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1. 미국을 보고 한국을 생각하다-미국 국무부 초청 미국 방문기 ; 2.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생각 연혁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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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을 내면서
제1장 내 고향, 남제주군 대정읍 신도리
원주 변 씨 19대손 어린 시절의 어두운 추억 한림중학교 오현고등학교 시절 농촌생활 아버지와 아들
제2장 법관의 꿈과 현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4ㆍ19혁명 1961년 8월 15일 아침, 자취방으로 찾아오신 아버지 사법시험 준비ㆍ합격 군 법무관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 사법파동 타의로 벗은 법복
제3장 정의가 실현되는 한국 정치를 위하여
변호사와 국회의원 10대 국회의원 정풍운동 격동기의 국회의원 서귀포 시 승격과 제주대학의 종합대학 승격
제4장 시련을 통해 배운 한국 정치
11대 국회의원 총선에 낙선 제주도 야구협회장 다시 낙선 13대 총선 공천탈락
제5장 헌법재판소 초대 사무처장
나는 역시 법조인이다 헌법재판소의 토대 구축 초대 헌법재판소장 조규광 미국 국무부 초청 미국 방문
제6장 다시 여의도로
14대 국회의원 당선 통일국민당 국회의원 인간 정주영, 정치인 정주영 감귤농가의 위기-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재일 동포의 법적지위 향상을 위해 민자당 입당 제주도의 항만 개발과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유치
제7장 3선 의원 변정일 (제15대 국회의원)
원내 7인방 이회창 대통령 후보 만들기 국회 법제사법위원장과 DJ 비자금 야당의원 변정일 서귀포시에 월드컵 축구경기 유치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제주도개발특별법 개정 법률안-공항 카지노 새로운 정치의 길: “후배에게 길을 열어 주는 것 또한 정치다”
제8장 제주4ㆍ3사건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하여 - 진상조사와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1950년 신도 1리를 둘러싼 성담 제주도민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노력 제주4ㆍ3특별법 제정 의지를 밝힌 기자회견 제주4ㆍ3특별법 제정 제주4ㆍ3특별법과 그 문제점 특별법의 제정과 4ㆍ3의 치유
제9장 내 마지막 공직,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
JDC 설립 배경과 내가 할 일 제주영어교육도시 사업과 최초의 국제학교 NLCS Jeju 설립 캐나다의 Branksome Hall과 미국의 St. Johnsbury Academy 유치 (주)해울과 FES, BH Jeju-특수목적법인의 설립 한국 최고의 명품 전원도시를 만든다 JDC의 투자와 투자유치 제주의 미래와 JDC의 역할 JDC가 왜 정부공기업으로 남아야 하는가?
3선 의원 출신인 저자는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스물 세 살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래 군 법무관을 시작으로 판사를 거쳐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정치에 입문하여 10대와 14대, 15대 국회의원을 하면서 법조인과 정치인으로 다양한 흔적을 남겼다. 그 외에도 국토해양부 산하의 공기업인 JDC(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으로 공기업 경영을 맡아 일하기도 했다. 물레(태학사의 자회사인)의 변정일 회고록 『후회는 없다』는 35년 정치인생과 그 속에서 함께 했던 한국정치사의 굵직한 이야기들을 우리들에게 들려준다. 6·25전쟁과 4·19, 김대중 대통령 후보 비서실장 차량 압수수색영장, 10월 유신과 유신 법관, 10·26 사태, 정풍운동, 초창기 헌법재판소, 정주영 대통령 대표, 이회창 대표, 제주4·3 등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국 근대사의 굵직한 사건들과 그 속에서 역동적으로 살아움직이는 사람들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하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이 책은 단순한 회고록에 그치지 않고, 다가오는 시대에 새겨들을 혜안과 통찰을 발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나는 쓰기로 결심했다! 시련과 성취, 정치인생 35년의 기록》
이 책은 쉽게 쓰여지지 않았다. 저자는 책을 쓰기 전에 많은 고민을 했다고 말한다. 결국 책을 쓰기로 작정한 이유를 그에게 들어보자. “정치에 첫발을 들여놓은 것이 1978년이었고 공백 기간도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은퇴를 선언한 것이 2008년이었다. 그 뒤에 정치의 연장선상에서 2013년까지 4년 남짓 공기업 최고경영자로 일했다. 그 기간을 모두 셈해보면 무려 35년이나 된다. 내가 살아온 과거 76년은 8·15 광복, 4·3사건, 6·25사변, 4·19혁명, 5·16 군사혁명, 63사태, 10월 유신, 10·26 사태,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IMF 사태, 탄핵으로 인한 대통령의 퇴임 등 격변의 시대였다. 이러한 혼란과 격변의 시대에 개인적으로도 결코 평탄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 성장해 왔다. 순탄하게 살아온 다른 공직자나 정치인들에 비해 활동이 다양했고, 마치 운명처럼 많은 역경을 거쳐야 했다. 