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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일록은 내 이름 : 윌리엄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다시 쓰기 : 하워드 제이컵슨 소설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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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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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매혹적인 출판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소설가들의
시대를 초월한 다시 쓰기

‘그는 어떤 한 시대의 작가가 아니라 모든 시대의 작가이다.’
_ 벤 존슨


2016년은 윌리엄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4세기 동안 셰익스피어는 전 세계적으로 공연되고, 읽히고, 사랑받아 왔다. 그의 작품들은 세대가 바뀔 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되었으며, 세상은 여전히 그에게 사로잡혀 있다. 2016년 기념의 해를 맞이하여 곳곳에서 그를 기리는 여러 이벤트들이 기획.진행되었고, 그중에서도 영국의 호가스 출판사는 놀라운 장기 출판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호가스는 1917년에 버지니아 울프와 레너드 울프가 설립했는데 당대의 가장 좋은 새로운 책들만 출판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1946년 이후 이름만 남아 있던 호가스는 2012년 그 전통을 계속 이어 가기 위해 런던과 뉴욕에 설립되었다. 그리고 2013년에 호가스에서는 ‘21세기 관객을 위해 셰익스피어 희곡을 재구상’하는 작가들의 1차 명단을 발표했다. 그들의 작업은 희곡을 무대에서 지면으로 옮기는 것, 원작의 ‘정신에 충실’한 소설로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원작을 넘어 그들이 원하는 어디든지 여행할 수 있는 소설로.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는 2016년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현대의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그의 작품을 자신만의 문학관으로 재해석하여 다시 쓰는 기획이다. ‘21세기의 가장 획기적인 다시 쓰기 프로젝트’(《가디언》)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는 2015~2016년부터 25개국 16개 언어로 출간되며, 한국에서는 현대문학을 통해 2016년 6월부터 순차적으로 만날 수 있다. 현재 참여하는 작가 외에도 많은 이들이 호가스와 조율 중이고 이 시리즈는 향후 오랫동안 이어질 예정이다.

지넷 윈터슨|겨울 이야기 The Winter’s Tale|시간의 틈
하워드 제이컵슨|베니스의 상인 The Merchant of Venice|샤일록은 내 이름
앤 타일러|말괄량이 길들이기 The Taming of the Shrew
마거릿 애트우드|템페스트 The Tempest
트레이시 슈발리에|오셀로 Othello
요 네스뵈|맥베스 Macbeth
길리언 플린|햄릿 Hamlet

‘이 사람 누구예요, 아빠?
그는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하워드 제이컵슨이 다시 쓰는 『베니스의 상인』,
유대인, 아버지, 자비로운 인간이란 무슨 의미인지를 익살맞게 보여 주는
현대적인 도플갱어 『샤일록은 내 이름』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셰익스피어 시리즈


부유한 예술품 수집가이며 박애주의자인 유대인 사이먼 스트룰로비치. 아내가 뇌중풍으로 쓰러지고 딸은 탈선하여 사랑의 도피를 떠난 상황에서 그는 상담할 사람이 간절히 필요하다. 그래서 체셔의 골든트라이앵글에 있는 공동묘지에서 냉소적이고 자비를 모르는 유대인 샤일록과 마주쳤을 때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이것은 대단히 놀라운 우정의 시작이다.
골든트라이앵글의 또 다른 곳에서 사람을 조종하기 좋아하는 플루러벨(일명, 애나 리비아 플루러벨 클레오파트라 어 싱 오브 뷰티 이즈 어 조이 포에버 크리스틴)은 그녀 자신이 기획한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의 간판스타로, 성형수술과 화려한 파티를 즐기며 살아간다. 그녀는 충성스러운 남자 친구인 당통과 각종 편견들, 가시 돋친 유머 감각을 공유한다. 당통은 큐피드 역할을 하면서 스트룰로비치의 딸을 모종의 사건에 연루시키는데, 이 일은 결국 살 한 파운드의 징벌을 가져온다.

