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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1770, 영조 46년) 10월
경인년(1770) 겨울
12월 25일, 바다에 해가 처음 떠오르자 남풍이 잠깐 읾
12월 26일, 흐림
12월 27일, 맑음
12월 28일, 맑음
12월 29일, 흐림
12월 30일, 비
신묘년(1771) 정월 초1일, 맑음
정월 초2일, 흐림
정월 초3일, 흐림
정월 초4일, 흐림
정월 초5일, 맑음
정월 초6일, 바람 불고 비가 내림
정월 초7일, 바람이 붊
정월 초8일, 맑음
정월 초9일, 맑음
정월 초10일, 맑음
정월 11일, 맑음
정월 12일, 추웠음
정월 13일, 맑음
정월 14일, 맑음
정월 15일, 저녁에 비가 내림
정월 16일, 맑음
정월 19일
2월 초3일
3월 초3일
5월 초8일

부록
≪표해록≫의 문학사적 위상 / 장시광
국립제주박물관에 있는 ≪표해록≫ 필사본의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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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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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철 표해록 : 큰글씨책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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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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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해록≫은 장한철(張漢喆)이 1770년 가을 제주 향시에서 수석을 하고 나서, 서울 예조에서 치르는 회시에 응시하려고 그해 겨울 뱃길에 올랐다가 풍랑을 잘못 만나 고생스럽게 표류하던 때의 일을 적은 것이다. 중세의 이야기들은 주로 집을 떠난 모험을 다루거나 사랑 이야기를 다루거나 권력 다툼을 다루는데, 실제 겪은 일을 적고 있는 이 ≪표해록≫에는 자연이 주는 시련과의 맞섬 및 꿈속 여인과의 하룻밤 사랑 이야기가 긴밀하고도 자연스럽게 짜여 있다.
우리 문학사에서 표해 문학의 전통은 15세기 말 최부의 ≪금남표해록≫을 필두로 20세기 초에 활자화된 이방익의 ≪표해가≫(창작은 18세기 말에 이루어짐)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표해 문학은 사실을 전수하려는 체험자의 의식이 강하게 배어 있는 유형이다. 따라서 이들 작품에는 때로는 사관(史官)의 엄정하고 객관적인 서술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고통을 당하는 한 개인의 주관적인 감정이 드러나 있기도 하다. 객관과 주관을 어느 문학 유형보다도 고르게 배치한 것이 우리 표해 문학의 특징이다.
표해 문학의 측면에서 볼 때, 장한철의 ≪표해록≫은 있는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하려는 자세가 돋보인다. 장한철은 자신이 겪은 희한한 경험과 고난을 빠짐없이 기록하려고 했다. 그때그때의 경험들을 기록한바, 그것은 ≪표해록≫ 이전에 기록해 두었던 ‘표해 일기’의 존재에서 알 수 있다. 비록 유구의 호산도에 표착해 저술했던 ‘표해 일기’는 청산도에 표도(漂到)했을 때 물에 젖어 떨어져 나가고 뭉개져서 판독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버렸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표해록≫이 지어졌음을 감안하면, ‘표해 일기’의 존재는 ≪표해록≫의 저술에 상당히 중요한 몫을 담당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장한철의 ≪표해록≫이 지닌 표해 문학적 특징 가운데 하나로, 인간의 고통이 여과 없이 드러나 있다는 점을 또한 꼽을 수 있다. ≪표해록≫에는 슬픔·원망·분노·두려움 등 인간이 지닐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표류하다가 노화도에 정박하지 못하고 떠나갈 때 배에 있는 사람들의 심정을 묘사하는 대목(1770년 12월 25일)이나, 표류하면서 목숨이 위태로움을 생각해 눈물을 흘리는 장면(1770년 12월 27일)에서는 슬퍼하는 감정이 역력하다. 닻을 내리려 했으나 바닥에 부착되지 못하고 선장이 여분도 준비하지 않은 데 대해서는 원망의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1770년 12월 25일). 유구의 호산도에서 왜구에게 모욕을 당한 후에는 분노를 보이기도 한다(1771년 1월 1일).
장한철이 유가(儒家)였음을 감안하면 이는 상당히 파격적인 면이다. 유가, 특히 주자학에서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경계한다. 감정에 동요가 생겨 수양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대신 그러한 감정을 중화(中和)하는 것을 강조한다. ≪표해록≫에는 그와 같은 유가의 경계 대신 인간 본연의 모습이 뚜렷이 드러나 있다. 이는 유가, 유학이라는 철학적·교육적·학문적 외피를 입고 있는 인간도, 극한 상황에 이르면 그러한 외피 대신 인간의 본능이 저절로 드러나게 됨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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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배가 머물러 정박하지도 못했는데, 동풍이 크게 일었다. 그러자 배가 바람이 몰아가는 대로 끌려 서쪽 큰 바다로 표류해 갔다. 노화도를 돌아보니, 이미 잠깐 사이에 아득하게 멀어졌다. 사나운 바람과 모진 파도에 외로운 배가 오르락내리락했다. 높이 솟아오를 때면 푸른 하늘 위로 나가는 듯했고, 낮게 내려갈 때면 만 길 아래의 바다 바닥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은 노화도에서부터 바람을 만난 뒤, 스스로 자신의 운수가 지레 반드시 죽을 것으로 여겼다. 뱃멀미로 어지러워 아득하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가 아니라면, 오직 슬프게 부르짖으며 통곡하는 짓만 일삼았다.
조금 지나 밤이 깊어지자, 사방이 칠흑 같아 동쪽 서쪽을 분간할 수 없었다. 바람은 키질하듯 배를 흔들어 댔고 비도 퍼부어 댔다. 외로운 배가 파도 위에서 넘실거렸다. 우리가 탄 배에는 바닥으로부터 물이 많이 스며들어 왔다. 배 위에서는 항아리를 뒤집어 쏟아붓는 듯이 비가 내리쳤다. 배 안에 고인 물의 깊이가 이미 허리가 반이나 빠질 정도였다. 익사할 걱정이 급박히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뱃사람들은 모두 누워 있기만 하고 일어나지 않았다. 물을 퍼낼 뜻이 전혀 없었던 것은, 이렇든 저렇든 필시 끝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