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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무욕의 순수함

1부
대보름 단상(斷想)
그리움
강가의 아이들
미완의 꿈
떠도는 작은 구름
섬진강의 봄
무애(無碍) -뜬구름
보금자리
삶의 현장
영혼을 위한 한복
영원한 도공 곡우(谷牛)

2부
미시의 세계
서예 삼매경
비련의 여인
보은 장학회
사마귀(死魔鬼)
임항선 그린 웨이
연주 미담(?州 美談)
시련을 넘어
사랑 없이 인생 못가네
적과 동침
청백리 서기순

3부
소녀의 순정
여정
노란 모자를 쓴 여인
짝사랑
장날
군사부일체
기일(忌日)
망국의 기상
사필귀정
일련탁생(一蓮托生)
뿌리
마음의 행로

4부
자유와 평화는 힘으로 지킨다
얼굴
진동 할머니
도장
유종의 미
경남 시사 교양포럼
민중은 불의에 저항 한다
온정은 잔잔한 물결처럼
보릿고개
묵 할머니
나쁜 남자

■해설
격랑을 헤쳐 온 치열한 삶 / 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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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알라딘제공
[수필집 해설]
등하의 수필집을 읽고

격랑을 헤쳐 온 치열한 삶

소운 (죽림선원 불교문화 평론위원)

신이 우리에게 주신 두 가지 선물은 눈물과 웃음이다. 눈물은 치유의 힘이 있고 웃음은 건강이 담겨있다.
등하 서효창, 그가 온몸으로 토한 수필을 울면서 때로는 웃으며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하며 읽었다. 그의 삶은 강한 의지로 험난한 역경을, 질곡을, 벗어나려는 연어의 몸짓이었다. 화자(작가) 피화자(독자). 그는 겸손하게 말한다. 아직은 화자로 불리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꼭 피 화자를 염두에 두고 이 글을 쓴 것은 아닌 듯하다. 보이기 위한 글이 아닌 솔직한 자신의 독백이다. 그는 서예가로서 수준급 초대작가이다. 작품 속 아호는 등하(燈下)이다. 아호 또한 서예작품 외에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필자는 그의 뜻을 존중하나 이글의 머리에 작가 대신 등하를 호칭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필자와 등하는 해방세대이다. 해방의 감격도 잠시, 6·25 한국전쟁 발발로 폐허 속에 간신히 살아남은 우리들이다. 당시는 생명을 이어가는 생존이라는 화두가 모든 것을 우선했다.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 극복해야 할 가장 고통스러운 장벽은 무엇보다 지긋지긋한 가난이었다.
필자와 등하의 인생 노정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그러나 40여 년간 브로맨스로 교류하면서 지켜본 그는 참담한 현실을 비관하거나 낙심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긍정의 마인드로 일관했다. 등하의 향학열은 대단하다. 끊임없이 배우고 새로운 모험에 도전한다. 몇 년간 심리상담 영역에 심취하더니 1급 상담사 자격시험에 거뜬히 패스했다. 그의 내심은 소통이 어려운 노인을 대상으로 봉사할 예정이라고 한다. 실제로 창원시청 자원봉사자로 등록하고 각 복지관에 상담 스터드 활동을 하고 있다.
등하의 책 욕심은 유별나다. 시장이나 집에서 항상 그의 곁에는 책이 있다. 글을 쓰려면 우선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그리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야 한다. 특히 문장력은 독서량이 좌우한다. 신경숙 작가는 매주 5권 이상 책을 구입해서 읽는 독서광이라고 한다.
그는 군 생활 중 많은 작품을 발표하여 이미 문학적 소양을 인정받은 다재다능한 문사이다. 우학 도인은 말했다. 가고 가다 보면 알게 되고 행하고 행하면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제 출발점 총성은 울렸다. 모든 시작의 처음은 두려움과 설렘을 동반한다.

