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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기쁘게 외로워져야겠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맛있는 악수
3월
음각
실면증
자가면역결핍증
자화상
빗방울 점자
소란
면-시각장애인용 컴퓨터 화면 속 이야기
송화
코스모스
조락
이름 없는 꽃

2부 막 개봉된 아침

등잔
그들의 하늘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서
승화원에서
참신
구월동 모래내시장
오래된 골목
조등
싸락비
푸른 나뭇잎
주먹
당신의 허벅지
절정

3부 긴 어둠을 삼키고 삭혀
살구나무 선산에 살구
봄이 오는 소리

저녁놀
딱딱한 소리
방석
대보름달
목침
대숲
댓거리
밥상
문자메시지 한 통
왕곱빼기 짜장면집
성년식
성혼식

4부 빛이 오면 어둠이 머물렀던 자리를
빛에게 내어주듯
나무숟가락
부석사 뒤란
입춘
스미다

베췌증후군
광부

국지성 호우
롤러코스터
녹차나무 한 그루
소나기
수목장
보성고사우르스

해설
우리의 이름을 만지는 꽃잎들은 모두
눈부신 어둠에서 왔다
-김학중(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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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점의 궁극을 딛고 산다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2762070 811.15 -21-918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2762071 811.15 -21-918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제공
깊은 어둠의 세계 속에서 건져 올린 빛의 시(詩)

걷는사람 시인선 40번째 작품으로 손병걸 시인의 『나는 한 점의 궁극을 딛고 산다』가 출간되었다. 200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손병걸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다. 그는 첫 시집 『푸른 신호등』에서 “두 눈을 잃고 시가 왔다”(‘시인의 말’)라고 말하면서, 어둠 속에 갇힌 삶을 토대로 자신만의 시세계를 일궈 왔다. 그런 시인이 4년 만에 더욱 깊은 시선으로 새 시집을 펴낸 것.
손병걸 시인은 어느 날 중도 실명으로 시력장애 1급 판단을 받는다. 덜컥 “햇볕은 따뜻한데/사방을 둘러보니/온통 뿌”연 세계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 후에는 “걸음마다 달팽이관이 뜨겁고/가쁜 호흡이 점점 더 벅차 올 때/빌딩 숲속에서 희멀건 먼지가 일고/으깨진 소음이 길바닥을 뒹군다”(「자화상」)고 진술할 만큼 그는 주로 청각과 후각에 의존하여 세계를 인지하게 된다. 그의 목소리가 발화되는 시작점이 어둠이기 때문이다. 볼 수 없음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더욱 진실을 볼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피돌이가 멈춘 듯 어둠이 밀려온다 몸속에 수분이 말라 간다”와 같이 뼈저린 통증을 감내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이 없으니/해야 할 말도 없어야 한다는 듯/……/지극히 당연한 문장들이 몸속에서 끓어오를 때마다/나는 한 움큼의 알약을 삼켜야 한다”(「베췌증후군」)며 온몸으로 생을 견뎌낸다.
하지만 그는 절망적일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결코 가벼운 감상이나 우울함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시적 상상력과 사유는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없는 것이라고/쉽게 말들을 하곤” 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는 “창을 연 건/언제나 투명한/저 바람의 손끝”이라 인식하며 누구보다 날선 피부의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엎드려 기도하듯/낮게 임하신/향기가 짙은” 꽃 한 송이를 보고, “더 기쁘게/나 외로워져야겠다”(「이름 없는 꽃」)라며 본인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한다. 어둠 속에서 시의 자유를 찾은 손병걸은 순도 높은 언어로 세계를 포옹하고, 이웃들과 연대하며, 그렇게 쓰여진 시로써 비가시적인 가능성을 가시화하는 힘을 발휘해낸다.
이정록 시인은 손병걸의 시 작업을 “칠흑의 감옥 속으로 비류직하飛流直下하여 빛의 언어를 캔다”고 표현하며 “시력을 잃고, 그 불행 속에서 시의 뿌리돌기를 얻었다”고 평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시인 손병걸이 “별똥별을 캐는 광부”가 되어 우리에게 “찬란燦爛한 불꽃과 처연凄然한 얼음이 한통속”인 시를 선사하고 있다고 찬사를 보낸다.

책속에서

알라딘제공
순식간에 내 안으로 스며들어 와
어둠을 밝혀 준 당신

나는 행여나 당신이 떠날까 봐
긴 시간 문을 걸어 잠갔다 그러나
당신은 굳게 닫힌 시건을 풀고
행선 모를 바람이 되어 사라졌다

허공만 더듬는 오늘 아침 문득
서로 어루만져 온 희로애락의 문양이
손끝마다 새겨진 등고선 같아서
높은 산, 바람이 소용돌이를 치듯
내 몸을 통째로 흔든다

시리고 뜨겁고 크고 작고 가볍고 무거운 바람
저 숱한 바람은 누구에게나 보이지 않듯
시력이 없는 내 눈앞에서도 멀쩡히 불고
사방이 막힌 공허에도 당신이
거푸 분다 뜨겁게 분다

끌어안은 심장, 언어의 마음, 그리고 나부끼는 머리칼
차분한 눈길, 손목, 그 체온, 부드러운 목소리
해맑은 표정, 발목, 하얀 목덜미, 달콤한 키스
이제야 온전히 알겠다 한 몸이란
시간이 엉켜 온 체위가 아니다

소리 소문 없이 내 몸을 빠져나간 당신이
산 너머 먹구름 속으로 스민다 해도
텅 비어 버린 내 몸속을 휘도는 바람은
분다 열 손가락 끝에 음각된 순간
내 안으로 불어닥친 그 환한 태풍은
─「음각」 전문
우르르 쾅쾅, 천둥 소리에
깜짝 놀라 떨어뜨린 점자책

책갈피마다 알알이 박힌
무수한 점자들이
와르르 쏟아진 걸까

으깨진 머리를 감싸 쥐며
방바닥을 뒹구는
점자들의 비명이 들려오고

땅바닥을 치는 빗방울 소리 따라
가빠 오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반지하 방바닥을 더듬을 때

내 생각과 아무 상관 없다는 듯
두두두두, 빗소리는
꽉 닫힌 창문을 자유로이 넘나들고

다시 펼친 책갈피마다
하얀 여백을 딛고 오뚝한
점자들의 목소리 들려온다

─「빗방울 점자」 부분
하루의 노동을 마친

비알밭에서

굽은 몸 일으켜

남은 힘을 다해

산등성이 너머

흰 구름 속으로

핏물을 수혈하는

엄마
─「저녁놀」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