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편지-외국남자 두 번째 편지-기적의 헬리콥터 MI-6 세 번째 편지-목소리 네 번째 편지-간호사 라이사 다섯 번째 편지-솔로들의 행진 여섯 번째 편지-모닥불 가에서 일곱 번째 편지-육지 소령들 1 여덟 번째 편지-육지 소령들 2 아홉 번째 편지-육지 소령들 3 열 번째 편지-어디가 불편하신가요, 중사님- 열한 번째 편지-작업 중에 생긴 일 열두 번째 편지-나 검사야 열세 번째 편지-공연 열네 번째 편지-앞으로 열다섯 번째 편지
도블라토프, 교도소에서 작가의 길을 걷기로 하다 ≪수용소(Зона)≫는 수용소에 얽힌 짧은 이야기 열네 편을 모아 놓은 단편집이다. 도블라토프가 군 전역 직후 1960년대에 쓴 작품부터 미국 이민 후 1980년대에 쓴 작품까지 집필 시기가 모두 다른 열네 편의 단편을 ‘편집장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실로 꿰었다. 1959년 레닌국립대학교 핀란드어과에 입학한 세르게이 도블라토프는 불성실한 학업 태도로 3학년 때 퇴학을 당한 후 입대 통지서를 받는다. 그렇게 1962년부터 1965년까지 3년간 교도관으로 군 복무를 하게 되는데, 첫 열 달 동안 복무한 곳이 바로 ≪수용소≫의 지리적 배경이 되는 코미 공화국이다. 레닌그라드 출신으로 교양 있게 자란 20대 초반의 인문학도에게 산전수전 겪으며 범법으로 잔뼈가 굵은 자들이 가득한 수용소의 “끔찍한 조건들(кошмарные условия)”에 적응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도블라토프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많은 편지를 썼고, “자신을 살려주고”, “일말의 진실이 있는” 시(詩)를 쓰면서 군 생활을 버텨 냈다. 교도관 도블라토프에게 “쓰는 것”은 수용소라는 폐쇄 공간에서 하루하루를 살아 내는 숨통이기도 했지만, 막막한 미래를 살아 낼 하나의 빛줄기이기도 했다. 바로 이 교도소에서 작가로의 길을 확정지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작가가 될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도 명확하게 설정했기 때문이다.
범인(犯人)의 이야기, 범인(凡人)의 이야기 러시아에서는 수용소를 예술적으로 독특하게 형상화한 ‘수용소 문학’이 발달했다. 본문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솔제니친이나 샬라모프 외에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도스토옙스키(≪죽음의 집의 기록≫ 같은 경우) 역시 수용소 문학에서 언급된다. 도블라토프의 ≪수용소≫는 이 장르의 계보를 잇는 20세기 작품 중 하나다. 기존의 수용소 문학과 도블라토프 작품의 가장 큰 차이는 그가 ‘수용소’를 삶과 동떨어진 특수 공간으로, 그 속에서 생활하는 죄수들을 일반인과 다른 특이한 사람들로 취급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단지 일상과 격리되어 있는 공간인 수용소에서,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전제 위에서 이야기가 진행될 뿐이다. 솔제니친이 수용소를 소름 돋을 정도로 끔찍한 “지옥”이라 할지언정, 도블라토프는 ≪수용소≫에서 그 끔찍한 정황들을 “생리학 보고서”처럼 생생하게 그려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제 생각에 지옥은 우리 자신들인데 말이죠….” 작가의 관심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머무른다. 작가 자신도 명확히 밝힌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제 관심은 삶이지 감옥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람이지, 괴물이 아니고요.” ≪수용소≫는 수용소라는 특수 공간에서 살아가는 범인(犯人)의 범인(凡人)적 이야기다. 첫 편지에서부터 ≪수용소≫가 기존의 다른 수용소 작품과 다르다고 확실하게 선을 긋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책속에서
[P.76] 위태로운 상황에서 사람들은 변합니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변하죠. 좋은 쪽에서 나쁜 쪽으로든 그 반대로든 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인간의 뇌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인 지각도 변하지 않았고요. 말인즉슨, 진보는 없다는 것입니다. 변화무쌍함을 근간에 둔 움직임이 있을 뿐. 이 모든 것이 윤회 사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시간을 공간으로 바꾸기만 하면 말이죠. 환경이 바뀌는 공간으로 말입니다….
[P. 265~266] 갑자기 구린이 말했다. “저들은 얼마나 많은 민중을 짓눌렀을까요?” “누구 말입니까?” 나는 못 알아들었다. “이 멍멍이들 말입니다…. 레닌과 제르진스키. 피도 회향도 없는 기사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구린을 신용할 수 있을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리고 대체적으로, 이 구린이란 자는 왜 이렇게 내게 솔직하게 구는 걸까…? 죄수는 진정하지 못했다. “여기 나는, 예를 들자면, 절도로 살고 있죠. 모틸은, 가령, 몽둥이를 여기로 던진 게 아니고요. 게샤는 뭔가 여자 밀수꾼 정도고…. 보시다시피, 한 사람도 손에 피 묻히는 짓은 하지 않았다고요…. 그런데 이들은 러시아를 피로 불바다를 만들었는데도, 그래도 괜찮다….” “글쎄,” 내가 말한다. “이미 과하십니다….” “거기에 뭐가 그렇게 과합니까? 그들이 바로 모든 걸 피바다로 만들었는데….”
[P. 274] 수용소에서 살인자 마메도프가 미용사로 일했다. 매번 수건으로 누군가의 목을 두르면서 마메도프는 말했다. “싹둑, 정신 바짝 차리라고…!” 이 말은 그가 좋아하는 직업 멘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