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시지프스 나라로 간다 : 민경륜 장편소설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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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세상을 버린 ‘나’의 영웅적인 결단이 삶에 대한 정념의 불을 던지는 역설의 미학이 되기를
평균 수명이 늘어난 요즘, 중간에 치명적인 변수가 없는 한 우리에겐 약 80년의 긴 생애가 보장된다. 우리는 철이 들고부터, 이 긴 생애 순간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말하자면 늘 선택 앞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선택 하나하나가 우리의 삶이 되고 인생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좋은 선택 하나에 최상의 삶을 살 수도, 나쁜 선택 하나에 최악의 삶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이 책은, 한 번의 어떤 선택으로 인해 세상과 사회가 한 인간을 어디로 어떻게 끌고 가는지를 그려 보였다. 한 순간의 선택으로 직장을 잃고 아내가 죽고 가정이 해체되고…. 가슴 아프지만, 급기야 명징한 의식 속에서 영웅적인 결단을 한다. 세상을 버린 이 책 속의 ‘나’의 영웅적인 결단이,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주체적이고 열정적인 삶의 뜨거움을 연역하는 역설의 미학이 되었으면 좋겠다. 生이 死를 연역하고 死가 生을 연역하듯, 이 책 속 ‘나’의 죽음이 우리에게 사회와 삶에 대한 뜨거운 정념의 불을 던지는 것이면 좋겠다.
책속에서
[P.40] 이미 경찰과 119 대원에 의해 방이 한번 개방되었던 방이지만 더운 공기와 섞인 구리고 썩은 악취가 뜨거운 물을 끼얹듯 얼굴로 확 달려든다. 그는 습관대로 고개를 돌려 뒤로 젖히고 잠시 심호흡을 한 후 진입했다. 단칸방이었다. 출입구 쪽에서 보자면 한 쌍의 창문이 정면에, 그 오른편으로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그리고 책상과 침대가 순서대로 있고, 왼편으로 수납장과 비키니 옷장과 소형 냉장고가 벽에 붙어 서 있으며, 그 뒤로 화장실 문이 보였다. 책상 위에 제법 두툼한 책들이 가지런히 놓였는데 실용서와 수험서가 대부분이었고, 철학서와 문학서도 몇 권 보였다.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던 모양이다. 이런 현장은 어디나 난장판이다. 살림살이가 뒤죽박죽 헝클어져 제멋대로 나뒹군다. 물건들은 켜켜이 쌓이고 엉겨 붙어, 쉽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떡이 되어 있기도 하다. 시신 감식과 수습을 위해 들어온 경찰과 장의사의 발자국들이 흩어지고 뒤엉키고 널브러진 물건 위에 여기저기 찍혀서, 쓰레기 하치장이나 다름없다. 사람들이 명줄을 놓을 때쯤 되면, 되는 대로 사는 모양이다. 청소도 빨래도 설거지도 하지 않은 그대로 세상을 떠나, 옷이며 신발이며 생활 도구들이 제멋대로 놓여 있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이곳은 비교적 반듯하고 양호하다. 누군가 정리를 해 둔 것처럼 살림살이가 거의 다 제대로 놓여 있었다. 현장이 크게 난삽하지 않지만, 현장이 난삽하지 않다고 이들의 일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앞서 경찰이 무연고자라고 하는 걸 보니, 고인은 언제부턴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주변 정리를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연고가 될 만한 것들을 모조리 없애 버리는 거다.
