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끝나 지루하다면 사랑을 하고 있어 더욱 외롭다면 지금,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들에 대해 펼쳐볼 시간!
“낱말 하나가 삶의 모든 무게와 고통에서 우리를 해방시킨다. 그 말은 사랑이다.” _ 소포클레스
“세상에는 ‘운명적인 상대’를 찾아 헤매는 수많은 남녀들이 그들만의 기적 같은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비록 그것이 한때의 ‘콩깍지’라고 치부된다고 해도 그것마저 없으면 인생에 뭐가 남을까 싶어 아직 인연이라는 말을 믿고 싶고, 믿고 있다.”
이별까지 포함한 그 말, ‘사랑’
‘우리가 정말 사랑이었을까?’ ‘그 사람도 가끔 내 생각을 할까?’ ‘나에게 다시 사랑이 올까?’
터치 한 번으로 세상 구석구석까지 살펴볼 수 있는 ‘스마트’한 세상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물음표를 던지며 끝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사랑’이다. 사랑 이야기는 너무 통속적이라고 지루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럼에도 사랑은, 시대가 변해도 영원히 변치 않는 인간사의 테마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설렘, 행복, 충만감 등 그 자체로 긍정의 감정 같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질투, 집착, 후회, 애증 등 어두운 감정들이 늘 함께하고 있다. 이 두 가지가 면이 함께 있어야 비로소 완성이 되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점은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늘 행복하기만 한 일이라면 좋겠지만 롤러코스터를 타듯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은 세월이 쌓이고 깊이를 더해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애타게 만든다. ‘연애소설 편애하는 여자’인 저자 김현희는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들》에서 이별부터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기까지의 과정을 에쿠니 가오리, 츠지 히토나리, 스탕달, 밀란 쿤데라 등 대표적인 연애소설과 고전을 통해 되돌아봄으로써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짚어본다.
연애소설을 통해 들여다보는 사랑의 실체
우리가 사랑에 집착한다는 건, 삶에 집착한다는 것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오래된 이야기 속에서나 점점 가벼워지는 연애 속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은 이렇듯 사랑의 절대성 앞에서 일관성 있게 지나온다. 사람의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 수만 가닥으로 이뤄진 마음도 모두 제각각이다. 각자의 사연과 감정을 품은 다른 이야기 속 주인공이 만나 하나의 스토리를 만드는 일, 그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이 책은 에쿠니 가오리의 《낙하하는 저녁》으로 시작하는 ‘사랑이 지나가는 시간’부터 이야기한다. 이별은 늘 준비 없이 찾아온다고 하지만 사실 알고도 모른 척했던 묘한 ‘이별의 공기.’사랑하는 대상의 부재로 혼자서 맞이해야 하는 그 우울함과 무기력으로 가득 찬 순간들, 그리고 ‘우리가 정말 사랑이었을까?’라는 답도 없는 질문으로 기나긴 밤을 흘려보내야 했던 상실의 시간들. 이렇게 사랑이 지나가는 시간을 견디고 나면 어느 순간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한 ‘애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의 마음이 온전해야 새롭게 다가올 사랑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또 다시 ‘사랑이 다가오는 시간’을 맞이한다. 여전히 이별이 처음처럼 아프고 힘들 거라는 걸 알면서도 사랑의 저편에 있는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한 사람을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과 사랑을 해보는 일이겠지만 모든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 없으니 누군가의 경험과 시간을 통해 한 가지씩 더 알아가는 것도 흥미로운 방법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들》은 다양한 소설 속 사랑, 그리고 사람 이야기를 통해 당신에게 또 다른 인생, 또 다른 가슴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책속에서
[P.8] 사춘기가 지나고 이십 대를 지나면 사랑에, 사람에 의연해질 줄 알았다.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져 폭풍 같은 감정의 그래프는 좀 잦아들었고, 사랑하다 헤어진다고 숨이 멎는 일은 없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랑은, 사람은 물음표다. 수천 개의 얼굴이 똑같지 않듯, 수만 가닥으로 이뤄진 마음도 나와 같지 않다. 각자의 이야기를 가진 다른 이야기 속 주인공이 만나 하나의 스토리를 만드는 일, 그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누군가가 궁금하다고 모든 사람과 다 사랑에 빠질 수는 없으니 누군가의 경험, 시간 속의 이야기를 통해 프리즘을 하나 더 늘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하다. 연애소설은 그래서 늘 매력적이다. -8p, '프롤로그' 중에서
[P. 21-22] 이별이란 것은 늘 함께하던 일상적인 흐름이 갑자기 깨지는 것이다. 다케오는 8년 동안 공유했던 리카의 공간을 떠나 이사를 하겠다는 식으로 헤어짐을 말한다. 연인이 던지는 일상적인 한마디가 일상적이지 않다는 것은 누구보다 당사자가 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입을 열고 뱉은 그 언어만 빼고 그의 표정이, 그의 몸이, 그리고 미세한 공기의 흐름까지 이별이 라는 것을 말해준다. 리카는 ‘알았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원래 사람이 그렇지 않은가. 너무 큰 일 앞에서는 오히려 더 덤덤해지는. 오랜 연애는 열정적인 사랑보다는 익숙함, 의리, 책임감 같은 단어들이 더 많은 부분을 채우고 있다. 사랑이 그냥 삶의 부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헤어질 때의 그 느낌. 인정하면 바로 현실이 될 것 같은 먹먹함을, 애써 일상을 유지하는 걸로 버티는 리카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한다. -21~22p, '우리를 감싸던 이별의 공기 : 에쿠니 가오리, 낙하하는 저녁' 중에서
[P. 190] 밥이나 차나 술이나 뭐가 다를까 싶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일반적인 경우 우리는 낯선 사람과 탐색전을 벌일 때 무턱대고 밥이나 술을 마시지 않는다. 예의 바른 차 한잔, 그러다 좀 익숙해지면 술을 한잔하거나 밥을 먹는다. 술과 밥도 참 미묘한 차이가 있다. 저녁에 만나 우르르 술 한잔 취기로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람과 밥 약속을 잡는 일은 거의 없다. 차가 예의라면 술은 어우러짐 그리고 밥은 관계라고 감히 정의하는 이유이다. -190p, '같이 밥을 먹는 것에 대한 의미 : 요시모토 바나나, 키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