유년의 발랄하고 맑은 추억
오전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노란 황사가 내려앉은 마루에 책보를 던져놓고 융일 이 오두막집으로 달려간다. 얼추 다 모였다 싶으면 우리들은 고무신을 양손에 쥐고 넓은 모래밭을 뛰기 시작한다. 물새 발자국이 많이 있는 곳이나 풀뿌리가 반쯤 묻힌 얕은 곳에 물새알이 있다. 모래와 색깔이 흡사해 알을 발견하기가 여간해서 쉽지 않다. 더 넓은 백사장을 수차례 훑어서 겨우 20여 개를 줍는다.
- 중략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뙤약볕 아래에서 모래성을 쌓고 있었던 나는 눈앞에 앞집 점련이가 떠내려가는 것을 발견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뛰어들어 손을 잡았으나 그만 둘이 엉켜 물결 속에 허우적거렸다. 그러다가 운 좋게 모래톱에 발이 닿아 기어 나왔다. 둘이는 물을 토하고 기진맥진하여 한참 동안 쓰러져 있다가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그날 점련이와 나는 천행으로 물속에서 살아났다. 정말 죽을 뻔했다. 해마다 여름철이 되면 우리 같은 꼬맹이 대 여섯은 떠내려갔다.
- 중략

한 겨울이 되면 매서운 추위에 강은 30cm 넘게 꽁꽁 언다. 큰형이 만들어준 썰매를 타고 얼음 위를 씽씽 달린다. 지앙담 절벽 밑으로 지날 때는 얼음 소리가 쩡쩡 울린다. 그때쯤 토끼털 귀마개를 한 점련이가 따뜻한 고구마를 가져와 언 손에 꼬옥 쥐어준다. 썰매에 점련 이를 태우고 나는 뒤에서 점련이 어깨를 잡고 한 발로 얼음을 힘껏 치며 신나게 달린다. 점련이 자지러지는 웃음소리 외마디 소리가 사방에 흩어진다.
- 「강가의 아이들」 중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등하의 어린 시절 추억이 그린 듯 액자 속 풍경화처럼 선명하다. 여남은 명 꼬맹이들이 매일 어울려 뛰노는 모습이 활기차고 옛적 향수에 젖게 한다. 강물에 빠져 죽을 뻔한 점련이를 구한 일, 따뜻한 고구마를 손에 쥐어주는 점련이를 썰매에 태우고 얼음 위를 씽씽 달리는 모습, 대보름 불놀이 등 고향의 정경을 연줄을 풀 듯 줄줄이 풀어내고 있다.
누구에게나 고향은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 일 것이다. 이 수필은 서정성 짙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교회에서 예배를 보던 중 단발머리를 하고 다소곳이 앉아있는 소녀를 발견했다. 하얀 얼굴에 콧날이 오뚝한 혜영이를 처음 본 순간이었다. 나는 갑자기 비 개인 오후의 무지개처럼 환하고 황홀했다. 그날부터 무엇에 홀린 것처럼 멍하니 한 곳에 시선을 집중하기도 한다.
- 중략

찹쌀떡을 한입에 베어 문 오목한 입술에 쌀가루가 하얗게 묻어난다. 그 입술에 살짝 미소가 번진다. 천사처럼 아름답다.
- 중략

노을에 붉게 물든 혜영이 얼굴이 눈이 부셔 쳐다볼 수 없다. 시원한 강바람이 옷깃을 스치면 혜영이 도톰한 가슴이 설핏설핏 드러난다. 나도 모르게 묘한 상상을 하며 얼굴을 붉힌다.
- 중략

눈을 감고 귀 기울이면 자박자박 걸어가는 소리. 코끝을 스치는 향긋한 내음. 너와 함께 걷던 길을 걷고 또 걸어본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 가슴을 적신다.
혜영이 가슴에도 비가 내릴까?
- 「그리움」 중에서

