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 서문 4 추 천 사 『정원에 물을 주며-관원 선생 문집 역주』 초고를 읽어 보고서 _ 이장우 8 추 천 사 국역 『관원 선생 문집』 출간에 부쳐 _ 박원순 12 관원 선생 문집 권1 시│23 1. 무제(無題)│25 2. 무오년 정시에서(戊午庭試)│27 3. 함종현에서 제영한 시(咸從縣題詠)│30 4. 내사 기명언대승 친척 어른께 써서 바침(錄奉內史奇明大升戚丈)│33 5. 명언(明彦)께 화답하여 바침 7수(奉和明彦七首)│36 6. ‘고열’, 임평사제에게 드림(苦熱贈林評事悌)│49 7. 주청사 윤자고근수의 사신행을 송별하며(送別奏請使尹子固根壽之行)│53 8. 스스로를 읊음(自)│56 9. 윤장원 시권 뒤에 지음(題尹長源詩卷後)│58 10. 만포 수항정에 제함(題滿浦受降亭)│60 11. 남명 조선생식 만사 2수(挽南冥曹先生植二首)│64 12. 숭덕재 이판서윤경 만사 3수(挽崇德齋李判書潤慶三首)│69 13. 윤정 만사(挽尹)│73 14. 참군 아우용현를 곡함(哭參軍弟用)75 15. 희천군에서 죽은 벗 백평사광홍의 시에 차운하여(熙川郡次亡友白評事光弘韻)│77 16. 강서현 시판의 운자를 차운하여 정경 사또님께 취해 올림 4수(江西縣次板上韻 醉奉靜卿使君四首)│81 17. 만포로 부임할 때 평산부에서 지음(赴滿浦時題平山府)85 18. 눈금당에 제영한 시(嫩金堂題詠)│87 19. 자계 열여섯 노래(紫溪十六詠)│91 20. 이구암[의 자손들이] 여묘살이하는 곳에 들려 그 손자 호섭과 곤섭에게 줌 3수(過李龜嚴守廬處贈其孫虎變鯤變三首)│119 21. 안성 극적루 시에 차운하여(次安城克敵樓韻)│122 22. 퇴계 이선생황께 받들어 드림(奉贈退溪李先生滉)│126 23. 다시 임평사 시에 차운하여 5수(再次林評事五首)│128 24. 유회부가 제주판관에 제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聞柳晦夫除濟州判官)│138 25. 유사익에게 드림 2수(贈柳師益二首)│140 26. 삭녕군 임지로 가시는 숙부님과 작별하며 지어드림 5수(奉別叔父赴朔寧郡任所五首)│143 27. 임평사와 이별하며 줌(贈別林評事)│148 28. 승려의 시축에 지어 김내한질충에 부쳐 보임(題僧軸寄示金內翰質忠)│150 29. 『기재기이』 권 뒤에 지음(題企齋記異卷後)│152 30. 금오청사에 지음(題金吾廳事)│154 31. 박훤 시고(詩藁) 권두에 지음(題朴萱詩藁卷面)│156 32. 방가모정에 지음(題方家茅亭)│158 33. ‘탄금도’에 지음(題彈琴圖) │163 34. 아우 명치가 그린 대나무에 지음용현(題舍弟鳴治畵竹用賢)│166 35. 원오(圓悟)의 시축에 지음(題圓悟詩軸)│168 36. 지능의 시축에 차운하여 지음(次題智能詩軸)│170 37. 이잠계전인 시에 차운하여 4수(次李潛溪全仁四首)│172 38. 무제(無題)│176 39. 임평사의 ‘당귀초’ 시운을 빌려(次林評事當歸草韻)│179 40. 임평사의 ‘화병의 연꽃’ 시를 차운함(次林評事蓮韻)│181 41. 임평사의 ‘술회’ 시운을 빌려(次林評事述懷韻)│185 42. 조송강사수께 올림(上趙松岡士秀)│188 43. 닭실 청암정에서 삼가 퇴계선생의 시운을 빌려 지음(酉谷靑嚴亭敬次退溪先生韻)│191 44. 눈을 읊음(雪)│201 45. 만포진 수항정 제영시에 차운하여(次滿浦鎭受降亭韻)│204 46. 향설헌 제영시(香雪軒題詠)│208 47. 망경루 시에 차운하여 지음(望京樓次題)│212 48. 태안객관에 제영함(泰安客館題詠)│216 49. 이잠계 시에 차운하여 2수(次李潛溪二首)│218 50. 서극일 시에 차운하여 2수(次徐克一韻二首)│221 51. 안성 객헌에서 청룡사 스님을 만나서(安城客軒遇靑龍寺僧)│225 52. 진위현 제영시(振威縣題詠)│227 53. 