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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 김대중 평전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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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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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은 눈물로 열렸다.
사형수가, 야당 후보가, 서자가, 섬사람이, 네 번의 도전 끝에, 70대 고령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암흑시대에 지지자들이 흘린 눈물, 그 눈물의 강을 타고 올라가
마침내 단 한 사람이 됐다. 척박한 현대사를 갈아엎는 기적이었다.
우리네 새벽에는 김대중의 눈물이 고여 있다.

“돌이켜 보면 선생은 내 청춘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낭만적 감성만 과도하게 부풀어 현실 도피를 되풀이하고 있던 내가 부모님의 나라를 방문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의 재생을 맹세한 학생 시절, 선생은 이미 한국 민주화의 상징적 존재였다.” _ 도쿄대 교수 강상중

“1960,70년대에 똘망똘망한 정신을 가지고 그 시대의 아픔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김대중은 한 인간의 이름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빛이었고 희망이었고 자유와 진리를 향한 열정의 분화구였다.” _ 철학자 김용옥

김대중 서거 3주기, 김대중을 다시 생각한다

2009년 여름, 우리는 두 명의 대통령을 떠나보냈다. 바위에서 뛰어내려 비명횡사한 대통령을 슬퍼하던 노(老) 대통령은 불과 석 달 후 세상을 하직했다. 꿈 많던 섬 소년에서 청년 사업가로, 유망한 소장 정치인에서 대통령의 정적으로, 사형수에서 대통령으로의 인생 역정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고,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통과한 김대중 대통령의 고난과 고뇌, 성취와 좌절은 한편의 대하드라마라 할 만하다. 2012년 8월 김대중 대통령 서거 3주기를 맞아 다시 김대중을 생각하고자 한다. 현대사 초유의 정치 거인이자, 눈물 많은 범부이기도 했던 한 사람의 일생을 돌아보며 김대중이라는 이름을 되새기고자 한다.

김대중에게 길을 묻는다

기성 정치인 중 유일하게 선생님으로 불렸던 사람, 김대중. 그 이름은 한 사람의 이름에 그치지 않는다. 눈앞에 닥쳐오는 시련에 온몸으로 부딪히며 개인과 시대의 한계를 극복해간 그 이름은 납치와 사형 선고, 망명 등과 함께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또 정치인으로 살아간 30여 년의 시간은 알알이 대통령으로 귀결되는 시간이었고, 그 시간은 남북 화해, 민주주의와 인권의 신장, 경제 위기 극복 등으로 준비된 대통령으로서의 존재감을 깊게 각인시켰다. 김대중은 시대가 나아갈 길을 가리키는 나침반의 바늘이었고, 한국 현대사는 김대중과 함께 그 한계를 극복해갔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남북 관계가 경색되고 양극화가 심화되어온 지난 5년의 시간을 정리하고 다시 선택을 눈앞에 둔 지금, 김대중에게 시대가 나아갈 길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김대중이라는 이름으로 쓰는 한국 현대사, 민주주의를 향한 역경의 드라마

일제 치하의 식민지에 태어나 일본어로 공부하고 창씨개명을 당하고, 해방과 함께 새로운 조국을 꿈꾸며 정치에 투신하고, 독재정권과 군사정권 아래서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김대중은 한국 현대사를 온전히 살아냈다. 특히 한국전쟁과 3.15 부정선거, 4.19 혁명, 5.16 쿠데타, 71년 대통령 선거, 망명과 도쿄 납치 사건, 12.12 쿠데타와 5.18 광주, 87년과 92년 대선, 최초의 수평적 정권 교체, 남북 정상회담, 노벨 평화상 등 한국 현대사의 고비마다 김대중이라는 이름이 등장하고, 한국 사회의 중요한 쟁점에 김대중의 이름이 빠진 적이 없다. 김대중의 일생은 그 자체로 한국 현대사, 한국 민주주의사라고 할 수 있다.

오해와 왜곡을 벗겨내고 인간 김대중의 진면목을 드러내다

한국 현대사 초유의 거인이었던 김대중은 한편으로 빨갱이, 전라도, 거짓말쟁이 등 공격과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김대중을 괴롭혔던 숱한 오해와 왜곡은 김대중이라는 정적을 탄압하고 방해하기 위한 정치 공세이기도 했지만, 김대중에게는 시련이고 좌절이었다. 김대중이라는 인물은 신화적 존재인 만큼 그 개인의 구체적인 면모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김대중을 다시 쓰고자 하는 이 책, 김대중 평전은 김대중을 둘러싸고 있는 이러한 오해와 왜곡을 벗겨내고 인간 김대중을 드러내고자 한다. 김대중은 민주주의라는 신념과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원칙 아래 열정적으로 개인의 인생과 시대의 미래를 개척해나간 정치가이자, 성실하게 공부하고 연구하고 토론하며 이론을 정립해간 사상가이자 정책가이며, 종교라는 영성의 힘으로 정적들을 용서하고 평화를 얻은 종교인이었다. 또 성취를 열망하고 불의에 분노하고 좌절에 실망하고 아픔에 눈물을 흘리는 보통 사람이었다. 평전은 김대중에게 덧씌워진 오해와 왜곡을 걷어내고 인간 김대중의 진가를 드러낸다.

