 있는 게 아니다. 단짝처럼 붙어 다니면서도 늘 티격태격하는 우리 집 톰과 제리. 여행 중에도 틈틈이 티격태격하더니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프랑스의 캠핑장에서 결국 싸움이 났다. 그 결과 빗속에 위태위태하게 서 있던 초라한 텐트는 화가 난 아버지에 의해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러나 우리는 믿는다. 그 시끌벅적한 시간 속에서 부모가 가르쳐줄 수 없는 배려와 화해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아이들은 하루하루 어른으로 자라고 있다.
오랫동안 이어온 서양인들의 편견을 깨뜨리고 노벨상을 수상한 인도의 시인 타고르. 정규학교를 다니지 않은 그가 ‘인도의 등불’이라는 호칭을 얻게 되기까지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열한 살의 나이에 다녀온 히말라야 여행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누가 그랬던가.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들의 등에 배낭을 메어주라고.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떠난 여행은 우리 아이들에게 학교가 가르쳐주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를 선사한다.
그림 같은 산토리니의 이아 마을에서 우리 가족은 어느덧 1년을 맞이한 가족여행을 자축하는 근사한 시간을 가졌다. 저물어가는 노을을 바라보며 우리 가족의 얼굴에 피어난 행복이라는 이름의 미소는 좀처럼 시들 줄 몰랐다. 여행 중간 중간 일어났던 사건 사고들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되살아났다. 무엇보다 여행을 마치고 각자 생각해둔 계획들을 말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서로 눈길 한 번 마주치지 않고 자기 일만 하던 아이들, 그런 아이들과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속을 끓이던 우리 부부가 이렇게 달라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 어떤 여행지보다 아름다운 풍경은 바로 우리 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