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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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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지고 받고 굴리고 차고 목이 터져라 환호하는…
공과 공놀이의 역사를 찾아 떠난 인류학 탐험기!


지금으로부터 수백 년 전. 스코틀랜드 북부 연안 오크니의 수도인 커크월 주민들은 튀어나온 앞니 때문에 ‘터스커(코끼리처럼 엄니가 있는 동물)’라 불리던 스코틀랜드 폭군의 압제에 시달렸다. 폭정에 지친 주민들이 봉기하자 폭군은 줄행랑을 쳤고, 한 용감한 젊은이가 터스커의 머리를 손수 잘라오겠다며 나섰다. 젊은이는 곧 목표를 성취했지만 안장에 매달아 오던 죽은 터스커의 이빨에 다리를 물리는 바람에 빈사상태에 빠졌다. 그는 사력을 다해 말을 몰았고, 마을 교차로에서 기다리는 주민들에게 터스커의 피투성이 머리를 던지고는 눈을 감았다. 영웅의 때 이른 죽음에 상심한 데다 밉살스러운 폭군의 모습에 분통이 터진 군중은 터스커의 머리통을 미친 듯이 발로 차며 거리를 누볐다.

이때부터 한 해 두 차례씩 커크월 주민들은 팀을 나눠 터스커의 머리를 차는 경기를 시작했다. 세월이 흐르며 머리는 가죽 공으로 대체되었지만 팔다리가 부러지고 자동차와 가게 유리창이 박살나기 일쑤인 이 무절제의 제전에서, 적을 향한 분노와 복수심은 오늘날까지 누그러질 줄 모른다.
그리고 이 치열하며 광적인 경쟁과 역사의식은 레알 마드리드 대 바르셀로나, 셀틱 대 레인저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대 리버풀을 비롯해 해묵은 지역감정과 종교갈등으로 무장한 축구 맞수들 간 경기에서 오늘도 위험천만하게 재현된다. 점잖으신 분들이야 스포츠에 내재한 폭력성과 집단주의를 경계하지만, 그건 본디 그러하게 태어난 축구를 모르는 소리. 경기를 통해서라도 ‘적진을 유린하고, 골을 사냥해서, 통쾌한 승전보를 날리는’카타르시스가 없다면 대관절 무슨 재미로 한일전을 보고, 목이 터져라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친단 말인가.

하버드 출신 고고학자, 공놀이 유랑객으로 나서다
이 책 《더 볼the Ball》은 멕시코 밀림에서부터 21세기 미국 소읍의 리틀야구장까지, 중세 유럽 마을과 왕궁을 거쳐 맨체스터유나이티드와 리버풀이 맞붙는 축구장을 종횡무진하며 우리가 열광하는 스포츠의 기원을 탐색하는 작품이다. 빼어난 역사서이자 여행기인 이 책에서 저자 존 폭스는 현대 스포츠에 만연한 스캔들과 상업주의로부터 독자를 끌어내, 우리가 공놀이에 열광하는 진짜 이유를 그 본래의 모습과 의미를 기억하는 이들의 몸짓과 목소리로 생생하게 들려준다.

“아빠! 우리는 왜 공놀이를 하나요?”6월의 어느 아침. 아빠와 공 던지기 놀이에 열중하던 일곱 살 아들이 불쑥 물었다. 글쎄다, 하버드 출신 고고학자인 존 폭스는 느닷없이 날아온 아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 이 지구와 인류 역사의 멀고도 깊은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인간은 왜, 언제부터 이 둥근 물건을 가지고 놀았을까? 지금 우리가 열광하는 축구와 테니스와 야구와 라크로스 같은 경기는 언제, 어디서, 누가 처음 시작했을까? 무엇보다 이 공이 우리의 시간과 삶, 돈에 행사하는 절대적 영향력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현장을 중시하는 학자답게 존 폭스는 공놀이가 지금의 자본주의와 만나기 전, 순수했던 놀이의 전통을 간직한 마을과 사람들을 찾아 그 답을 구하기로 마음먹는다.

