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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본 처녀에게
독약을 마신 후에
은실 같은 물결 위에 방울방울 떠도는 사랑의 눈물
황혼의 때
첫사랑의 눈물
비 오는 밤에
애자에게 보내는 최후의 편지
월화 씨에게
정자의 영전에
달은 밝은데 외로운 내 마음
황포탄의 물소리를 들으면서
오늘 밤 떠나기 전에
동경에 있는 애희 씨에게
애인 T양에게
최후의 하소연
일화 씨에게
옛 벗 혜순 씨에게
세상을 뒤로 두고
나도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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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의 사랑법 : 사랑의 불꽃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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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알라딘제공
이 책은 우리 출판사상 최초의 슈퍼 베스트셀러였다. 지금으로 치면 최초의 밀리언셀러였다. 젊은이들 가운데 이 책을 갖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특히 여학생들에 환호는 절대적이었다. 그래서 질시도 많이 받았다. 내용이 젊은이들을 그릇된 길로 빠지게 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포르노물이라도 되는 듯이.
이 책의 원제목은 《사랑의 불꽃》이다. 당시 베스트셀러 제조기로 이름 높던 시인 노자영이 기획하고 편집하였다. 당시 이 책의 광고 문구를 보면 “현대 신진문사들이 청춘의 정열과 피와 눈물과 한숨과 웃음을 쏟아 아름답고 묘하게 쓴 러브레터집이니, 시 이상의 시이며, 소설 이상의 소설”이라는 구절이 보인다.
100년 전 젊은이들의 필독 베스트셀러를 통해 100년 전의 청춘들과 교감하는 짜릿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당시는 연애의 시대였고, 불타는 청춘들은 사랑에 목숨을 걸었다. 인스턴트 연애에 탐닉하는 오늘의 젊은이들은 과연 그런 지독한 사랑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책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1920년대는 연애의 시대였다. 나라를 잃은 지 십 년이 넘어가고 3·1만세운동마저 좌절되자, 허무주의가 팽배하였다. 이런 시대풍조 속에서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이 등장하면서 이들은 연애에 목숨을 걸었다. 연애지상주의는 평양 기생 강명화의 자살, 윤심덕과 김우진의 동반자살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창조》 《백조》 《폐허》 같은 문학지들이 등장하면서 문학적 감상주의가 연애에 덧씌워지고, 지탄 받아 마땅한 정사사건에도 스토리텔링이 입혀졌다. 연애에 탐닉한 청춘들의 문화를 가장 여실히 증명하는 책이 바로 이 책의 원전인 《사랑의 불꽃》이다.
“경부선 차 속에서 한 놀라운 현상을 보게 되었다. … 백여 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일제히 버들 바구니에서 연분홍색의 책을 한 권씩 꺼내들고 읽기 시작하였다.”
1926년 8월 12일자 《조선일보》의 한 대목이다. 1923년에 간행된 《사랑의 불꽃》은 이 책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학생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여학생들은 책의 내용이 마치 자신의 이야기라도 되는 듯이 빠져들었다.
《사랑의 불꽃》에는 모두 19편의 연애편지가 실려 있다. 첫사랑의 설렘을 담아 보내는 연서에서부터 이국에 있는 연인에게 띄우는 절절한 사모의 편지, 떠나간 애인에 대한 그리움, 이별 통지 등 연애의 알파와 오메가를 담았다. 당시의 시대정신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실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암시하는 편지도 3편이나 된다.
이 책을 엮은 시인 노자영에 따르면 나도향, 설의식을 비롯한 저명한 문인들이 한두 편씩 붓을 든 것이라고 한다. 비평가들은 편지의 대부분을 노자영 자신이 쓴 것으로 본다. 이 책은 지나친 감상주의와 문장의 꾸밈이 도를 넘어 청소년들에게 해독을 끼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이 책은 우리 근대 출판 최초의 슈퍼 베스트셀러로 일컬어진다. 책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연애의 모습만 보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는 출구가 보이지 않던, 꿈을 잃은 시대 우리의 어두운 자화상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꿈에 본 처녀에게
-어리석은 박영철은

영애 씨!
불그레한 아침 해가 동편 창에 비치었습니다. 아침을 찬미하는 참새들이 재미있게 지저귀고 있습니다.
영애 씨!
나는 편지를 쓰기 전에 먼저 한 가지 아뢸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이 편지를 쓰기까지, 편지를 썼다가는 찢고, 찢었다가 다시 쓰기를 여러 번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끝까지 보아달라는 것입니다. 보신 후에는 욕을 하시든지 책망을 하시든지 그것은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야말로 당신의 자유입니다.
아! 영애 씨!
지나간 봄이었습니다. 봄바람이 복숭아 가지를 흔들고 지나가는 그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이화학당 주최의 음악대회가 종로청년회관에서 열렸을 때, 영애 씨는 단상에 나와 독창을 하셨지요.

