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의 소설 중 가장 파란만장하고 드라마틱하며, 언어의 아름다움이 더할 나위 없이 빼어나게 구사된 작품
이번에 문예출판사에서는 《페터 카멘친트》와 《수레바퀴 아래서》에 이은 헤세의 세 번째 장편소설 《게르트루트》를 출간했다. 《게르트루트》는 헤세의 소설 중에서도 가장 소설적인 구성을 갖추었다고 평가받는 음악 소설이다.
헤세의 첫 번째 아내 마리아는 슈만과 쇼팽을 좋아했던 피아니스트였으며, 헤세는 아내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음악과 함께하는 삶에 녹아들었다. 《헤르만 라우셔의 유고》와 《청춘시집》의 성공으로 한창 문명(文名)을 드높이던 시기의 헤세는 대도시의 삶을 선택하는 대신 한적한 시골 마을 가이엔호펜에 농가를 빌려 전원생활을 시작했고, 시인, 화가, 음악가 등과 교류하면서 자연과 음악, 예술이 어우러지는 낭만적인 분위기 가운데 수작 《게르트루트》를 써냈다.
스스로 자신의 소설이 “본래 소설이 아니라 영혼의 고백”이라고 평가하는 헤세지만 《게르트루트》는 가장 소설다운 구성을 갖춘 작품이다. 그러나 ‘고독한 예술가의 고백’이라 할 수 있는 《게르트루트》는 행복에 대한 의미 탐구, 삶에 대한 치열한 묘사와 고뇌라는 점에서 역시 헤세 자신을 묘사한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처럼 펼쳐지는 청아한 언어의 향연 속에 연인에 대한 사랑과 삼각관계로 인한 절망이 그려지는 이 소설을 읽으며 독자 여러분은 젊은 시절의 고독과 방황, 인생의 참된 의미와 행복의 의미를 되씹어볼 수 있을 것이다.
책속에서
[P.7] 이 세상에 음악이 있다는 것, 인간은 때때로 마음속까지 박자에 따라 움직이며 하모니로 가득 채워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언제나 깊은 위안을 주었으며 모든 생활의 의미를 긍정해주었다. 아, 음악! 한 선율이 네 마음에 떠오른다. 너는 소리도 없이 마음속으로만 그 선율을 노래한다. 네 몸과 마음은 그 선율에 젖어들어 온 힘과 움직임을 빼앗긴다. 그것이 네 마음속에 살아 있는 동안에는 네 마음속의 모든 우연한 것, 나쁜 것, 거친 것, 슬픈 것을 씻어버리고, 세계를 공명(共鳴)시키며, 무거운 것을 가볍게 하고, 마비된 것을 날아가게 한다.
[P. 80] 인간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충만된 희망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때로 고독에 대해, 아니 그뿐만 아니라 지루하고 공허한 나날에 대해 이상하게도 희미한 베일 너머로 어렴풋이 느껴지는 듯한 향수에 젖었던 것이다.
[P. 97] 그날 밤 나는 오랫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열과 불안으로 괴로웠기 때문이 아니고, 내 봄이 다가오고 내 마음이 오랜 열정적 방랑과 겨울을 거쳐 올바른 길에 들어섰음을 알았기 때문에 눈을 뜬 채 잠을 청하려 하지 않았다. 희미한 밤빛이 방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생활과 예술의 모든 목표가 남풍 부는 무렵의 청명한 언덕처럼 뚜렷하게 가까이 있었다. 내 생활에서 때로 아주 사라져버리는 소리와 숨겨진 박자를 전설적인 유년 시절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남김없이 느낄 수 있었다. 감정의 이 몽상적인 명랑성과 압축된 충실성을 유지하고 응집시켜 이름 붙이고 싶을 때는 게르트루트라고 불렀다. 그 이름을 품고 이미 날이 샐 즈음에야 잠들었으나, 오래오래 잠을 잔 듯 이른 아침에 상쾌하고 원기 있게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