성장통을 겪는 소년이 이성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정갈하게 써 내려간 작품이다. 양철지붕으로 얼기설기 지은 개척교회에서 처음 혜영이를 본 후 홀린 듯 끌리고 우여곡절 끝에 옛 일본식 단팥죽 집에서 마주 앉게 된다. 그러나 들뜬 기쁨도 잠시뿐 소년에게 참기 어려운 가슴 아픈 이별을 감내해야 했다. 흔히 아픈 만큼 성숙한다고 말한다.
어머니가 끓여주는 흰 죽을 먹고서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엑기스만 뽑은 정제된 문장력이나 묘사는 한 편의 시를 읽는 듯 뭉클한 감동이 밀려왔다. 첫사랑의 몽환적이고 아찔한 느낌을 감성적으로 표현한 우수한 수필이다.

한밤중에 찾아온 그리운 옛집/ 달은 밝아도 찾을 길 없고/ 서성이는 나그네 그림자만 분주하구나/ 떠난 이 가슴에도 시퍼런 강물이 쉬임 없이 흐른다.
“비록 살던 곳은 흔적 없지만 철교, 은행나무, 강변 등은 언제나 당신을 반기지 않을까요? 오늘은 고향의 대보름 달빛을 한 아름 안고 가요.”
- 「대보름 단상」 중에서

가족과 함께 정월대보름 달빛을 흠뻑 맞으며 지금은 유채밭으로 변한 옛 집터를 가늠해본다. 철교를 오가며, 강변에서, 오래된 은행나무 아래에서, 어릴 적 추억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필자는 어릴 적 추억이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등하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생각나면 언제나 훌쩍 떠날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 굳이 과거에 국한되지 않고 우러난 숭늉처럼 고향의 맛과 냄새를 물씬 풍기는 글이다.

삶의 애환이 깃든 시장
내가 처음 시장에서 직물 점을 개업할 때는 나름 각오가 대단했었다. 이익만 챙기는 상인이 되지 않겠다. 고객을 우선 위하는 상인이 되겠다. 장사 자체에 보람과 기쁨을 찾는 장사꾼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시작했다. 그러나 시장의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 중략

돌아보면 온기가 있고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시장에서 수없이 많응 도움을 받았다. 과분한 사랑, 고마움 잊지 않고 작은 도움이라도 실천하자고 다짐한다. 나 또한 능력을 겸비하고 적극적인 젊은 상인에게 점포를 넘기고 명예로운 퇴진을 하고 싶다.
- 「삶의 현장」 중에서

막히면 뚫어라.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자영업 성공률은 약 20% 쯤이라고 한다. 장사해서 성공하려면 성실, 검소, 근면, 노력은 기본이다. 유대인 격언에는 세상에 깨끗한 돈, 더러운 돈이 따로 없다. 장사! 한마디로 말해 먹고살기 위한 절실한 수단이다.
아무나 하고 싶다고 쉽게 시작할 수 없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 「유종의 미」 중에서
물과 고기는 절대적, 불가분 한 관계이다. 시장은 물이요 상인은 고기이다. 등하는 영원한 상인임을 자처한다. 주변 상인들, 찾아오는 고객들과 동고동락하며 물경 40여 년간 시장 밥을 먹었다. 그의 타고난 근면한 성격이 한몫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고액의 권리금을 마다하고 무상으로 가게를 넘겨준 고마운 사장님, 성실하고 정직하라고 당부하며 항상 보살펴주신 건물주 등 많은 분들의 성원이 있었다. 시련을 넘어, 삶의 현장, 장날, 망자의 한복 등은 등하가 시장에서 겪고 느낀 내용을 글로 옮긴 수필이다. 시장이야말로 등하의 인생극장이다.