꽃이 피는 봄바람에
내 사랑도 피어볼까!
꽃의 목숨 잡아가는
늦은 봄은 오지 마라!

이러한 당신의 노래는 몹시 아름다웠습니다. 청춘의 마음을 취하게 하고, 청춘의 가슴을 잠재울 듯한, 그 부드럽고 맑은 목소리는 마치 어여쁜 금실이 제 마음대로 풀리는 듯하였습니다. 더욱이 복스럽고 하얀 얼굴 위에 붉을 웃음을 띠우고 갸웃갸웃 표정을 지어가며 노래하는 당신의 모양은 그야말로 천사 같았습니다.
영애 씨!
그때 당신의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그 누구를 물론하고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중에 나도 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그때 얼마나 당신의 노래에 취하였는지, 입에 침이 마르게 당신을 칭찬하면서 함께 구경하던 K라는 친구에게 당신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의 말이 당신은 동경음악학교를 졸업한 사람으로 이름은 박영애인데, 지금 미정학교 음악교사로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이는 스물인데, 아직 ‘미스’라고 하였습니다.
영애 씨!
나는 그때 K의 말을 듣고 몹시도 당신을 사모하였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땅 위에 천당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꿈이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는 당신을 나 혼자 아무리 그리워하고 사모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마침내 나는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쓰린 생각을 억지로 억누르며 그만 모든 것을 단념하였습니다.
영애 씨!
세월은 흐르더군요. 끝없이 흐르더군요. 가는 줄도 모르게 끝없이 흐르더군요. 당신의 독창을 듣던 꽃피던 그 시절은 벌써 자취 없이 사라지고, 지금은 산과 들에 서리가 내리고 북쪽 하늘에 기러기가 우는 늦은 가을이 되었습니다. 풀이나 나무나 기타 만물은 입었던 옷을 고요히 벗고 침묵의 꿈에 깊이 잠겼습니다.
어젯밤이었습니다. 철 아닌 궂은비가 소소히 내리며, 뜰 앞에 있는 오동나무 잎이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나는 책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쁘고도 설운 꿈을 꾸었습니다. 이것이 나로 하여금 당신께 어리석은 편지를 쓰게 된 동기입니다.
이제 그 꿈을 말하겠습니다. 하얀 모래가 눈가루같이 퍼져 있고, 그 옆에는 두세 그루의 감람나무가 푸른 그늘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감람나무 왼편에는 맑은 시내가 흐르고, 그 시냇가에는 물새들이 목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무심중 그곳으로 피리를 불며 가는 줄도 모르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본즉, 당신은 눈빛 레이스의 베일을 쓰고 나무 그늘 아래 숨어 있다가, 나의 그림자를 보더니만 그만 벼락같이 뛰어나오더군요. 그리고 나의 손에 매달리며,
“영철 씨! 나는 당신이 오기를 가다렸어요!”
하고 나의 온몸을 녹일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가 당신의 입에서 흘러나오더군요. 나는 가슴에서 꽃이 피는 듯이 향기롭고 서늘한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홍수 같은 기쁜 물결이 나의 온몸을 감싸는 듯하였습니다.
“아! 영애 씨!”
“아! 영애 씨!”
나는 취한 듯이 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다못 당신의 이름만 불렀습니다. 그러자 깨어보니 그야말로 그림자도 없는 꿈이었습니다.
아! 영애 씨!
꿈을 깨어보니 여전히 외로운 방안에 하얀 전등 빛만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을 비 소리만 구슬프게 들리더군요. 나는 즐겁고도 서러웠습니다. 청년회에서 보던 당신의 얼굴을 한 번 다시 눈앞에 그려놓고, 청년회에서 듣던 당신의 목소리를 찾아보려 하였으나, 그러나 그 기억은 벌써 멀리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영애 씨!
나는 눈을 다시 감고 그 즐거운 꿈을 한 번 더 찾아보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야속하더군요. 그 꿈은 다시 볼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울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다시 사모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조금도 잠을 자지 못하고, 어젯밤을 꼭 앉은 채로 새웠지요.
아! 영애 씨!
나는 냉정하려야 더 냉정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나의 온몸은 당신을 위하여 불덩어리가 된 듯합니다. 이제부터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를 사랑하든지 나를 배척하든지, 그것은 나의 상관할 바 아닙니다.
나는 당신을 위하여 피가 돌고 피가 끓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내가 죽기까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나의 즐거움이 되었고, 나의 생명이 되었습니다.
아! 영애 씨!
나를 안아주시렵니까? 나를 차버리시렵니까? 베일을 쓰고 감람나무 아래 숨어서 나를 기다리신 것은, 당신이 나를 사랑하여주시려는 그 무슨 예시가 아닐까요? 나는 그 꿈 하나만은 영원히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꿈속에 길이 살려고 합니다.
영애 씨!
나를 사랑하여주시는 것은 자유입니다. 이 편지를 보고 과히 욕하지 마시고, 정열에 우는 이 작은 시인의 가슴을 생각하여주십시오. 나도 염치가 있고, 예절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염치와 예절을 깨뜨리고 당신께 편지를 보내게 된 나의 충정이 어떠하겠습니까? 나는 다만 나의 열정을 당신께 전하기 위하여 이 편지를 썼습니다.
영애 씨! 많은 복 받으십시오. 그만 붓을 던집니다.

