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 49~50] 입원해 있는 동안 어머님은 내가 혹시 불편할까봐 이것저것 더 많이 신경 써주셨다. 그런 어머님을 보니 지난여름 조카들을 돌보게 되어 서운했던 일이 떠올랐다. 나만 외톨이가 된듯한 기분, 서러웠던 감정이 되살아났다. 그러나 서글픔이나 노여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시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같이 마주보고, 밥 먹고, 부딪치면서 가족이 되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지만 정작 실천은 못 했던 것이다. 이기적인 내 삶에 치우쳐 모두를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병원에서 어머님의 돌봄을 받으며 그런 나를 뉘우칠 수 있었다. 알몸을 다 보여드리고 나니 어머님이 친정엄마처럼 따뜻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 나는 엄마가 둘이다.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해준 엄마와 내가 결혼을 하고 어른이 되게 해준 엄마. 두 엄마 덕분에 늘 힘이 난다. 엄마라는 존재는 대단하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엄마는 최고다.
사랑해요, 엄마들!
[P. 123~124] 돌이켜보면, 사랑이었다. 설렘과 두근거림은 없었지만 분명 사랑이었다. 십 년을 살며 함께 곁을 지킨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부부였다. 지금 남편과 나는 설레고 두근거리는 사랑은 하지 않는다. 서로 힘들 때 안아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는 사랑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감사하다. 새로운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해준 남편에게, 우리의 삶에게 감사하다.
이제 우리는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인다. 서로의 표정을 바라보며 상대방의 마음 읽기를 하려고 노력한다. 연애할 때보다 즐겁지는 않지만 편안하다. 평생을 두근거리며 살면 좋겠지만 그것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그야말로 십 년 넘은 부부들은 ‘의리’로 산다는데, 우리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의리에도 사랑이 담겨 있다. 사랑이 없다면 의리는 쉽게 깨진다.
언젠가 나는 바로 옆에 있는 내 남편에게 뜬금없이 이야기했다.
“사랑해.”
남편은 조금 어이없어 했지만 기분은 좋아 보였다. 역시 사랑한다면, 지금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미룰 필요도, 망설일 필요도 없다. 그러다가는 사랑한다 말할 기회를 놓치기 십상이다. 후회하게 된다. 나는 세 아들에게도 자주 말한다.
“사랑해.”
사랑한다는 말에 사내 녀석들의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번진다. 그 모습이 더욱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