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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조선사 연구의 전통 5

조선인의 일본관 49
김달수(金達?) | 안도 히코타로(安藤彦太郞) | 우부카타 나오키치(幼方直吉) | 도야마 마사오(遠山方雄) | 미야타 세쓰코(宮田節子)

일본인의 조선관 93
나카노 시게하루(中野重治) | 박춘일(朴春日) | 안도 히코타로(安藤彦太郞) | 오자와 유사쿠(小有作) | 고토 다다시(後藤直) | 우부카타 나오키치(幼方直吉) | 시카타 히로시(四方博) | 후지시마 우다이(藤島宇內) | 구스하라 도시하루(楠原利治) | 하타다 다카시(旗田巍) | 미야타 세쓰코(宮田節子)

「경성제대」의 사회경제사 연구 147
시카타 히로시(四方博) | 우부카타 나오키치(幼方直吉) | 하타다 다카시(旗田巍) | 안도 히코타로(安藤彦太郞) | 미야타 세쓰코(宮田節子)

조선총독부의 조사사업 183
젠쇼 에이스케(善生永助) | 안도 히코타로(安藤彦太郞) | 오자와 유사쿠(小有作) | 하타다 다카시(旗田巍) | 미야타 세쓰코(宮田節子)

조선사편수회 사업 227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 | 하타다 다카시(旗田巍) | 우부카타 나오키치(幼方直吉) | 미야타 세쓰코(宮田節子)

일본의 조선어 연구 259
고노 로쿠로(河野六郞) | 하타다 다카시(旗田巍) | 미야타 세쓰코(宮田節子)

아시아 사회경제사 연구 299
모리타니 가쓰미(森谷克己) | 하타다 다카시(旗田巍) | 와타나베 마나부(渡部孚) | 미야하라 도이치(宮原兎一) | 무라야마 마사오(村山正雄) | 미야타 세쓰코(宮田節子)

메이지 이후의 조선교육 연구 349
와타나베 마나부(渡部孚) | 아베 히로시(阿部洋) | 우부카타 나오키치(幼方直吉) | 오자와 유사쿠(小有作) | 니지마 아쓰요시(新島淳良) | 하타다 다카시(旗田巍) | 박상득(朴尙得) | 에비하라 하루요시(海老原治善) | 미야타 세쓰코(宮田節子)

조선의 미술사 연구 419
나카기리 이사오(中吉功) | 하타다 다카시(旗田巍) | 오오쓰보 세이지(大坪?仁) | 미야타 세쓰코(宮田節子)

조선의 고고학 연구 467
미카미 쓰기오(三上次男) | 와타나베 마나부(渡部孚) | 고토 다다시(後藤直) | 미야타 세쓰코(宮田節子)

일본과 조선-총괄과 전망 501
하타다 다카시(旗田巍) | 안도 히코타로(安藤彦太郞) | 와타나베 마나부(渡部?) | 우부카타 나오키치(幼方直吉) | 가지무라 히데키(梶村秀樹) | 미야타 세쓰코(宮田節子)

정약용(茶山) 사상의 이해를 위하여 557
다카하시 신이치(高橋一) | 니시 준조(西順藏) | 비토 마사히데(尾藤正英) | 박종근(朴宗根) | 와타나베 마나부(渡部孚) | 가지무라 히데키(梶村秀樹) | 구스하라 도시하루(楠原利治)

후기 599
출석자 소개 602
해제_과거라는 타자와의 대화는 가능한가 603
역자 후기 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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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엄) 일본과 조선 = Symposium Japan and Korea : 제국 일본, 조선을 말하다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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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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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이후 일본인의 조선사 연구는 상당한 축적을 이루어 냈다. 그러나 이들 선행연구가 올바른 조선인식의 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그 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물론 역사적인 개별 사실들을 인식하는 데에는 상당한 성장이 있었지만, 그것이 과연 조선사상朝鮮史像의 형성에 있어 얼마만큼 도움이 되었는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어쩐지 시들해지고 마는 조선사 연구에는 분명 어딘가 중대한 결함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과거 우에하라 센로쿠上原専禄 씨는 심포지엄 「일본에서의 조선 연구의 축적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日本における朝鮮硏究の蓄積をいかに繼承するか」(<朝鮮硏究月報> 5・6 합병호, 1962년 6월)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인식의 근거는 대상에 대한 사랑(愛, Sympathy)이다. 설령 사랑하는 태도나 방식은 다양할지라도 대상에 대한 사랑 그 자체가 결여된 인식이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허나 메이지 이후부터 태평양전쟁까지의 조선 연구를 놓고 보면, 바로 그 사랑을 기반으로 한 조선인식이 부재했다는 것으로 일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따라서 그러한 사랑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조선 민족과 일본 민족 쌍방이 동일한 문제에 봉착해 있다는 공통인식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우리는 이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숙고해야 할 것이다. -p.4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