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라트 선생 또는 어느 폭군의 종말≫(1905, 이하 ≪운라트 선생≫)은 하인리히 만이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는 유미주의를 탈피하고 시대적 상황에 대한 사회 비판적, 참여 문학적 입장을 확립한 작품이다. 이 소설의 제목에서는 한 개인의 이름이 언급되고, 그 인물의 운명이 짧게 암시된다. ‘운라트 선생’은 주인공의 시민으로서의 이름이 아니라, 김나지움 교사 라트 박사를 여러 해 전부터 조롱하며 부르는 별명이다. 독자는 첫 페이지에서 학교 풍자의 중심에 이 교사가 위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운라트 선생≫에서는 폭군 같은 고루한 김나지움 교사 라트 선생이 그가 몹시 미워하는 학생들을 추적하다가 여가수 로자 프뢸리히를 알게 되고 그녀에게 반하며, 그 일로 인해 사회적 지위를 잃고 파멸하는 과정이 풍자적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한 학교 풍자 이상이다. 충복적인 성향이 특징인 빌헬름 제국 시대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소설이라 하겠다. 많은 사람들은 이 소설에서 빌헬름 제국 시대의 독일 교양 시민에 대한 희화화를 보았다. 시민사회의 구조와 원칙 및 실상을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사회소설로도 볼 수 있다. 또한 권위적인 교사와 개방적인 여배우 두 사람을 연결하고, 그들의 역할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인물소설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진지하게 비판할 만한 이유가 되는 것을 과장스럽게 묘사하고,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풍자소설로도 볼 수 있다. ≪운라트 선생≫은 하인리히 만의 고향 뤼베크에서는 뤼베크 시민들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사실상 금서가 되었다. 하지만 수많은 번역본이 나오고, 요제프 폰 슈테른베르크 감독이 <푸른 천사>(1931)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한 이후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책속에서
[P.39-40] 그는 초라한 모습으로, 심지어는 이런 평민들 속에서 조롱을 받으며 배회했다. 그러나 자의식에 따르면, 그는 지배하는 자들에 속했다. 어떤 은행가도, 어떤 군주도 운라트보다 더 영향력 있게 권력에 관여하지 못했고, 기존의 것을 수호하는 데 운라트보다 더 많이 관심을 갖지 못했다. … 그가 몹시 원한 것은 영향력 있는 교회, 단단한 칼, 엄격한 복종, 완고한 예절 등이었다.
[P. 142] 로만은 엄청난 공포에 사로잡혀 그대로 서 있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범죄가 저질러졌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무정부주의자 운라트는 세상이 다 아는 범죄를 저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