[P. 56] 나는 이 글을 쓰는 데 며칠을 고민하고 망설였다. 파업에 참여할 때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다. 이 글이 내 의도와 다르게 어떤 이에게는 아픈 생채기를 다시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에 양날의 칼과 같고, 그러므로 차마 입에 담아서는 안 될 치명적인 비밀을 말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용기를 냈다. 사람들의 아픔도 무시할 수 없지만, 진실 또한 어떠한 가치보다도 귀한 것이라고 여기며, 동지들과 그 가족들이 죽음으로 내몰린 이유와 진실에 대해서도 입을 닫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 사태를 몇 마디로 다 설명할 수 없기에 내가 겪었던 것과 당시 해 두었던 메모와 전해 들었던 이야기, 노조와 집행부가 발표했던 것들을 토대로 그 현장을 기록해 보기로 했다. 끝까지 제대로 기록하고 복원할지 모르겠지만 하는 데까지 해 보겠다. 감정 개입을 최소화하고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정리해 보고자 하지만, 잘 지켜질지 모르겠다. 지켜지지 않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적을 수밖에 없으니까. 나는 노조 간부도 아니고 당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은 더더욱 아니며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도 아니니 필력이 좋을 리 없다. 맞춤법이 틀리고 문장이 거칠고 투박할지도 모른다. 나는 두 가지 죄목으로 구속되었다가 9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집행유예로 3개월 만에 나온 사람일 뿐이다. 집시법 위반, 공무집행 방해죄, 특수폭행죄로 기소되었으나 세 번째 것은 기각되었다. 현재는 다시 일을 찾고 있으나 쉽지 않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서 불안하다. 대부분의 파업 참가자들은 나와 같이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파업 직후부터 아내가 동네 대형 마트에 오후 캐셔로 나가 마감까지 치고 와야 하기에 아무래도 오후 집안일은 내가 챙기게 된다. 자연히 오전을 이용해 틈틈이 기록하기로 했다.
[P. 78] 6월 4일. 사수대에게만 지급되었던 쇠파이프와 안전모를 나도 받았다. 오늘은 어제에 이어 도내道內에 있는 ‘K 자동차’, ‘H 자동차’, ‘H 중공업’, ‘B 기계’의 노조 방문, 투쟁 활동을 홍보하고 연대 투쟁 동참을 호소함. 공장을 나설 때 가족대책위원회에서 붙인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잘못은 회사가. 책임은 우리 아빠가?” 현 사태의 본질과 핵심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가족대책위의 대부분은 아내들. 아낙네들은 남편이 파업 중이니, 아이들 돌보랴 집안 살림 챙기랴 파업 현장을 오가며 시위하랴 1인 4역, 5역을 힘겹게 감당하는 고난의 행군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도 남편들이 도움을 전혀 줄 수 없는 현실이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공장으로 복귀하니 사 측이 띄운 헬기에서 유인물이 뭉텅이로 떨어져 노조원들 청소 중. 유인물을 유심히 읽는 노조원들도 있음. 사 측은 내부 분열과 노노勞勞 갈등을 유발시키고 파업 대오 흔들기를 끝없이 시도하고 있음. 6월 5일. 이날은 ‘죽은 자’인 해고자와 ‘산 자’인 비해고자를 가르는 정리해고 통지서를 받은 날.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노조원들이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 통지서가 노동자를 두 편으로 갈라 쳐, 지역사회에 끔찍한 파장을 불러왔다. 이날 이후 함께 살던 아파트에서는 해고자와 비해고자가 끼리끼리 갈라져, 장도 따로 봤고 식당도 따로 갔고 술집도 따로 다녔다. 인간성을 파괴하는 자본의 만행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것이다, D 시 청사 회의실에서 노사정 간담회가 있었는데 노조는 정리해고 2년 유예를 제안하고 6월 7일까지 사 측에 답을 요구함. 사 측과 경찰의 무력 침탈에 대비해 밀가루, 새총, 물풍선, 쇠파이프 등 무기 사용법을 익히기 위해 모의 비상 훈련 실시. 저녁에는 투쟁가 부르기 대항전 개최. 「단결투쟁가」, 「철의 노동자」, 「질긴 놈이 승리한다」, 「동지가」, 「금속노조가」, 「파업가」, 「흔들리지 않게」…. 노동가요가 공장의 밤하늘에 메아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