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성과가 외환위기 이후 뚜렷이 악화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학자들이 다양한 처방을 제시한 바 있고, 역대 정부도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2000년대 이후의 성장률 하락과 소득 불평등 확대 추세에서 나타나듯이 양적 측면에서나 질적 측면에서나 만족스럽지 못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경제성장 속도가 낮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선진국인 영국,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도 그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미국, 일본, 서유럽과 같은 선진국의 문턱에 미처 도달하기 전인데도(이들 선진국보다 상당히 낮은 소득 수준에서) 성장률이 빠르게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제조업과 주요 서비스업의 고용과 투자가 둔화되면서 소비.투자의 선순환 구조가 약화되어 경제 활력 및 좋은 일자리 창출 능력이 소진되고 있다. 게다가 대기업의 시장 독과점과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고,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높아지는 등 경제구조도 악화되고 있어 향후의 성장 가능성을 낙관할 수 없다. 지표상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함에도 불구하고, 독자적 원천 기술개발 및 상품 혁신 능력이 여전히 취약하다. 그 결과 자생적 동력에 의한 생산성 향상이 정체되고 있다. 1960, 70년대 우리 사회는 정치 및 경제적 역랑은 물론, 과학기술, 사회윤리 등의 문화적 역량을 포함한 사회시스템 전반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경제개발에 노력하였고, 결국 제조업 기반 구축 및 높은 경제성장률로 대표되는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민주화와 뒤이은 경제의 시장화로 우리는 경제발전과 관련한 사회시스템 관점을 상당 부분 잃어버렸다. 민주화된 정치체제에 걸맞은 경제체제와 문화, 시장화.지식화된 경제구조에 걸맞은 정치체제와 문화를 정립하지 못함에 따라 정치체제, 경제체제, 문화가 서로 조화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점차 국가 발전 방향을 둘러싼 혼선과 사회 갈등 증가, 경제성장 둔화로 이어졌다. 현실 속의 경제는 경제 논리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정치에서 창출된 제도, 문화에서 나오는 가치관과 행위 규범, 학문에서 나오는 지식 및 기술 등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상호작용을 주고받는다. 특히 경제발전은 경제만이 아니라 정치, 문화 등 사회 제 분야가 연관된 통섭적 현상이고 과학기술 및 자연 환경과도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경제 논리적 타당성만이 아니라 정치 및 문화적 관점의 검토, 과학기술과 자연 환경의 변화 방향에 대한 고려도 아울러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사회나 경제계의 지도층만이 아니라 노동자, 중소기업인 등 여러 경제주체가 동참하여야 하는 과제다. 그러므로 한국경제가 의미 있는 발전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정치.경제.문화를 포괄하는 사회시스템 관점에 바탕한 비전과 전략이 갖추어져야 한다. 더불어 그러한 통섭적 전략이 각 사회계층이 공감하고 동참한 가운데 일관성 있게 추진되어야 한다. 주류 경제 이론은 사회시스템 전체보다는 경제 분야에 집중하고, 또 경제의 발전 과정보다는 균형 성립 과정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당면한 한국경제의 성과 악화 문제를 규명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제시하는 데는 미흡하다. 진화론은 생태계 속의 각 생물이 짝짓기에 의한 유전자 교차, 돌연변이 등을 통해 새로운 유전자를 창출, 변화하는 환경에 시의적절하게 적응함으로써 생존.번성해가는 과정을 잘 설명한다. 경제의 발전은 이러한 생태계의 진화 과정과 매우 비슷하다. 경제발전 역시 기업 등의 각 경제주체가 변화하는 자연 및 사회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개발하여 보다 유용한 상품을 생산.판매하고, 그 결과로 각 경제주체가 더 많은 이익과 물질적 편의(소비자 후생)를 누림은 물론 경제시스템 전체의 물질적 풍요가 높아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비록 경제 속에는 인간이라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가 활동하고 있지만 인간 또한 여타 동식물과 마찬가지로 생태계의 한 구성 요소이고, 경제 역시 생태계라는 더 큰 시스템에 속해 있다. 경제시스템 역시 생태계처럼 정보 처리와 정보 저장의 특성을 갖는 분야이므로, 이러한 분야에서 질서를 창출하는 공식인 진화알고리즘을 좇아 진화한다. 그러므로 한국경제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진화론에 입각해 분석함으로써 그간 한국경제가 발전해온 과정을 더욱 입체적이고 동태적으로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경제시스템의 진화’라는 관점, 즉 경제의 시스템적 특성과 경제발전의 진화적 특성에 착안하여 한국경제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한국경제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통섭적으로 이해하고 더욱 현실성 높은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한국경제의 성과가 악화될 수밖에 없는 근본 원인을 총체적인 시각에서 짚어보고, 장기적인 시계(視界)에서 향후 한국경제시스템의 진화를 촉진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책속에서
1. 경제시스템 진화론 소개 이 책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성과가 경제성장률의 하락과 독자적 혁신 능력의 부진 등 양적?질적 측면에서 악화되고 있는 원인을 알아보고 대응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경제의 시스템적 특성과 경제발전의 진화적 특성에 착안하여 경제시스템의 진화라는 관점에서 한국경제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고 향후 발전 방안을 도출하였다. 시스템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경제시스템은 독자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상위 시스템인 생태시스템 및 사회시스템의 하위(부분) 시스템이자 여타 하위 사회시스템인 정치시스템 및 문화시스템의 병렬 시스템으로서 존재한다. 또한 생물학적 진화와 유사한 원리에 따라 상위 시스템의 영향을 받으면서, 여타 하위 사회시스템과 상호작용하면서 진화한다. 경제시스템도 생태시스템의 진화와 동일한 진화알고리즘, 즉 차별화(다양한 변이의 생성)-선택(다양한 변이 중 경쟁을 통해 적합한 대안을 선별)-증식(선택된 대안의 증폭/복제)의 과정을 통해 진화한다. 생물의 진화에서 자연 환경이 진화에 적합한 유전자를 지닌 생물 종(개체)을 선택하듯이 경제시스템에서는 경제를 둘러싼 환경(진화경제학에서는 이를 진화의 적합성을 결정하는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적합도함수’라고 하며, 자연 환경, 사회 환경, 세계 정치경제 상황, 국내외 경쟁 상황 등으로 구성)이 그 역할을 한다. 또 생물의 유전자에 해당하는 진화의 요소가 경제시스템에서는 물리적 기술(PT, Physical Technology), 사회적 기술(ST, Social Technology), 사업계획(BD, Business Design) 등의 진화 인자이다. 곧, 주어진 국내외 경제 환경(적합도함수)하에서 기업을 비롯한 각 경제주체가 물리적 기술(지식공동체), 사회적 기술(ST), 사업계획(BD) 등 3가지 진화 인자를 차별화하여 환경에 적합한 상품을 개발함으로써 경제시스템이 진화해나간다. 다만, 경제시스템은 사회시스템의 일부이기 때문에 인간이 그 진화의 목적을 설정하고 진화 인자 및 상품의 창조자로 기능한다는 점(즉, 인간의 욕망과 행동양식, 기술과 지식의 발전 논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생태시스템과는 차이가 있다. 생태시스템의 진화 공간이 ‘자연 환경-생물체-유전자’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 경제시스템의 진화 공간은 ‘경제 환경-경제주체-상품-진화 인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한국경제시스템의 진화(발전) 과정을 적합도함수와 경제시스템의 특성 등을 기준으로 기반조성기(1945~1961년), 발전연대(1961~1987년), 이행기(1987~현재)로 구분하였다. 먼저 각 시대별로 진화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하는 경제 환경(적합도함수)이 어떠한지 살펴보고, 이에 대응해 PT, ST, BD 등 진화 인자가 진화하는 과정을 진화알고리즘을 바탕으로 분석하였다. 또한 진화의 동태적인 과정을 살피기 위해 3개 진화 인자의 기초 조건(각 시대 초기에 전기로부터 물려받은 3개 진화 인자의 상태)을 고려하였다. 경제주체가 이러한 기초 조건에서 출발하여 시대별 적합도함수의 제약하에서 어떻게 새로운 진화 인자를 ‘차별화-선택-증식’해나가는지 볼 수 있었다.
