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 출신의 솔거率居가 옹주를 사랑했다. 그러나 서로가 맺어질 수 없는 처지로 옹주는 비구니가 되고, 솔거도 불문佛門에 귀의한다.’
민병삼 작가가 통일신라 때의 화가 솔거率居를 내세워 장편소설로 엮었다. 민병삼은 조선시대 화공인 단원 김홍도·혜원 신윤복·오원 장승업 등 삼원三園을 이미 장편소설로 출간한 바 있다. 이어서「칠칠 최북」과 「표암 강세황」도 출간했다. 그리고 이번에「솔거」를 독자들 앞에 내놓았다. 역사적인 인물을 소설에 등재하는 작업은 그 시대 사람을 현재 살아 있는 것처럼 꾸미는 일이다. 이 소설 역시 통일신라 때 활동했던 솔거를 살아 있는 인물로 만드는 작업 끝에 만들어졌다. 솔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권48 「열전列傳」제8의 내용이다. 여기에‘솔거 신라인...’으로 시작해 솔거를‘가난하고 지체가 보잘 것 없는데다가 가계도 불분명하고, 태어나면서부터 그림에 재주가 뛰어났고, 황룡사 외벽에 그린 노송의 표현이 매우 사실적이어서 각종 새들이 벽에 부딪쳐 떨어질 정도였고, 후에 벽화가 낡아 보수되었으나 원화에 미치지 못하여 새들이 다시 찾아오지 않았고, 경주 분황사에 관음보살상과 진주 단속사에 유마상을 남겼고, 그의 작품들은 마치 신이 그린 것 같은 신화神畵로 평가되었다.』등으로 기록했다. 이를 기초로 하여 지금의 백과사전 격인 조선의 이수광이 지은「지봉유설」과 「백율사중수기」등에서 언급했음을 독립운동가이며 서예가인 오세창이「근역서화징」에서 밝혔다. 그리고 후대 미술사학자들이 논문이나 저서를 통해서 이 같은 사실을 부연하고 있다. 이것이 솔거에 대한 자료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솔거」는 이들의 자료를 가지고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더구나 솔거가 벽화를 그렸다는 황룡사와 분황사, 그리고 단속사가 모두 사라져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다. 이러한 마당에 솔가 황룡사에다 어떤 모양의 노송도를 남겼는지, 분황사에 남겼다는 관음보살상과 단속사의 유마상은 어떤 모습인지 알 길이 없다. 오로지 미술사학자들의 추측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작가는 픽션으로 재구성할 수밖에 없다. 역사소설은 사실(기록)과 사실이 아닌 것들(픽션)이 어우러진 하나의 연극이다. 이제 독자들은 이 연극을 관람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