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1. 하늘에서 본 홍콩 - 홍콩의 역사 31 2. 홍콩 - 첵랍콕 공항, 그리고 거리 38 3. 호텔 주변 - 빈민촌의 억만장자 호텔 50
둘째 날 1. 구룡채성의 탄생 - 철근 콘크리트의 비밀 65 2. 역사의 틈바구니에 빠진 요새 85 3. 삼합회, 세 가지 악의 그림자 107
셋째 날 1. 검은 성의 영화들 135 2. 홍콩의 어두운 공장 156 3. 디스토피아의 공동체 188
마지막 날 1. 구룡채성의 죽음 223 2. 우산혁명 - 정체성의 싸움 246
에필로그 - 구룡채성, 대안적 삶은 가능한가? 266 참고문헌 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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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채성의 삶과 죽음 : 홍콩 무법지대의 전설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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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 이번에 출간된 <우리시대 질문총서>는 기술·환경·휴머니즘·지역(부산) 등 우리 앞의 현실에 대한 성찰을 제공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추진됐다. 우리 세계의 변화를 미시적이고 거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학문적 시각을 제공하는 한편, 도래할 세계와 지난간 미래의 쌍방향적 대화와 성찰을 통해 우리시대를 비판적으로 반성하고 예견하는 문제적 활동을 기획· 소개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힘은 매우 정교한 동시에 그 규모가 대단히 크고 구조가 복잡한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통상 그 ‘힘’은 청동기, 철기, 고인돌과 피라미드로 상징되는 소수의 강력한 물리력과 이를 바탕으로 한 ‘통제’라고 여겨져왔으나, 근대 이후 민주주의가 지배적인 정치원리로 등장하면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연민과 공감, 협력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구성과 운영의 원리에 더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과연 물리적 통제력을 발휘하는 구조적인 외연, 즉 ‘국가’가 없이도 인간은 공동의 삶을 영위해갈 수 있을 것인가? 강제력의 근거이자 기준인 ‘법’이 없이도 공동체는 혼란 속에 자멸하지 않고 협력적 관계를 지속해갈 수 있을 것인가? 아나키, 무정부상태에 대한 꿈은 오랜 세월에 걸쳐 이어져왔다. 하지만 이론이나 문학작품 속의 상상이 아닌 ‘실제’로서 지배구조가 없는 공동체가 존속한 사례는 거의 없다. 권력관계, 국가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나서 존재할 수 있는 공동체가 사실상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시스트 국가 내의 종교적 프로파간다로 잠시 존재했던 어린이 왕국 벤포스타나 무인도에 표류한 승객들의 임시적 공동체였던 바타비아호의 난파와 같은 예외적 사례들이 있을 뿐이고 이조차도 그리 긴 시간동안 유지하지 못하고 내외적 요인에 의해 쉽사리 붕괴하곤 했다. 그런데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아주 특이한 사례가 하나 발생했다. 아편전쟁을 전후로 영국에 할양된 홍콩은 그 복잡한 정치적 관계로 인해 총 세 차례에 걸쳐 나뉘어 할양(割讓) 또는 조차(租借)되었다. 그런데 그 조약들의 사이에서 영국령이 된 홍콩 권역 내에 위치한 자그마한 해안요새였던 구룡채성의 관할권이 청나라에 그대로 남게 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영국 식민정부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 발생한 자그마한 오류에 불과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후에 실질적으로 점유권을 행사하면 될 문제라고 보았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이 숨돌릴 틈 없이 이어지면서 홍콩은 일본에 점령되었다가 영국에 다시 수복되었고 뒤이어 청나라의 뒤를 이은 중화민국 그리고 중국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이 조그만 요새의 관할권은 연합국 간의 국제외교문제로 비화될 상황이 되었다. 