다음에는 진화알고리즘을 통해 진화한 진화 인자 각각의 특징을 ‘진화의 촉진’ 프레임으로 평가하였다. 우선 PT의 경우 진화의 발생 분야(농업, 제조업, 서비스업 등으로 구분), 진화의 주체(개인, 기업, 정부), 그리고 PT의 전문성?복합성 수준 등에 대해 검토하였다. ST의 경우 정치?경제?문화 등 각 영역별 사회시스템이 경제시스템의 진화를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를 중점적으로 평가하였다. ‘차별 없는 인센티브 부여’, ‘강한 상호주의(인간이 타인과 협력하고자 하는 성향과 동시에 협력 규칙을 위반하는 자에 대해서는 응징하려는 성향이 있음을 말함) 원칙’에 기반하여 시스템 구성원들의 자발적 경제활동 참여와 상호 간 경쟁/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능하는지를 점검하였다. 특히 사회적 참여와 경쟁/협력 촉진에 가장 이상적인 형태인 정치 분야의 민주주의, 경제 분야의 시장경제체제, 문화 분야의 변화 친화성을 각 분야별 핵심 기준으로 삼았다. BD(사업계획)는 PT와 유사하게 진화의 중심 분야와 주체, 그리고 BD의 위험도(성공 여부 예측 가능성)를 기준으로 살펴보았다. 진화 인자의 개량?창출은 결국 생산요소(자연 자원, 자본 및 노동 등)의 투입 증대와 생산성 향상으로 귀결되며, 이 두 가지가 종합된 지표인 경제성장률로 그 진화 성과를 최종 측정할 수 있다. 다만 이 책에서는 연구 방법의 특징을 살려 시대별로 한국경제시스템이 시스템 및 진화의 원리에 맞게 작동함으로써 경제 환경의 변화에 부합하는 새로운 진화 인자를 시의적절하게 창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실제로 그러하였는지를 주로 살펴보았다. 구체적으로는 한국경제시스템의 대내적 포용성과 대외적 개방성(경제시스템의 경제 환경과의 정합 정도), PT와 BD의 진화 잠재력과 실제 진화 정도, ST의 경제주체별 경쟁/협력 역량의 향상 유인 정도와 실제 경쟁/협력의 증진 정도, 진화 인자 사이의 정합 정도 등을 분석하였다. 요컨대 경제시스템의 진화에 있어서는, 우리 경제의 역사적 진화 과정을 되짚어볼 때도 단순히 PT의 진화에 집중하기보다는 ST의 중요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특히 경제가 성숙할수록 자연 환경보다는 인간의 욕구와 행태가 중요해지므로 경제 수준에 적합하게 ST를 개선함으로써 다양한 경제주체들의 경제활동 역량을 향상하고, 이들의 자발적 경제활동 참여와 상호 간 경쟁/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적절한 ST가 밑받침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적합도함수에 걸맞으면서 진화 역량 내지 생산성이 높은 PT와 BD를 더 많이 창출할 수 있고, 경제발전과 인간 행복이 선순환하는 경제시스템으로 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한국경제시스템의 진화 과정 짚어보기 한국경제시스템은 건국(정부 수립) 이후 100년이 안 되는 기간에 산업혁명을 완성하였고 현재는 지식혁명을 경험하고 있다. 한국에서 산업혁명은 기반조성기(1945~1961년)에 태동하여 발전연대(1961~1987년) 중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발전연대의 산업혁명은 제조업과 대기업이라는 진화 잠재력이 큰 PT?BD를 선진국으로부터 도입, 복제해 정착시켰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라는 ST를 본격 활용하여 경제주체의 경제활동 참여를 확대하고 상호 간 경쟁/협력을 강화한 데 주로 힘입었다. 이를 통해 생산요소의 투입을 크게 늘리고 생산성을 빠르게 향상할 수 있었고 결국 한국경제시스템이 산업(제조업)경제시스템으로 대진화하였다. 그러나 발전연대의 PT 진화는 선진국 PT의 복제에 주로 기반하고 있었고, ST는 배제성이 강해 사회적 포용성이 크게 낮았다. 이처럼 발전국가 패러다임은 후발자의 이익과 다수 경제주체들에 대한 억압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의 성공과 함께 사라질 운명(victim of its own success)’이었다. 한국경제시스템이 발전연대에 거둔 눈부신 성과에 힘입어 점차 지식경제로 진화하고 국민의 관계 욕구가 높아짐에 따라 그 유효성이 급격히 낮아진 것이다. 특히 1987년의 정치 민주화와 이의 경제?문화 분야로의 파급, 1980년대부터 시작된 세계경제의 지식화 및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진전, 외환위기 이후의 경제시스템 개혁에 따라 발전국가 패러다임은 더 이상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하였다. 이행기 한국경제시스템이 당면한 도전은 정치 민주화의 완성, 경제 시장화?세계화 및 지식화의 신속한 추진, 저출산?고령화 및 G2 체제의 부상에 대한 대응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행기 중 한국경제시스템은 이러한 도전을 극복하고 지식경제로 전환하는 데 사실상 실패하였다. 발전국가 패러다임의 유산인 독과점 재벌 대기업과 사회지도층의 강한 반발로 정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계층의 조직화를 통한 사회구조의 다원화는 크게 진전되지 못하였다. 경제의 시장화가 오히려 대기업의 시장 독과점 강화 및 경제 이익의 독차지로 이어지면서 광범위한 대중의 참여와 공동 번영에 기반한 진정한 의미의 시장경제체제를 확립하지 못하였다. 사회 문화의 수직성, 획일성이 지속되면서 개인의 전문성과 사회적 다양성이 순조롭게 높아지지 못하였고, 경제주체 간 자발적 경쟁/협력의 질서가 확립되지 못하였다. 이로 인해 지식경제에 필수적인 진화 인자의 독자적 차별화-선택에 기반한 자생적 진화 역량 축적이 정체되었으며, 투자?고용(생산요소 투입) 및 생산성 향상의 둔화와 이에 따른 경제성장률 하락이 초래되었다.
가. 시대별 진화 여건과 적응 노력 1) 기반조성기(1945~1961년) 기반조성기의 기초 조건은 PT의 경우 농업 및 소수의 생활필수품 관련 제조업 중심이었다. 당시 주요 제조업의 PT는 일제 식민지 정책의 결과 대부분 북한지역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남북분단과 함께 거의 상실되고 말았다. ST의 경우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의 정치경제제도와 문화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정치 분야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전제정치, 경제 분야는 민간 주도의 시장경제체제와 거리가 먼 정부 주도 경제체제, 문화는 수직적?획일적 문화를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적합도함수, 즉 경제시스템을 둘러싼 환경을 보면 우선 자연 환경의 경우 자연 자원과 토지가 크게 부족하였고, 이는 현재까지도 변함없는 숙명적 제약 조건이다. 사회 환경의 경우 인구가 과밀한 가운데 사회 구성원의 욕구(소비자의 상품 선호, 경제주체의 행위 규칙과 추구 가치 등)가 생존 욕구에 집중되어 있었다. 세계 경제환경을 보면 미국을 선두로 서유럽과 일본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구가하기 시작하였고, 국제 통상 질서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 냉전으로 자본주의 국가끼리는 비교적 개방적이었다. 다만 한국경제시스템의 지정학적 고립과 국제 시장 참여 미미로 이러한 조건을 활용할 여지가 적었다. 한편 세계 정치 환경의 경우 냉전질서가 한국경제시스템의 기본 틀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도입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함과 동시에, 한국전쟁과 이후의 첨예한 남북 대립의 원인이 되었다. 국내외 경쟁은 한국경제시스템의 낮은 대외 개방성, 자급자족적인 농업 중심 산업구조 등으로 높지 않았다. 이제 3개 진화 인자(PT?ST?BD)가 어떻게 진화하였는지 진화알고리즘을 기초로 살펴본다. 우선 PT의 진화는 전반적으로 부진하였다. 당시의 정부와 대학은 과학기술 연구개발 여력이 거의 없었고, 기업의 자체 연구개발 역량도 매우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중심 분야는 전통적인 농림어업과 생활필수품을 생산하는 제조업 등이었다. 그 이유는 기초 PT가 전통적 농업과 생활필수품 생산에 제한되어 있었고, PT 수요도 절대 빈곤 해소와 밀접한 농림어업, 경공업 등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PT의 진화 방식은 주로 기존 기술의 모방, 복제에 기반하였으며, 연구개발을 통한 PT의 차별화와 시장에 의한 선택은 최소한에 그쳤다. 대학과 기업 등이 독자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PT를 차별화하는 역량이 부족하였고, 시장제도의 확산이 미흡하여 경쟁메커니즘을 통한 우수 PT 선택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심적인 PT 개발 주체는 농업 및 생활필수품 제조업 분야의 가계와 기업이었다. 농가는 전통적 농경 PT를 단순 복제하거나 소폭 개량하여 사용하였다. 특히 신생 정부가 실시한 농지 개혁으로 대다수 농민이 농지를 소유하게 됨에 따라 이들의 PT 개발 욕구가 크게 향상되었다. 다만 농업의 자연 의존적 특성과 영세한 경작 규모 등으로 농업 관련 PT의 진화 잠재력은 한계가 있었다. 생활필수품 제조 기업은 일제강점기로부터 물려받은 PT를 복제하는 수준에서 출발하였다. 따라서 대체로 PT 개발 역량이 높지 않았다. 다만 한국전쟁에 따른 전쟁 물자 조달 및 전후 복구, 원조 물자 가공 등에 힘입어 관련 기술을 습득하고 학습함에 따라 일부 경공업에서 외국의 PT를 모방 또는 차별화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특히 제분, 제당, 면방직 등 3백산업은 후반기 들어 수출에 나설 정도로 PT 수준을 향상하였다. ST는 포용적인 방향으로 진화하지 못하였다. 우선 정치제도의 진화 과정을 보자. 정치제도는 배제적인 기초 ST가 비포용적인 사회 환경과 ST의 경로 의존성에 기대어 고착되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헌법에 의해 도입되었으나, 오랜 전통 속에 뿌리내린 전제왕정 가치관, 유교의 가족?국가 중심 집단주의 가치관이 더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부터 지속된 절대 빈곤과 한국전쟁 등으로 대다수 국민들이 사회 참여 등 관계 욕구보다는 생존 욕구에 집중하고 있었던 점도 비포용적 정치제도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줄였다. 생존이 불안한 상황에서는 자유보다는 빵이 더 시급하기 때문이다. 정치역학 면에서 노동조합 등 사회 세력이 적절히 조직화되지 못한 반면 이승만 정부는 금융?원조 자금에 대한 통제권, 남북 대립을 이용한 국민 억압 등을 바탕으로 정권의 이익을 자율적으로 관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결국 기반조성기 중 정치제도는 비포용적인 독재정치로 이어졌고, 정치제도의 책임성 결여(다수 국민 의사와 이익 대신 정권?지배층의 이익 중시), 연고주의와 부정부패로 인한 법치주의의 미확립, 낮은 정부 효율성 등이 초래되었다. 당시의 경제제도도 종전의 배제성이 유지, 강화되는 방향으로 진화하였다. 앞서 본 PT와 적합도함수의 특성, 그리고 정치의 배제성이 이에 영향을 미쳤다. 