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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이다
반짝임에 홀리다
검지 아니하다
향기를 새기다
현곤(玄袞)의 세상, 하나
담을 넘다
그네를 뛰다
허(虛)를 엿보다
색(色)을 낚다
현곤의 세상, 둘
상처를 새기다
달콤함을 새기다
문을 두드리다
비파를 타다
현곤의 세상, 셋
귀신과 놀다
나비를 좇다
밤을 밟다
휘몰다, 먹구름
먹지 위 검은 한 점
그 후

│작가의 말│ 그녀의 모험, 그녀의 사랑, 사랑이라는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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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동, 사랑으로 죽다 : 김별아 장편소설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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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알라딘제공
조선을 발칵 뒤집은 충격적 스캔들
왕실의 여인에서 음녀와 탕녀의 대명사로 전락한 어우동
김별아 작가가 재해석한 매혹적이고 우아한 파격
“세상이 허락한 만큼만 살기에 삶은 너무나 짧다!”


그의 몸에 내 이름을 새기고 그 자취를 가슴에 품었다
고관대작의 딸로 태어나 왕실의 며느리로 살았으나
한낱 허무할 뿐인 자신을 되찾기 위해 끝없이 방황한 여인, 어우동


‘열녀’ 또는 ‘음녀’로 평가되는 조선시대 여인들 속에서 ‘희대의 방종녀(放縱女)’로 남은 여인,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의 손자며느리에서 남편에게 버림받은 소박데기가 되었다가, 이후 3년여의 짧은 기간 동안 열여섯 명이 넘는 남자들과 간통한 사실이 밝혀진 지 3개월 만에 급기야 교형(絞刑)에 처해진 여인, 양반가의 여인으로서 신분, 나이, 촌수를 아랑곳하지 않고 종친부터 노비까지 관계를 가지고 문신으로 그 이름을 남긴 전대미문의 사건 속 여인, 어우동. 『조선왕조실록』이 담아내지 못한 그녀의 진정한 갈망은 무엇이었을까?
『미실』로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문학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김별아 작가가 조선이라는 억압적 사회와 욕망하는 여성의 충돌을 주제로 구상한 ‘조선 여인 3부작’의 마지막 편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를 출간한다. 조선 왕실 동성애 스캔들을 다룬 『채홍(彩虹: 무지개)』, 세종대 양반가 간통 사건을 그린 『불의 꽃』에 이어 조선 최고의 ‘문제적 여성’ 박어을우동(朴於乙宇同)의 삶을 되살려냈다(소설에서는 대중에 익숙한 ‘박어우동’의 표기를 따랐다). 사랑했기 때문에 국가권력에 의해 비극적 죽임을 당한 여인들을 다룬 3부작 중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는 당돌하고 능동적이며 모험적인, ‘별종의 여인’에 관한 이야기로, 작가는 엄격한 신분 사회에서 사랑이라는 모험을 통해 자아를 찾고자 한 방랑자를 소설로 형상화했다.
‘어우동 사건’은 성종 11년(1480년) 6월 13일 방산수 이난의 간통사건으로 『실록』에 처음 등장한 후, “음행을 자행하여 풍속을 문란하게 한 부녀”를 율법에 의해 다스릴지 극형을 내릴지를 논한 내용이 16번이나 언급될 정도로 조정 내에서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다. 열두 명의 대신 중 여덟 명이 극형을 반대하고 네 명이 찬성했음에도 성종의 강한 의지에 따라 어우동만 교형에 처해지고 사건과 관련된 남자들은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으며 종결되었다. 이는 2년 후 폐비 윤씨가 실덕(失德)을 이유로 사사되는 사건과 함께, 성리학의 나라를 세우려는 성종대의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으로 민간에까지 회자됨으로써 『용재총화』 『송계만록(松溪漫錄)』 등에 실려 ‘어우동’이라는 이름이 대중에 각인되는 결과를 낳았다.
작가는 어우동의 행적과 가정사를 추적하였고, 소설적 상상력을 덧붙여 입체적으로 사건을 그려냈다.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기 3년 전 남편 태강수 이동은 누명을 씌워 어우동을 내쳤고 왕의 재결합 명령에도 따르지 않았는데도, 성종은 이동의 작첩을 빼앗은 지 석 달도 안 되어 돌려주었다. 작가는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와 방탕한 오빠 아래 자란 어우동이 남편에게 버림받은 후 돌아갈 곳이 없었던 것에 주목한다. 스스로 이름을 짓고 부나비처럼 떠돌아야 했던 그녀의 삶은, 남성 중심의 신분질서 속에서 자기결정권을 갖지 못한 여성들이 가져야 했던 욕망의 한계를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작가는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성종이 마음속의 소년을 꾹꾹 누르고 스스로를 유교적 윤리와 도덕으로 옭아매어 이상적인 군주가 되고자 했으리라는 점을 지적했다. 청상과부였기에 더 철저히 교육시킨 어머니를 거스르지 않고 훌륭한 왕으로 자신을 증명하려 했기에 어우동의 추문과 도발을 더욱 강력하게 다루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태평성대의 군주’ 성종이 왜 극단의 결정을 내려야 했는가를 이해해 보려는 시도로 작가는 박제된 역사의 기록을 인간 삶의 기록으로 변모시킨다.
어우동은 추포된 후 3개월 만에 죽음으로 최후를 맞고, 마침내 왕실의 족보인 『선원록(璿源錄)』에서 이름이 삭제됐다. 정사품의 ‘혜인(惠人)’이라는 봉작을 버리고 스스로 지은 이름 ‘현비(玄非)’로 새 삶을 선택했던 그녀는 “누구의 딸도 아내도 어미도 아닌, 순정한 암컷”으로 살았고, 그 속에서 작가는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몸부림쳤던 한 여인의 절박한 외침을 읽어냈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고개를 흔들 만큼 파격적이고 흥미로운 인물로서 소설, 영화, 드라마 등에 자주 등장하는 어우동이지만, 작가는 그간의 시각을 극복하고 한 사람으로서 그녀가 살아낸 삶의 궤적을 추적해 보고자 했다. 신분과 지위로 포장되지 않은 인간의 맨얼굴을 탐구한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은 사회적 한계가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억압하는지, 진정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등장인물 소개]

