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를 보면 황건적의 난에 즈음해서 여러 차례 정현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여기서는 하진, 공융, 동탁, 원소 등 당시의 권세가들이 앞을 다투어 초빙하려 했던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연의뿐만 아니라 정사나 야사를 막론하고 정현이 부정적인 모습으로 묘사된 예는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황건의 무리들마저도 정현 앞에서 허리를 굽혀 예를 표했고 정현이 사는 마을을 빙 둘러 지나갔다고 한다. 그만한 인격에 그만한 학문이 더해진 결과였다. 후한대 말기를 살았던 정현은 경학사를 논할 때면 결코 빠뜨려서는 안 될 인물이다. 금문과 고문에 모두 능했던 그는 금문경학과 고문경학의 대립을 종식시키고 두 경학을 회통시킨 시대의 스승이었다. 한대의 가장 대표적인 사상대립이었던 금문과 고문의 갈등이 정현을 통해 비로소 해소되고 하나의 표준이 확립된 것이다. 이후 당대의 공영달을 필두로 후대의 학자들은 누구도 정현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현을 언급해야만 했다. 주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의리의 학문을 표방하는 성리학자들은 그들의 경학에서 정현을 빼놓을 수 없었다. 비록 청대에 등장한 실사구시의 고증학자들이 정현으로부터 비롯된 각종 폐단을 누누이 지적한 바 있지만, 이는 또한 긴긴 세월 동안 지속되어 온 정현의 영향력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경학 가운데서도 『역』에 관한 정현의 공헌은 특별하다. 정현은 고문역의 의리설 위에 금문역의 효진설, 납갑설, 괘기설 등을 받아들여 의리역과 상수역의 종합을 이루어 내었고, 고문과 금문, 의리역과 상수역을 한 몸에 구현함으로써 한대 경학사의 막바지를 장식하는 고봉으로 우뚝 섰다. 금고문의 조화 위에 역사학과 문자학, 율려학 등 자기 시대의 모든 학문적 성과들을 더한 것이 바로 그의 경학적 특징이었다. 이러한 특징은 『역』의 해석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난다. 『주역』을 해석할 때 그는 언제나 역사학이나 문자학, 음성학적 해석을 함께 곁들였고, 반대로 『춘추』나 『국어』 같은 고경을 해석할 때는 자신의 역학적 해석으로부터 도움을 받곤 했다. 실로 정현은 우뚝한 화해와 조화의 철학자였다. 그러나 정현 사후, 곧바로 위진남북조시대라는 혼란기가 이어지면서 그의 저작들은 모두 소실되고 말았다. 유학의 입장에서 위진남북조시대는 참으로 암흑기였다. 노장학이나 현학 혹은 불교가 사상사의 주류를 차지하는 양상이 몇 세기에 걸쳐 계속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정현의 저작들은 망실의 운명을 피할 수 없었는데, 정현을 구해 낸 이는 당대의 공영달이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통일시대를 살았던 공영달은 정현이라는 존재에 주목하였고, 이후 정현의 주석은 다시 생명을 얻어 줄곧 탐구의 대상이 되었다. 송대를 거쳐 명대를 지나고, 명대를 거쳐 청대를 지나도 이러한 분위기는 수그러들 줄 몰랐다.
임충군 교수의 이 책은 고대와 근대를 거치며 행해졌던 정현 되살리기의 움직임을 다시 한 번 실현해 낸 현대의 유일무이한 성과이다. 저자는 먼저 상편에서 정현의 삶과 그가 살았던 시대를 조망한 데 이어 그의 역학이 지닌 특징적 면모를 상세히 논하고, 하편에서는 기존 주석가들의 주석에다 자신의 연구를 보태어 『주역』 경전 전문에 대한 정현의 주석들을 정리해 두었다. 정현의 생애와 정현의 시대, 정현의 『주역』 해석이 이 한 권의 책 속에 온전히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