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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6

1. 웃음에 관하여 …… 13
2. 비웃는 자와 조롱하는 자 …… 65
3. 부조화 …… 109
4. 유머와 역사 …… 149
5. 유머의 정치학 …… 207

추천의 말 …… 249
주석 ……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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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란 무엇인가 : 농담과 유머의 사회심리학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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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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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웃는가?”

‘유머 인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이 책은 유머의 본질과 기능을 파고든다. 유머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웃는가? 너털웃음, 키득거림, 소리 없는 웃음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가? 유머는 체제 전복적인가? 유머로 상대의 이견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까? 우리는 ‘위트’를 정의할 수 있을까?
위와 같은 질문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며, 이 책은 다양한 철학적 개념을 도입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탁월한 유머로 가득 찬 이 책은, 그러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유머에 관한 인류 정신의 발달 과정을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유머가 부조화에서 기인한다거나, 유머가 타인에 대한 가학적인 형태의 우월감을 반영한다는 등의 다양한 이론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또 한편으로,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아퀴나스, 홉스, 프로이트, 바흐친에 이르는 광범위한 인용을 통해 수세기에 걸친 유머의 사회적·정치적 진화 과정과 그 기저에 깔린 정신분석적 기제를 살펴본다.
언어공격과 혐오발언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유머와 웃음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또 유머가 사회적 갈등을 바로잡는 수단이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이 책이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 믿는다.

◈ ‘유머 인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테리 이글턴
인생이 연극이라면 절반은 비극이고 절반은 희극이다. 그래서 희극과 유머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것은 우리 인생이 가지는 의미의 나머지 절반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과 같다. 유머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잠깐의 쉼과 즐거움을 주는 작은 오락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테리 이글턴의 책은 이런 통념을 뛰어넘어 ‘웃음’, ‘우스움’, ‘우스개’와 그 주변 현상(희극, 위트, 풍자, 아이러니 등)에서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 유머라는 보물을 찾기 위해 테리 이글턴은 과거와 현재의 지도를 펼치며, 철학자, 사상가, 작가 등이 걸어갔던 길을 따라가 보며 겹치고 갈라지는 다양한 지점을 확인한다.
인간에게 유머와 웃음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현상이지만, 그 존재 이유는 여전히 신비의 베일에 가려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부터 시작해서 근대의 걸출한 사상가들에 이르기까지 유머와 웃음은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고 부정적 혹은 긍정적 평가를 받아 왔다. 우리 시대 최고의 문학 비평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테리 이글턴의 이 책은 특히 철학자 및 사상가 중심의 기존의 유머학 저서에서 느껴지는 아쉬운 부분을 문학을 통해 보완해주고 있다. 이로써 이 책은 ‘유머 인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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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9] 웃음은 전체로서의 세계에 관한, 역사와 인간에 관한 진리의 본질적 형태 가운데 하나다. 세계와 관련한 독특한 시각이다. 엄숙한 관점에서 볼 때 못지않게, (어쩌면 훨씬 더) 세계가 온전하게 다시금 새로이 보인다. 따라서 웃음은 보편적인 문제들을 제기하기에 엄숙함만큼이나 위대한 문학 안으로 들어갈 자격이 있다. 이 세계의 본질적인 특정 측면들은 오직 웃음만이 접근할 수 있다.
[P. 74] 우리는 유머가 쓸데없고 비기능적이라고 여기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이런 우리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유머의 가장 전통적인 기능 가운데 하나는 사회 개혁이었다. 인간을 꾸짖어 덕성을 갖게 할 수 없었을지언정, 풍자는 그렇게 되도록 할 수 있다. 이 경우 적의는 고상하고 점잖은 결말로 이어진다. “인간들은 설교로는 고칠 수 없던 잘못들을 웃음거리가 되면서 고칠 수 있었다”라고 프랜시스 허치슨은 서술했다.
[P. 86~87] 우주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다는 데서 오는 이런 확고한 안심감은 여러 경험들 가운데서도 본질적으로 가장 희극적이다. 물론 웃긴다는 의미에서 희극적이라는 게 아님은 분명하다. 유머는 그로부터 길러지는 평정심에서 흘러나올 수 있다. 말하나마나, 이것은 비난의 여지없이 완벽하다는 뜻도 아니다. 심오하다고 해서 꼭 타당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사방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불행과 차분하게 거리를 둔 채로, 파국을 맞고 피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라는 사실을 아는 상태에서, 현실을 어떤 장대한 예술 작품처럼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