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국회도서관 홈으로 정보검색 소장정보 검색

목차보기


책을 펴내며
구슬 하나 - 깊어지는 전운, 1941
구슬 둘 - 불안한 정세
구슬 셋 - 일본과의 불화가 가져다준 시련
구슬 넷 - 기약 없는 이별
구슬 다섯 - 전쟁 속에서도 삶의 바퀴는 구르고
구슬 여섯 - 종전과 한국 방문
구슬 일곱 - 영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
구슬 여덟 - 배우의 꿈을 이루다
구슬 아홉 - 일본에서 주고받은 마음
구슬 열 ? 청혼
구슬 열하나 - 한국으로 가는 신혼여행길
구슬 열둘 -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구슬 열셋 - 한국에서 시작한 신혼생활
구슬 열넷 - 실수하고 오해하며
구슬 열다섯 - 황금의 나라를 찾아온 이방인들
구슬 열여섯 - 익숙해져가는 한국
구슬 열일곱 - 일만이천봉 금강산 여행
구슬 열여덟 - 만세 소리와 함께 아들이 태어나다
구슬 열아홉 - 전국에 울려 퍼진 대한독립만세
구슬 스물 - 한국인과의 충돌
구슬 스물하나 - 갈마 해변에서 보낸 여름
구슬 스물둘 - 원산의 백계 러시아인
구슬 스물셋 - 우리 집을 짓기로 하다
구슬 스물넷 - 기쁜 마음의 궁전, 딜쿠샤
구슬 스물다섯 - 폐허가 된 딜쿠샤
구슬 스물여섯 - 서울살이의 친구들
구슬 스물일곱 - 사랑과 우정의 나날들
구슬 스물여덟 - 시베리아 횡단 여행
구슬 스물아홉 ? 캘리포니아에서
구슬 서른 - 광산 사업가의 아내로서
구슬 서른하나 -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구슬 서른둘 - 다가오는 이별의 시간
구슬 서른셋 - 조선의 양반 김 주사
구슬 서른넷 - 6년 만의 서울 방문, 1948
옮긴이의 글

이용현황보기

호박 목걸이 : 딜쿠샤 안주인 메리 테일러의 서울살이 1917∼1948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1905915 951.6092 -14-2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1905916 951.6092 -14-2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제공
‘미스터리의 집, 딜쿠샤’의 영화 같은 이야기

KBS 1TV 3.1절 특집 다큐멘터리 ‘아버지의 나라’
KBS 1TV 8.15 특집 <다큐 공감> ‘희망의 궁전, 딜쿠샤’
tbs TV 영상기록 <서울, 시간을 품다> ‘딜쿠샤 편’