신 매제 집 잔치에 가서(赴宴申妹第)│229 54. 노소재수신께 드림(贈盧蘇齋守愼)│231 55.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하며 오매역에 지음(赴按湖南題烏梅驛)│233 56. 임평사에게 화답함(和林評事八首)│235 57. 성남장 작은 술자리에서 이장윤의 시운을 빌려(城南庄小酌次李長胤韻)│264 58. ‘동교’시를 차운하여(次東郊韻)│267 59. 연경으로 가시는 숙부님과 작별하며 드림(奉別叔父赴京)│269 60. 문서린의 시권에 지음(題文瑞麟詩卷)│271 61. 황경문정욱을 전송하며(送景文廷彧)│273 62. 북방 병영으로 부임하는 정공언신입부를 봉별하며(奉別鄭公信立夫赴北兵營)│277 서간書 · 갈碣│281 이잠계에게 보냄정묘시월회일(與李潛溪 丁卯十月晦)│283 이잠계에 답함(答李潛溪)│284 증 정부인 황씨 묘갈(贈貞夫人氏墓碣)│285 관원 선생 문집 권2 2-1. 박감사가 보내온 시에 차운하여 2수(次朴監司見寄韻二首)│293 2-2. 박판서께 드림(贈朴判書) 조사 장영(張詔使 寧)│296 2-10. 취해 박 감사님께 올림 2수(醉呈朴使相二首) 백호(白湖)│299 2-11. 관원선생을 애도함 6수(悼灌園先生六首) 백호(白湖)│303 2-12. 시호를 맞이할 때의 원운시(延謚韻)│310 2-13. [또]│312 행장(行狀)-종오대손 통훈대부 세자시강원 보덕겸 춘추관편수관 박성원(朴聖源, 1697~1767)│315 유사들을 대략 기술함(遺事略)│331 신도비명(神道碑銘)-우의정 심희수(沈喜壽, 1548~1622)│335 시장(謚狀)-숭록대부 홍계희(崇祿 洪啓禧, 1703~1771)│348 시호를 맞을 때 무덤에 고유한 글(延謚告由文)│361 후서(後)│363 발(跋)│367 보유│369 I . 문집에 수록되지 않은 관원의 시문들│371 Ⅱ. 관원에게 보낸 시문들│397 연보│423 발(권기연)│456 발(박병하)│458 발(박찬규)│460 발(박영각)│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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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원 박계현의 시문들은 말 그대로 ‘일고(逸稿)’의 형태로 남아 전합니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기록을 잃었고, 여기저기에 남아 전하는 것을 손자인 퇴우당(退憂堂) 박승종(朴承宗, 1562~1623)이 『밀산세고(密山世稿)』로 엮었던 것에서 출발합니다. 이후 부친인 낙촌(駱村) 박충원(朴忠元, 1507~1581)과 송강(松岡) 조사수(趙士秀, 1502~1558)가 제주도와 영월을 사이에 두고 교우를 다진 『영해창수록(嶺海唱酬錄)』 부록으로 편집된, 『관원백호창수록(灌園白湖唱酬錄)』의 작품들을 가려내 문집의 형태를 갖춘 것입니다. 이 책이 바로 이씨 왕가(王家) 소장본[1925년 영인] 『낙촌유고(駱村遺稿)』입니다. 관원선생의 문집은 그 부록 1권으로 편제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안타까워한 후손들이 1927년 『낙촌유고』에서 분리하여 별도의 문집으로 편집하면서, 다른 문집에서 몇 편을 더 수습하여 편제한 것입니다. 이 단행본이 가장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저본으로 삼아 번역하고 해설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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