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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반지 : 평화의 소녀상 이야기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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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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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소녀상 이야기
일본대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진 것은 일본의 공식적인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할머니들의 수요 집회 1,000회 째였다. 그 후 ‘평화의 소녀상’은 우리나라와 세계 곳곳에 세워지고 있다. 소녀상은 평화와 인권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다. 이 책은 소녀상 이야기를 아이들이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만화를 통하여,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꽃다운 소녀들의 아픔과 슬픔을 그렸다. 또한 만화와 함께 아이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가 그린 그림과 글, 할머니들의 아픔과 슬픔을 같이 하는 아이들 그림과 글,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적 진실과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수요 집회, 그리고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읽을거리로 실었다. 또한. 일제 강점기의 실상과 일본의 역사 왜곡 반대 운동을 담았다.
이 책의 만화 <꽃반지> 원화는 민족미술협의회에 주체했던, ‘일본군 위안부와 조선의 소녀들’, 앙굴렘 국제 만화축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전시회에 출품되어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꽃반지 내용 소개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 둘레에 사람들이 모여 시위를 하고 있다. 소녀상이 일어나 누구를 반갑게 맞이하러 뛰어간다. 소녀는 순간 할머니로 변한다. 죽은 할머니의 영정으로 변한다. 할머니는 독거노인으로 연고자가 없이 화장된다. 유품으로 구리로 만든 꽃반지가 남아있다. 꽃반지를 통해 과거로 돌아간다. 할머니의 과거, 일본에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했던 과거로.
할머니는 고향 마을에서 같이 끌려와 친자매처럼 지내는 윤미순 이라는 동생이 있다. 둘은 아픔과 슬픔을 서로 보듬으며 참혹한 위안부 생활을 이겨 낸다. 미순은 부대 안에 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 병사가 준 꽃반지를 자랑한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은 막바지였다. 돌아가는 상황이 위기임을 느낀 미순과 언니는 탈출을 생각한다. 마침 미순에게 꽃반지를 선물로 준 조선인 병사 이철한도 섬 지도를 주며 탈출을 권유한다. 자신도 탈출해 독립군으로 갈 거라며 결국 마지막이 되는 이별의 말을 나눈다. 일본군은 전세가 불리함을 알고 조선인 위안부들을 다 폭탄으로 죽일 계획을 모의한다. 이것을 모르는 미순은 언니가 먹을 것을 구하러 간 사이에 참혹하게 죽는다. 살아 돌아온 언니 경숙은 해방이 되어 귀향을 하지만, 마을에 들어서자 과거 끌려갈 때 상처가 환영으로 사무친다. 아직 소녀였던 동생 미순이 일본군에 끌려가던 환영이 비참한 위안부 생활의 환영과 함께 언니 경숙을 괴롭힌다. 해방이 되었지만, 친일파가 득세하고 일본군 위안부 생활이 부끄럽고 멸시를 받을 걱정에, 더구나 동생 미순이 죽고 자신만 살아왔다는 자책감으로 경숙은 결국 고향 마을 들머리에서 발길을 돌려 기차를 타고 타지로 떠난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타향을 떠돌며 살은 경숙의 남은 일생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결국 죽어서 무연고자 화장으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할머니의 죽음이었다. 유품으로 남은 꽃반지만 그 진실을 안다. 꽃반지를 통해 다시 현재로 돌아온 경숙, 아니 죽은 할머니는 동생 미순과 해후한다. 경숙은 동생 미순을 상징하는 소녀상에 꽃반지를 끼워준다. 둘은 꼭 껴안는다. 소녀들은 영혼으로 다시 만난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픔과 슬픔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이승과 저승이 공존한다. <꽃반지>는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간 미순이란 소녀가 연합군에 밀려 패망하는 일본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함께 위안부 생활을 하며 지내다가 살아남은 언니 경숙이 과거와 현재,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하는 것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위안부 문제를 드러내준다. 이것은 작가의 창작 동기에서 드러난다.