김대중 평전의 완결판

『새벽 - 김대중 평전』의 저자 김택근은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자서전 편집위원으로 임명되어 자서전 집필을 맡았다. 김대중 대통령과 총 2년여 동안 41회의 구술, 관련 인물들과의 수많은 인터뷰, 김대중 대통령 국정노트, 일기, 육필 메모 등의 미공개 자료들도 섭렵하여 자타공인 국내 최고의 김대중 전문가가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자서전 집필을 의뢰받고 구술을 시작한 2004년부터 평전의 원고를 마무리한 2012년까지 저자 김택근은 8년의 시간 동안 김대중을 붙들고 살았다. 그는 김대중에게 놓여나지 못했고 짧지 않은 8년의 시간이 평전에 녹아 있다. 특유의 간결하고 유려한 문제로 쓰여진 『새벽 - 김대중 평전』은 자서전과는 다르게 저자만의 독자적인 관점과 해석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일생을 재구성하는 한편, 기존 자료와 김대중 자서전에서 볼 수 없었던 김대중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를 그려내 새로운 김대중 평전을 완결했다.

김대중의 숨은 이야기가 새롭게 밝혀지다

자서전 집필을 준비하며 김대중 대통령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관련 자료도 가장 많이 섭렵한 만큼, 평전에는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이야기들도 담겨 있다. 도쿄 납치 사건에 가담한 주일 김재권 공사의 아들 성 김(현 주한 미국 대사)이 6자회담 대표로 방한하자, 아버지 일과 아들의 일은 다르다며 묻어둔 일화나, 노벨상 위원회 군나르 베르게 위원장이 한국의 특정 지역에서 노벨상 수상에 반대하는 수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고 언급한 것이나 대통령 취임 이전 안기부 내 노벨상 방해공작팀이 실재했다는 사실은 이번 평전에서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이다. 이명박 정부에서의 민주주의 후퇴를 보면서 목숨을 걸고 쟁취한 직선제를 회의했다거나, APEC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을 압박해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학살을 중지시켰다는 사실도 김대중 대통령의 풍모를 새롭게 전달해준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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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3] 대중은 마음이 여리고 겁이 많았는데도 큰일에는 담대했다. 대중은 형제 중에서도 가장 겁이 많았다. 밤에는 옛날이야기 속의 도깨비가 튀어나올까봐 마음을 졸였다. 바람이 불면 마당 한 켠에 있는 측간에 가지 못할 정도였다. 혼자 있으면 귀신이 나올까봐 이불을 뒤집어썼고, 또 어머니가 돌아가실까봐 홀로 울었다. 그런데도 틈만 나면 뭍으로 가겠다고 떼를 썼다. 신문 배달을 해서라도 공부를 하겠다고 부모를 졸랐다. ‘비바람이 두렵고, 어둠이 무서웠지만 새벽에 길을 나서고야 말았던’ 김대중의 삶은 이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P. 24] 김대중은 또 일찍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보통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신문을 탐독했다. 아버지가 구장직을 맡고 있어서 매일신보가 들어왔다. 며칠이나 묵은 신문이었지만 섬에는 없는 여러 소식이 들어 있었다. 서당에서 익힌 한자 실력으로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중에서도 정치면을 유심히 봤다. 일본 내각이 개편되면 그 명단을 베껴서 가지고 다녔다.
[P. 29-30] 해방 공간은 어수선했고 나라는 국민들의 염원대로 세워지지 않았다. 김대중은 사실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새로운 조국을 건설한다는 희망과 의욕으로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했다. 그 후 좌와 우로 갈라지면서 숱한 정당이 탄생했다. 김대중은 조선신민당에 입당했다. ‘좌우 합작’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산주의자들은 민족의 독립보다는 소련을 추종하고 나아가 그들에게 충성을 하자는 움직임을 보였다. “우리의 조국 소비에트 만세” 또는 “붉은 깃발만이 우리의 진정한 깃발”이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했다. 김대중은 그들에게 호통을 쳤다. “어떤 놈들이든 소련을 조국이라고 하고, 붉은 깃발을 우리 깃발이라고 하는 놈은 때려 죽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