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 7] 야망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야심 차 보이는 여자. 40대에 접어든 나는 그런 여자였다. 욕망하기보다 욕망을 지우고 싶었다. 욕심과 질투로 마음에 옹이가 지는 게 싫었다. 그러면 결국 내가 상처받기 때문이다. 나는 우선 스스로를 보호하고 싶었다. 예기치 않은 일이 수시로 발생하고 늘 마감에 쫓기는 직업 특성상, 일을 해내기 위해 아득바득 달려들긴 하겠지만 사회적 성공 같은 걸 염두에 두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일단 일을 시작하면 잘하고 싶은 마음을 갖는 거야 당연하겠지만 상찬받고 싶은 욕심은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어는점을 만들지 말 것. 어떠한 고난이 닥쳐와도 밑바닥까지 추해지지 않을 것. 최대한 우아함과 품위를 유지할 것. 어릴 적 읽은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에게 나는 이런 걸 배웠다.
_<시작하며> 중에서
[P. 31] 난생처음 맛보는 굴욕과 모욕과 억울함과 부당함의 순간들. 그때마다 늘 마음속으로 세라처럼 읊조렸다. 그런 상상 덕에 아슬아슬한 순간들을 버텨냈고, 19년째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많이 망가지지 않고 나 자신을 지켜낼 수 있었다.
노라 에프론 감독의 영화 <유브 갓 메일>에서 어린이책 서점을 운영하는 주인공 캐슬린(멕 라이언)은 말한다. “어릴 때 읽은 책은 자아의 일부분이 되거든요. 살면서 나중에 읽는 책과는 전혀 다르죠.”
그렇게 자아의 일부분이 된 『소공녀』를 한 해를 거의 마무리하는 시점, 고요하고 거룩한 성탄 전야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며 다시 읽어보았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원서와 대조해가며 읽는데 눈물이 툭, 떨어졌다.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에 성공한 아버지 친구를 만나 부를 되찾은 세라에게 민친 선생이 “이제 넌 다시 공주가 된 기분이겠구나”라고 빈정대자 세라는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저는 다른 어떤 것이 되지 않으려고 애썼을 뿐이에요. 가장 춥고 배고플 때조차도 다른 게 되지 않으려 애썼다고요.”
_<왕녀의 품격>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