그런 만큼 일생을 통해 겪은 일들을 진솔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결코 의미가 적은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73년 4월, 제주에서 처음 변호사 활동을 시작한 이래 2013년 6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을 퇴임하기까지 40년간은 제주도민의 성원을 받았던 시기이고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시기이다. 제주도민과 함께 생활한 시기였던 것이다. 그런 만큼 제주도민에게 그간의 나의 공적 활동을 진솔하게 알려드리는 것이야말로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저자는 격변의 시기를 온 몸으로 살아왔던 기록과 제주도민과 함께 했던 공적 활동을 진솔하게 알려드리고자 이 책을 쓰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진솔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당신은 정치를 하지 말았어야 할 사람? 그것이 내가 정치를 하기로 결심한 이유》
저자는 “왜 정치를 했습니까?”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왔다고 고백한다. 이 질문에는 두 가지 의미가 숨어있다. 변호사 생활만 했더라면 편안했을 것인데 “왜 정치를 했습니까?”라는 의미와 때로는 적당한 거짓말이나 쇼맨십, 과장된 자기선전 등이 필요하다는 한국 정치에 대한 고정관념과 다른 정치자세를 보인 저자에게 ‘아예 정치를 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 정치에 발을 들여 고생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저자의 삶을 살펴보면 실제로 그렇다. 그럼에도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밝히는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국가란 신앙, 사상, 인종 등 여러 가지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이해관계의 충돌을 일으키면서 살아가는 사회이다. 이러한 국가를 이끌어 가는 것은 다름 아닌 정치다. 국가가 유지·존속되기 위해서 정치는 불가결의 요소이다. 따라서 전체 국민의 이익을 위해 정직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담당해야 국민이 편안하고 나라가 부강해진다. 그러나 현실정치에서는 가면을 쓰고 때로는 거짓말을 하며, 국가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 또는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한 정치를 하고 모함과 권모술수와 선동의 정치가 횡행한다. 그로 인해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참된 정치인들마저도 불신을 받는다. 정치를 해서는 안 될 사람들이 정치판에 득실거리고 정치를 해야 할 사람들이 정치를 외면한다.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정치를 하기로 결심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다. 정치는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하지만, 때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는 창조적이고 새로운 변화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몇 번의 좌절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내가 걸어온 길을 후회해본 일은 없다. 나는 나름대로 올바른 정치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인지 거짓말 정치나 권모술수의 정치를 익힐 만한 기회도 없었고 정치인으로서 크게 성공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 자세를 후회해본 일은 없다.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러한 자세가 제대로 평가받아 낙선하거나 정치를 접은 뒤에도 보람 있는 일을 할 기회들이 주어졌다고 믿는다.” 겉으로 봐서 사람을 알 수 없듯이 정치인으로서, 법조인으로서의 성과 패를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 모두를 알 수 없다. 올바른 길을 걷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격려의 목소리를 저자의 삶의 자세에게 배우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변정일 회고록 『후회는 없다』는 정치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하는지 35년의 정치인생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길을 걸어온 사람에게 JDC를 통해 섬기고 봉사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들이 주어진 사건을 통해 올바른 길을 걷기위해 노력하는 자들에게 격려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가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인생과 정치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속에서
[P.23~24] 고아원 생활은 항상 배가 고팠고 또 고되었다. 당시는 전쟁 중이어서 국가가 고아원을 제대로 지원해 주지 못하였다. 그래서 고아원 생활은 비참했다. 원생들은 많은데 식량이 모자라니 영양실조가 되고, 면역력이 약해서 질병에 걸린 원생들이 많았다. 2, 3일에 한 명씩 굶주림으로 죽어 나갔다. 죽음의 공포를 느껴야만 했다. 굶으면서 몸이 허약해지고 그러다 질병에 걸리면 살아남지 못했다. … 내가 고아원에 들어갈 때 가져갔던 옷들은 2, 3일 지나자 모두 없어졌다. 식사는 전혀 도정이 되지 않은 통밀을 가마솥에 넣고 배추 잎사귀와 간장을 부어 삶아 낸 것이 전부였다.