인생의 멘토 스승님
군사부일체, 무애, 도공 곡우, 서예 삼매경 등 글을 읽어보면 오늘날 등하가 이처럼 사회활동하는 원인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사람은 본래 완전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가르쳐서 사람으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어버이 같은 스승님.’
우리는 선생님으로부터 인자한 인성을 행동으로 본받은 것이다.
내가 본 경전 선생님은 겸손하다. 말수도 적고 항상 낮은 자세로 일관한다. 감히 그의 겸손을 따르려 했으나 언감생심 여의치 못했다. 등하는 붓글씨만 배운 게 아니라 선생님의 겸손함을 따르고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발해만에서는 요령함이라는 이름으로 항공모함을 건조하고 있습니다. 이 항공모함에 탑재하는 전투기는 섬(殲)으로 불립니다. 섬은 섬뜩하게 다 죽일 섬입니다. 중국은 거침없이 남중국해를 장악하고 세계 패권의 야망을 숨기지 않습니다. 눈부신 경제 발전과 더불어 막강한 군사력으로 위협하는 행보를 우리는 항상 주시해야 합니다.
중국 선양에서 한국의 전통문화 예술을 가르치고 있는 설봉 권윤홍 선생의 해박한 말씀이 이채롭다.

사회를 직시하는 안목
요즈음은 각종 모임이나 술자리에서 정치논쟁은 금물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일순 흑백논리에 휘말려 고성이 오가고 여흥은 파장이 되고 만다. 자신의 감정에 입각한 비판이 우선이고 근거와 논리는 입맛대로 갖다 붙인다.
그리고 내편이면 일방적으로 두둔하고 네 편이다 싶으면 무조건 비토하며 쌍심지를 켜고 물고 늘어진다. 보수, 진보 진영이 번갈아 집권하면서 지지층이 양분되어 서로 부딪치고 대립하는 형국이다. 세계적인 심리학자 맨 올슨은 자기가 지향하는 목적 달성을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가치지향형(purposvive)이 있고 진영논리에 의해 내편을 항상 확인하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친목 도모형(solidary)이 있다고 정의했다.
- 「민중은 불의에 저항한다」 중에서

1987년 6월 항쟁의 주역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보고 우리 모두 절망했다. 그러나 열사들의 값진 희생으로 온 국민들이 열망하던 군사정권 종식과 직선제를 쟁취하게 된다.
직선적이고 정의감에 불타는 등하의 성품으로 미루어 군사정권이나 사회 부조리에 울분을 삼켰을 것이다. 이 글은 우리가 처한 사회 현실을 통렬히 비판한 칼럼이다.

우리의 몸은 마음이 주인이다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내가 전화 상담이나 노인상담을 하다 보면 대다수 내재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특히 내담자 본인도 몰랐던 자기 자신의 문제를 상담을 통해서 발견하기도 했다.
- 「사랑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사람의 감각 기관으로서는 의식할 수 없는 미지의 그곳, 쉬임 없이 크고 작은 파장이 일어나는 곳, 끝없는 상상, 회상이 나래를 펴고 온갖 생각이 떠오르는 곳이 무의식 속에 잠재해있는 마음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는 또 자아의식이 자기 자신의 집에서 주인이 아니고 인간의 정신은 무의식이 지배한다고 강조했다.
- 「마음의 행로」 중에서

등하의 활동무대는 넓다.
다년간 심리학을 전공한 심리학자 못지않게 심리분석 탐구에 전념하여 나름 일가견을 가지고 있다. 프라이드의 무의식 세계, 칼 융의 인본주의 심리, 아 둘러 분석심리학, 인지심리학의 에릭슨 등 많은 분야에 심취했다. 등하는 꾸준히 이론을 배우는 한편 심리상담 활동을 하고 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국가안보
부대가 아닌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참으로 기뻤다. 그러나 비보가 날아왔다. 3중대 소속 병사 2명이 도주하는 공비의 유탄에 맞아 절명하고 말았다. 아! 이럴 수가… 절망의 순간, 어깨가 축 처진다. 조국도, 자유 평화도 아닌 오직 살아 남았어야 했다. 너와 나의 나라가 아닌 우리나라인 것을 같은 형제끼리 죽이고 죽는 참담한 비극은 끝나야 한다. 모든 부대원들이 비분강개하며 무거운 철모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 「자유와 평화는 힘으로 지킨다」 중에서

등하는 1968년 치악산 부대 복무 중에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에 출동하여 급박한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내용이다. 당시에는 호시탐탐 적화통일을 노리는 북괴 빨갱이 도발로 심각한 혼란에 빠져있었다. 평화를 지키지 못하면 자유를 누릴 수 없다. 그러나 평화는 값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굳건한 안보, 단결된 힘으로 자유와 평화를 수호해야 할 것이다.