우선 주요 PT가 자급자족적 촌락 공동체 기반의 농업 위주로 구성되어 있음에 따라 경제 ST의 배제성이 쉽게 용인되었다. 더욱이 정부는 전쟁 물자의 조달, 귀속 재산 불하, 금융산업 및 원조 자금에 대한 통제를 바탕으로 사실상 경제 전반을 지배할 능력이 있었다. 이에 따라 기업 설립이 사실상 정부와의 연고에 좌우되었다. 기업 지배구조는 유교와 일제강점기의 수직적 질서, 노동의 만성적 초과 공급에 따른 사용자 우위의 노사관계에 영향받아 소유자가 기업을 독단적으로 지배하는 집권적 구조와 수직적 운영 원리를 갖게 되었다. 농업 중심의 경제구조, 기업 설립의 부진 등으로 사회 내 광범위한 분업 및 전문화와 생산물 교환을 위주로 하는 시장경쟁 메커니즘도 활발하게 작동하지 못하였다. 문화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기초 조건인 일제강점기와 유교의 수직적?획일적 집단주의(국가?가족 중심주의)가 유지되는 가운데 대다수 국민들이 농업(PT)에 주로 종사하면서 생존 욕구를 충족하는 데 급급하였고, 사회적 참여 및 관계 욕구는 가족 또는 촌락 공동체에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개인의 존엄성?다양성 존중, 구성원 간의 활발한 경쟁과 폭넓은 협력을 통해 새로운 질서와 혁신을 창출하는 문화가 발전할 수 없었다. 다만 현세적 성공을 강조하는 유교 전통이 물질 지향적 자본주의 가치와 정합하면서 물질적 부와 사회적 성취를 추구하는 경향이 자리 잡았고, 이를 위해 장기적 시계를 갖고 교육에 투자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이는 발전연대 들어 국민들의 경제적 성취 동기 폭발로 이어졌다. PT와 ST의 미흡한 진화는 BD(사업계획)의 진화 부진으로 직결되었다. BD는 전반적으로 일제강점기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농업 관련 BD는 농지 개혁에도 불구하고 당시 농업의 높은 자연 의존성과 한국 농지의 산간 지형적 특성, 일본인 전문가의 철수 등으로 인해 새로운 BD를 창출하기보다 기존 BD를 다수 가계에 증식하는 방식에 국한되었다. 제조업 분야 BD의 경우 당초 매우 진화 잠재력이 취약한 상태에서 출발하였으나 수요가 큰 생활필수품 분야를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진화 잠재력이 축적되고, 3백산업 등에서는 새로운 BD를 창출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 BD의 진화 방식을 보면 생활필수품 분야에서 소수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나서 기존 BD를 모방?복제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에 따라 기반조성기 BD의 예측 가능성은 비교적 높았다. 한편 이 시기 BD의 중심 주체는 농업의 경우 자영농이 중심이었고 제조업 등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양분되었다.
2) 발전연대(1961~1987년) 발전연대는 정부가 국가 경제발전(부국강병)을 최고 목표로 삼아 사회 전 부문을 동원하는 사회 운영 체제, 즉 발전국가 패러다임을 운용함으로써 한국경제시스템이 산업혁명을 이룬 시기이다. 정부가 발전국가 패러다임에 맞는 ST의 도입 및 PT의 제조업화, 대기업 중심 BD 확대 등을 강력히 추진하였고, 이로써 한국경제시스템은 농촌 사회 기반 농업경제 시스템에서 도시 사회 기반 제조업(또는 산업) 경제시스템으로 대진화하였다. 발전연대의 기초 조건은 PT?BD의 경우 여전히 열악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가운데 농업?경공업 등 생활필수품 산업 중심이었다. ST의 경우 기반조성기의 독재정치, 정부 주도 경제, 수직적?획일적 문화가 지배적이었다. 경제 환경의 경우 객관적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으나, 한국경제시스템 내부로부터의 변화에 따라 적합도함수로서의 기능은 크게 변화하였다. 우선 자연 환경 측면에서는 국내적으로 인구 증가, 도시화와 공업화의 진전으로 토지와 물 수요가 증가하였고, 국제적으로는 공업화와 수출 증대 정책으로 공업용 원료?에너지와 곡물 등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다. 사회 환경 측면에서는 인구의 급속한 증가와 인구 구조의 개선으로 경제시스템의 진화에 매우 유리한 조건이 형성되었다. 한편 사회 구성원의 욕구는 여전히 생존 욕구에 집중되어 있었으나, 국민의 성취 동기 폭발로 경제활동 의욕이 크게 높아진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회구조의 다원화는 기반조성기의 정부 우위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크게 진전되지 못하였다. 국내외 경쟁은 초기에는 국내 산업의 발전 미흡, 세계경제의 호조 등으로 높지 않았으나 경제발전과 더불어 기업 설립이 급증하고 수출 중심 공업화의 추진으로 세계시장에 편입됨에 따라 점차 높아졌다. 한편 정부의 수출 주도 공업화정책 채택에 따라 세계경제 상황과 통상 질서가 한국경제시스템에 매우 중요한 적합도함수의 하나로 부상하였다. 세계경제의 성장세는 초기에는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지속되면서 양호한 편이었으나, 후기에는 석유파동과 미국의 경기 후퇴 등으로 점차 둔화되었다. 통상 질서는 냉전으로 인해 자본주의 국가끼리 우호적인 정책이 유지되면서 양호하였다. 발전연대 중 각 진화 인자의 진화 과정을 살펴본다. 우선 PT?BD는 유리한 경제 환경, 개인?정부?기업 등 경제주체의 치열한 노력, 적절한 진화 전략이 잘 어우러지면서 급속히 진화하였다. 우선 세계경제 호조와 냉전질서로 선진국 시장이 개발도상국에 개방되어 한국이 선진국의 PT?BD를 모방하여 도입하는 데 유리하였다. 국내의 기존 PT?BD 수준이 매우 낮았기 때문에 선진국 PT?BD 모방 전략은 불가피한 것이기도 했다. 정부가 제조업 PT?BD를 개발 대상으로 선정한 것은 동 PT?BD의 진화 잠재력이 크다는 점, 당시의 통상 여건이 제조업 제품 수출에 유리했다는 점 등에서 시의적절했다. 풍부한 노동력과 부족한 자본 축적이라는 생산요소의 부존 상황을 고려하여 초기에는 수출 지향적 경공업, 중기부터는 수출 지향적 중화학공업을 순차적으로 개발한 것도 적절했다. 특히 1970년대 일본 등 선진국에서 인건비 상승 등으로 중후장대형 중화학공업이 사양화되어가자 이에 적극 진출함으로써 한국은 용이하게 외국의 전문성 높은 PT를 복제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제조업 중심의 완결성 높은 산업연관구조를 구축하게 되었고, 관련 PT를 획기적으로 다각화?전문화하여 한국경제시스템은 세계의 몇 안 되는 제조업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PT의 진화는 주로 공공 연구기관이 외국 제조업 PT를 학습?복제하여 국내 기업들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제조업 부문 기업들은 이들이 제공하는 PT를 생산 현장에서 활용해 BD로 구체화하였다. 이러한 복제 기반 PT 진화 방식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차별화와 선택’ 과정을 최소화함으로써 단시일 내에 PT를 획기적으로 향상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한편 1980년대 들어 중화학공업의 성장과 더불어 수출품의 품질 고급화를 위한 기술개발의 필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많은 기업들이 자체적인 기술개발에도 노력하기 시작하였다. 기업들의 독자적인 연구개발 활동도 크게 강화되었고 전자, 자동차, 조선 등 몇몇 산업 부문에서 성과도 이루었다. 정부가 세계시장을 목표로 대규모 자본과 노동을 투자해 표준화된 기능성 상품을 대량생산하는 방식(즉, 규모의 경제와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국제경쟁력을 획득하는 방식)을 주로 선택함에 따라, 이에 유리한 대기업이 PT?BD 진화의 중심 주체로 부상하였다. 대기업은 선진국 PT?BD의 복제에 기반해 대규모의 노동과 자본을 투입하여 생산 공정을 정교하게 관리하고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수출(규모의 경제 효과)하는 데 대단히 효율적이었다. 대기업은 대량생산 및 엄격한 공정?품질 관리에 적합한 집권적 조직 지배구조를 채용하였다. 일부 대기업가는 우수한 BD를 창출해 상품을 대량생산?수출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고, 다양한 업종에 진출하여 기업집단(재벌)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BD 창출의 주체는 주요 산업에서는 대기업이 중심이었으나, 여타 산업에서는 중소기업도 적극적이었다. BD의 성공 가능성 예측은 초기에는 비교적 용이하였으나 중화학공업화, 국제 경쟁 증가와 BD의 규모 확대 등으로 점차 어려워졌다. 다만 정부가 주요 분야 및 기업별 BD를 적극 지원하였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자본 조달 부담과 사업 위험을 상당 부분 덜 수 있었다. 한편 이는 기업가들이 정부에 기대어 과잉 투자하는 사업 행태를 갖는 계기가 되었고 외환위기의 원인으로도 작용했다. 발전연대에 PT?BD가 새로운 영역으로 급속히 확장된 데 비해 ST는 기반조성기의 배제적 ST를 연장하거나 이를 심화하는 방향으로 퇴화하였다. 경제발전을 지상 목표로 정부가 권위적으로 정치?경제 운영을 주도하는 발전국가 패러다임이 기초 ST의 배제성을 한층 강화, 고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사회 구성원들의 욕구가 여전히 생존 욕구에 치우쳐 있었고 사회구조가 다원화되지 못해 정부가 자율성을 상당 수준 가진 것, 복제 중심?규모의 경제 지향적 PT?BD 구성 등도 이에 기여했다. 우선 정치 분야를 보면 정치가 더욱 독재화되어 책임성과 법치주의가 약화되었다. 다만 당시 국민들에게 절실했던 생존 욕구의 충족에 집중하였다는 점에서는 책임성을 갖고 있었으며, 경제발전계획을 기반으로 산업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해 큰 성과를 거두었던 만큼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정부의 효율성이 높았다고 볼 수 있다. 경제 분야에서는 정부 주도의 계획경제에 가까워졌다. 다수 기업의 설립과 개인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었으나, 정부가 경제 운영 전반을 주도함에 따라 시장메커니즘에 기반한 민간 주도의 경제 운영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특히 주요 육성 대상 산업의 선정, 자본과 노동의 동원?배분 등에 정부가 적극 개입하였다. 기업 지배구조 역시 기반조성기 이래의 수직적 구조와 운영 원리가 심화되었다. 기업 내 협력과 사회적 활동은 강제적 규칙과 억압의 질서에 주로 의존하였다. 다만 정부의 경제발전 노력과 개인의 성취 동기가 맞물리면서 기업의 설립이 크게 늘었고, 이에 따라 시장에서의 경쟁도 높아지면서 시장메커니즘이 확산되었다. 문화는 사회에 대한 정부의 우위 강화와 더불어 더욱 수직화?획일화되었다. 사회적 협력은 여전히 연고주의에 바탕한 좁은 범위의 인격적 협력에 머물렀다. 다만 1960년대 중반부터 경제발전이 가시화되면서 개인의 행위 문화가 더욱 현세적?물질적 성취를 중시하게 되었고, 미래 지향적 태도도 확산되었다.
