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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 옛길에 빠지다
감고당 길 ---15
영원한 재귀 ---21
궁 속의 궁, 건청궁--- 27
장희빈 신주를 모신 칠궁 ---33
경복궁 서쪽 돌담길을 따라 걷다 ---39
궁정동, 무궁화동산 ---45
춤추는 언덕길 ---49
익선동, 낮은 창문 앞에
서다 ---55
문밖에서 ---63
공평도시유적전시관(김승옥의 무진기행 풍) --- 71
‘송석원’을 찾아서 --- 77
창경궁 유리온실 이야기 --- 85
허난설헌의 곡자 ---91
귀신사 홀어머니다리---99
고유정, 2019년과 1933년 사이 ---107

PART2, 카메라에 담긴
생각
봄 외 -114날

PART3, 글의 풍경
토니오 크뢰거---152
내버려 둬--- 158
댈러웨이 부인을
읽었다 - 164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이 좋아지는 순간---168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 172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음예예찬---177
뽕짝---180
태어나줘서 고맙다---182
설날과 위로---185
넌 너무 말이 많아---187
클린트 이스트우드 닮고 싶다---192

PART4, 광화문으로 가는 여섯 갈래 길(실화소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200
한교훈 씨, 그 오래도록 불편한 기억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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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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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없음을 불평하지 마라.
어느 산책길에서
별안간 땅속에서 발굴된 고향의 골목길과
집터를 대면할지도 모르니.


고층 아파트와 유리빌딩들이 내려다보는 거대 도시 서울에서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굴까. 과거에는 무작정 서울에 상경했다가 잘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올랐으나, 어느 때부턴가 서울살이의 치열한 경쟁에서 탈락해 길바닥에 나앉은 노숙자들이 앞섰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겉보기엔 성공한 사람으로 여겼는데, 어느 날 빈 아파트에서 고독사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인구 천만이 넘는 서울에서 그를 찾아오는 지인이라고는 구청과 동사무소, 돌봄센터 직원 몇 사람밖에 없다.
‘낮은 창문 앞에 서다’의 저자 고원영은 어떤 지위나 위치에서건 고독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현대인이 구축한 촘촘한 질서와 냉정한 사고방식에서 잠시라도 벗어나려 옛 골목길을 걷는다고 한다. 일탈에 불과하지만 핼스클럽이나 명상센터에 다녀온 것처럼 가볍고 느슨해진다. 골목길에서 볼 수 있는 가난과 나태한 삶의 흔적들에게서 위안을 받았기 때문이다. 서울토박이인 저자에게는 골목길이 곧 고향인 셈이다. 낮은 지붕, 낮은 대문, 낮은 담장, 낮은 창문…… 낮은 데로 임하는 동안 자연스레 도시에서의 불안과 고독을 씻어내게 된다.

- ‘낮은 창문 앞에 서다’를 쓴 배경은?
무엇이 행복일까. 손바닥에 스마트 폰을 올려놓고 세상을 일목요연하게 들여다보지만, 행복은 어디서든 깜깜무소식이다. 저 유리빌딩은 양보를 모르는 사고방식만큼이나 차갑고, 저 아파트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는 언어를 빼닮아 숨 막히게 촘촘하구나.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다. 그 모습이 바로 우리가 천착해온 모습 아닌가. 그 모습에 고통을 느낀다면 자신들이 구축한 현대 문명에 오히려 버림을 받은 꼴이다. 잘 구획된 도시, 깔끔한 거리 위에서 통증처럼 고독을 호소하지만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세계 최고의 이혼율,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노숙자, 점점 연령대가 낮아지는 고독사……. 어디서부터가 잘못일까. 저자 고원영은 2019년에 쓴 에쎄이 ‘골목길 카프카’에서 이미 말했다. “그 옛날 가난했던 골목길에서도 분명히 행복은 있었다.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는 종류의 행복이었다.”
이제 저자는 그 지향점으로 더 먼 곳을 바라본다. 그곳은 서울토박이면서 이방인처럼 거대 도시 서울을 방황해온 저자가 늘 부재한다고 여긴 ‘고향’이다.

