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 42~43] 자기애의 시작이자 비교가 일상인 시대에 삶의 지혜가 될 수 있는 자기 합리화를 비난하기 힘들다. 사실 자기 합리화 좀 하면 어때? 법으로 금지된 것도 아닌데. 우리는 왜 그토록 자기 합리화를 부정해왔을까.
평탄하게 살아온 보통의 사람이라도 크고 작은 경험들이 이루어져 지금의 자신의 모습과 성격을 갖고 있다. 더 나은 삶을 원한다면, 혹은 지금 무력감에 빠져 있다면, 아직 시련을 극복해야 한다면 꼭 해야 할 것들이 있다.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다. 끈기가 없고 이 기적이며 할 줄 아는 건 없지만 자존심은 세고 비교당하는 건 싫지만 늘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있는 자신의 이중성,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의 끝판왕임을 인정하자. 고고한 척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가끔 규칙을 어기기도 하고 뒷담화도 종종 하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자. 다른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었더라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을지도 모르겠다. 놀라운 건 인간의 이중성과 게으름과 이기적인 면은 본성이자 누구나 갖고 있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라고 인정해버리자. 그러면 드디어 비교에서 자유로워지고 내 자신이 사랑스러워질 것이다.
그렇게 자신만 알고 이중적인 내가 이렇게 잘 성장해왔다. 직장에서 적당히 비위도 맞추면서 살아가는 법도 터득했고 운동을 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책을 읽으려 애쓰기도 한다. 게으르지만 출근시간 약속시간에 맞추면서 씻고 단정히 꾸미고 나가는 내 모습에 놀랄지도 모른다. 가정을 이루고 혹은 지금 시간을 즐기고 소소하지만 확실히 내가 무엇을 하면 즐거울지 아는 내 모습에 스스로 대견할지도 모른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 포기할 때 패배자라는 생각보다 차라리 자기 합리화가 더 긍정적인 내 모습으로 바뀔 것 같다면 그렇게 선택해버리자. 내가 썩 괜찮은 사람임을 증명하는 일은 자기 자신을 밑바닥까지 인정했을 때 저절로 가능해진다.
[P. 134~135] 어디서 행복을 찾았던 것일까? 생각해보면 불행하지는 않았지만 늘 만족하며 감사하면서 살진 않았다. 늘 더 높은 것, 더 새로운 것, 더 나은 것에 대한 갈망만이 있었다. 그 갈망의 시간이 지나면 공허했다. 지금 당장 행복을 찾지 않으면 내일도 행복할 수 없다는 말이 흔히 말하는 뼈를 때리는 말로 다가왔다. 나만 일이 풀리지 않고 나만 행복하지 않아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행복하지 않을 이유를 찾아보자. 찾다 찾다 보면 생각보다 없다. 우리는 행복하지 않기 위해 핑계를 대면서 사는 것이 아닐까.
왜 나만 제자리걸음일까? 답답해서 3살 딸아이에게 물어봤다.
“딸아, 너는 행복하니?”
“엄마 행복이 뭐야?”
“글쎄? 기분 좋은 거? 신나는 거? 설레는 거?”
“엄마 나 지금 기분 좋은데? 어제도 기분 좋았는데?”
“그럼 내일은 기분이 어떨 것 같아?”
“모르겠는데, 엄마.”
딸아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약간은 본인의 놀이를 방해한 것이 귀찮다는 듯이 내뱉은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내일의 일은 모른다. 내일의 가지지 못할 나의 발걸음 때문에 오늘의 한 발짝을 우습게 여겼다. 오늘 한 발짝을 움직인 나를 격려하고 칭찬하자. 행복하지 않을 수많은 핑계 대신 지금의 행복을 만끽하자. 우리가 행복하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