[P. 183~184] 1992년 10월 1일의 일이다. 당사에 일찍 나오라는 정 대표의 지시에 따라 평소보다 이른 6시경 정주영 대표실에 들렀다. 정 대표가 입을 열었다. “국회 상임위원장이 되면 판공비도 나오고 자동차도 제공해 준답니다. 아주 좋다고 합니다. 변 대변인, 이번에 상임위원장을 해 보세요.” 직설적으로 상임위원장을 권하였다. … “지금 대통령 선거가 두 달 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에 우리 당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 선거의 승리입니다. 지금 대표님께서는 대선 승리에 도움이 되는 일만 생각하시고 판단하십시오. 저는 그 판단에 따르겠습니다. 제가 상임위원장을 하는 것이 대선 승리에 도움이 된다면 상임위원장을 시키시고 제가 대변인으로 계속 남아 있는 것이 대선 승리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되시면 대변인을 시키십시오. 저는 조건 없이 대표님 뜻에 따르겠습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말에 정주영 대표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 나의 손을 덥석 잡으면서 감격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변 의원, 대변인 끝까지 해줘!” 내가 대변인으로 계속 남기를 바라면서도, 내가 입당할 당시 상임위원장을 시켜주겠다고 했던 약속 때문에 마음에 없는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통일국민당 몫으로 된 행정위원장에 나를, 동자위원장에 손승덕 의원을 내정해 놓고도 아무래도 나를 대변인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 아쉬워서 은근히 마지막 의사타진을 했던 것이었다.
[P. 255] 월드컵 경기 서귀포시 유치를 서귀포시 차원을 넘어 제주도 차원의 사업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하였고, 나는 제주도 도지사의 요청으로 1997년 6월 9일 월드컵축구 제주도 유치위원장을 맡았다. 월드컵 개최를 희망하는 도시는 15개 도시인데, 대부분 광역시와 도청소재지였다. 그중 10개 도시에서 월드컵 경기가 열리게 되었다. 나는 가장 영향력이 있는 대한축구협회 회장 정몽준 의원에게 서귀포시 개최를 강력히 요구했다. 특히 월드컵 경기 희망 지역들이 모두 별다른 지역적 특색이 없는 대도시들임에 반하여, 제주도는 유일하게 천혜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국제적 관광지로서 특색 있는 지역이라는 점과 외국인들에게 큰 도시만을 보여주는 것보다 제주도 같은 지역을 보여주는 것이 월드컵 경기 이미지를 제고하는데 적절할 것이라는 점, 그리고 제주의 자연풍광을 외국인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므로 국익을 위해서도 제주도가 반드시 경기 지역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렇게 월드컵 경기 서귀포 유치 활동은 거의 전적으로 나에게 맡겨져 있었다. 결국 1997년 12월 29일 서귀포시가 월드컵 경지 개최지로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