호박 구슬을 꿰듯 엮어간 삶의 목걸이
… 배우, 인도, 결혼, 한국, 딜쿠샤, 금강산, 시베리아 …


이 책의 지은이 메리 린리 테일러(Mary Linley Taylor, 1889~1982)는 어린 시절 집안의 귀중품 중에서 따뜻한 빛깔을 지닌 호박 목걸이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생일이나 평소에 비해 얌전히 지낸 날이면 어른들이 그 목걸이를 걸어볼 수 있게 허락하셨다고 한다. 호기심 많고 모험을 좋아하던 메리 테일러는 호박 목걸이와의 기이한 인연을 삶의 갈피마다 떠올린다.
그중 가장 극적인 사건은 한국에서 고난의 세월을 견디며 광산업을 하던 브루스(본명은 앨버트 와일더 테일러 Albert Wilder Taylor)와의 만남과 결혼이었다. 호박 목걸이를 소중히 간직하던 메리에게 브루스는 한국의 호박 갓끈을 선물한다. 결혼 후 메리는 미국인 남편과 친구 플로렌스를 통해 자신의 영국 집안과 다른 개척정신과 코스모폴리탄적 분위기를 경험한다. 안전하게 확립된 관습과 질서 속에서 살아온 자신과 다르게 그들은 강인함과 용기와 끈기, 창의적인 기발함을 갖고 있음을 함께 생활하며 깨닫게 된 것이다. 이후 메리 또한 남편이 운영하는 광산촌에서 영웅적이고 기발하던 옛 여인들을 어설프게 흉내 내며 ‘개척자 여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메리는 시아버지와 남편이 선택한 나라 한국에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했다. 백계 러시아인 친구들을 통해 강렬한 자부심과 지나치게 감상적인 면, 예민함과 비현실성 등 성장 환경에서 기인한 특징을 경험하고, 그들과 새로 파견된 소련 외교관들의 화해를 시도하기도 한다. 또한 한국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목격하면서도 한편으로 일본이 제공한 효율과 사업 기회와 위생과 법과 질서를 빼버린 한국을 상상하기 어렵다는 인식에 그친다. 메리가 살다간 한국은 일제강점기의 한국이었던 것이다.
예술가적 상상력이 풍부한 메리는 한국에 머물면서 한국인과 한국의 자연 등에 관해 다채로운 기록을 남겨놓았다.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보면서 ‘억겁의 시간 동안 사라져간 수많은 영령들이 말없는 어떤 신에게 구원을 간청하며 뻗어 올린 기도하는 손들’로 묘사하고, “간섭하지 말 것, 불가피한 일은 받아들일 것, 가능하면 질문하지 말 것, 최대한 견뎌보다가 더 이상 안 되면 깨끗이 포기할 것, 모른 척하고 넘어가야 할 일과 져주어야 할 때를 알 것, ‘슬쩍 빼돌리는 것’은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경비에 포함시킬 것, 체면 차리기는 아주 오래된 습관이니 인정해줄 것, 거짓말은 많은 경우 예의상 하는 말임을 이해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 동양의 방식에 맞서려고 하지 말 것!”이라는 남편의 한국 생활에 관한 유머러스한 조언을 기록하기도 한다.
호기심 많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따뜻한 마음을 소유한 이방인 여성의 20세기 초 한국살이에 관한 기록은, 여러 면에서 한국의 역사와 겹치면서도 식민지민의 생활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1917~1942년까지 그리고 1948년의 한국을 외국인의 시선으로 그려낸 이 책을 통해 역사의 빈 페이지들을 더 촘촘히 메워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내용과 특징

모험을 사랑한 메리의 인생

영국 첼트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모험을 좋아하는 소녀였던 메리는 프랑스 신부학교를 거부하고 꿈에 그리던 연극배우가 되었다. 동양 각지를 순회공연하던 중에 일본에서 만난 브루스와 인도에서 결혼식을 올린 메리는, 1917년에 한국으로 와서 1923년에 인왕산 자락에 ‘딜쿠샤’라는 집을 짓고 1942년까지 살았다. 이곳에서 그녀는 백계 러시아인을 포함한 많은 외국인들과 교류했으며, 3.1만세운동과 고종 황제의 장례식을 직접 목격했다. 또한 새로운 것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으로 광산회사를 운영하던 남편을 따라 광산촌을 방문하고, 소련이 점령한 시베리아를 기차로 여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으로 미일 관계가 악화되자 결국 메리 가족은 일제에 의해 송환선에 실려 강제 추방되었다. 그녀는 그 뒤 1948년에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남편의 유골을 묻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캘리포니아에서 또 다른 딜쿠샤를 짓고 살면서 한국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림과 함께 이 책에 담았다.

