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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닮았다가 달라지다가 다시 닮아 가겠지
그러지 말걸
식욕
발견
서울에서 멀어지면
아마도 셋은
어두운 신발
벽으로 빨려드는
하얀 말
기도하는 낙서
한 조각 아름다움
그럴 수 있지만
오후의 느낌과 여행을 떠나자
10센티 일몰

2부 빛나지 않는 것들을 잠시 빛나게

멀리 간다고 가까워지는 건 아니야
밤의 북벌
메이드 인 베트남
악수
깃발
카페 탱고
넝쿨
알 것 같다
이유
광화문에 가야 한다
어제 일처럼

3부 일요일의 사람들이 지나갑니다
Lost
무정
해라, 하지 마라
가을이 왔다
신호 대기
조금만 조금만
물컵을 보며 재떨이
수족관
언덕의 동화
먼지와 이파리
너는 쉽게 속는다
데리러 온다는 말
죄와 벌

4부 돌아가는 길에, 돌아가도 좋으냐고
카나리아 노란 새
집인가 아닌가
담배와 사과로 겨울
장마와 사루비아
불가능한 휴식
외눈박이 놀이터
주춤거리다
정물
옮겨 가는 불
나는 자연인이다
좋은 날
자전
이런 귀가

해설
삶의 리듬과 언어의 미학
-고봉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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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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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허무한 일상 속에서 발견한 언어의 리듬
지극히 사소해서 아름다운 휘파람 같은 시편들


2004년 《불교신문》신춘문예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임곤택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죄 없이 다음 없이』가 걷는사람 46번째 시집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그간 출간한 시집을 통해 절제된 언어로 평범한 일상을 노래하며 매 순간 새롭게 발견되는 도시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번 시집에서는 절제된 진술(언어)과 반복을 통한 리드미컬한 시편들이 도드라진다.
시인은 사소한 일상을 사소하게 살아간다. 작고 시시한 것들을 바라보면서 “작은 것들은 서로 닮”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닮고 작은 것들은 어쩌면 “살아 있을지”(「발견」)도 모른다고 숨겨진 생명력을 엿보기도 한다. 그리고 “시시한 것을 묻고/시시한 것을 듣”기도 하면서, 끝내는 “시시해서 우리는 좋았다”(「서울에서 멀어지면」)고 담담하게 진술한다. 시인의 이런 진술은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이 비범한 순간으로 치환될 수도 있다는 전언처럼 들린다. “소리 지르는 아이”를 보다가 끝내는 그 아이의 엄마에게 항의를 하고, 곧 “그러지 말걸” 하고 중얼거리는데 그의 자조 섞인 듯한 말들은 탄식 혹은 후회로 보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허무한 세계에 조응하기 위한 하나의 태도인지 모른다. 시인은 무채색의 세계를 감지하며, 점차 무감하게 반응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시에 투영한다. 희망도, 절망도 아니고, 정의도, 의문도 아닌 것이다.