평민들의 경기 축구, 나리님들의 스포츠 테니스
그리하여 폭스는 원시축구의 원형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는 그곳, 오크니 제도로 향한다. 그 지방에서‘커크월 바’라 불리는 경기를 직접 만나기 위해서였다. 육신 성한 모든 남자들이 뒤엉켜 한바탕 난장판을 이루는 이 경기는 극단의 영광과 적대감이 불을 뿜는 현장이었다. 그 때문이리라. 1314년 영국 왕 에드워드 2세가 런던 시내에서 경기를 금한다는 성명문을 발표한 이래 도합 9차례의 축구 금지령이 내려진 것은…. 프랑스 귀족들 또한 ‘라 술’이라 불리던 자국의 축구에 대해 비슷한 태도를 보였으니, 1440년 한 주교는 “여흥의 탈을 쓴 악의와 원한, 적대감이 군중의 가슴에 축적된다는 측면에서 매우 유독한 경기”의 금지를 촉구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중은 공간이 허락하는 한 공을 차면서 자신들에게 부여된 ‘천부의 놀 권리’를 맘껏 누렸다.
그렇다면 고상한 나리님들은 어떤 오락을 즐겼을까? 중세 수도원 회랑 안에서 태어나고 훗날 ‘왕들의 스포츠’로 불리게 될 테니스가 바로 그들의 놀이였다. 처음‘주 드 폼’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테니스는 1596년 파리에만 250개의 코트가 생겨났을 만큼 한 시대를 풍미했다. 당시 “파리의 테니스 선수 숫자가 영국의 주정뱅이 숫자보다 많다.”라는 언급이 있을 정도였지만 폭스가 직접 찾아간 리얼 테니스, 즉 주 드 폼 경기장은 시간이 얼어붙은 전성시대의 유적처럼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니까 역사는 나리님들의 여흥보다 영국 주정뱅이들의 광란에 더 친절했던 셈이다.

유럽인들, 고무라는 물질과 충격적으로 조우하다
축구와 테니스의 종가는 유럽이지만, 실상 그들이 가지고 놀았던 공은 그리 우아하지 않았다. 들판에서 쥐어뜯은 풀을 뭉쳐 끈으로 친친 두른 뒤 천으로 감쌌던 구체는 돼지 방광이나 캥거루 생식기를 사용한 것으로, 동물 가죽을 꿰매 바람을 불어넣는 방식으로 발전해갔다. 그것만도 대단한 진화였다. 1493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두 번째 신대륙 항해에 나설 당시 선원들은 ‘펠로타’라는 공 하나를 배에 실었다. 그런데 지금의 아이티인 히스파니올라 섬에 도착해보니 미개한 줄로만 알았던 원주민들이 마치 마법사의 공처럼 상하좌우로 팔딱팔딱 살아 움직이는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대체 저게 뭐지? 그들은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고무공이었다. 메소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무려 3,500년 전부터 그 지방에서 자생하는 고무로 공을 만들어 다양한 경기를 즐겨온 것이다.

메소아메리카의 창조신화, 울라마와 라크로스
그러나 스페인 사람들은 도시 중앙 ‘신들의 경기장’ 옆에서 끔찍한 광경과 마주쳤으니, 살해된 수천 명의 전쟁 포로와 희생 제물의 해골을 줄에 꿰어 나무 선반에 매달아놓은 ‘촘판들리’라는 물건이었다. 인디언의 공놀이 ‘울라마’는 단순한 유흥이 아니라 종교적 제의이자 신화의 일부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미술사가 메리 밀러가 적시했듯 마야 창조신화에서 “공놀이는 인간의 운명, 자연과 우주의 순환을 재현하는 상징”이었다. “공놀이 경기장에서 삶은 빼앗겼다가 회복된다. 경기장은 운명이 바뀌었다가 다시 뒤바뀌는 곳, 즉 변이의 궁극적인 장소”였다.
찬란하던 메소아메리카의 창조신화는 유럽인의 무자비한 신대륙 정벌 과정에서 생명력을 잃었고 그들이 즐기던 경기들도 하나 둘 사라졌다. 반면 현대인의 스포츠로 옷을 갈아입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기 라크로스도 있다. 라크로스는 인디언 스스로 ‘전쟁의 동생’이라 불렀을 만큼 이로쿼이, 크릭, 체로키를 비롯한 여러 부족에게 주술과 전쟁의 대용물로 기능했다. 경기는 전사들이 용맹을 입증하는 중요한 기회이자 부족들 간 불화를 해결함으로써 연맹을 재정비하는 정치의 장이었다. 인디언을 ‘고귀한 숲의 아들들’이라 불렀던 ‘현대 라크로스의 아버지’ 윌리엄 조지 비어스는 자칫 사라질 운명에 처했던 라크로스를 동부 엘리트 사회에 복음처럼 전파해 캐나다의 국기로 정착시켰지만, 이 과정에서 라크로스 본래의 종교적 의미와 주술적 요소들은 싹 제거되었다. 그래서 라크로스의 뿌리와 정신을 제대로 알려는 사람들은 오늘도 이로쿼이 부족연맹이 모여 사는 오논다가 지구로 간다. 아이들이 걸음마를 할 무렵부터 스틱을 들고 공을 치기 시작하는 이곳에서 라크로스는 여전히 종교이자 영적 중추이다.