한국에서 거주한 외국인의 시선
여인의 집안은 인도와 인연이 깊었다. 엘리자베스 1세 치하 인도에 동인도회사를 설립한 때로부터 선조 중 한 명은 성난 군중들로부터 충성스러운 토후의 목숨을 구해내었고, 할아버지는 딜쿠샤 궁전에서 적들을 물리쳤다. 인도와의 인연은 나중에 미국 남성 브루스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으로 이어진다. 남성은 아버지와 동생과 한국에 와서 광산업을 하고 있었는데, 일본에서 둘은 처음 만난다. 브루스의 아버지 조지 알렉산더 테일러(George Alexander Taylor)는 원래 광산 기술자였다가 한국으로 골드러시를 감행하여 알렌이 따낸 광산개발권을 인수한 인물로, 그 배경에는 고종에게 전기시설을 해준 대가였다는 설이 있다. 세계 3대 광산 중 하나인 운산광산은 그야말로 풍부한 금이 생산된 곳으로, 이로 인해 ‘No Touch!’, 즉 노다지라는 말이 생겨난 곳이다.
메리는 광산업을 하는 남편을 따라 한국에서 1917년부터 1942년까지 살았다. 이때는 이미 한국의 주권이 일본에게 넘어간 시기로, 두 사람이 추방된 1942년은 그 전 해에 태평양전쟁이 시작되고 일본이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국내 외국인에 대한 일본의 압박이 거세져 거의 모든 외국인이 한국을 떠난 때였다. 한국에서 거주하는 동안 이들이 교류한 인물들은 매우 다채롭다. 당시는 외국인들이 히말라야를 정복하기 시작하던 때였는데, 지인인 에먼스는 중국 궁가 산(민야콩카)을 정복한 이야기를 담아 ≪구름에 맞선 사나이들≫이라는 책을 집필했다. 또한 한국과 인연이 깊은 언더우드 가문의 2대와 3대와 교류했고, 주한 공사 핍스의 딸 조이스는 나중에 메리 부부의 아들 브루스(아버지의 애칭과 같은 이름)와 결혼을 한다. 윌리엄 C. 커는 한국에 개신교를 뿌리내린 인물로, 개신교 음악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모델이자 나가사키 구라바엔의 주인 미국 군인과 일본 여성의 딸과 결혼하여 제물포에서 양행을 운영하고 명예 영사를 지낸 조지 베넷도 등장한다. 한국에서 이들은 라디오를 통해 상하이에서 아시아 관련 뉴스를 진행하던 올콧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들은 한국을 일정 기간 여행하거나 취재차 잠깐 들렀던 사람들과 다르다. 메리 부부는 한국에 딜쿠샤라는 저택을 짓고, 탄광마을을 방문하고, 금강산과 시베리아를 여행하고, 영국과 미국, 일본을 다니고, 외국 통신사 특파원을 겸하면서 한국의 독립운동 소식과 일제 만행을 해외에 알리고, 무역업을 통해 조선호텔 근처에 상점을 운영하였다. 또한 선교사부터 사업가와 광산업자, 교사, 게다가 골수 모험가들까지 관심사가 크게 다른 이들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는 공통점에 따라 모임을 만들어 교류했는데, 메리의 표현에 의하면 “동양 여러 곳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보았지만, 우리 회원들만큼 속물적인 우월의식이 없고 소박한 이들도 드물었다. 우리는 말 그대로 하나의 용광로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잘 어우러져 지냈다”고 한다.
서구 열강이 조선의 빗장을 강제로 열고 마구 들어오던 시기에 광산업자로 한국에 들어와서 엄청난 부를 쌓으며 이 땅에 살았던 테일러 집안, 한국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과 일제의 만행을 해외에 알린 브루스 테일러, 남편은 서대문형무소에 갇히고 자신은 가택연금 된 채 이름 모를 한국인들이 가져다 준 달걀과 꿩고기 등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낸 메리……. 그녀는 한국 땅에 묻은 시아버지와 남편을 그리워하며 캘리포니아 해안가에 새로운 딜쿠샤를 짓고 살았다. 인생의 황금기를 이 땅에서 보낸 세 이방인에게 한국은 ‘또 다른 삶의 터전’이자 ‘사랑’과 ‘우정’으로 기억되는 곳이었던 듯하다.