박어우동 : 양반가의 여식으로서 왕실 종친인 태강수 이동과 혼인하여 ‘혜인’이라는 봉작을 받는다. 그러나 은장이와 간통했다는 거짓 누명을 쓰고 남편에게 쫓겨난다. 친정으로 돌아가지 않고 ‘현비’라는 새 이름을 짓고 새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이동 : 효령대군의 아들 영천군의 서자로 어우동의 남편. 기생 연경비에 빠져 어우동을 쫓아낸다. 재결합하라는 왕명을 어겨 작첩을 빼앗기지만, 석 달 만에 돌려받는다.

이난 : 세종대왕의 서출 계양군의 서자로 어우동을 진심으로 사랑한 첫 번째 남자. 어우동이 다른 남자들을 만날 때에도 끝내 그녀에 대한 마음을 놓지 못했고, 그녀가 추국을 당하고 사형에 처해질 때도 그녀를 구하기 위해 애쓰지만 결국 이 사건과 관련되어 유배된다.

성종 : 예종이 갑작스럽게 승하한 후 열세 살의 나이로 보위에 오른다. 청상과부였던 어머니에게 엄한 교육을 받고 자란 그는 마음속의 소년을 숨긴 채 임금으로서 도덕과 법을 따른다.

박강창 : 중인 계급이자 서자로 신분에 대한 분노와 울화를 가슴속에 품고 있다. 어우동과 뜨겁게 사랑하지만 질투와 분노를 이겨내지 못하고 헤어진다.

