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우사> 판소리 열두 마당의 한 레퍼토리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사설의 내용이 전하지는 않았는데, 1992년 김종철 교수에 의해 <계우사>가 그 사설 정착본인 것이 확인된 바 있다. 따라서 여기 소개하는 작품은 김종철 교수가 발굴한 <계우사>를 현대어로 옮긴 것이다. <계우사>는 필사 연대를 1890년으로 보고 있고, 이 판소리를 불렀다는 명창도 19세기 중반 이후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판소리 중 가장 늦게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계우사>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기방 문화의 일면을 적확하게 구현한 작품이다. 따라서 여느 판소리처럼 근원 설화를 중심으로 적층적 형성을 이룩한 작품이라기보다는 비교적 후대에 서울의 향락 문화나 소비문화를 반영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춘풍전> 판소리로 불렸다는 기록은 없으나, 문체나 사설 면에서 판소리의 영향을 받아 창작된 판소리계 소설이다. 여러 종의 이본이 있으나, 시기가 앞서면서도 내용이 풍부한 서울대 가람문고본을 원본으로 했다. <이춘풍전>은 조선 시대 말기에 이루어진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구성 방식, 서술 시점, 공식적 표현구, 문체 및 서사 진행 투어 등에서 판소리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상품경제의 발달과 자본의 발달 등 근대화 이행기에 놓인 당대의 세태를 재물을 탕진하는 한량을 중심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계우사>와 유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춘풍전>은 문제적 인간의 길들이기 방식이라는 공통된 작품 내적 구조를 견지하면서도 <계우사>와 달리 작품 전면에 춘풍의 처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이춘풍전>은 탕아, 기생, 처의 삼각 구도 속에서 처를 주동자로 내세우고 기생 추월을 대결적 관계로 설정하고 있다.
책속에서
매일매일 돈 쓰는 것이 삼사백을 넘게 쓰고, 온갖 풍류랑과 명기명창 선소리며 마음이 후련토록 온갖 놀음을 하루 잠깐 놀고 나도 거의 천금씩 탕탕 쓰고, 일가 족속, 노속 간에는 푼전 하나도 아까워하니, 속은 좁고 도리도 모르는 놈, 불량하고 허랑방탕한 사람 중에 무숙이가 으뜸이라. <계우사> 중에서
대저 일개 여자로서 손수 남복하고 회계비장으로 내려가서, 추월도 다스리고 춘풍 같은 낭군도 데려오고 호조 돈도 다 갚고, 부부 둘이 종신토록 살며 만고에 해로한 일인 고로 대강 기록하여 후세 사람에게 전하나니, 여자들에게 이런 일을 본받게 하옵소서. <이춘풍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