딜쿠샤 이야기
갓 결혼한 메리는 1917년에 시아버지와 남편이 광산사업을 하던 한국에 도착하여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메리와 남편 브루스는 1923년에 인왕산 자락 지금의 사직공원 뒤에 1만 5000평의 땅을 매입했는데, 이곳은 조선시대 권율 장군의 집터로 장군이 손수 심은 것으로 알려진 수령이 400여 년에 달하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었다. 부부는 이곳에 당시 한국에서 제일 큰 개인 벽돌 저택을 짓고 ‘딜쿠샤’라고 이름 붙이고, 머릿돌에 ‘Dilkusha 1923’과 ‘P. S. ALM CXXVII-I’을 새겨 넣었다. 힌디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을 뜻하는 이 집에서 메리는 남편과 함께 서울살이의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 한국에 온 최초의 금광 사업가인 시아버지는 1908년에 한국에서 사망하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묻혔으며, 브루스의 동생 윌리엄 웬트워스 테일러도 거의 평생을 한국에서 살았다. 언니 베티와 여동생 우나도 동생을 만나러 딜쿠샤를 다녀갔고, 메리 부부에게 딜쿠샤는 각국에서 온 다양한 직업의 외국인들과 친교를 나누는 공간이 되어주었다.
1948년 메리의 마지막 방문 이후로, 2006년에 메리 테일러의 아들 브루스 티켈 테일러(Bruce Tickell Taylor)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어린 시절 공부를 위해 딜쿠샤를 떠났지만, 그곳은 늘 돌아가야 할 고향이었다. 이로써 ‘귀신 나오는 집’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을 품어온 종로구 행촌동 1-88번지 집의 비밀이 밝혀지게 되었다. 머릿돌에 새겨진 ‘딜쿠샤’라는 이름과 함께 1917년부터 1942년까지 서울에서 살았던 테일러 부부의 드라마틱한 사연이 되살아났다. 메리 테일러가 한국에서 강제 추방된 뒤에 일본인들이 딜쿠샤에 있던 물건들을 가져다 팔아버렸으며, 지키는 사람도 돌보는 사람도 없던 딜쿠샤에 가난한 피난민들이 찾아들자 딜쿠샤는 그들을 어머니처럼 품어주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먼저 살던 거주자로부터 거주권을 구입한 새 거주자가 다음 거주자에게 다시 거주권을 넘기는 식으로 주인이 바뀌면서, 지금은 열다섯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을 품기 위해 넓은 방들이 칸막이로 조각조각 나뉘어야 했던 딜쿠샤는 현재 국유재산법에 따라 관리되고 있으며, 문화재로 등록될 기쁨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편> 127장 1절)

책속에서

알라딘제공
둘이 함께 웃었지만 내 웃음은 곧 흐느낌으로 변했다. 그는 그동안 겪은 일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볍게 말했다. 자기가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은 포로로 잡혀 있는 한은 금광을 팔지도 않을 것이며 일본인들과 사업에 관한 협상도 하지 않을 거라고 버텼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그들은 그에게서 금광을 빼앗아갔고, 약탈도 반드시 합법적으로 해야 한다는 그들의 신념에 따라 그 대가로 남편의 계좌에 약간의 돈을 넣었다.
구슬 넷 - 기약 없는 이별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항구를 떠난 후, 우리는 개인적인 책임을 잔뜩 짊어지고 앞으로의 삶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다. 자유의 여신상은 조금 무서운 데가 있었다. 자유란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우리는 미국 당국자들이 배에 올라와 우리를 따뜻한 환영 인사로 맞아줄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는 FBI에게서 한 사람씩 몇 시간에 걸쳐 철저한 조사를 받았다. 우리의 성(姓)인 테일러는 알파벳 순서로 뒤쪽에 있기 때문에 브루스와 나는 2 ~3일이 지나서야 배에서 내릴 수 있었다.
구슬 다섯 - 전쟁 속에서도 삶의 바퀴는 구르고
우리는 오랜 세월 한국에서 살았고 좋든 싫든 우리 집은 한국에 있었다. 미국에서 우리가 하던 일도 끝이 났다. 아파트에 살면서는 편안함도 행복도 느낄 수 없었다. 딜쿠샤와 한국이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브루스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하고 묻곤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친절한 친구들의 말에 질색을 했다. 자기 마음과는 정반대로 대답함으로써 커다란 갈망을 감추려 하는 브루스의 청개구리 기질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브루스도 한국으로 돌아갈 희망을 품은 적이 있었다. 도쿄에 있는 친구가 편지를 보내 브루스가 한국의 광산국 국장에 임명될 거라는 소식을 전해왔던 것이다. 그 편지는 “친구, 석면방화복을 준비하고 있게. 사방에서 불꽃이 튀고 있네!”라는 희망찬 말로 끝났다. 브루스가 진정으로 행복해하 는 모습을 본 건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구슬 여섯 - 종전과 한국 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