2016년 윌리엄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작가들이 그의 희곡들을 현대 소설로 재탄생시키는 프로젝트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의 두 번째 주자는 『영국 남자의 문제The Finkler Question』(2010)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하워드 제이컵슨이다. 앞서 지넷 윈터슨이 개인적인 이유로 『겨울 이야기The Winter’s Tale』를 선택하여 『시간의 틈The Gap of Time』으로 다시 썼듯이, 마찬가지로 제이컵슨 자신 유대계 영국인으로서,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유대인 샤일록이 등장하는 희비극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1596년~1599년 집필 완성, 1605년 초연)을 선택했다. 원래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 영문과에서 F. R. 리비스 교수의 지도 아래 셰익스피어를 전공했는데, 사실 그가 가장 처음 출간한 책은 소설이 아닌, 학자 윌버 샌더스와 공저한 논픽션 『셰익스피어의 관대함Shakespeare’s Magnanimity』(1978)으로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등장하는 주인공 네 명을 분석한 것이다. 그 후 38년 만에 제이컵슨은 『샤일록은 내 이름Shylock is My Name』(2016)으로 셰익스피어와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그는 이에 대해 “『베니스의 상인』은 누가 읽더라도 셰익스피어 작품 중 제일 문제작이다. 하지만 유대계 영국인 소설가에는 더욱 까다롭고 도전적인 작품이다. 내가 이번 소설에서 펼친 논쟁은 셰익스피어의 샤일록이 아니라, 그간 사람들에게 읽히고 받아들여져 왔던 바로 그 샤일록의 구원에 관한 것이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악독한(?) 유대인에게 큰 빚을 진 16세기의 한 베네치아 상인에 관한 이야기, 한국에서는 『베니스 상인―일명 인육人肉 재판』(1924)이라는 제목으로 초역되기도 했던 『베니스의 상인』은 대단히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하나이다. 유대인이 등장하는 블랙코미디에 있어 모두가 인정하는 거장 제이컵슨은 이 희곡을 21세기 잉글랜드 첼시의 호화로운 ‘골든트라이앵글’로 이전시켰다. 하지만 소설은 간단한 개작이라고는 할 수 없는데, 그는 원작에서 고리대금업자이자 악인의 대명사로 표현되며 오히려 이 때문에 역으로 반유대주의를 대변하는 인물이 된 최고의 적대자 샤일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샤일록은 악인인가 희생자인가’는 셰익스피어 수업에서 단골로 출제되는 시험문제이자 셰익스피어 전공자에게는 영원한 화두이며, 제이컵슨은 “샤일록에 대해서 논쟁하는 것은 현대의 관심사에 대해 논쟁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샤일록은 내 이름』은 뇌중풍에 쓰러져 자리보전 중인 아내 케이, 열여섯 살 난 딸 비어트리스와 함께 첼시에 살고 있는 부유한 박애주의자이자 예술품 수집가 ‘사이먼 스트룰로비치’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스트룰로비치는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과 달리 고리대금업자도 아니고 계율을 지키는 신실한 유대인도 아니지만, ‘미신, 광신, 부족주의,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진지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로, 사랑하는 딸이 유대인 남자를 남편으로 맞기를 바란다. 그러나 비어트리스는 아버지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그녀의 사춘기는 유대인이 아닌 남자와의 연애를 방해하고 사사건건 간섭하는 아버지를 향한 분노로 점철되어 있는데, 이는 결국 그녀로 하여금 지역의 유명 인사인 부유한 상속녀, 성형수술과 파티 중독자, 텔레비전 쇼 진행자 ‘애나 리비아 플루러벨 클레오파트라 어 싱 오브 뷰티 이즈 어 조이 포에버 크리스틴’, 일명 플루러벨과 친분을 맺게 만든다.
성형수술을 하지 않을 때 플루러벨Plurabelle은 음식과 사랑을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개인 간의 심판도 주재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베니스의 상인』에서의 포샤Portia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그녀 그룹에는 이성애자인 청년 바너비와 그래턴 하우섬에게 속절없이 호의를 베풀고 헌신하는 우울한 게이, 예술품 수입상 ‘당통’과, 플루러벨의 폭스바겐 비틀을 고치러 왔다가 그녀의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된 머리가 빈 차량 정비사 ‘바너비’, 그리고 유대인 여자를 좋아하지만 나치식 인사로 악명을 떨친 실력 없는 축구 선수 ‘그래턴 하우섬’이 있다. 이들은 각각 『베니스의 상인』에서의 안토니오Antonio/당통D’Anton, 바사니오Bassanio/바너비Barnaby, 그라티아노Gratiano/그래턴Gratan으로 치환된다. 플루러벨은 남자 친구 당통과 각종 편견들, 가시 돋친 유머 감각을 공유하고, 이들은 비어트리스와 그래턴의 만남을 주선하여 그들이 사랑의 도피를 떠나는 데 일조한다.

