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한글연행록 ≪셔원녹≫ -한문본과 번역필사본 모두 존재, 비교어문학 연구에 밑거름-
이르면 13세기 후반에서 늦으면 19세기말까지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행 목적으로 중국을 왕래했다. 일정은 짧아도 오륙십 일이요 길면 수개월도 걸리는 이 험난한 노정을 때로는 海路를 이용하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은 육로를 이용했다. 갔다와서 또는 일정 도중에, 날짜순대로 또는 테마별로 보고 들었던 일들을 기록한 것이 소위 연행록(燕行錄)이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 사람이 중국에 사행한 횟수는 거의 일년에 한 차례에 해당하는 600회에 가깝다는 통계가 있다. 한 번 갈 때마다 꼬박꼬박 기록했으면 600종에 근접한 연행기록이 나올 수 있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지금까지 조사된 연행록 자료는 500종에 좀 못 미치고 있다. 이 기록들은 물론 대부분이 한문으로 쓰여진 것이고 한글로 필사된 것은 20종 내외에 불과하다. 한글필사본 연행록 ≪셔원녹≫은 조선 중후기 이의봉(李義鳳: 1733~1801)의 한문본 연행록 ≪北轅錄≫의 번역본이다. 전체 11책 가운데 권7이 빠진 10책이 남아 전한다. 한 권이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10책에 무려 1,574쪽, 30만 자에 달한다. ≪셔원녹≫은 권10 끝에 필사기가 있어서 번역시기를 알 수 있는데 이에 근거해보면 1769에 완성되었다. ≪셔원녹≫은 18세기에 출현한 대표적인 한글본 연행록과 견준다면 시기적으로 ≪을병연행록≫ 뒤에 위치하고 분량면에서도 ≪을병연행록≫ 다음이므로 특별히 주목된다. 국어학적으로 볼 때, ≪셔원녹≫은 18세기 중후반의 국어의 특징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ㄱㆍㅎ말음체언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지만, 지금의 ‘하늘’의 경우에는 ‘하?’로만 쓰이고 ‘하?ㅎ’은 쓰이지 않은 점이 특이하다. ‘?’은 또 다른 옛표기인 ‘구무’는 나오지 않고 시종 현대표기와 동일한 ‘구멍’이 나타나고 있어 이채롭다. 그리고 ‘ㄷ’계 구개음화는 일어나기 전의 현상이 특히 현저하고, 비원순모음이 원순모음에 비해 훨씬 우세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어미에서는 선어말어미 -?-, -옵-, -시-, -오시- 등과 같은 상대존대가 특히 많이 등장한다. 비교격조사로는 ‘-도곤’을 비롯하여 ‘-?셔’, ‘-의셔’, ‘-이의셔’, ‘-에셔’, ‘-이예셔’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가 사용되었다. 어중 유음은 ‘ㄹ-ㄴ’만 등장하고 ‘ㄹ-ㄹ’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휘적으로는 중국어 차용어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예컨대, ‘가오리(高麗)’, ‘뎜팡/졈팡(店房)’, ‘푸?/프?(鋪子)’, ‘거거(哥哥)’, ‘기단가오(鷄蛋?)’, ‘나오대(老大)’, ‘챵다외(强盜)’, ‘완수야(萬歲爺)’, ‘쟝궤쟈(掌櫃子)’ 등과 같은 것이다. 또한 ‘?ㄴ/??’, ‘?/나모’ 같은 특수어간교체 현상을 보이는 체언도 나타난다. 이처럼 ≪셔원녹≫은 한글필사본과 한문본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어 비교어문학 연구에 큰 힘을 실어줄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