뿌리, 근본, 그리고 어머니
등하의 수필 중 「청백리 서기순」 「뿌리」 「기일」 「도장」 「보릿고개」 등은 서씨 문중의 기원이며 어머니의 사모곡이다. 그는 종친 간에 모이면 묘 자리 문제로 다투는 모습을 보며 납골당을 건립하여 비로소 화목하게 된다. 언제나 매사에 공평하지 못하면 불평, 불만이 쌓이는 법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 또한 언젠가는 미래의 후손들에게 거울처럼 생생히 비춰질 것이다. 청백리 서기순은 납골당 옆에 세워져 있는 비석의 내력을 발품을 팔아 자료를 취합하여 써 내려간 글이다. 그러나 구전으로 전해 온다하여 무시할 수는 없다. 꾸준히 고증을 찾아서 밝혀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서씨 대치 문중의 역사기록으로 대단히 중요한 수필이다.

나는 오랫동안 고이 간직해온 도장 세 개가 있다. 수를 누리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난 큰형이 내게 선물한 유일한 유품이기 때문이다. 애석하게 돌아가신 형이 생각날 때마다 도장을 꺼내 백지에 찍어 보기도 하고 장인의 섬세한 도장을 새기던 형님의 모습을 그리며 회상에 잠긴다.
- 「도장」 중에서

일찍 세상을 떠난 큰형이 남긴 유일한 유품 도장을 보며 회상하는 내용의 글이다. 큰형에 대한 추억, 끈끈한 정이 오롯이 담겼다. 마흔일곱 성상 그리도 바삐 열반의 문을 두드리는가? 등하가 30여 년 전 잠 못 이루는 밤에 써놓은 「추념」 시가 필자의 가슴을 적신다.
기일은 어머니 제사를 지내며 제사의 의의를 기술한 글이다. 등하는 막내였지만 30여 년간 어머니를 모셨다고 한다. 그러나 제사는 큰집에서 함께 모시게 되어 기일에는 저녁상 차림으로 조촐하게 따로 모신다고 한다. 그리고 현 실정에 맞게 간소한 제례를 제안한다. 별 첨 꿈 이야기가 특별하다.

어쩌나 아이들이 배가 얼마나 고플까? 시래기는 아침에 담가 놓았지만 쌀이든 보리쌀이든 들어가야 죽을 끓일 수 있다.
- 중략

등에 업힌 막내를 추슬러 허리띠를다시 졸라매고 부엌으로 들어가 바가지를 찾는다. 어느 집으로 가야 하나? 염치없지만 아이들 배를 채워야 한다.
- 중략

“아버지! 아버지! 이 밤에 친정아버지가 오시다니… 숨이 차서 여러 번 쉬다 보니 늦었구나 하며 마루에 걸망을 내려놓는다. 아버지가 가져온 쌀을 솥에 안치며 밥물에 떨어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다. 기름지고 하얀 쌀밥을 언제 먹여 봤는가? 아이들 배불리 먹일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원은 없다.
- 중략

아버지가 떠나고 힘없는 발걸음으로 돌아와 잠자리를 정리하던 중 깜짝 놀랐다. 문종이로 접은 봉투에 10원짜리 지전 5장 50원이 들어있지 않은가?
흑흑 또다시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다. 손주들 더 먹이라고 새벽같이 떠난 아버지/ 네 자식이니 잘 키우라고 토닥이던 아버지/ 한 푼 두 푼 모은 돈을 모두 두고 가신 아버지/ 먼 길 떠나는 아버지 노자 한 푼 못 드려도 내색 않고 막내딸 꼬옥 안아 주시던 아버지/ 여항의 정삼댁 황학윤 내 어머니는 그해 보리가 익을 때까지 범보다 더 무서운 보릿고개를 그렇게 넘었다.
- 「보릿고개」 중에서