장미 : 어우동의 여종으로 어릴 때부터 그녀의 곁을 지키며 고락을 함께한 친구 같은 사이. 어우동에게 사헌부 아전 오종년을 소개해 주며 새로운 삶을 선물한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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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행복할 수 없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선택하고 판단하는 기준은 타인의 시선이다. 남들이 우러를 만큼, 부러워 시새워할 만큼 가지고 누려야 마땅하다.
미친놈이라 불리며 종놈처럼 취급받고 자란 오라비는 사족(士族)의 딸과 혼인했다. 속사정을 모르는 남들의 눈에야 귀공자와 귀공녀의 향기롭고 아름다운 인연이었다. 독사는 허물을 벗어도 독사이니 언젠가 미친놈의 본색이 드러나 귀공녀를 미친년으로 만들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당장은 그 성대한 예식과 호화로운 혼수가 장안 말꾸러기들의 화제가 되었다.
그녀도 빨리 혼인하고 싶었다. 혼인과 그 후의 생활에는 눈곱만큼의 기대가 없었음에도 그러했다. 혼인에 대한 일말의 헛꿈마저 가심질해 준 어미와 아비, 그들의 불행과 얼크러져 뒹구는 송곳방석 같은 대궐집에서 하루바삐 도망치기 위해서였다.
“영천군 댁에서 혼담이 들어왔다.”
아비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순간 그녀는 내심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기다리던 때가 왔다!
“영천군이라면 태종대왕의 차남이시요, 세종대왕의 중형이시요, 세조대왕의 백부이신 효령대군의 자제가 아닌가? 그럼 종실에서 우리 딸을 며느리로 맞겠다는 겐가?”
어미가 반색을 하며 버썩 다가앉았다.
―「반짝임에 홀리다」 중에서
“넌 불행하지 않아.”
여인의 얼굴색이 다시 의혹으로 미묘해졌다. 흔들리는 그것에 못을 박으려는 기세로, 그녀는 목울대를 세워 또박또박 말했다.
“더 이상 불행하지 않을 거야. 남들이 쳐놓은 어둠의 그물에 갇혀 있지 않을 테니까. 누더기 먹옷 같은 기억 따윈 벗어버려.”
여인의 눈빛이 견고해졌다. 이곳이 바닥이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었다. 그 차갑고 딱딱한 진실이 위로이자 의지가 되었다.
“너는 이제까지의 어우동이 아니야.”
그녀가 여인의 검은 시간을 향해 말했다. 검은 것은 어둠이다. 검은 것은 침묵이다. 검은 것은 죽음이다. 살아 왁자지껄 빛나는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휘장이다. 색이 사라진 세상, 오직 옅거나 짙을 뿐인 흑백의 절망에 복종할 수는 없다.
“지금 이 순간부터 네 이름은 현비(玄非)야.”
세상의 모든 빛깔을 품은 채 검지만 검지 아니할 것이다. 검지 아니하다, 검을 수 없다. 여인과 그녀가 함께 웃었다. 기억을 살해한 자답게 잔인하게, 황홀하게.
―「검지 아니하다」 중에서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아비를 잃은 핏덩이를 이 같은 왕의 재목으로 길러낸 사람은 어미인 한씨였다. 비록 남편인 의경세자가 요절하는 바람에 자질과 포부를 드러낼 기회를 놓쳤으나, 여인으로는 드물게 경전과 사서를 두루 읽은 규수였다. 그녀는 아들이 왕위에 오르면서 십이 년 만에 궁으로 들어왔고 잃었던 시호를 한꺼번에 되찾았다.
이로써 신왕은 세 명의 대비를 모시게 되었다. 예종의 계비이자 제안대군의 어머니인 인혜왕대비 한씨, 임금의 어머니인 인수왕대비 한씨, 그리고 두 대비의 시어머니인 자성대왕대비 윤씨였다. 신숙주를 비롯한 재상들이 옛 고사와 신민의 여망을 명분 삼아 어린 왕이 장성할 때까지 대왕대비가 수렴청정할 것을 계청하니, 대왕대비는 두세 번 사양하다가 마침내 허락하였다.
그때 그날의 대비와 재상들은 뭔가 바빴다. 조선 개국 이래 선왕 사후에 후계가 즉위한 경우는 세종대왕이 붕어한 지 닷새 뒤에 문종이 즉위한 것과 문종이 붕어한 지 나흘 뒤 단종이 즉위한 사례가 있었다. 선왕이 붕어한 바로 그날 신왕이 즉위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자을산군은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고 도량이 웅위한 것과 더불어 중신 중의 중신인 상당군 한명회의 사위였으니, 바야흐로 범에게 날개가 돋친 격이었다.
이제 그 호랑이가 조선의 왕이었다.
―「현곤(玄袞)의 세상, 하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