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열단→임정국무위원→신민당지도위원까지의 생애 제1장 출생과 성장기 평북 철산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용문사에 이어 봉선사의 승려생활 제2장 승복입고 항일운동 봉선사에서 국치 겪으며 민족의식 길러 독립선언식 참여하고 별도 성명서 제작발표 출옥 뒤 각종 사회운동단체 활동 제3장 베이징 민국대학 시절의 학업과 항일운동 독립운동 위해 중국망명, 민국대학 입학 ‘황야’ ‘혁명’ 등 잡지만들며 일제와 싸워 ‘반역사’ 조직 일제에 ‘반역’ 공산주의조직 ‘창일당’ 조직 제4장 광저우에서 의열단 활동ㆍ ‘미츠야협정’으로 베이징 떠나 의열단 20개조 강령작성 중산대학 편입, 항일운동 전개 우한으로 이동, 광동꼬뮨 참여 제5장 중국여성 두쥔훼이와 사랑과 결혼 엘리트 중국여성과 사랑에 빠져 혁명가로 성장한 두쥔훼이 부부혁명가 김성숙과 두쥔훼이 광저우봉기에 참가하고 살아남아 제6장 상하이와 광저우 오가며 활동 상하이로 옮겨 문필활동 노신 등 진보문인들과 항일운동 제7장 중일전쟁의 격랑 속에서 조선민족해방동맹 결성하다 조선의용대 창설에 참여 의용대 창설의 이모저모 ‘조선의용대통신’에 많은 글 기고 제8장 대한민국임시정부 시절 조선의용대 활동 접고 임시정부 합류 광복군 김준엽이 만난 김성숙 의정원에서 국무위원으로 뽑혀 이승만의 ‘훼방외교’ 성토 전쟁말기 ‘중한문화협회’ 등 깊이 관여 제9장 일제의 항복과 환국전후 해방맞았으나 가족과 생이별 환국에 앞서 ‘임정 약법3장’ 제시 고국의 흙 한 움큼 손에 쥐고 흙냄새를 임정요인들의 ‘민주의원’ 참여 반대 미군정에서 6개월 투옥당해 ‘민전’ 참여했다가 탈퇴 근민당 참여, 여운형 암살로 당 해체 정치공작 모르는 솔직인물 - 김오성의 평가 제10장 이승만 폭정에 맞서다ㆍ 제2대 총선출마 낙선, 부산에서 투옥 이승만 국가안보 망치고 권력욕만 발췌개헌에 이어 사사오입 개헌 진보세력의 분열 민주혁신당에 날조된 사건으로 6개월 투옥, 무죄판결 아들 셋 찾아왔으나 당국에서 추방 제11장 4월혁명 전후 4월혁명 맞아 사회대중당 참여 ‘민자통’ 의장단으로 민족통일운동 이끌어 제12장 5·16 쿠데타와 군정시기 5·16 쿠데타로 또 투옥 ‘정정법’에 묶이고 보수야당 참여 제13장 ‘김성숙의 혁명일기’ ‘혁명일기’에 어떤 사연 담겼나 쌀은 됫박으로 사다먹은 처지에 50년 동안 안정된 생활 못해봐 우리는 아직 독립하지 못한 나라 제14장 병고와 좌절 속에서 신민당 지도위원으로 위촉 71살로 서거, 뒤늦게 건국공로훈장 추서
의열단→임정국무위원→신민당지도위원까지의 생애 운암雲巖 김성숙金星淑 선생,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생소한 인물이다. 선생은 왜적 치하에서 억울하고 해방 뒤에도 억울했다. 살아서도 억울하고 죽은 뒤에도 억울한 분들이 우리나라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이지만, 운암 선생의 경우 특히 심한 편이다. 나라 망한 무렵에 태어나 식민지 백성으로 사는 것이 억울하여 용문사에 들어가 승려가 되고, 나라 되찾는 3·1혁명에 참여했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신채호 등의 권유로 의열단에 가입하여 일제와 싸우면서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다. 25살에 망명하여 해방 때까지 22년 동안 의열단→광동꼬뮨→중국대학 교수→문필활동→조선민족해방동맹→조선민족혁명당→조선민족전선연맹→조선의용대→임시정부 국무위원 등을 역임하며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일제와 싸웠다. 인생의 황금기 청춘을 오롯이 항일투쟁에 바쳤다. 오로지 조국해방이라는 신념을 위하여. 파란만장→파란곡절→파란중첩→간난신고→풍찬노숙…선생의 생애, 더 이상 무슨 용어가 필요할까. 일제강점기는 왜적의 치하니까 망국노의 고초가 숙명이라고 치더라도, 해방 뒤 선생이 겪은 옥고와 빈한과 병고, 시련은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 파란만장→파란곡절→파란중첩→간난신고의 삶을 산 선생의 궤적을 찾아 떠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