「보릿고개」를 읽으며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남편은 딴살림을 차려 나 몰라라 하고 어린 사 남매를 안고 오죽하면 아이들 배불리 먹일 수만 있다면 원이 없다고 했을까? 해는 저물어가고 보리쌀이라도 구해 와야 하는데 친정아버지가 지고 온 쌀을 안치며 밥물에 떨어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때 등에 업혀있던 막내아들 등하는 한 맺힌 어머니 고초를 지성으로 감성으로 눈물로 한 편의 수필을 풀어냈다.

나쁜 남자의 전형
「나쁜 남자」 이 수필은 분량이 많은 중 수필이다. 요즈음 수필 응모요령을 보면 2백 자 원고지 15매에서 10매로 줄어들고 7매로 제한하는 경우도 있다. 분량이 많으면 줄거리와 핵심이 늘어지는 감이 있기는 하다. 최대한 요점을 간추려 독자에게 읽히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수필의 특성은 분량이나 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자유로움에 있다. 그리고 더욱 현상이나 행동보다 자기 생각, 묘사 등을 비중에 두고 쓰라고 강조한다.

며칠 전에는 진동 무당의 큰 아들이 숨어있는 은신처를 알아냈다. 즉시 순사를 대동하고 현장에서 체포했다. 그날 용성 마을에 들어서니 구장이 지난 말 붙잡혀 징용 간 사내의 아낙이 서방의 소식을 몰라 애를 태우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호기심에 만나보니 아직 애 띠고 여간 고운 자태가 아니다. 그는 은근히 마음이 동했다. 사흘 후 다시 여인에게 찾아가 남편은 아직 조선에 있다고 거짓으로 말하고 남편을 꼭 만나게 해 주겠다고 친절하게 말한다. 두 사람은 삼랑진에서 기차를 타고 경주로 향했다. 그는 경주 여관방에서 굶주린 야누스로 돌변해 여인을 실컷 희롱하고 마음껏 욕정을 채웠다.
- 중략

젊은 아낙은 서방의 안위가 걱정되어 호색한의 꾀 임에 속은 줄 모르고 따라나섰던 것이다. 졸지에 온갖 수모를 당하고 몸까지 더럽힌 타락한 여인이 되고 말았다. 부끄러움과 수치심으로 얼굴을 들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고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혼자서 눈물로 밤을 새웠다. 그로부터 보름 후 가련한 이 여인은 낙동강에 투신하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깝고 한 많은 비극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고 식민지 조선은 억압과 착취로 신음할 때였다. 이영찬 그는 양산 양잠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면사무소에 동원담당 주사로 근무하게 된다. 그의 불행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 「나쁜 남자」 중에서

주막의 젊은 주모는 뜨끈뜨끈한 부침개를 접시에 담아 올리며 술상머리에 앉는다. 주모의 저고리 깃이 터질 듯 팽팽하다. 이 용찬. 그는 깃 섶에 눈을 떼지 못하고 슬며시 뒤를 더듬어보니 이외로 토실하고 실하다. 며칠 후 그는 작심하고 늦은 밤 찾아갔다. 욕정에 굶주린 두 남녀는 야릇한 눈길로 희롱하며 술잔이 오갔다. 그는 급기야 치마끈을 풀고 고쟁이를 벌리며 순식간에 덮쳤다. 인간에게는 선한 불륜은 없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법과 윤리, 도덕의 테두리 내에서 행동할 때 비로소 정상적인 사회인이다. 쾌락을 참지 못하고 저지르는 불륜은 본능으로 행동하는 짐승과 다를 바 없다.
- 「나쁜 남자」 중에서