전후 복구에도 여력이 모자랐던 영국은 중국과 정면으로 대립하기보다는 이 한 뼘 밖에 안되는 땅을 없는 척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한다. 이제 이 좁은 땅은 영국 식민 정부의 힘도, 중국의 힘도 미치지 않는 공식적인 ‘무정부지대’가 되었다. 슬금슬금 이 옛 요새터에 들어와 사는 빈민들이 생겼고 중국의 공산화를 피해 이주한 본토인들이 대거 몰리면서 좁은 요새터는 불법 가건물로 빼곡하게 가득찼다. 하지만 중국의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 1958-1962)과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1966-1976)으로 야기된 혼란을 피해 홍콩으로 도망온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들이 집세도 싸고 세금은 아예 없는 구룡채성으로 몰리자 수용한계는 금새 가득차게 되었다. 이제는 불법건물 위에 레고블록처럼 콘크리트 건물을 짓고 또 지어올리는 기괴한 건축이 시작되었다. 그 높이가 자그마치 15층에 달했고 그나마 인근한 카이탁 공항의 비행기 이착륙을 위해 그 이상의 건축에 대해서는 홍콩 당국도 철거로 맞섰기 때문에 이 정도에서 건물쌓아올리기는 그치게 되었다. 건축법의 제한을 받지 않는 탓에 이웃한 건물과 완전히 달라붙은 불법고층건물들이 모두 비슷한 높이까지 올라가게 되자 직사각형 모양의 옛 성터는 그대로 땅위로 솟아오른 15층짜리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되었다. ‘무법지대’에 매력을 느낀 것은 저렴한 생활비에 매혹된 빈민층만이 아니었다. 중국 본토에서 넘어와 홍콩을 중심으로 확장된 세계적인 범죄조직인 삼합회는 일찍부터 이 콘크리트 요새의 가능성에 주목했고 산하의 여러 조직들이 개발 이권에 관여하는 한편, 아예 건물 안에 자리를 잡고 도박, 마약, 매춘 등의 범죄 온상으로 만들었다. 홍콩 경찰은 이들의 범죄를 지켜보면서도 전혀 손을 쓸 수 없었다.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공식적으로 이곳이 홍콩의 관할이 아닌 중국 관할지였기 때문이었다. 외교적 치외법권 지역이 된 것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두 번째, 이곳이 경찰들조차 꺼릴만큼 무서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되어버린 건물들 사이의 좁은 길은 어둡고 축축하며 미로처럼 얽혀있었다. 잘못 들어섰다가는 길을 찾아 밖으로 나오는 것만도 힘들 지경인 이곳에 범죄자를 체포하기 위해 함부로 들어설 경관은 없었다. 게다가 세 번째로 홍콩 경찰은 1974년 염정공서(廉政公署, ICAC)가 들어서서 대대적인 개혁을 일으키기 전까지 대단히 부패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 뇌물의 상당 액수가 구룡채성에서 도박장과 매춘굴, 마약판매소를 운영하고 있는 삼합회로부터 나왔다.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구룡채성으로 도망가면 체포되지 않는다는 신화, 일반인이 함부로 들어서면 길을 잃고 헤매다가 쥐도새도 모르게 당하게 된다는 공포, 홍콩 식민정부의 공식적인 ‘무시’가 결합되자 이 곳은 도시 한가운데에 존재하는 거대한 범죄의 요새가 되었다. 게다가 야구장만한 좁은 공간에 자그마치 5만 명이 몰려 살면서 건물 내에는 공장, 식당, 병원과 약국을 비롯해 없는 것이 없는 자급자족적인 ‘세계’가 건설되었다. 사람들은 이 곳을 두려워하는 한편 그 안에서 벌어지는 무법지대의 전설에 매혹되었다. 철창으로 빽빽하게 두른 창문과 발코니, 거무튀튀한 벽과 녹슨 철문,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검은 미로로 둘러싸인 이곳을 사람들은 ‘암흑의 성’ 또는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악의 본거지 ‘마굴’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