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창개 온 어머니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2795763
811.4 -21-567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2795764
811.4 -21-567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B000024799
811.4 -21-567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우도’와 ‘해녀’는 강영수 문학을 관통하는 일관된 두 주제다. 우도 토박이인 저자에게 ‘우도’가 그의 삶의 영원한 터전이라면, 해녀 아내와 바늘과 실로 사십여 년을 함께 살아온 그에게 ‘해녀’는 평생 동안 마주해 온 치열한 현실이다. 그러므로 문학사를 통틀어 강영수만큼 ‘우도’와 ‘해녀’에 깊이 천착한 작가도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머니’라는 새로운 주제를 처음 들고 나온 이번 수필집은 조금 특별하다. 어머니의 인생은 평범하지도 순탄하지도 않았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저자의 유년에 지울 수 없는 아픔을 남겼다. 저자에게 어머니는 삶의 뿌리이자, 평생의 그리움이자, 애증의 대상이었다. 그랬던 어머니가 이제는 곁에 없다. 영원히 다시 볼 수 없는 세상으로 가셨다. 평생 가슴에만 묻어두고 차마 꺼내놓지 못했던 속마음을 이 책 『암창개 온 어머니』에 풀어놓는다. 하여 이 책은 어머니의 행장(行狀)이자 어머니께 바치는 사모곡(思母曲)이다. 그뿐 아니라, 이 책은 장수시대라는 희망 뒤에 드리운 노령사회의 그늘, 노인의 치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현실, 코로나19로 인한 관계의 단절 등 우리 사회가 한 번쯤 되짚어 보아야 할 주제들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책속에서
어느 날 어머니는 사전에 아무런 연락도 없이 내가 사는 우도의 집으로 불쑥 찾아오셨다. 자존심 강한 어머니 성격상 처음엔 얼마나 망설였을까 싶다. 내딛는 발걸음이 무척 무거웠을 것이다. 반면, 생각지도 못했던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귀향에 아내와 나는 반가움에 앞서 무척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우리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오래되고 깊은 사연이 있다.(‘어머니의 귀향’ 일부)
요양원의 어머니는 진료차 주기적으로 병원 나들이를 하셨다. 진료는 질색하면서도 병원에 가고 오는 시간을 어린애처럼 좋아하셨다. 내 차는 소형 화물차라서 어머니가 타고 내리실 때 불편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넓고 편한 뒷좌석을 마다하고 어머니는 꼭 조수석에 앉으셨다. 자식인 나를 쳐다보는 따뜻한 눈빛엔 늘 흐뭇함이 묻어났다.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라도 내 곁에 있고 싶어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살갑지 못했다. 어머니의 얘기를 다정하게 듣기보다 내 기준에서만 대화가 이루어졌던 것 같다. 내 생각과 안 맞더라도 ‘어머니의 얘기를 좀 더 들어드릴걸.’ 하는 후회가 남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중략) 꺼질 듯 꺼질 듯 사위어 가는 기억 속에서 가끔씩 옛날 일이 떠오를 때면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살뜰히 어미 노릇 못 한 당신을 한없이 자책하셨다. 하루는 옛 기억이 떠올랐는지 내 손을 꼭 잡더니 뜬금없이 ‘어머니’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셨다. 어릴 적 내가 누명을 쓴 걸 모르고 내게 모질게 하신 게 한이 되었는지 자꾸 미안하다 하셨다. 나도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그만 감정이 울컥했다. 그때를 생각하며 부석부석한 어머니 얼굴을 쓰다듬어 드리고 겨울 나뭇가지처럼 메마르고 야윈 당신의 손을 꼭 잡아 드렸다. 그렇게 어머니와 나의 그리움은 닿아 있었다.(‘요양원으로’ 일부)
처음에 어머니를 요양시설에 모신다는 소식에 남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만한 위치에 있으면 웬만하면 집에서 모시지…….’ 하는 주변 어른도 있었다. 그 말에 가슴이 조여 왔다. 시설의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서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가슴 한구석엔 늘 죄인 아닌 죄인의 심정이었다. 요즘 세상에 자기의 일상을 포기하면서까지 치매 부모님을 집에다 모시고 바라지하는 자식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군색한 변명을 해본다. 우리 세대에게 이 문제는 깊은 고민거리다. 저마다 조금씩 입장이 다를 수 있겠지만, 내 부모를 시설에 모시면 아무리 자주 찾아봬도 죄스럽고 만일 내가 그 지경이 된다면 절대로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는 말아야겠다는 게 공통적인 정서다.(‘우도샬롬소규모요양원’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