등하는 원고지 100여 매에 달하는 많은 분량을 심혈을 기울여 쓴듯하다. 그는 글을 써 내려가면서 고심한 흔적도 보인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하고 곳곳에 완곡한 표현으로 호도하는 부분도 더러 있었다. 식물은 따뜻한 햇빛을 만나 그 인연 속에 꽃을 피운다. 그러나 계절이 다하면 미련 없이 사라진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난다. 만나야 할 사람은 꼭 만난다는 인연이 시절 인연이다. 대체로 인연은 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내 의지만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내 곁을 스쳐간 인연들은 모두 시절 인연이다. 등하는 만나지 않아야 될 사람, 원수를 만나거나 강도를 만나는 것은 악연이라고 했다. 전생의 업보인지 모르지만 두 사람의 만남으로 고행과 불행이 끝없이 이어 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이후 가족들이 비명에 죽어가고 행방불명이 되는 피폐한 삶을 이어가게 되는 것이다.

본댁의 생신날 찾아온 산성댁은 그날따라 술이 거나하게 취했다. “성님! 착하고 착한 홍식이 생각하면 너무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운학이는 비록 노름빚에 팔려가기는 했지만 용케 빠져나왔지요. 행방은 묘연하지만 행여나 어미를 찾아올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습니다. 그러나 홍식이는 20살 한창 젊은 나이에 내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성님! 죄 많은 이년, 이 어미의 죄 값을 죄 없는 불쌍한 아이들이 대신 받은 것 아닐까요?” 하면서 서럽게 서럽게 통곡한다. 그날 산성 댁은 고마운 본댁을 업고 넓은 마당을 돌면서 사죄! 사죄! 또 사죄했다. 이영찬 그는 이붓 자식을 노름빚으로 넘기고 머슴으로 보내 세경을 챙기고 술값으로 술집에 보낸다. 그러자 어린것이 엄마가 보고 싶어 몰래 돌아온 아이를 밖으로 쫓아낸다. 갈 곳 없는 아이는 결국 사창가로 팔려 가게 된다.

누가 무엇이 그를 오욕과 악행의 길로 인도했는가? 격랑의 사회 환경이 그에게 어두운 나락으로 떨어지게 했는가? 작은 권력을 큰 칼 인양 휘두르고 순박한 양민들에게 군림한 망동이 불행의 씨앗이었을까? 아니다. 모든 원인은 자신에게 있었다. 역경을 딛고 보람찬 삶을 살아가는 운선이가 해답이다.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윗분들 형제, 자매들 모두 탐욕에 악행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행위는 이영찬 외는 아무도 없다.
- 「나쁜 남자」 중에서

이 작품은 한 인간의 궤적을 철저히 추적하여 기록하듯이 쓴 고발 수필이다. 대체로 긍정적이고 밝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평범한 수필이 아니다. 많은 작가의 글을 읽었지만 비판이나 고발 수필은 드물다. 필자는 「나쁜 남자」를 읽으며 누구나 쉽게 수필가가 될 수 없음을 단언한다. 특히 이 글은 불필요한 미사여구를 과감하게 삭제하고 신속하게 다음으로 연결하는 대단히 빠른 행마를 보이는 속도 형 글쓰기를 보이고 있다.

‘주모의 저고리 깃이 터질 듯 팽팽하다.’ ‘고쟁이를 열고 순식간에 덮쳤다.’ 에로스(eros)와 타나토스(thanatos)적 행위에 씁쓸한 뒷맛을 풍기며 과감하고 흐드러진 장면을 연출한다. 등하의 집요한 추적이 혹독한 겨울을 연상하는 소설 같은 작품이다.

「진동 할머니」 역시 나쁜 남자의 연속이다. 간계로 아들을 징용으로 끌려간 나쁜 남자의 자식을 고심 끝에 몇 달에 걸쳐 소생시키는 할머니의 순박한 이야기이다. 진동 할머니의 치마폭은 넓다. ‘밤을 새워 굿을 하고 보리쌀 몇 되를받으면 나는 새들아 기어 다니는 짐승들아 너희들 먹을 것 내가 이삭 많이 주워 먹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말하며 들판에 보리쌀을 뿌려 주었다고 한다.’ 무심한 짐승에게 조차 미안함을 숨기지 않는 이 땅의 진정한 휴먼 할머니였다.
등하에게는 진동 할머니가 목숨을 이어준 구원의 생명의 은인이다.

