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 11 윤회 12 송곳 14 화병(花病) 16 벚꽃 족적 18 외계 20 졸음, 하엽(夏葉), 음표 22 위(胃) 24 호수 빌라 26 묵전 28 진흑(眞黑) 30 하안거 32 불의 씨앗 34 합죽선(合竹扇) 36 끝 38 신도림역을 지나 다시 사당으로 40 붉은 실 42 나귀의 말 44 차가운 손톱 46 물소리 48 졸음의 지점 50 암자 52 공원을 지나는 54 눈물의 상류(上流) 56 잠버릇 58 모개 59
제2부
새 63 담백한 삶 64 첫, 66 주술 68 춤추는 나무 70 생각나무 72 특수상대성이론 74 미풍 7 반송 78 바람을 구기다 80 와글거리는 시간 82 기형(奇形) 84 채집 86 목등(木燈) 88 계약직 90 농담 92 이명 94 중력 96 상(喪) 98 늪 100 문 102 내가 내게 말을 걸다 104 밥상 106 동거 108
해설 잔여의 애잔 / 안서현(문학평론가)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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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 : 주영헌 시집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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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비움과 남김 사이, 긴장의 시론
〈시인동네 시인선〉 049. 2009년 『시인동네』를 통해 등단한 주영헌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비움과 남김 사이의 긴장의 시론이 여기 표명되어 있다. 벚꽃잎처럼 애잔한 삶과 죽음의 잔여, 그것에 대한 천착이 주영헌 시인의 시 세계가 보여주는 미학의 핵심이다. 잔존으로서의 생의 슬픔, 잔불로 타는 죽은 것들의 위로, 그리고 잔설(殘說)로 쌓여만 가는 마음의 앙금. 흘러만 갈 수도 고여만 있을 수도 없는 우리 생의 여분의 감정들, 내뱉을 수도 없고 삼킬 수도 없는 우리 사랑의 남은 말들. 이렇게 비우려 해도 비워낼 수 없는 말들, 끝내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어 남아 있는 말들이 모여 그의 시를 이룬다. 비우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다 비워내지 못한 몸의 무게를 가지고 공중에서 버티며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다. 이렇게 최후에 남은 것들을 가지고 버티는 일은 삶의 목표이자 시의 길이기도 한 것이다. 이 시집을 덮으면 그러한 잔여들의 잔상이 짙게 남는다. 정작 노래를 건넨 시인의 목소리는 나붓하기만 한데, 그 시들을 읽고 나서 잔여에 관해 더 말하려는 우리는, 자꾸만 필사적이 되고 만다.
잔여로서의 생
상실에 관해 말할 때 우리는 체념적이 된다. 그리고 허망함을 숨기지 못한다. 그러나 잔여에 관해 말할 때 우리는 필사적이 된다. 허망함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자리로 눈을 돌리려는 안간힘이다. 그렇게 잔여로 상실을 견뎌온 이의 기록이, 그 견딤을 시의 뿌리로 삼은 시적 작업의 집적이 여기에 있다.
정차 없는 생(生) 정면으로 흘러가는 후경을 묵묵히 바라보며 낯선 풍경의 깊숙한 곳으로 흘러가는 시간 …(중략)…
내 몸의 일정한 이 숨소리들은 지금 어디를 달려가고 있을까 짧은 순간을 향해 긴 시간을 달려가는 불편한 진동 아무리 몸을 구기며 고쳐 앉아도 불편하기만 한 난청이 몸을 흐르고 있다 ―「졸음의 지점」 전문
「졸음의 지점」에서는 이 ‘잔여로서의 생’이라는 주제가 기차를 타고 가는 승객들의 불편한 여행의 장면으로 그 표현을 얻고 있다. 생은 남은 것들의 줄기찬 흘러감이다. 그래서 ‘정처 없는 생’ 대신 “정차 없는 생”이라 했다. 그 안에서 아직 하차하지 않고 남아 있는 승객들은 종착역에 도착할 때까지 “짧은 순간을 향해 긴 시간을 달려가는 불편한 진동”을 견디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다. “아무리 몸을 구기며 고쳐 앉아도 불편하기만” 한 잠만이 그 남은 시간을 소진하는 길이다. 그러니 “누군가 남겨놓고 간 잔여분의 잠”을 청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유일한 소일”이며 이 흘러가는 생을 견디는 방식이므로. 그렇게, 잔존으로서의 생을 승인하고, 그 리듬에 익숙해져 간다. 삶에 대한 이만한 비유를 꾸려놓은 시인이 새삼 미덥다. 오래 마음에 간직될 만한 비유한 자락이다.