10월 7일

독약을 마신 후에
-최후로 화복 씨에게

나의 사랑하는 화복 씨!
나는 이제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요. 떨리고 불타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화복 씨! 화복 씨!’ 하고 부를 뿐입니다. 나는 이제 하루가 지나지 못하여 그만 죽을 사람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장차 나에게서 떠나가려 합니다. 당신을 알뜰히 생각하는, 그 아름다운 마음까지 나에게서 떠나가려 합니다. 이 편지가 나의 최후의 목소리요, 나의 최후의 눈물입니다.
아! 화복 씨!
나는 붓대를 들지 못합니다. 나는 정신이 없어요. 온몸은 흐릿한 몽롱 속에 빠졌다가 겨우 나에게 희미한 감각을 줍니다. 그 감각이 일어날 때에는 내 몸을 녹여내는 양잿물 기운이 코에 푹푹 사무침을 겨우 깨닫습니다. 나는 그 양잿물 기운을 코에 느끼며, 잠꼬대하듯이 몇 마디 지껄입니다. 이 말을 옆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하여 당신에게 써 보내는 것입니다.
아! 화복 씨!
나를 영원히 잊어버리지 마셔요. 그리고 나를 영원히 생각하여주셔요. 나를 영원히 잊어버리지 않고, 나를 영원히 생각하여주신다면, 나는 기쁜 마음으로 죽겠나이다. 죽어 저승에 가서도 평안한 마음을 갖겠어요. 이것이 내가 죽으며 당신께 바라는 최후의 유언입니다.
아! 화복 씨!
나는 당신을 위하여 살았어요. 그리고 당신을 위하여 죽어요. 애인을 위하여 살고, 애인을 위하여죽는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일까요? 나는 죽음의 길을 떠나면서도 이것을 생각하면 도리어 기쁩니다.
지난 봄 복숭아 가지가 창에 비친 그 어는 날 밤에 내가 당신의 손을 잡고 DS학교 사무실에서,
“나는 당신을 위하여 살고, 당신을 위하여 죽겠습니다. 나는 당신의 물건입니다. 당신을 떠나서는 살지 못할 사람입니다.”
하고 나는 맹세하지 않았습니까? 옳습니다. 나는 그때 맹세 그대로 오늘 실행하게 되었군요.
그러나 화복 씨!
나는 한 가지 한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도 사랑하고 사모하던 당신과 원하던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그만 죽어버린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고통입니다. 더욱이 다시 한 번 뵙지도 못하고, 그만 죽는 것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아픈 원한입니다.
아! 화복 씨!
죽기 전에 당신의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요. 그리고 당신의 목소리를 한 번 더 듣고 싶어요. 그 얼굴, 그 목소리는 어디를 갔나요! 속히 내 앞에 나타나 내 귀에 들려주셔요. 아! 그러나 소용없습니다. 당신은 5천 리 밖 동경에 있고, 나는 이 한양에 있으니, 어찌 내 앞에 나타나고, 어찌 내 귀에 들려줄 수가 있겠습니까?
당신이 아까 우리 오빠가 보낸 전보를 보시고 황망히 오신다 하여도, 그때 이 사람은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요, 구더기 스는 시체로 변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편지를 보실 때에도 나는 이미 흙덩어리로 돌아가는 고기 덩어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아! 화복 씨!
생각하니 섧습니다. 나는 왜 그리운 당신과 살지 못하고, 내 생명을 내 손으로 끊고 그만 죽을까요! 이것이 나의 죄일까요, 부모의 죄일까요! 그리고 사회의 죄일까요, 운명의 죄일까요! 아닙니다. 나의 죄도 아니요, 운명의 죄도 아닙니다. 부모의 죄요, 사회의 죄이지요. 나는 과도기에 있는 조선사회에서 완고한 부모의 놀이감이 되어 그만 죽어버리는 하나의 희생자입니다.
이제 말하겠습니다.
화복 씨!
그제 저녁에 우리 부모는 나를 보고, 돌연히 계동에 있는 김모의 집으로 시집을 가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당신의 사람이 된 내가 어찌 그 말을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나는 그 자리에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또 모든 일을 내 마음대로 한다고 하였지요. 이 말을 들은 우리 부모는 얼굴이 빨개지더니,
“무엇이 어쩌고 어째!”
하고 벼락같이 호령을 하며, 나를 죽어라 하고 난타하더군요. 그리고 나중에는,
“네가 죽어도 김가의 집으로 시집을 아니 가고는 견디지 못할걸…”
하고 하늘이 내려앉는 듯한 무서운 위협을 하더군요. 나는 부모에게 위협과 많은 매를 맞고, 그날 밤에는 한잠도 자지 못하고, 웃방에 홀로 앉아 울기만 하였습니다.
아! 화복 씨!
나는 울며, 나는 서러워하며, 천 가지 만 가지로 생각을 하였지요. 그러나 완고한 우리 부모는 내 말을 종시 듣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뜻대로 할 것은 정한 일입니다. 내가 살아 있으면, 김가의 집으로 시집을 가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겠어요.
그리하여 나는 그제 저녁 밤새도록 또는 어제 아침부터 밤까지 여러 가지로 생각하였으나, 도시 시원한 길이 없더군요. 죽지 않고는 다시 더 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아침에 양잿물을 먹었습니다.
아! 화복 씨!
나는 갑니다. 당신을 두고 나는 갑니다. 19세의 꽃다운 청춘을 일기로 하여 나는 그만 갑니다.
“화복 씨! 화복 씨!”
나는 당신의 이름을 한 번 더 부르고 싶어요. 그러면 세상에서 많은 복 누리십시오. 죽어 저 세상에서나 반가이 만나, 방해 없는 사랑 속에 살아보사이다.