3) 이행기(1987~현재) 이행기는 경제 환경(적합도함수)과 PT 등이 크게 변화함에 따라 한국경제시스템이 발전국가 패러다임을 넘어 새로운 차원으로 전환을 모색하는 시기였다. 이행기의 기초 조건은 발전연대 진화의 동력이자 결과인 발전국가형 ST(발전국가 패러다임), 제조업 중심 PT, 수출 대기업 중심 BD이며, 특히 발전국가형 ST가 매우 공고한 상황이었다. 경제 환경은 국민의 관계 욕구 분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및 국내외 경쟁 심화, 국내외 경제의 정보화 및 지식화라는 세 가지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종전과 크게 달라졌다. 우선 국민의 관계 욕구가 팽창하면서 정치의 민주화, 민간 주도 시장경쟁 경제체제로의 전환, 조직 지배구조의 분권화, 문화의 수평화?다양화가 요구되었다. 그런데 이는 발전국가형 ST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었다. 한국경제시스템의 PT?BD는 발전국가형에서 선진국형 PT?BD로 전환되어야 했다. 한국경제의 선진국 근접, 국내외 경제의 지식화, 선진국의 첨단기술 보호 강화 등의 환경 변화로 선진국 PT의 복제에 기반한 진화가 어려워졌다. 세계화에 따른 국내외 경쟁의 증가로 중진국형 제조업을 축으로 하는 한국경제시스템 PT?BD의 경쟁력도 크게 낮아졌다. 한국의 PT?BD가 선진국 수준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하는 가운데 중국 등이 과거 우리의 장기였던 복제 기반 PT?BD 개발을 통해 급속히 추격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새로운 PT?BD는 선진국 모델의 복제가 아니라 한국경제시스템 스스로 차별화와 선택의 과정을 거쳐 육성?발전시켜야 했다. PT?BD의 자생적 차별화와 선택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려면 경제주체(개인, 기업 및 대학?연구소 등)의 전문성?다양성 증진 및 상호 협력 강화, 시장경쟁 기반 선택 메커니즘 확립 등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종전의 발전국가형 ST, 특히 집단주의 기반 수직적?획일적 사회질서와 문화가 정반대로 바뀌어야 했다. 그러나 이행기의 한국은 새로운 시대에 요구되는 ST와 기존의 발전국가형 ST 사이의 상충을 발전적으로 해소하지 못하였고, 이는 결국 새로운 PT?BD의 창출 부진과 경제시스템의 진화 부진으로 이어졌다. 이를 각 진화 인자의 진화 과정을 통해 살펴본다. 우선 PT?BD의 진화를 보면, 정부와 대기업은 이행기에도 발전국가형 PT?BD, 즉 조립 가공 생산 방식 기반 중후장대형?대기업 주도 제조업 그리고 선진국 모방 기반 PT?BD 개발 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하였다. 산상품 창출 기반 벤처기업 중심의 지식산업, 독자적 차별화-선택 기반 PT?BD 개발 역량을 적절히 육성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기존 대기업의 지식화도 전반적으로 부진하였다. 특히 내수 기반 대기업들은 2000년대 들어 국내시장에서의 독과점 등 시장 지배력에 안주한 채 새로운 PT?BD의 차별화와 혁신에는 소홀하였다. 다만 ICT, 자동차 산업 등 주력 수출산업에서는 신기술의 창출 및 기존 기술의 개선을 통해 세계시장에서 선도자로 부상하는 기업이 몇몇 나타났다. 시대적 상황에 부응하는 ST 전환의 실패가 PT?BD의 진화를 저해하였다. 발전국가 패러다임에 기반한 평균주의 교육 체제, 수직적?획일적 사회질서와 조직 문화가 유지되었고, 이에 따라 지식산업 PT 개발에 적합한 전문성과 협력 역량을 갖춘 각 분야별 전문가의 육성이 지체되었다. 새로운 PT?BD의 창출에 적합한 자율적이고 분권적인 조직 구조, 개방적 협력 태세를 갖춘 기업(벤처기업 등) 또는 조직(연구소 등)이 순조롭게 발전하지 못했다. 배제적 ST의 부작용으로 노사 협력, 거래 기업 간 협력, 관련 전문 기업과 외부 전문가 사이의 상호 보완적 협력이 확산되지 못함에 따라 융합형 PT?BD의 진화가 부진하고 연구개발의 효율성도 낮았다. 반면 발전국가의 장점이었던 장기적 시계에서의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 체제와 유능한 정부는 오히려 약화되어 장기적?일관적 정책에 기반한 PT의 개발이 지체되고 PT?BD의 확산과 공유를 위한 인프라의 구축도 미흡하였다. ST 자체와 관련해서는 신?구 ST 간에 상충되는 특성이 강하였는데, 바람직한 해결책은 발전국가형 ST를 지양하고 개방적?포용적 ST로 전면 전환하는 것이었다. 정치가 민주화되고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 운영 방식이 전격 도입되면서 새로운 변화가 시도되었다. 그러나 이는 발전연대에 형성된 기득권 계층의 저항이 완강한 데다 정치 지도자와 관료의 인식 부족이 겹치면서 대부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ST 영역 중에서는 유일하게 정치가 민주화되어 형식적으로는 개방적?포용적인 시스템을 갖추었으나, 노동자 등 다양한 사회계층의 조직화와 정치 참여가 여전히 부진하여 내실이 부족하였다. 경제구조와 기업 운영 방식에서는 재벌 대기업의 사회적 영향력 강화로 성장 우선주의(또는 국제경쟁력 논리) 및 주주 중심주의가 강조되면서 여전히 발전국가의 그것에 가까운 모습을 유지하였다. 외환위기 이후의 경제구조 개혁과 시장 개방에도 불구하고 국내 주요 산업에서 소수 재벌 대기업이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음에 따라 진정한 의미의 시장경쟁 메커니즘과 민간 주도의 경제체제가 성숙하지 못하였다. 기업 지배구조 역시 재벌 대기업을 중심으로 발전연대의 집권적?권위적 형태가 유지되었다. 자본시장 개방은 단기 이익 지향의 주주 중심주의의 확산을 가져와 기업의 인재?기술개발 및 장기적 성장을 저해하였다. 지식화에 발맞추어 기업 등의 각종 조직이 자율과 다양성에 기반한 ‘생각하고 창조하는 사람들의 집단’으로 진화하지 못하였다. 문화 역시 진화 친화성을 높이는 데 실패했다. 신자유주의의 자유경쟁 논리가 시장의 독과점을 더욱 공고하게 하면서 공정한 거래 및 성과 분배 규칙, 사회적 투명성과 비인격적 신뢰가 확산되지 못하였고, 경제주체 간 상호 존중과 다양성이 수용되지 못하였다. 승자 독식 경제 질서와 경제적 양극화에도 불구하고 최후 피난처인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한 데다, 경쟁 심화 등으로 창업 여건이 악화되면서 개인의 도전 정신 및 개척 의지, 혁신과 변화에 대한 수용적 자세도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정권의 단명화, 시장의 단기주의적 특성과 주주 중심주의 간 결합, 사회안전망 미흡 등으로 미래 지향적 태도가 위축되었다.