『샤일록은 내 이름』은 탈선 중인 딸 비어트리스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스트룰로비치가 첼시의 공동묘지에서 샤일록과 마주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 샤일록은 『베니스의 상인』의 그 샤일록이자, 원작의 무대 뒤에 있는 샤일록이다. 딸에서 촉발된 스트룰로비치의 고민에는 본질적으로는 『영국 남자의 문제』에서 핑클러가 했던, 유대인이 되는 것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문제를 반추할 시간이 충분했던 샤일록, 마찬가지로 유대인이 아닌 남자에게 딸 제시카를 빼앗긴 그는 자연스레 스트룰로비치의 대화 혹은 상담 상대가 된다. 이들 두 사람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음에도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유대인이란 카테고리로만 존재할 뿐이며 타자他者이다. “내가 다녔던 비유대인 학교에서 『베니스의 상인』을 공연했을 때, ‘유대인은 눈이 없습니까Hath not a Jew eyes?’ 같은 대사들로 인해 스무 명 남짓한 우리 유대인 학생 모두는 다른 학생들을 의식하게 되었다”라고 제이컵슨이 말했듯이.
소설은 스트룰로비치와 그의 주변 인물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으나, 모든 사건과 장치는 샤일록을 더욱 깊이 조명하는 데 기여한다. 결국 『샤일록은 내 이름』은 그의 내적인 삶에 대한 연구이다. 스트룰로비치와 벌이는 설전舌戰은 복수, 의무, 아버지라는 것, 역사의 본질을 매섭게 뒤흔들며, 그를 유하게 만들고 희생자나 악인을 넘어 그에게 인간애를 부여하는 것은 죽은 아내 리아와 나누는 현재 진행형 대화이다.
샤일록은 사랑하는 딸을 안토니오 그룹의 일원인 로렌초에게 빼앗겼고 그 그룹이 평소 그의 가족애와 종교적 본능을 경멸했기 때문에 안토니오에게 불타는 복수심을 느낀다. 이 복수심의 표시가 그가 느낀 만큼의 심적 고통을 안토니오의 가슴(심장)에서 살 한 파운드를 떼어 내어 보복하려는 심리로 표출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정의의 가장 근본적인 형태이고 정의는 원래 보복의 그림자를 그 안에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정의만을 앞세우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싸움은 끝날 길이 없으므로, 자비라는 인간 공동체 특유의 개념이 생겨나게 되었다.
제이컵슨은 이 정의와 자비의 문제를 『샤일록은 내 이름』의 핵심 주제로 삼으면서, 그 문제를 살 한 점을 떼어 내는 문제와 교묘하게 대비시킨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살은 심장에서 한 파운드 떼어 내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는 이것을 할례 의식 그리고 유대인의 피해의식을 상징하는 수음手淫의 이미지와 결부하여 성기에서 살을 떼어 내는 것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정의와 자비를 연결 짓는다. 할례는 기독교권에서는 비인간적인 야만 행위로 여겨지나 유대인들은 오히려 그것이 야만의 정반대이고 또한 야만에서 벗어나 문명으로 가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할례는 인간 목숨의 첫째 날부터 즉 어머니의 아늑한 자궁 속에 있을 때부터 인생을 편안한(혹은 욕망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삶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의식이라는 것이다. 성기는 언제나 욕망에만 반응하는 기관이므로 그것에만 의지하여 살아가면 인간은 파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소설에서 욕망은 원숭이로 상징된다. 반면에 심장은 생명체의 욕망과는 무관하게 생이 다할 때까지 스스로 작동하는 기관이다. 사랑은 『샤일록은 내 이름』에서 가장 고귀한 인간적 가치로 제시된다. 여기서 제이컵슨은 이 세상의 피해 혹은 피해의식을 치유하는 힘은 욕망(‘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만 반응하는 정의로는 결코 완수될 수 없고, 그런 욕망과는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사랑도 함께 실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하워드 제이콥슨이 다시 쓴 『베니스의 상인』―『샤일록은 내 이름』은 시간의 동선動線을 앞뒤로 자유롭게 왕복하면서 현대 세계에서 아버지, 유대인, 자비로운 인간이란 무슨 의미인지를 심도 있게 탐구한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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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22] 스트룰로비치는 어머니 묘소를 둘러보러 오기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그가 현재 목격 중인 샤일록의 묘변墓邊 대화는 그 보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좋은 아들이 되면 얻는 보람인가? 