12월 5일
서울 H병원 6호실에서, 죽음의 길을 찾아가는 홍순애는 올림

책속에서

알라딘제공
[P.13] 당신의 노래는 몹시 아름다웠습니다. 청춘의 마음을 취하게 하고, 청춘의 가슴을 잠재울 듯한, 그 부드럽고 맑은 목소리는 마치 어여쁜 금실이 제 마음대로 풀리는 듯하였습니다. 더욱이 복스럽고 하얀 얼굴 위에 붉은 웃음을 띠우고 갸웃갸웃 표정을 지어가며 노래하는 당신의 모양은 그야말로 천사 같았습니다.
[P. 20] 사랑하는 화복 씨! 나는 이제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요. 떨리고 불타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화복 씨! 화복 씨!’ 하고 부를 뿐입니다. 나는 이제 하루가 지나지 못하여 그만 죽을 사람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장차 나에게서 떠나가려 합니다. 당신을 알뜰히 생각하는, 그 아름다운 마음까지 나에게서 떠나가려 합니다. 이 편지가 나의 최후의 목소리요, 나의 최후의 눈물입니다.
[P. 28] 사랑하는 벽계 씨! 이 저를 띄우고 있는 이 푸른 물은 한없는 곳으로 통하였을 터이지요. 당신이 목욕하시는 그 PM강으로도 통하였을 터이지요. 벽계 씨, 저는 이 물에 머리를 감았습니다. 저의 검은 머리를 감은 말없는 푸른 물은 이 강을 한없이 흘러, 당신이 계신 그 강을 지나갈 터이지요. 그러면 그때 저의 머리를 감은 이 물이 벽계 씨의 허리를 감고 내려갈 터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