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본 작업은 고고학자가 공룡의 화석을 발굴하는 것과 흡사하다. 공룡의 형상을 가능한 한 완벽하게 복원하기 위해서 흙더미 속을 파헤치고, 작은 뼈 조각도 세심히 살피는- 길고 긴 시간의 작업. 김광균과 노천명 시의 정본을 연구하는 것도 마찬가지였으리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출판된 그의 시집들을 모아놓고 중요한 판본들을 가려내어 중심 뼈대를 잡고, 그 판본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차이들을 면밀히 비교하여 작은 뼈 조각들을 붙여 나가는 작업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최대한 시인이 의도한 원래의 모습이 될 수 있도록 시어는 물론 마침표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그 변화의 추이를 추적해야 하는 이 작업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요한다. 이 자체가 긴 시간 세밀한 비교와 대조의 결과물인 것이다. 올 11월, 민족문학사연구소의 원본비평연구서 두 권이 이러한 장정을 무사히 끝마쳤다. <와사등/기항지>.<산호림/창변>(소명출판, 2014)이 바로 그것이다.
<와사등/기항지>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김광균은 그가 남긴 뚜렷한 발자취가 말하듯, 많은 작품과 크나큰 문학사적 가치를 남겼다. 이 책 <와사등/기항지>는 1939년에 출판된 김광균의 제1시집 <와사등>과 1947년의 제2시집 <기항지>를 한 권으로 묶어 담아내었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한 권 안에서 두 시집을 나란히 읽으며, 김광균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모더니즘이 10여 년에 가까운 시간을 어떻게 내면화하였는가를 살펴보는 일도 매우 흥미로울 듯하다. 김광균은 독자적인 시적 개성, 곧 자신의 정서와 시적 의장을 결합시키려는 열정을 가진 시인이었다. 저자가 정본 작업을 진행하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한 사실은 바로, 시인 김광균은 자신의 시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는 것이다. 김광균이 잡지와 신문에 처음 발표했을 때와 <와사등>, <기항지>의 시집으로 묶어냈을 때 달라진 시어들에 대해 1977년의 <와사등>에서 시인이 직접 시어들을 정리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에 따라 ‘가급적이면 현대표기법으로 바꾼다’는 정본 작업의 원칙을 많은 경우 지키지 않았다. 시어 자체가 이미지가 되는 김광균의 시는 시인이 의도한 그대로여야만 그 의미와 정서가 살아났기 때문이다. 저자 배선애의 세밀한 작업과 오랜 시간의 결과물인 원본비평연구 <와사등/기항지>를 통하여 김광균의 시를 밑줄 긋고 분석하는 대신, 그 자체를, 글 한 꼭지 한 꼭지를 한 편의 그림으로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김광균 그리고 노천명과 그들의 작품(시)에 대한 세밀한 탐구 결과인 원본비평연구 <와사등/기항지>.<산호림/창변>(소명출판, 2014)을 통해 시어 자체가 이미지가 되는 김광균의 시어와- 사슴이 왜 모가지가 길어 슬픈지- 그 이유를 독자들 각자가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