떠나서 체험하는 여정
「연주 미담」 「소녀의 순정」 「여정」 「섬진강의 봄」 「망국의 기상」 「일련탁생」 등은 기행 수필에 해당된다. 여행을 떠나 직접 부딪치며 새로운 사물을 공감하고 느낌을 심플하게 표현하는 기행수필이어야 한다. 그러나 일정을 소개하는 나열식 내용이나 본 대로 글을 쓰면 자칫 무미건조한 수필이 될 수 있다.

‘백제는 이미 사면초가의 형국이었다. 살아 온갖 수모를 감내하느니 일가족을 베고 비장한 각오로 출정한 그는 끝까지 싸워 백제인의 기개와 더 높은 기상을 만방에 떨쳤다. 부여군청 로터리에 세워진 늠름한 계백장군의 동상은 천년을 넘어 백제인의 불굴의 정신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궁남지에 세워져 있는 용감무쌍한 5천 결사 대상은 이 지역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스며있을 것이다.’

- 「망국의 기상」 중에서

가족과 함께 옛 백제권 여행을 하면서 느낀 여행담이다. 장성 기생 취선의 오언 절구 한시가 패망한 허무함을 표현하고 작자는 계백장군의 불굴의 기상이 이 지역 정신을 상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주 미담」은 작가가 산업시찰단을 이끌고 중국 연주시를 방문하던 중 낯선 이방인을 극진히 환대하는 연주 시민의 온정이 담긴 진정한 의미의 미담이었다. 여행은 그곳에서 예정에 없이 갑자기 일어나는 돌발 사건이나 미담이 여행의 참맛이라고 하겠다.

의지와 도전으로 일관된 삶
등하의 수필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고 있다. 다양한 작품만큼 폭넓은 사회 활동을 해왔음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시장상인, 문중, 장학회, 포럼, 서예 심리상담, 치매예방, 자원봉사 등 많은 행적이 수필 속에 녹아있다. 특히 어떠한 상황이 전개 된다 해도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서는 냉정 하리 만치 객관적이다. 나아가 실존적 명확한 현실인식 자세를 취한다. 우리는 무거워 보인다고 해서 진지하고 가벼워 보인다고 해서 진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등하가 살아낸 과거의 궤적은 현재의 전사(前史)이다. 따라서 자신에게 더욱 진지하고 냉철한 성찰을 요구하는 진정한 미래지향적 사고를 극명하게 요구하고 있다.
금강경에는 환영, 꿈, 그림자, 물거품, 이슬처럼 무상한 인생을 깨닫게 하는 사구게(四句偈) 편이 있다. 자신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 보람찬 삶을 영위했다 하더라도 뒤돌아보면 덧없고 허망한 것이다
나쁜 남자 말미 중에 ‘한 인간의 죽음은 슬프다. 상여에 담긴 관을 바라보며 이렇게 갈 것을… 그나마 등하의 촉촉한 연민의 정을 엿볼 수 있다. 그는 항상 강하게 밀어붙이는 듯해도 내면의 따뜻한 측은지심이 느껴진다. 더욱 성숙한 자세로 작품 활동에 집중하여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고 깊숙한 천착으로 새로운 가치관을 그려낼 것으로 기대한다. 어쩌면 필자가 조급한 시선으로 등하만이 간직한 특별한 인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간과한 측면이 없었는지 조심스럽다.
등하에게는 아직 묻혀있는 못 다한 사연이 수두룩하다. 가족 이야기, 교우관계, 상담과 봉사활동 등 많은 스토리가 보퉁이째 산재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앞으로 진솔하게 드러내어 서효창 수필가의 문학적 역량으로 승화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