탁영호 작가가 말하는 만화 <꽃반지>의 창작 동기
첫 번째는 전쟁 도발 국인 일본의 침략전쟁에 의해 희생된 많은 삶에 대한 추모이며 이러한 추악한 전쟁을 부정하는 일본에 대한 이미지 반발이다. 일본의 일부 예술가들은 각종 매체를 통해 자신들의 전쟁을 미화하고 있다. 특히 종전 후 일본인 피해에 대해 감성적인 접근을 하여 전쟁의 실상을 교묘하게 왜곡하고 있다. 자신들이 죽인 한국을 위시한 아시아의 엄청난 무고한 삶을 역사의 구덩이에 묻어버리고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며 본토 폭격으로 희생된 일본 민간인을 전쟁의 희생자로 미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꽃반지>는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인생과 청춘을 처참히 도륙 당한 한국인을 표현했다
두 번째는 종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한국인들의 조국에서의 멸시와 부당한 처우이다. 어쩌면 그들에게 조국에서의 삿대질은 전쟁터에서의 능욕보다 더 큰 아픔이었을 것이다. 그 아픔과 처우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김서경, 김운성 부부 작가의 추천사
오늘도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습니다. 오랫동안 이 어린 소녀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상처를 숨기며 살아야 했고 수많은 시간을 소리 없는 눈물만 흘려야 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하고서도 환한 웃음보다는 아픔을 숨기며 견뎌야 했고 이후 46년이란 세월이 지난 1991년에서야 나는 일본군 위안부였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선 할머니가 되어버린 소녀들이 눈이 오고 비바람이 쳐도 20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희 부부는 그러한 할머니가 된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평화의 소녀상을 1000차 수요 집회를 맞아 일본 대사관 앞에 설치하여 할머님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함께 하고자 하였습니다.
탁영호 선생님의 작품, 평화의 소녀상 이야기『꽃반지』는 작가가 오랜 세월 이 문제를 아파하고 고민한 결과로 저희와 작품을 본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저리게 하고 목이 메어 오게 하였습니다. 탁영호 선생님의 만화는 한국적인 한의 정서를 충실히 풍기면서 아픔을 표현하였고 작품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상상력을 유발하면서 반전의 묘미를 주었습니다. 어떤 관객은 반지가 소녀상에 왜 없는지를 묻기도 했습니다. 작가의 오래된 관심과 공감하던 마음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내용을 만화란 친근한 재료로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일으키는 예술로 승화 시켰습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소녀들의 영혼이 서로 만나는 장면은 뭉클해져오는 마음을 누를 수가 없게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보고 전쟁이 아닌 평화에 대한 꿈을 꾸길 바라며 할머님의 아픔이 우리의 아픔임을 느끼고 이에 대한 각자의 마음을 나누고 극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으면 합니다.

아이들을 위해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미래의 어른이다. 미래의 주인공인 아이들이 우리 역사, 비록 부끄러운 역사라 할지라도 바로 알아야 한다. 아이들은 진실을 비켜가지 않는다. 다음은 ‘유럽 의회에 일본군‘위안부’ 결의안을 이끌어낸 김원옥 할머니 연설 중에 한 한 대목이다.
“ 수요 시위에서 지금 한창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 아이들을 보면서 제게는 큰 숙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저 아이들만큼은 내가 겪은 것을 다시 겪게 해서는 안 된다’는 간절한 소망이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을 올바르게 밝혀야 합니다. 힘들지만, 제 경험을 통해서 일본이 어떤 일을 했고,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여러분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남은 생이 얼마 없으니 그동안이라도 한이 풀어지기를, 한마디라도 진실한 사과의 말을 듣는 것이 소원입니다.”

아이들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드리는 글
위안부 할머니들에 관한 그림을 그릴 때, 아직 너무 젊은 나이셨는데 그런 일을 겪으셔서 슬프다고 생각했다. 마치 한 송이 예쁜 꽃과 같은 나이였을 텐데……, 그런 사건으로 꽃이 무참히 짓밟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아직 어렸던 나이의, 부서져 갔던 꽃들을 내 그림에 담아내게 되었다.(김단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아픈 고문도 당하고 힘든 일만 해야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계속 더 그림을 그리며 일본이 싫어졌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그때 얼마나 괴로웠을지 상상도 되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일본에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김의산)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알고는 있었지만,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자료를 찾고 책을 읽는 과정에서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얼마나 힘드셨을까?’라는 감정을 넣어 그분들의 아픈 과거와 현재에 함께 고민하고, 힘이 되어 드리고 싶다. 그래서 그림 속에서라도 밝은 소녀의 얼굴로 갖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해드리고 싶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하나도 몰랐다가 그림을 그리면서 알게 되었다. 무섭고 슬픈 마음이 들었다. 꽃이 내리는 예쁜 길로 편안하게 살던 집으로 돌아가는 할머니들의 옛날 어렸던 모습을 그렸다.(황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