나. 시대별 진화 성과 시대별 경제시스템의 진화 성과를 경제시스템의 대내적 포용성과 대외적 개방성, PT?BD의 진화 정도, ST의 사회 내 경쟁/협력 유인 정도, 세 진화 인자 간 정합성 정도 등 4가지 척도로 살펴보자. 기반조성기의 한국경제시스템은 자급자족적 농업경제 시스템에 가까웠는데 농지 개혁을 통해 농업의 기반을 강화하는 등 시대 상황에 적합한 PT를 육성하였고, 이를 통해 당면 과제였던 국민의 생존 기반 확립에 약간의 성과를 거두었다. 따라서 그만큼의 포용성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대외적 개방성은 매우 낮았다. 세계 냉전체제에의 편입과 일본과의 외교 단절 등의 정치적 고립과 정부의 수입 대체 공업화 정책, 농업 중심의 자급자족형 산업구조 등의 경제적 고립이 겹쳤기 때문이다. 진화 인자의 진화 잠재력은 매우 취약한 수준에 머물렀다. 우선 농업의 특성과 농지 개혁에 따른 가구당 경지 면적의 축소 등으로 새로운 PT?BD 개발과 생산성 향상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정부와 민간 부문의 역량 부족 등으로 일부 생활필수품 관련 경공업 및 건설업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 외에는 PT?BD의 발전이 전반적으로 제한되었다. ST 역시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정당?노동조합 등 각종 사회조직의 결성과 사회구조의 다원화, 기업과 여타 경제 조직의 증가 및 시장메커니즘의 확산이 미미하였으며, 구성원 간 경쟁/협력을 활성화하고 민주주의적?자본주의적 발전을 추구할 수 있는 ST를 창출하는 데 사실상 실패했다. 독재 정권, 유교 및 일제의 유산과 남북 대치 등으로 수직적 문화가 온존되었다. 다만 개인을 중심으로 경제주체의 진화 잠재력은 다소 향상되었다. 농지 개혁과 자본주의의 도입을 바탕으로 경제적 이익 추구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확대되었다. 한국전쟁 후 인구가 증가하고, 의무교육의 확립으로 국민의 교육 수준이 향상되었다. 이에 따라 경제발전 과정에서 최고의 자산이었던 양질의 풍부한 노동력이 축적되기 시작했다. 한편 기업의 경우 비록 절대수가 작기는 했지만 생활필수품 제조업을 중심으로 늘어나기 시작했고, 3백산업 등에서는 기업의 진화 잠재력이 상당히 축적되어 수출에 나설 정도로 성장하였다. 마지막으로 경제시스템 내 진화 인자 사이의 정합성은 상당 수준 확보되었으며, 이에 따라 경제시스템의 운영과 유지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당시의 배제적 ST는 기초 ST의 연장선에 있어 서로 크게 어긋나지 않았고, 자급자족적 농업 중심 PT?BD나 사회 구성원의 생존 욕구와 상충되는 측면도 그리 크지는 않았다. 독재정치, 정부 주도 경제, 수직적?획일적 문화 등 영역별 ST들은 ‘배제적 특성’을 공유했고, 상호 정합했다. 결론적으로 기반조성기 한국경제시스템은 PT?BD의 진화 잠재력이 제한적이었던 데다 독재정치와 개방성 부족 등으로 ST의 배제성이 높아 진화 인자의 진화가 제한되었고 경제 성과도 보잘것없었다. 주된 PT였던 농업이 현상유지적이었고 ST는 지배층의 이익에 중점을 둔 것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사회계층이나 다수 구성원의 사회적 참여를 이끌어내고 상호 간 경쟁/협력을 촉진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발전연대 들어 한국경제시스템은 산업혁명에 성공하면서 자본주의적 산업경제시스템으로 대진화하였다. 발전연대의 한국경제시스템은 포용성이 높지 않았다. 발전국가 패러다임의 정부-대기업 주도적 성격, 선성장?후분배 정책에 따라 노동자 등 다수 구성원이 사회적 의사결정 및 이익 배분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 및 고용의 증가로 국민의 경제활동 기회가 늘고 소득이 빠르게 증대되어 생존 욕구를 충족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의 포용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대외 개방성을 보면, 외국 PT?BD의 적극적 도입과 수출 지향적 성장을 추진하였다는 점에서 기반조성기에 비해 진일보하였다. 다만 국내시장의 폐쇄성이 높았기 때문에 절반의 개방에 머물렀다. 발전연대 중 PT?BD의 진화 잠재력은 크게 높아졌다. PT의 발전을 위한 정부의 적절한 지원과 기업들의 자체 역량 강화가 두드러지면서 초기에는 경공업 PT가, 중기 이후에는 중화학공업 PT 및 대기업 기반 BD가 빠르게 발전하였다. PT?BD의 진화 방식이 선진국 모방에 초점을 둠으로써 신속히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개인과 기업의 전문성이 빠르게 높아지는 등 경제주체의 진화 잠재력도 순조롭게 향상되었다. 국민들의 교육열이 폭발하고, 정부와 대기업의 교육 및 기술 훈련 시스템 확충 노력이 활발하였다. 기업들은 외국 기술 도입과 학습으로 기술 역량을 빠르게 축적하였다. 특히 1980년대 들어 국제 경쟁이 심해지면서 기업들의 독자적 연구개발 노력이 크게 강화되었다. 이 시기에는 경제시스템 전반에 걸쳐 경쟁/협력이 크게 확산되었다. 정부의 세제?금융 지원 강화, 수출 급증 등에 따라 기업 수가 빠르게 늘었다. 정부가 중점 육성한 수출 제조업 등 전략 산업은 물론 관련 서비스업에서도 기업 설립이 급증했다. 기업이 늘어나면서 수출을 둘러싼 대기업끼리, 수출과 내수를 둘러싼 중소기업끼리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한편 정부의 대기업 육성 정책 등으로 주요 산업에서 대기업의 독과점이 진전되었다. 사회 구성원들의 물질적?사회적 성취 욕구 폭발로 기업 등 조직 내부의 협력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정부가 경제개발계획 등을 기반으로 경제 운영은 물론 사회 전반을 주도하고 정부와 기업 등 제 조직이 중앙집권적?수직적으로 운영됨에 따라 신뢰와 자발적 참여에 기반한 협력보다는 강제적 동원에 기반한 협력이 중심이 되었다. 사회집단 사이나 조직 내부의 갈등도 점차 커져 사회의 신뢰가 저하되었다. 발전연대 경제시스템 진화 인자들의 상호 정합성은 어느 때보다 양호하였다. 선진국으로부터 제조업 PT를 도입?복제하는 진화 방식은 발전국가 패러다임의 정부 주도 ST 및 평균주의적 통제 기반 ST와 정합하였다. 획일적 동원과 수직적 통제를 경제 및 조직의 기본 운영 원리로 하는 발전국가 패러다임과 대중적?기능적 제품의 대량생산을 목표로 하는 중진국형 제조업 PT?BD 사이에는 상호 정합성이 높았다. 정치가 사회 전반을 주도한 데 힘입어 정치?경제?문화 등 사회 각 영역별 ST 사이에도 일관성 및 정합성이 높았다. 박정희 정부는 국민의 생존 욕구 충족을 위한 경제발전을 최상의 목표로 제시하고, 이를 위해서라면 시장경쟁 기반 경제 운영과 평등한 소득 분배는 물론 국민의 자유와 민주주의까지도 일정 정도 희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국가(집단)주의에 기반해 정치적 독재, 정부 및 대기업 주도의 경제운영질서, 수직적 지배구조의 조직과 획일적 문화를 일원적으로 정착시켜나갔다. 한편 BD는 선진국에서 이미 검증된 것을 복제하는 데 치중하였고, 그 예측 가능성이 높았다. 따라서 BD의 성패는 상품의 소비자 선호 발견 및 충족 능력보다는 BD 추진 과정의 치밀한 기획 및 실천 능력에 주로 좌우되었다. 대기업들은 전문인력과 자본 동원 능력을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고 정교한 BD를 추진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대기업은 중소기업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는데 바로 이것이 발전연대에 대기업이 크게 성공한 이유 중 하나이다. 그러나 발전국가 패러다임은 복제 중심 PT?BD의 진화 방식, 배제적 ST에 기초하고 있다는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정권과 재벌 대기업의 이익을 주로 반영하고 중소기업, 노동자 등의 이익과 관계 욕구를 억압한다. 