미국인의 상반된 비전, 야구와 미식축구
이제 미국으로 돌아올 차례다. 현대 자본주의의 폭주기관차이자 그 주체임을 한시도 망각하지 않은 미국인은 자신들의 성향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두 개의 구기 종목을 발전시켰다. 야구와 미식축구. 두 스포츠가 미국 땅에서 싹을 틔우고 각자 자신의 길을 걸어온 과정을 보자면, 미국인의 상충되는 두 비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폭스는 말한다. 풀밭에 모여 투수의 공을 받아친 타자가 무사히 집home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야구에는 과거, 지금보다 단순하고 근심 없던 날들을 재현하고픈 욕망이 강하게 내재한다. 반면 경기장 구획부터 규칙 하나하나까지 그 어떤 것도 우연의 변덕에 휘둘리지 않게 통제되는 미식축구는 날로 번성하는 미래의 기술문명에 의존한다. 하지만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인이 외면하는 데다 치명적 폭력마저 교묘히 은폐한 미식축구가 상업주의와 결탁해 거침없이 질주하는 현상은 미국이란 나라가 지닌 야만성의 어두운 그림자에 다름 아니다.

꿈처럼 비상하라! 농구 전 세계인을 사로잡다
마지막으로 미국 매사추세츠 주 스프링필드의 YMCA 체육교사 네이스미스가 만들어낸 공놀이의 막내 농구로 말하자면 그 태생부터 야구나 테니스, 미식축구와 판이하게 달랐다. 훗날 YMCA 관리자로 성장하게 될 18명의 ‘교정 불가능자’를 교육시키는 이 협소한 공간에서는 축구도 테니스도 미식축구도 야구도 불가능했다. 젊은이의 인성을 고양해줄 공놀이를 개발하는 데 주어진 시간은 단 14일. 그것은 인종과 성별의 한계를 거부하고, 가난과 고통의 굴레를 벗어날 길을 제공하며, 한 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전 세계 2억 명이 즐기게 될 경기였다. 자, 지금 우리가 즐기는 스포츠 가운데 유일하게 가난한 대중을 위해 태어난 놀이인 농구의 역사를 보러 출발!

공이라는 소재로 써내려간 환상적인 인류학 보고서
존 폭스는 하버드대 재학 시절 직접 발굴한 유적과 유물을 토대로 고대 마야와 아즈텍인이 ‘울라마’라 불리는 운동경기를 즐겼다는 사실, 그 경기가 지니는 종교적 제의와 정치적 상징을 분석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이 책을 쓰기 위해 다시 찾은 인디언 마을 로스 야니토스에서 울라마 공의 무게와 속도와 그 타격을 몸소 느낀 경험은 새로운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그 어떤 것도 직접 체험하기 전에는 본질에 다가설 수 없다는 사실. 아마존 우림에서 스코틀랜드 외딴 섬으로, 플로리다 해양공원에서 인디언 마을로 이어진 수년간의 여정은 공놀이의 역사를 추적하는 유랑이자 색다른 인류사 탐험이었다. 각자 자기 방식으로 공놀이를 하는 평범한 선수와 열혈 관중, 자신이 쓸 공과 라켓을 직접 다듬는 사람들과 만나 몸소 경기를 하는 과정에서 이야기의 숨결이 더해졌고 미처 생각지 못하던 인류 진화의 흔적, 인간 본성의 이면들까지 하나 둘 드러났다.
자본권력과 손잡은 현대 스포츠는 종종 당혹스런 추문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지만, 초창기에 뿌려진 놀이 본연의 의미와 가치의 씨앗은 은연중에 살아남아 여전히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형성한다고 폭스는 굳게 믿는다. 효율과 생산성을 지고의 가치로 삼는 우리가 오늘도 야구중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다가올 월드컵 축구 조편성에까지 예민해지는 까닭이 궁금한가! 이 책을 읽어라. 근사한 해답과 함께 지금 내가 편애하는 놀이를 재발견하는 즐거움까지 덤으로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