그렇다면 그는 좀 더 일찍 묘소를 찾았어야 마땅했다. 이것 말고 달리 더 잘 설명해 주는 것도 없지 않은가. 아니면 사람은 자기가 보기 좋아하는 것만 보는 것인가? 그렇다면 일부러 찾아다니면서 보려고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냥 어떤 의미가 당신을 찾아오기를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는 이런 지나가는 엉뚱한 공상을 해 본다. 셰익스피어의 조상들은―좀 더 안전한 쪽에 서서 말해 보자면―성을 샤피로에서 셰익스피어로 바꾸고 샤일록이 그(셰익스피어)에게 찾아오도록 했을지도 모른다. 극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셰익스피어는 유령들을 보고서 메모지에다 글을 쓴다. 그는 자기 자신의 외부를 오랫동안 쳐다보다가 마침내 안토니오가 저 혐오스러운 자인 유대인에게 침을 뱉는 것을 본다.
“어떻게 지금 이 순간! 유대인! 당신 사촌이야?” 셰익스피어가 묻는다.
그곳은 유대인이 없는Judenfrei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잉글랜드였다. 그래서 그는 놀라는 것이다.
“쉿.” 유대인이 말한다.
“샤일록!” 셰익스피어가 별로 조심도 하지 않으면서 말한다. “내 사촌 샤일록, 아니면 내가 기독교인이거나!”
샤피로, 셰익스피어, 샤일록. 가족적 연상.
스트룰로비치는 그런 연상에서 제외되어 슬픔을 느낀다. 그의 이름에 쉿shush 발음이 들어가지 않아서 유감이다.
_ 1
[P. 48~50] 그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때때로 그의 경우 슬픔의 원인은 돈이라기보다 모더니티modernity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당신은 자기 자신이 너무 모던하다고 느끼지 않습니까?” 그가 그녀에게 물었다.
플루러벨은 그 아이디어를 좋아했다. “너무 모던. 그래요, 당신 말이 맞아요.” 그녀가 말했다. “너무 모던해요. 나는 종종 그걸 느꼈어요. 하지만 지금까지는 내가 느낀 게 그것인지 몰랐어요. 너무 모던. 맞아요, 그거예요.” 이어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건 이걸 설명하지 못하는데요. 왜 디스커버리 채널에 나오는 원주민들이나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늘 슬퍼 보이죠? 그들은 결코 모던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모던하지 않지요. 하지만 그건 종류가 다른 슬픔입니다. 그들이 슬픈 이유는 타인에 의해 비참한 존재가 되었다는 겁니다. 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거예요. 그들은 피해자이기 때문에 슬픈 겁니다.”
플루러벨은 천연색 신문 보충판에 실린 남아메리카의 부족민들 사진을 기억했다. 그들은 수천 살은 되어 보였다. 마오리족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피그미족도. 파슈툰 부족민들도. 왜 그들은 모두 슬픈 걸까,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들 또한 착취당해서 비참하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유대인은? 그들도 오래되었잖아요.”
그는 유대인이라면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혹은 적어도 바울로 성인(그는 철저한 바울로주의자이니까)의 마음을 유대인의 슬픈 이유로 제시했다. “내 보기에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의지로 인해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마침내 말했다. “그들은 모던하지도 피해를 당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보이기로 스스로 선택한 겁니다.”
“왜 그렇게 선택했지요?”
“그게 실수인지 전략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그들 자신을 인간적이든 신학적이든 모든 드라마의 중심에다 위치시켰습니다. 나는 그것을 정치적 슬픔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자기-연민의 아교는 아주 단단하지요. 감정적 협박이 그렇듯이.”
_ 2
[P. 93] […] 우리의 본성에 깃든 폭력을 받아들이는 것, 그게 문명화된 사회이다.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용서가 아니라 정의이다. 우리는 피[血]로 만들어진 존재이지 젖[乳]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_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