해설을 쓴 고봉준 문학평론가는 이런 일상의 반복을 일종의 ‘징후적’인 현상으로 설명하면서, “임곤택에게 시는 ‘어느 부주의한 마음에 잠깐 산다/이름을 떠 올릴 때마다’(「발견」)라는 진술처럼 이 작은 것들에게 잠시나마 마음을 내어 주는 것에서 시작되며, ‘스웨터 장갑 철 지난 것들/그렇게 다/버릴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서울에서 멀어지면」)라는 문장처럼 버려도 상관없을 것 같은 것들을 이삿짐에 담는 일에 필적한다. 생각해보면 일상이란 이처럼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시간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그 일상의 순간들을 정직한 시선으로 그려 낸다”고 증언한다.
시인은 서로 닮은 세 명의 꼬마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더 많이 닮다가 슬슬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일을 사거나 팔”기도 하면서, “튀어나온 자동차에 놀라 물러서”기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결국 시인은 세 명의 꼬마가 “닮았다가 달라지다가 다시 닮아”(「아마도 셋은」) 갈 것이라고 짐작한다. 이러한 진술은 특정한 개인에게 개별적인 차이성이 발생하지만, 끝내는 모두 동일하게 귀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처음에 시는 머리 모양이 닮은 꼬마 셋에서 출발하지만, 시는 점점 확장되어 인생 전체를 내포한다. 인간은 모두 잠깐은 달라질 수 있더라도 끝내는 같아진다는 필연적인 허무함을 일러 준다. 일찍이 그런 허무함을 깨달은 시인은 냉정한 세계 속에서 노래를 이어 나간다.
시집 『죄 없이 다음 없이』를 읽다 보면, 쓸쓸히 고개를 떨구고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이 연상된다. “10센티 일몰”(「10센티 일몰」)을 남겨 두고, “돌아보는 하늘 붉어 염소처럼 안심”하며 “귀가”(「이런 귀가」)하는 그런 사람. 그 사람이 걷고 있는 길 위에서는 어떠한 풍경도 사건도 색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잔인한 호의”도 없고, “죄”도 없고, “다음”(「10센티 일몰」)도 없다. 그저 범속한 일상 속에 본인을 가만히 내려놓고 걸을 뿐이다. 어쩌면 그는 일찍이 무채색의 세계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한 조각 아름다움, 그 말도 안 되는 것”(「한 조각 아름다움」)을 찾고 있는 게 아닐까.
일찍이 임곤택 시인은 “몇 해를 모래 바람 속에 헤맨 뒤였다. 세상은 그런 거였다. 회색의 구름 속에 알 듯 모를 듯 거개가 운이거나, 아니면 나도 모르게 미리 다 정해져 있는 듯했다. 나는 늘 길 위에 있었다.”라고 신춘문예 당선 소감을 쓰기도 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집은 ‘길 위’에서 써 내려간, 안착할 장소를 찾지 못한 한 유랑자의 무심한 고백이기도 하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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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지르는 아이를 참다가 참다가
그 엄마에게 항의했다.
그러지 말걸 그랬다.

눈이 내렸고 눈을 뭉쳤고 벽을 맞혔다.

말을 그치자 말이 없다 잠깐 뜨겁고 오래 차갑다.
생면부지의 열애는 늘 이렇다.

주머니에 손 넣어 동전을 짤그락거린다.
눈이 계속 내린다.

벽에는 내가 던진 눈 뭉치가 뭉개져 있다.
그러지 말걸 그랬다.
-「그러지 말걸」전문
강릉이나 삼척으로 가자고 했지
서울에서 멀어지면 우린 아주 행복할 거라고
거짓말로 안내하던 택시 기사에게
속았던 때를 기억하면서도

귀찮은 일은 문득 삐져나온다
비행기를 처음 타는 노인들의 여권과 티켓
에스키모 다큐에는 상처 입은 개들이 보이듯이
계획이란 늘그렇듯이

상자를 채워 더 큰 상자에 담는다
깜빡 잊으면 두세 배 늘어나는 일들

스웨터 장갑 철 지난 것들
그렇게 다
버릴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머리를 부딪히며 우리는 짐을 옮긴다

시시한 것을 담고
시시한 것을 쌓고
-「서울에서 멀어지면」부분
꼬마 셋이 지나간다. 같은 곳에서 머리를 자른 듯 머리 모양이 똑같다. 가운데 아이가 저금통을 거꾸로 들어 올린다. 셋이서 동전 구멍을 올려다본다.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눈송이 민들레 사탕 한 알, 어떤 것이 나오면 좋을까. 꼬마 셋은 닮았다 하나쯤 닮지 않아도 좋지만 그들은 닮았다.

더 많이 닮다가 슬슬 달라지겠지. 과일을 사거나 팔겠지. 과일 가게를 지나가겠지. 튀어나온 자동차에 놀라 물러서겠지. 사랑하거나 그랬다고 믿겠지. 매미 소리를 듣겠지. 겨울에도 푸른 풀잎들을 무심결에 지나치겠지. 기다리는 사람이 있겠지. 닮았다가 달라지다가 다시 닮아 가겠지.
-「아마도 셋은」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