후발자의 이익을 활용해 차별화와 선택의 과정을 최소화하고, 선진국 진화 인자를 모방?복제하는 방식으로 진화를 추구한다. 따라서 경제시스템 진화의 초기에는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지만 시스템이 진화할수록 자체 모순에 빠진다. 소득 증가와 더불어 경제시스템 구성원 다수의 획일적 통제가 어려워지거나, 경제 수준이 높아져 기존의 진화 인자의 단순 모방이 아니라 새로운 진화 인자의 자생적 창출이 필요해진 경우에는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특히 1990년대 들어 중국?인도와 같은 후발 신흥국이 부상하고 한국경제가 선진국에 근접하면서 후발자 이익은 빠르게 약화되어갔다. 요컨대 발전국가 패러다임은 선진국 ‘따라잡기’를 하는 시기,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의 관계 욕구가 억제되는 시기에만 유효한 것이며, 성공을 거둘수록 스스로가 새로운 진화 방식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과도기적이며 ‘자기 파괴적’이다(victim of its own success). 이것이 발전국가 패러다임이 이행기에 들어 한국경제시스템의 자생적 혁신과 진화 잠재력을 정체시키고 어느 시점부터는 더 이상 작동할 수 없었던 원인이다. 이행기 한국경제시스템에서는 다수 국민의 관계 욕구 고양, 지식혁명의 진전 등으로 적합도함수가 크게 변화하였다. 국민의 관계 욕구 팽창에 따른 민주화의 추진, 세계경제의 통합 진전에 따른 신자유주의적 시장화?세계화의 추진, 세계경제의 지식화 추세?한국경제의 고도화에 따른 한국경제의 지식화 필요성이라는 3가지의 새로운 움직임이 부상하였다. 그러나 독과점적 산업구조, 집권적 기업 지배구조, 수직적?획일적 문화 등 발전국가의 유산이 새로운 흐름과 충돌하였다. 새로운 흐름에 대한 대응 방안을 놓고 기득권층과 여타 사회계층이 대립하였고, 한국경제시스템은 기본 가치, 장기적 비전과 일관성 있는 전략을 상실한 채 표류하였다. 경제 성과도 뚜렷이 악화되었다. 점차 대기업 등 강자 중심의 질서가 강화되면서 시대적 과제인 경제시스템의 포용성 증대가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외환위기 이후의 경제 개방, 주요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른 국내시장 개방과 수출 확대로 경제의 대내외 개방성은 전반적으로 높아졌다. 다만 재벌 대기업이 국내 주요 산업에 대한 독과점적 지배를 유지, 강화함에 따라 대내 개방성은 부분적으로 개선되는 데 그쳤다. 지식경제에 적합한 경제운영 패러다임을 창출하지 못하면서, 진화 인자의 진화 잠재력도 원활하게 축적되지 못하였다. 우선 PT?BD의 경우 ICT 산업 등을 중심으로 지식경제로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지식산업은 진화 잠재력이 매우 높으나 이의 실현을 위해서는 복제가 아닌 차별화와 선택이 매우 중요하고, 과학기술의 전문성과 복합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잦은 정권 교체로 인해 정부의 정책 시계가 짧아지고, 주주 중심주의 도입과 시장 독과점화로 일부 수출 대기업 이외 대다수 기업의 연구개발 노력이 약화됨에 따라 자생적 차별화 및 선택 역량이 원만하게 확충되지 못하였다. ICT 산업, 자동차산업 등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PT 진화가 전반적으로 둔화되었다. 대다수 중소기업의 시장 입지와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한국경제시스템의 산업연관관계 강화와 자생적 PT?BD 창출 역량을 위해 필수적인 소재부품 장비 분야 PT?BD의 차별화?선택 역량이 후퇴하였다. BD는 1990년대 말의 ICT 붐을 타고 다수의 벤처기업이 성장하면서 다양성이 높아지고 차별화 기반 진화 역량도 확대되었다. 그러나 이 붐은 여타 제조업과 서비스업으로 확산되지 못했고, 2000년대 초의 ICT 버블 붕괴와 더불어 침체되고 말았다. 경제주체의 전문성과 다양성 증진을 통한 진화 잠재력(경쟁력) 향상 노력도 효율적이지 못했다. 집단주의 기반 수직적?획일적 사회질서가 온존됨에 따라 지식경제에 적합한 자율적 사고와 비인격적 협력 태도를 갖춘 유능한 인재가 크게 부족해졌다. 학교 교육은 양적 확대에도 불구하고 산업계의 요구(needs)에 맞는 전문성 및 창조적 차별화 역량을 갖춘 인재를 적절히 육성하는 데 미흡하였고, 전문 이공계 인재 공급은 만성적으로 부족한 반면 문과계 졸업생은 남아도는 등 노동력의 수급 불일치가 커졌다. 신자유주의적 주주 중심주의 경영, 대기업의 아웃소싱 증가, 고용의 유연성 확대 등으로 기업의 자체 인재 육성 노력도 크게 약화되었다. 수출 대기업 등의 연구개발 투자가 확대되었으나 첨단기술과 상품을 창출하지 못하는 등 경제적 성과는 기대에 못 미쳤으며, 무엇보다 혁신기업의 창업 부진으로 기업의 전문성 및 다양성 향상이 정체되었다. 사회적 투명성 및 상호주의적 거래/성과 분배 규칙이 확립되지 못하여 다양한 전문 인재의 자발적 참여와 상호 신뢰에 기반한 경쟁/협력이 활성화되기 어려웠다. 특히 시장화와 더불어 정부의 통제가 사라지자 공정한 거래 규칙과 경쟁이 아니라 시장 지배력을 가진 재벌 대기업에 유리한 약육강식 내지 승자 독식 경제 질서가 확산되었으며, 그 결과 대기업과 여타 부문 사이의 양극화와 상호 대립이 심각해져 사회적 신뢰?협력이 순조롭게 확산되지 못하였다. 경제주체 간 상호작용이 원활하게 증가하지 못하면서 기업의 설립과 시장경쟁 메커니즘의 확산이 부진해졌다. 국내시장에서는 주요 산업 부문에서 소수의 재벌 대기업이 시장을 독과점한 채 지배력을 공고히 함에 따라 경쟁이 약화됨은 물론 거래의 불공정성이 높아지고, 신규 기업의 설립과 시장 진입이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경제시스템 내 경쟁/협력이 전반적으로 위축되었고 진화 인자의 자생적 진화 역량이 신속하게 향상되지 못하였다. 또한 경제시스템 내 진화 인자 사이의 정합성이 전반적으로 낮아졌다. 우선 PT와 ST 사이의 정합성이 크게 낮아졌다. 발전국가 ST의 영향으로 지식산업 PT에 적합한 수평적?자율적 ST가 확산되지 못하였고, 이로 인해 PT의 자생적 차별화를 뒷받침할 개인?기업의 전문성?다양성 배양과 협력적 태도의 형성이 부진하였다. 정치?경제?문화 등 영역별 ST 사이에도 충돌이 발생하였다. 특히 발전국가형 산업?시장 구조와 수직적?권위적 ST가 민주화?시장화?지식화된 경제시스템에 적합한 수평적?자율적 ST의 정착을 방해하였다. 신?구 ST가 갈등하는 상황에서 점차 재벌 대기업 등 주도 계층이 자기 이익 위주의 결합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이는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반발을 불러오는 등 ST 사이의 상충, PT와 ST 간의 상충을 유발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 끝으로 이행기 한국경제가 점차 지식화되면서 차별화와 선택에 바탕한 진화가 불가피해짐에 따라 BD의 예측 가능성은 크게 낮아졌다. 대다수 국내 기업들의 BD 창출 방식은 종전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복제 중심에 머물렀다. 이로 인해 ICT 분야 등을 제외한 다수의 산업에서 새로운 BD의 창출이 현저히 둔화되었다. 결론적으로 이행기에는 지식화된 PT?BD 수요, 국민의 관계 욕구 증대에 적합한 ST가 정착하지 못하면서 경제 환경?PT와 ST 간 상충 및 경제시스템 내 혼란이 커졌다. 정치의 민주화가 경제적?문화적 민주화로 확산되어 국민 자유의 실질적 증진으로 열매 맺지 못함에 따라 ST 사이의 부조화가 심각하였다. 변화에 대한 기득권층의 저항과 사회 제도?문화의 인습적 특성 때문에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진화의 경로 의존성’이 강하게 나타난 것이다. 이는 한국경제시스템의 진화 잠재력을 약화시키고 진화 성과도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금까지 논의한 한국경제시스템의 시대별 진화 성과와 적합성 평가를 종합하면 다음 표와 같다.