남은 것들이 주는 위로
사그라지는 모든 것은 잔여를 남긴다. 그리고 그 ‘잔여에 관해 말하기’는 주영헌 시인이 택한 고유한 시의 직무다. 그의 시적 주체들은 잔여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무의미를 어떻게든 의미로 승화시키려 한다. 이러한 ‘남은 것들이 주는 위로’를 담고 있는 시들을 몇 편 읽어 보자.
반쯤 해동된 묵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다 한쪽에선 아직도 타닥거리며 타고 있는 불씨들 반쯤 타다 만 담배 대궁에선 오래된 곰방대처럼 흰 연기 피어오르고 그 뒤편 그늘이 들지 않는 곳에 또 다른 생을 막 살기 시작한, 김씨의 둥그런 집 하나가 지어져 있다 - 「묵전」 부분
계절의 경계를 넘지 못한 반쯤 푸른 낙엽들이 싸리비 같은 바람에 툭툭 떨어진다 외잎이어서 새가 되지 못하고 지면에 떨어지는 불씨 이리저리 뒹굴다 무덤처럼 쌓인다 길 이곳저곳에 봉긋한 낙엽 봉분들 북쪽에서 날아온 흰 불씨들이 한 계절을 장사지내고 있다 무덤은 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 「불의 씨앗」 부분
“김씨”는 자기가 일구던 밭을 묵전으로 만들어 두고 “또 다른 생”으로 건너간 이웃이다. 그 묵전에서 불씨가 타고 있고, 마지막으로 한 개비 태우고 간다는 듯 “담배 대궁”에서도 연기가 오르고 있다. 마치 새로운 생명을 깃들게 할 준비 같다(「묵전」). 또 “불씨”가 되어 떨어진 붉은 낙엽들이 “봉분”으로 쌓여 “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그 위로 눈이 “흰 불씨”처럼 혹은 타고 남은 재처럼 날리며 “한 계절을 장사지내”는 장면이다(「불의 씨앗」). 한 생이, 혹은 한 계절이 지나가고 남은 적멸의 자리에 끝까지 잔불이 타고 있는 풍경들에 시인은 주목한다. 마치 어느 선문답- 이 빈 공간을 다시 무엇으로 가득 채울 수 있겠느냐는 스승의 물음에 말없이 불을 켜드는 동자의 대답- 처럼, 적멸을 위로하기 위해 타는 불씨인 것만 같다.
비움과 남김 사이의 긴장의 시론
비워지고 남은 몸은 불빛이 되지만, 비워지고 남은 말은 시가 되기도 한다. 비우려 해도 비워낼 수 없는 말들, 끝내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어 남아 있는 말들이 모여 시가 된다. 비우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다 비워내지 못한 몸의 무게를 가지고 공중에서 버티며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다. 이렇게 최후에 남은 것들을 가지고 버티는 일은 삶의 목표이자 시의 길이기도 한 것이다. 비움과 남김 사이의 긴장의 시론이 여기 표명되어 있다.