- 저자가 골목길을 지나 더 먼 과거에서 찾아낸 고향이란 무엇인가?
명절 때면 으레 자동차들로 꽉 막힌 고속도로, 그 정체된 시간을 통과해서 고향의 북적거림에 합류하는 사람들을 부럽게 바라보면서 저자는 의문을 품었다. 내겐 왜 고향이 없지?
오래전부터 저자는 그 부재에 대해 쓰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종로 센트로폴리스 곁을 지나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을 발견했다. 2015년 공평빌딩을 헐고 터파기하다가 발굴된 16세기 조선시대 유물과 유적을 보전하느라 센트로폴리스 지하에 유적전시관이 들어선 것이었다. 옛 골목길과 집터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거기서 저자는 마치 고향에 온 기분이었다. 저자는 생각했다. 서울 사람의 고향은 바로 서울의 땅속이 아닐까.
고층 아파트와 유리건물이 내려다보는 서울의 땅, 그 땅속으로 들어가면 멀리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 남경(南京), 조선을 개국하면서 새로이 천도된 한양(漢陽),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다 일본에 합병된 대한제국의 흔적이 남아있다. 땅 위에서는 빠르게 흔적 지우기가 진행됐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괄의 난과 임오군란으로 이어진 전란 때문만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때의 의도적인 흔적 지우기, 산업화와 천박한 자본주의로 인한 흔적 지우기가 조상과 후손의 간격을 멀리 떼어놓았다. 서울 사람들 모두가 소유했던 피맛골을 지워버리고 단지 기억으로만 희미하게 남도록 한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센트로폴리스 지하전시관에서 저자는 작은 깨달음이 왔다고 썼다. 고향이란 명절날 고속도로를 지나야 접근할 수 있는 세계지만, 시간을 통해서도 접근할 수 있는 세계라는 것을. 저자는 말한다. “어떤 사람은 고향에 가기 위해 고속도로 위에서 공간적 거리를 좁히려 애를 쓴다. 나는 시간을 좁히고자 한다. 역사적 상상력까진 어렵겠지만, 내 소소하고 자유로운 글쓰기로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려고 한다. 단지 서울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서울을 증언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것이다. ”

- 저자가 광화문 태극기부대의 소요 사건을 소설 형식으로 기록한 까닭은 무엇인가?
저자가 북촌에 거주하면서 본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 ‘태극기부대’의 시위였기 때문이다. 단순한 시위라기보다 소요에 가까웠다. 정치 1번지 광화문에서 수만 명이 몰려와 조직적이고도 가열차게 문재인 정권에 항의한 것은 정권의 잘, 잘못과 좌우 이념을 떠나 누군가 기록해야 할, 의무 아닌 의무이다. 언론을 통해 수없이 보도됐지만, 광화문 태극기부대를 시민의 시선으로 기록할 필요도 있다. 좌우로 갈라진 지 오래인 우리나라 언론이 이념 위에 사실을 올려놓고, 지극히 편향된 보도를 일삼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요 현장에서 한 전직 군인으로부터 ‘중도란 없다. 자유민주주의냐, 빨갱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일갈을 들은 것도 저자 고원영이 300매에 가까운 실화소설을 쓰게 된 배경이다. 여느 소설과 달리 등장인물 모두 저자가 경험한 실제 인물이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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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 현악기 소리에 빨려가듯 누가 내 곁을 지난다. 어제도, 그제도 봤던, 노란 티셔츠를 입은 여자다. 인현왕후나 명성황후가 여전히 이승을 떠나지 않고 감고당 길을 떠도는 것은 아닐까.
(감고당 길)
[P. 25] 비를 품은 구름이 조만간 유리창으로 다가올 기미다. 빗방울이 흐린 하늘에 떠도는 잠자리 날개를 스치고 떨어지면 우산을 쓰고 골목길로 나서야겠다. 한남권번 출신 박녹주를 찾아 익선동으로 갈 생각이다. 천둥이나 번개가 쳐도 아무런 동요 없이 걸어갈 자신이 있다. 깊은 숙성에 혀가 오므라드는 소주, 오래 묵었지만 가벼워서 멀리 퍼져가는 향, 시대를 초월하는 고전 소설이 나를 사로잡는다. 요컨대 나는 현재와 더불어 과거가 살아서 꿈틀거리는 현상을 즐기는 취향이다. 길을 걷다가 내 부주의한 발이 남의 집에서 내놓은 화분을 걷어차도 우연은 아니다. 이미 수백 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서울의 골목길에서 벌어졌다. 나는 ‘영원한 재귀(再歸)’를 믿는다.
(영원한 재귀)
[P. 38] 장희빈의 아들 경종은 친모를 옥산부대빈(玉山府大嬪)으로 추존했다. 묘지는 서오릉 내에 있으며 그 이름이 대빈묘(大嬪墓)다. 한때 이 묘는 여성 관람객으로 넘쳤다고 한다. 신랑감이 생긴다는 속설을 믿고 ‘희빈 언니의 기’를 받기 위해 미혼 여성들이 무덤을 돌거나 봉산탈춤을 춘다는 얘기였다. 기혼 여성들도 대빈묘에 와서 소주를 따른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뭘까. 장희빈의 기가 워낙 세서 바위로 무덤 위쪽을 눌렀지만, 바위를 뚫고 소나무가 솟아올랐다는 이야기를 믿고?
(장희빈의 신주를 모신 칠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