3. 지식공동체 한국경제시스템 만들기 앞으로 한국경제시스템을 둘러싼 환경(적합도함수)은 다소 불리하게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도 등 인구 대국의 경제발전과 G2 간 대치로 인해 자연 환경(자원) 및 지정학적 여건이 악화되고, 세계시장에서 미?일 등의 선진국은 물론 후발 신흥국과의 경쟁도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가 고령화되고 증가세도 정체되어 그간의 인구 보너스가 이제부터는 인구 오너스(onus)로 바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한국 및 세계경제시스템에서 지식혁명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생산 활동의 주된 내용이 ‘제조에서 창조로’ 패러다임 전환하는 등 경제시스템을 비롯한 사회 전반에 걸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특히 앞으로 더욱 큰 변화가 진행될 전망이다. 경제의 지식화 진전으로 한국경제시스템 PT의 진화 잠재력은 높아지겠으나, 차별화와 선택이라는 고위험?고비용 과정과 범세계적 경쟁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잠재력의 실현이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경제시스템은 지식경제에 걸맞은 패러다임으로의 전환과 제2의 대진화가 필요하다. 진화의 기본 방향은 ‘보편적 인센티브 제공’과 ‘강한 상호주의’ 원칙에 기반해 경제주체의 진화 역량과 참여 및 경쟁/협력을 확충하고 이를 통해 시스템의 시너지와 집단지성(대중의 지혜)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진화 잠재력이 높은 진화 인자의 자생적 창출과 경제시스템의 진화를 촉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행기부터 시작된 민주화, 시장화, 지식화를 신속히 완성, 진전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이 제대로 실현된다면, 한국경제시스템은 적응적 효율성이 높고 대중 혁신 및 공동 번영이 달성되는 중층적(소집단, 중소기업, 단체, 대기업, 지역사회, 국가 등 다양한 층위별로 조직화된) ‘지식공동체’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지식공동체는 민주화와 시장화를 통해 전문성?다양성 높은 제 사회 구성원의 참여와 상호 간 경쟁/협력이 활발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지식 내지 진화 인자를 끊임없이 창출하는 경제시스템을 말한다. 민주화는 사회 지배의 대중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 ST의 포용성 제고가 필요하다. 정치의 포용성 제고는 모든 사회 구성원의 평등한 참여를 보장하고, 각계각층의 의사와 이익에 민감한 정치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소기업인,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조직화를 통한 사회구조의 다원화를 기반으로 한다. 다원적?다층적 사회구조가 형성된 후에는 정당 구조 및 투표 제도의 개선을 통해 다양한 계층의 의사와 이익을 공화주의적으로 수렴하여 정치의 책임성을 확보하여야 한다. 나아가 법치주의와 효율적 정부를 정립함으로써 계층 간 경쟁/협력을 활성화하고 사회 시너지의 창출이라는 민주주의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기초인 전문성?다양성과 시민적 덕성을 갖춘 국민(즉, 독립적 시민)이 더 많아져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의 자유가 대폭 확대될 필요가 있다. 사회안전망 확충 등을 통해 빈곤, 질병 등으로부터 자유(소극적 자유)가 모든 국민에게 보장됨은 물론, 교육, 고용의 확충을 통해 사회적 참여 및 활동 역량(적극적 자유)도 획기적으로 증진되어야 한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이 실질적으로 확대되어야 다양한 가치와 관용, 사회적 참여와 경쟁/협력이 더욱 폭넓게 확산된다. 특히 국립대학 등록금 면제 등을 통해 이공계대학(원) 교육을 보편화하고 직업 및 기술 훈련 강화, 평생교육 체제 확충 등을 통해 국민들의 정치경제적 참여 역량?진화 잠재력을 높이고 고용을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 사회에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집단주의를 개인주의적 요소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혁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통해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 그리고 전문성 발현을 촉진하여야 한다.
둘째,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시장화’를 추진하여야 한다. 시장화는 경제 운영의 기본 원리로서 대중이 자원 배분에 관한 의사결정을 지배하게 하는 것이며, 경제 분야의 민주화라고 할 수도 있다. 특히 강한 상호주의에 기반해 경제주체들이 자발적으로 경쟁/협력하는 수평적 사회질서와 문화를 정착해 생산 활동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독과점 해소와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 설립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확대하여야 한다. 아울러 계약과 거래의 자유를 보장하는 한편, 공정한 거래 및 성과 분배 규칙을 확립해 시장에서의 경쟁과 기업 등 각종 경제 조직 내 협력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물론 기업 등 경제 조직에 대한 정보를 적극 공개하여 사회적 투명성을 높이는 것도 사회적 신뢰와 거래/협력을 증진하는 데 기여한다. 한편 시장화는 경제활동의 궁극적 목적, 즉 소비자의 후생 증진을 위해 생산 또는 상품의 고객 최적화(customization)를 촉진하는 것이기도 하다. 민주화와 지식화로 소비자의 욕구가 다양해지고 이를 뒷받침할 생산 역량도 확보된 만큼 소수의 고객 또는 각 고객별로 맞춤화된 상품의 생산이 이루어지는 경제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경제정책의 초점을 발전연대의 특정 기업 또는 산업 육성 중심에서 벗어나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발견, 충족하는 역량을 갖춘 다수의 생산자를 각 분야별로 양성하는 데 맞출 필요가 있다. 기업 등 경제 조직의 소유와 지배의 대중화, 즉 보다 많은 개인이 기업을 소유하고 기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다수 개인의 기업 설립 촉진, 기업 주식(지분) 보유와 경영 감시의 대중화, 경영자 혁명과 종업원 등 이해관계자의 기업 경영 참가, 분권적 조직 구조와 자율적 조직 운영 원리를 갖는 기업 지배구조의 확립, 공동 지배구조를 갖는 협동조합형 조직의 확대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특히 기업 설립 확대 및 이해관계자 지주제 등으로 기업의 소유를 대중화하고, 다수의 구성원들이 충분한 결정 권한을 갖고 소비자 또는 시장 상황 변동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되 권한에 합당한 책임을 지는 자율적?분권적인 기업 지배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시장화는 다수 경제주체 간 경쟁을 증진하기 때문에 이에 대응한 경제주체 간 협력을 촉진하기도 한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 기업 조직은 내부적 협력을 강화하며 플랫폼, 클러스터, 블록체인 등을 이용한 기업 간 열린 협력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나선다. 재벌의 전문화 및 거래 기업과의 협력 촉진 등도 이끌어낼 수 있다. 따라서 시장화와 경쟁을 강화하는 것이 한국경제시스템 내 협력을 증진하는 길이다. 정부가 시장을 조성?유지하고 시장화?세계화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신규 기업의 진입 촉진, 독과점 및 기업끼리의 담합 억제 등을 통해 시장에서 경쟁이 유지되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력하여야 한다. 강한 상호주의 원칙에 합당하게 공정한 거래와 성과 분배 규칙을 확립하여야 한다. 특히 대기업-중소기업 간 거래나 하청 거래에서 협상력 격차에 따른 불공정 거래나 승자 독식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주요 산업에서의 과도한 독과점을 완화하기 위해 재벌의 업종 전문화, 기업 분할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신시장 창출 또는 시장 확장적 관점에서 정부가 각종 신성장산업을 육성하는 데에도 더욱 노력해야 한다. 다만 그 방식은 특정 부문 또는 주체의 선별?지원보다는 인프라 확충, 여건 조성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계화가 가져오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경제의 조립 가공품 수출 의존적 특성, 국제경쟁력 우열에 따른 부문 간 격차의 확대, 금융 부문의 불안정성 증대 등 고질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여 부품소재장비 산업 육성, 유망 중소기업의 기술개발?자금 조달 지원, 금융산업의 투자안 선별 및 벤처기업 지원 기능 확충, 금융산업의 국제경쟁력 향상 등에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관련 정부부처의 전문성, 정책의 효율성을 높여 그간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민간 부문이나 시장메커니즘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경제 인프라 부족 문제를 정부가 적극 나서 해소?보완해야 한다. 우선 전문기술 인재의 육성, 과학 및 기반 기술 연구, 사회적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대규모 인프라 건설, 고위험?대규모 자금을 필요로 하는 혁신 프로젝트의 추진 등에 정부가 노력할 필요가 있다. 발전연대에 그랬던 것처럼 정부 역시 기업가적 관점으로 신산업을 육성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경쟁시장의 독과점화 경향과 부?소득의 집중이나 버블 등의 쏠림 현상과 이에 따른 거시경제적 불안정을 완화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특히 지식경제에서는 지식의 공공재성과 수확체증성으로 신지식?신산업에 대한 과소 투자 경향 및 선발자 독점 경향이 우려되므로 이를 교정하는 정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한편 정치 민주화와 경제 시장화는 서로를 강화하는 특성, 즉 공진화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 민주화에 기반해 대중의 정치 지배가 이루어지면 대중의 경제적 참여와 지배가 확대되면서 경제의 시장화를 촉진한다. 경제 시장화는 대중의 정치 참여 능력 강화와 사회계층별 조직의 확대로 이어져 다시 정치 민주화를 촉진한다. 이러한 상호 강화(피드백)를 통해 정치 민주화와 경제 시장화가 선순환하는 구조가 구축된다. 포용적 경제체제를 갖춤으로써 포용적 정치체제가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고 현실적으로 존속?발전할 수 있다. 정치와 경제의 민주화가 병행되어야 할 시점이다. 셋째, 민주화와 시장화를 바탕으로 하여 경제시스템 및 PT의 ‘지식화’를 한층 가속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지식의 인간적 특성, 지식산업의 과소 투자(공공재 특성) 및 선발자 독점(수확체증적 특성) 경향, 지식경제에서 혁신의 급증 경향 등 경제의 지식화가 가져올 영향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지배구조의 확립이 필수 전제조건이다. 