전송하지 못하고 면도날처럼 입안에서 맴돌던 몇 줄의 모호한 문장과 눈[目] 속에서 무음으로 잠기던 그대의 뒷모습, 긴 머리카락 생각해보면 모호한 감정의 발신은 잊을 만큼 반송이 늦고, 단호한 몇 개의 단어는 긴 문장을 갈음한다 - 「반송」 부분
귀먹은 소리가 캄캄한 물소리를 들을 때 아직 흐리지 못하고 몸 어딘가에 고여 있는 물 내 속을 다 보여주지 못하지만 물은 몸처럼 말라가고 흐르는 동안 이 몸을 떠나지 않는 말들이 긴 소리로 젖어갈 것이다 - 「물소리」 부분
그 긴장감은 그대로 연서의 형식이기도 하다. 차마 “전송하지 못”했던 “모호한” 말들이 마치 “실뜨기”에서와 같은 팽팽한 “줄의 긴장감” 속에서 겨우 보내진 모양이다. “허튼 고백이 아니라면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달리 보내지 않을 도리도 없다. 그런 “모호한” 연서에는 으레 답장도 팽팽한 긴장을 고스란히 반송해오기 마련이다. “잊을 만큼” 늦은 답장, “단호한 몇 개의 단어” 뒤에 “긴 문장”을 숨기고 있는 그 연서의 긴장된 형식은 시의 그것과 동일하다. 보내지 않으려고 지우고 지우던 끝에 남은 말들, 들키지 않으려고 아끼고 아낀 끝에 남아 겨우 들키는 말들이 바로 시일 것이다(「반송」). 또 「물소리」에서는 어떤가. 시적 주체는 “흐르고 있는 물”을 보다가 문득 몸속의 물길을 생각한다. “지난밤”의 “소나기” 끝에 “침수(沈水/沈愁)”가 일어난다. 그렇게 “흘러온 말들”로 한바탕 물이 불어나도 끝내 휩쓸려 흘러가버리지 않고 “이 몸을 떠나지 않는 말들”이 남아 시가 되는 것일 터다. 마치 앙금처럼 고여 있는 그 ‘남은 말’이 바로 시인에게는 시의 원천인 것이다. 또 그러한 잔말일수록 긴 여운을 남기게 마련이다.
책속에서
채집
물속으로 흘러든 소리들을 잠잠히 들어본다 수많은 소리를 채집했을 물의 능력 투명한 자력이 있어 산 그림자와 몇 채의 인가(人家)를 달고 있다 때때로 바람 냄새가 묻어 있는 것을 보면 흔들리는 것들, 다 물의 채집을 돕는 일족이겠다 긴 시간 흘러왔을 물길에는 수많은 소리가 붙어 있다 흐르는 만큼 쌓이는 물가 종(種)과 계(界)의 일상이 그대로 모여 물길이 붐빈다
물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나 천렵을 끓이고 있는 양은솥의 들썩임 버들가지가 일필휘지로 물결에 주석(註釋)을 달고 있다 한 권의 책으로 붙은 물의 페이지 붐비는 물과 물 사이에는 경계가 없다
타지에서 흘러왔을 물길은 또 다른 타지로 흘러간다 물의 길에는 이정표가 없고 흐르는 내력의 편도만 있을 뿐이다
오후가 되고 물의 그늘은 너무 깊은 곳에 있어 주변의 어둑함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강 저녁의 어둠과 아침 채집을 반복해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텅 비어 속이 다 보인다
하나둘 불빛들이 물가에 다다라 불을 켜고 있는 반짝거리는 채집
[시인의 산문]
누군가 누설한 신화 속 얘기들, 요정과 괴물도 구분할 수 없는 불편한 지각. 옛 얘기의 기자(記者)는 내 귀에 알 수 없는 소리를 늘어놓고 있어. 수십 수만 개의 눈[目]으로 만만(滿滿)히 부서진 파편들. 파편들이라는 말이 더 편파적으로 들리는 까닭은 내 생이 파편적이기 때문이지.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순간까지 서사된 시간, 역사라는 이름의 셀 수 없는 파편들. 그래, 내 문장은 그 파편의 일부를 모방하는 것뿐이야. 스스로 평한다면 천박한 노스탤지어, 솔직하지도 특별할 것도 없는 신파(新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