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시대의 대학 언론이란? 1950년대 6·25 전후 대학 저널리즘의 태동 1960년대 4·19와 좌절된 민주주의 1970년대 유신과 긴급조치 시대의 대학 언론 1980년대_1 사월에서 오월까지, 그때 핀슨 홀에서 1980년대_2 80년 광주와 연세춘추 1980년대_3 87년 6월 항쟁, 이한열과 민주화 1980년대_4 학원 자율화와 연세춘추 1990년대 전반 우리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1990년대 후반 세기말, X세대, 불탄 종합관과 연세춘추의 어느 좋았던 시절 2000년대 대학, 언론, 대학 언론의 위기 2010년대 이후 21세기의 대학, 대학 언론의 좌표
3부: 대학 언론의 위기, 그 명제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연세춘추동인회 주관 대학 언론 좌담회 맺음말
부록 역대 신문방송 편집인 역대 주간교수 역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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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언론 두 세기의 대화 : 연세춘추로 본 대학 언론의 역사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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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그대 가는 길이 역사다!”
한국의 대표적인 대학 언론 『연세춘추』를 대상으로 한국전쟁 이후의 시기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대학과 사회, 대학과 저널리즘의 역사적 변천을 고찰한다.
한국의 대학 언론은 1950년대 태동하여 70여 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다. 대학 언론은 현대적 의미의 저널리즘이 본격적으로 출발하기 이전에 우리 사회의 대안적 언론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조명은 그동안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대학 언론은 비단 한 대학공동체를 넘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들에 대해 비판적 문제를 제기해왔으며, 오늘날처럼 언론 자유가 만개하기 이전에 기성 언론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했다. 동시에 아카데믹 저널리즘이라는 독특한 위상 속에서 학술적 공론의 장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 책은 대학 언론을 통해 성장했던 언론인 간의 대담과 토론을 통하여 대학 언론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시도이다. 대학 언론을 통해 기성 언론으로 진출한 20세기의 선배들과 대학 언론에서 성장하여 21세기 언론에서 활동하고 있는 후배들 간의 대화를 통해 과거 우리 사회와 대학사회가 직면했던 현실을 오늘날의 시각으로 성찰한다. 이는 대학 언론이라는 독특하고 건강한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고찰이라는 측면에서 그동안 언론계와 학계에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영역에 대한 선구적 시도가 될 것이다. 대학 언론 역사의 정직한 회고록이자 대학 언론과 함께했던 청춘들의 희로애락 기록
대한민국의 기록을 돌이켜보면 항상 대학 언론이 함께 있었다. 대한민국의 시간 속에서 대학생은 언제나 목격자임과 동시에 행위자였으니, 그들이 대학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남긴 모든 잉크 자국이 대한민국 역사의 획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학 언론, 두 세기의 대화』는 이처럼 대한민국 역사에 많은 부분 기여했음에도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던 대학 언론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는 자체로 큰 의미를 지닌다. 대학 언론의 역사를 통하여 당대 대학인의 총체적 인식을 파악하고, 변천 과정을 성찰함으로 대학의 사회적 역할과 대학 저널리즘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 볼 수 있다. 나아가 대학 언론의 기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역사적 회고는 한국 언론사의 전사이자 공백으로 남아있는 부분에 대한 점검의 기회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거시적인 관점의 대학 언론으로 국한되지 않고, 실질적으로 대학 언론의 주체인 대학 언론인 개개인의 진솔한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옮겼다는 점에서 『대학 언론, 두 세기의 대화』는 한국 사회에서 대학 언론이 갖는 사회적, 역사적 의미와 함께 언론인이 가진, 가져야 할 사명과 역할에 대해서도 성찰하게끔 만들며, 당시 보도할 수 없었던 시대상에 대한 배경을 기록으로 남겨 사료적 가치 또한 더하였다. 이 책을 통해 대학 언론의 위상과 역할을 새롭게 정립하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책속에서
대학신문은 사회문제에 크게 개입하지 않는 것이 당시 추세였다. 그러나 한때 조금 특별한 특집으로 연세춘추가 곤욕을 치른 사건이 있었다. 바로 5·16 이후 1년 뒤에 진행된 ‘혁명 공약대로 민정이 이양되겠는가’에 대한 앙케트다. 이는 연세대학교 학생들과 이화여대 학생 500명을 대상으로 앙케트를 진행했던 특집이었다. 당시 취재부장이었던 나 그리고 김성효 군이 앙케트 면을 담당하고 있었다. ‘혁명 공양대로 민정이 이양되겠는가’라는 질문에 ‘아니다’라는 부정적인 답변이 우세했으며, 한편으로는 다행히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나 싶었다. 그러나 일본 재팬타임스에서 문제가 되었다. 앙케트의 결과가 일본에서 공개가 되었고, 일본 주일대표부에 있던 공보관이 해당 결과를 확인하면서 역으로 연락이 온 것이다. 사람들이 들이닥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 ‘4·19와 좌절된 민주주의’ 중에서
문동만의 시 중에 「사월이 오월에게」라는 것이 있는데, 80년대 초의 상황은 딱 그랬다. ‘겹겹이 포개어진 사월과 오월 사이’에는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겹겹이 포개어져 있었다. 우리가 겪은 최초의 시위는 4·19 무렵이었다. ‘독재타도!’의 구호가 두 음절도 채 목구멍을 넘어오기 전에 교정 가득 앉아있던 사복경찰들이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그들이 무차별적으로 던진 사과탄이 파편과 함께 날아다녀 치마 입은 여학생들의 다리가 피로 물들었다. 인문학관 대형강의실에도 사과탄이 터져 매캐한 연기로 가득차기도 했다. 우리는 처음 본 공권력의 막강한 무력에 압도되었다. 그리고 그 주말 조선일보 외간실에 모인 우리는 주간 교수의 매서운 눈초리와 선배들의 침묵에 다시 압도되었다. 발언권이 없는 예비수습이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벌어진 사건인 시위를 1단 기사로도 쓸 수 없다는 사실에 우리는 절망했다. 1980년 신문처럼 그 자리를 여백으로 남기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사월에서 오월까지, 그때 핀슨 홀에서’ 중에서
붉은색 플러스펜으로 첨삭한 원고를 여러 차례 반복해 고쳐 쓰다 보면, 밤 9시를 넘겨서야 오케이(OK) 사인이 떨어졌다. 백양로를 함께 걸어 신촌으로 내려온 우리는 ‘백두갈비’에서 막걸리에 늦은 저녁을 먹거나 ‘만미투’, ‘원투쓰리’에서 맥주를 들이켜다 지하철 막차 시간에 맞춰 귀가하곤 했다. 아쉬울 때면 돈 모아 술을 산 뒤 ‘은하장’, ‘성일여관’ 등에 방을 잡거나, 학교에 올라가 새벽까지 마신 뒤 학생회관 아무데서나 잠을 잤다. 취재부장은 종종 큰 소리로 우리들의 원고 한 대목씩을 읽어준 뒤 공개 면박을 주곤 했다. “유치하고 조악하기 짝이 없는 이 문장은 대체 누구 것이냐?” 쓰고 고치고 베껴 쓰기를 서너 차례 반복하는 이 과정은 극도의 모멸감을 견디는 훈련이기도 했다. - ‘우리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