사회 또는 조직 구성원 모두의 자발적 참여와 경쟁/협력을 유발해 개인의 전문성?다양성과 상호 간 경쟁/협력, 경제시스템의 진화 역량을 극대화하는 지배구조, 즉 포용적 거버넌스가 이에 해당한다. 포용적 거버넌스를 확립해 지식화의 토대가 마련되면, 자생적 ‘차별화-선택’을 통한 진화 인자의 창출이 활성화되도록 한국경제시스템 전반의 지식 창출 역량을 강화하여야 한다. 우선 개인과 기업 등 경제주체의 전문지식과 협력 역량을 개발하고 사회적 지식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과 기업이 각자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평생에 걸쳐서 그리고 편리하게 습득, 축적할 수 있도록 대학과 정부가 핵심 지식 기관으로 기능해야 한다. 또한 사회적으로 충분한 수준의 지식 생산을 위해 정부가 대학?연구소 등과 협력해 과학기술 인재의 양성, 기반 기술의 개발 등에 더욱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식경제에서는 다양한 지식의 결합을 촉진할 수 있도록 사회적 투명성과 공정한 거래/성과 분배 규칙을 확립하고, 협력 인프라를 강화할 필요가 크다. 기업 등의 조직은 분권화된 구조, 수평적인 운영 규칙을 도입하여 구성원의 적극적인 참여와 조직 내 잠재 혁신 역량의 극대화를 도모하며, 새로운 연구 조직 또는 개인의 끊임없는 진입을 유도해 다양한 정보와 관점을 수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식경제에서는 소비자와 관련 전문가, 거래 기업 및 동종?연관 기업 등과의 열린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새로운 기술?상품 개발에 필수적인 요소이므로 기업은 스스로의 투명성 확대와 공정한 성과 분배 규칙을 시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플랫폼, 클러스터, 블록체인 등 ‘열린 협력 네트워크’를 확충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나서서 대학?기업?연구소 등 다양한 연구개발 주체들의 유기적이고 유연한 협력 네트워크를 마련하고, 매개자?조정자로서 상호 소통과 신뢰 및 협력을 높여야 한다. 온?오프라인 기반 지식 창고의 확충, 주요 지식의 표준화와 특허권 거래 증진 등 지식 공유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도 중요하다. 궁극적으로는 지역 혁신 시스템 나아가 국가 혁신 시스템이 활발하게 작동하여야 한다. 또 지식산업의 특성에 맞는 경제 환경과 경제정책을 구축, 실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식경제의 선발자 독점 경향 등에 대응한 경쟁 증진 노력, 지식산업의 공공재성에 적합한 정부의 개입과 지원, 지식노동의 자동화에 따른 고용 감소 극복, 소득 불평등 및 경제 불안정화 교정 등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지식화 관련 인적?물적 투자의 증대, 즉 지식산업을 육성하고 기존 산업의 지식화를 촉진하는 것이 가장 구체적?직접적인 대책이다. 경제의 지식화를 선도하고 있는 ICT 및 인공지능 산업, 바이오 및 나노 기술 산업 등 신성장 지식산업을 우선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정부가 대학?연구소?기업 등과 협력해 관련 인력 육성과 자금 지원 그리고 기술?상품의 개발에 나서야 한다. 부품?소재?장비 산업의 첨단화를 통한 국내 산업의 연관관계를 강화하는 것도 긴요하다. 특히 이는 우리 경제의 자생적 혁신 역량 확보에 필수적인 요소인바 정부와 민간이 힘을 모을 필요가 크다. 연구개발 투자의 효율성도 높여야 한다. 최근 한국경제시스템에서 공공 및 민간 연구개발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지식재산권 등록도 늘어나고 있으나, 경제적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가 개별 연구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직접 개입을 최소화하는 등 혁신 생태계가 잘 운영되도록 도와주는 조정자로 역할을 전환하여야 한다. 여러 부처에 분산되어 있는 투자 재원을 종합 관리하는 체제를 구축하되 장기적 시계에서 연구가 진행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도 연구개발 전략의 패러다임적 전환이 필요하다. 그간의 ‘재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에서 벗어나 ‘선발자(first mover) 전략’으로 진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자생적 PT?BD 창출 역량의 강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전문성?다양성과 이의 창의적 결합에 능숙한 인재와 조직을 늘려야 한다. 한편 성공 가능성, 발전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효과적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미래의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 경영 방식의 도입이 필요하다. 기획보다는 시행착오적 실험을 위주로 하는 경영 전략이 자생적 진화에 보다 효율적이다. 넷째, 지식공동체에 걸맞은 문화를 정립하여야 한다. 우선 인간과 사회 그리고 경제에 대한 기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각 개인의 존엄성을 상호 동등하게 인정하고, 개인의 적성과 가치관의 차이를 존중하는 인간관이 사회 전반에 확립되어야 한다. 이로써 수평적?자율적 상호 관계와 경쟁/협력의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아울러 집단주의(가족?국가 중심주의) 문화도 개방적?포용적 시스템에 맞게 개인과 집단을 아울러 존중하는 방향, 즉 공동체(시스템)주의적으로 개혁하여야 한다. 이러한 인간관과 사회관의 변화는 지식경제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새로운 지식의 생산은 광대하고 불확실한 지식의 공간을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탐구하는 과정이자 수많은 실패를 거쳐 이루어진다. 따라서 자유로운 사고와 차이를 수용하는 문화, 시행착오와 실패를 배우는 과정으로 당연시하고 도전을 격려하는 분위기, 미래 지향적인 문화에서 지식경제가 순조롭게 발전할 수 있다. 이러한 기본 인식의 전환을 바탕으로 4개 분야별 문화를 혁신하여야 한다. 우선 개인의 행위 관련 규범이 개인의 자율성, 책임성을 대폭 허용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발전연대 이래 이어져온 엘리트주의적, 중앙집권적 시각에서 벗어나 개개인 각자가 스스로에 대해 책임지고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동시에, 각 구성원이 서로를 대등한 존재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긴요하다. 이는 사회의 다양성 증대, 수평적인 사회 문화로 이어져 민주화, 시장화, 지식화를 촉진하는 기초가 된다. 사회 구성원 간 상호작용과 관련해 상호 신뢰하고 협력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특히 지식 창출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제주체 사이의 광범위한 신뢰와 자발적 협력을 촉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공정한 거래 및 성과 분배 규칙 정립, 정보 공개 등에 기반한 투명성 제고, 구성원의 협력 역량 향상 및 협력 지향적 문화 육성, 분권적 지배구조에 기반한 기업 경영 및 각계각층의 정치적?경제적 참여 확대 등이 긴요하다. 지식경제의 정착을 위해서는 변화 친화적인 문화를 확립하여야 한다. 현상을 합리적?과학적으로 이해하려는 자세, 다양한 관점과 차이에 대한 존중, 시행착오와 실험에 대한 관용 등을 통해 변화와 혁신을 수용하고 경제의 진화를 앞당길 수 있다. 장기적 안목 또는 미래 지향적 태도도 강화하여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정부는 물론 정당?국회의 다양한 사회계층별 의사수렴 및 정책 기획 기능을 강화해 경제정책의 책임성과 객관성을 높임으로써 장기적 시계에서 정책의 일관성과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대중의 기업 소유?지배를 확대하고 경영을 혁신하여 기업 경영의 시계가 장기화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사회안전망 확충과 정부의 사업 위험 분담 등을 통해 장기 투자와 발전을 중시하는 개인적 태도와 기업 문화를 확충할 필요도 있다. 위와 같은 문화 변화의 방향을 지식경제와 연결지어 종합하면, 자기표현적 가치를 중시하는 문화, 관계 및 성장 욕구의 충족을 중시하는 문화를 우리 사회 전반에 확산시켜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식공동체는 다양한 가치와 사고방식의 공존, 이를 통한 사회적 다양성의 증대, 여러 전문 영역 간 결합을 확대하는 데에서 혁신과 진화의 동력을 찾기 때문에 관계 욕구 및 성장 욕구를 중시하는 사회가 생존 욕구에 집착하는 사회보다 더 빠르게 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다섯째, 인구 오너스를 완화하고 남북 간 통합을 앞당기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구의 양과 질은 경제의 진화 정도를 가름하는 근본적 요소이며, 따라서 인구 오너스는 매우 심각한 진화 저해 요소가 될 수 있다. 향후 심화될 수 있는 인구 오너스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간 우리 사회는 경제성장, 특히 기업 중심의 가치에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었다. 이로 인해 노동자로서의 대다수 국민이 느끼는 삶의 질이 너무 나빠졌고 이것이 급속한 출산 감소로 이어지면서 인구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이제는 ‘기업하기 좋은 세상’ 이전에 ‘사람 살기 좋은 세상’, 삶의 질이 높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증대, 우수 외국 인재의 유치 등도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이다. 한편 남북 간 경제 통합 내지 남북통일은 소요될 비용이 적지 않겠지만 얻을 수 있는 이득은 그보다 몇 배, 몇십 배 더 큰 과제이다. 경제적 이득은 물론이고 정치적?문화적 이득이 더할 나위 없이 크며, 특히 지식화와 민주화의 촉진?완성을 위해서도 선결되어야 할 과제이다. 보다 열린 생각과 자세로 전 국민의 뜻을 모아 남북 통합을 이루고 융성하는 한반도를 창조하여야 한다. 요컨대 지식공동체는 진정한 민주주의 및 시장경제체제, 변화 친화적인 문화를 확립하여 우리 사회 내에 다양한 층위와 종류의 공동체를 생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국경제시스템의 지식화를 촉진함으로써 달성된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와 인간의 꿈에 대한 상상력을 키우는 한편, 시스템 진화의 근본 잠재력인 개별 경제주체의 전문성을 높이고, 이들 간의 광범위한 자발적 경쟁/협력을 증진하여 사회적 시너지를 극대화하여야 한다. 결국 지식공동체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보편적 인센티브’를 누리는 가운데 ‘강한 상호주의’(또는 롤스의 ‘정의의 원칙’)에 기반하여 서로 긴밀하게 상호작용(경쟁/협력)하여 경제 환경에 적합하고 진화 잠재력이 높은 새로운 진화 인자(또는 지식)를 끊임없이 창출하고, 인간의 꿈을 달성해가는 것이다. 현실에 굳게 발을 디디되, 미래에 대한 낙관과 용기를 가지고 쉼 없이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와 대한민국 그리고 인류의 꿈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