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가정에 어느 날 사제폭탄이 배달되고, 무료한 현대인들에게는 즐거운 구경거리가 시작된다.”
영화 같은 이야기로 시작해서 우리들의 이야기로 끝난다. - 차주동 프로듀서
‘가족의 사랑이 모든 해결책’이라는 서사가 골동품 취급을 받는 시대에 새로운 방향에서 가족 이야기를 펼친다. - 진산 소설가
강남의 H 아파트에 사는 평범한 5인 가족. 대학교수 아버지와 약사 어머니, 아직 독립하지 않은 성인 자녀 둘과 고등학생 막내가 함께 살고 있다. 작가 지망생인 장녀는 공모전 수상에 유명 드라마 작가의 보조 경력도 있지만, 현재는 다시 지망생 신분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밤새워가며 완성한 대본을 오늘 아침 막 공모전에 제출했다. 국내 최고의 대기업에 입사했던 장남은 경력을 쌓은 후 나와서 스타트업을 창업했는데, 매일 바빠서 요즘은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쌍둥이 언니, 오빠와는 16살 차이 나는 늦둥이 막내는 오늘도 밤샌 언니를 깨우지 않기 위해 조용히 등교 준비를 한다. 마침 아버지는 출장으로, 어머니는 동창들과 여행으로 각각 제주도에 머물고 있었다. 아침부터 배송된 택배를 받은 막내는 상자를 현관 안에 들여놓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 장녀가 집에 혼자 남아 있을 때 택배로 위장한 폭발물이 터진다. 조잡한 사제폭탄의 위력이 크지 않아서 피해는 현관문과 거실 가구가 망가지고 장녀가 골절상을 입는 정도로 끝났지만, 마침 근처에서 진행되고 있던 박람회와 맞물리면서 테러 의혹이 제기되며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경찰 수사 내용이 유출되고 기자들이 이것저것 파헤치며 기사를 쓰는 데 더해, 자칭 ‘1인 미디어’라는 유튜버들까지 가세해 확인되지 않은 온갖 소문을 퍼뜨리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누가 보냈는가? 누구에게 보냈는가? 왜 보냈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밝혀지지 않은 채,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던 가족의 비밀만 강제로 드러나면서 결국 수면 아래 고여 있던 갈등이 폭발한다. 펑!
모든 것이 우리 이야기다, 폭탄만 제외한다면 제8회 교보문고 스토링공모전 대상작 《펑》은 ‘폭탄’이나 ‘테러’라는 낯선 소재를 사용하지만, 이야기의 전개는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작품은 ‘가족’과 ‘타인’이라는 현대의 우리를 둘러싼 두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계기를 준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대상 수상의 영예를 얻었다. 각자의 일로 바빠서 한 공간 안에 살지만 때로는 타인보다 더 멀게 느껴지는 현대 가족의 초상을 보여주는 이 책은, 또한 흥미 위주로 소비되는 타인의 불행을 피해당사자의 입장에서 섬세하게 짚어줌으로써 혹시 내가 그런 불특정 다수의 군중에 해당하지 않는지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이야기는 가족 구성원 다섯 명의 시점으로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거기에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의 시점, 그리고 사건을 취재하는 TV프로그램의 주변인물 인터뷰가 곳곳에 파고들면서 스토리는 입체적으로 만들어진다. 사건을 파헤칠수록 범인이 잡히기는커녕 피해자인 자신들의 사생활만 공개되면서 궁지에 빠지는 가족은 수사를 거부하기에 이른다. 여기에 가족을 포함해 모든 사람을 의심의 눈으로 살펴볼 수밖에 없는 형사들, 자신도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이웃부터, 폭탄 사건의 여파가 자신에게까지 미칠까 전전긍긍하며 때로는 가족을 비난하고 또 옹호하는 주변 인물들까지, 저자는 섬세한 시각으로 빈틈없이 살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입을 빌려서 토해내는 우리 이웃, 친구, 직장 사람들의 생각은 무척 생생해서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는 이웃이고 친구이며, 직장 동료이고 때로는 사이버세계 속 익명을 가장한 타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폭탄이 터지는 일이 우리가 흔히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님에도, 소설 《펑》은 현대 사회 속에서 대표적으로 가족의 관계를 포함해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준다.
책속에서
[P.50] 승아 학생뿐만 아니라 그 집 식구들이 타깃이 되었다는 게 솔직히 믿기지 않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점잖은 사람들이죠. 아, 한번은 그런 적이 있어요. 물론 그렇다고 의심한다거나 받을 만했다는 건 아닙니다. 그 집 아들이 전화로 싸우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주차장에서요. 살가운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중한 편이었는데, 그날은 유독 표정도 안 좋고, 인사도 생략하고 가더군요. 제발 그만 좀 하라고 화를 내는 것 같았죠. 죽이든지 말든지 네 마음대로 하고 그만 연락하라고.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지금은 별것 아닌 것도 중요하다고 하니까. 제 기억에 의하면 한 달 쯤 지났을 겁니다.
[P. 93~94] 테러 경보가 3단계인 경계 단계까지 올라가긴 했었지만 808호 폭탄 사건이 원인은 아니었다. 행사 규모가 크든 작든 국제 행사가 개최될 경우 통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었다. 덕분에 사건 출동 역시 빨리 이루어졌다. 테러로 보이진 않는다는 게 경찰의 공식 발표였고 내부적으로도 테러가 아니라는 확신이 굳어지는 모양새였다. 추가 폭발도 없었을뿐더러 특정 단체의 동향도 파악이 끝난 듯했고, 사이버상에서도 수상쩍은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인근 CCTV는 물론 교통카드 이용내역까지 살피고 있었지만 특이한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용준은 찜찜함이 가시지 않았다.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것처럼 사제 폭탄이 흔한 사건도 아니거니와 벌어졌다고 해도 몇 시간 내에 끝났었다. 그러니까 뭐가 나와도 나왔어야 했다. 괜히 인터넷이나 뒤적거리고 있는데, 반장이 불쑥 옆으로 다가왔다. “범인은 잡고 딴짓하는 거지?” “무슨 딴짓이요?” 반장은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이 형사의 어깨를 꾹 누르며 말했다. “내 고과 깎아먹을 거 아니지? 믿는다?” “진짜 테러 아닌 건 맞아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아니라고 하니까 아닌 줄 아는 거지. 싹 뒤져도 뭐가 없다잖아. 걔들이 좀 독하냐.” “IS에 남파 간첩에, 종말론에 별별 헛소리 지껄이는 애들이 넘쳐나는데, 아닌지 맞는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인터넷에 떠도는 게 다 진짜면, 이 나라가 남아나길 하겠니? 그러니까 너도 발 빠르게 움직이란 말이야. 쟤네가 괜히 저러겠냐. 털 거 빨리 털고 가겠다는 거 아냐. 잘못하면 우리가 다 뒤집어쓴다.”
[P. 192~193] 폭탄이 처음 터졌을 때도, 범인으로 몰리는 순간에도 아라는 착각했다. 불현듯 찾아온 사건이 오직 아라의 삶만 휘저을 거라고. 차마 내보이지 못한 수치스러운 모습을 드러낸 후, 허망하게 막을 내릴 거라고. 그러니 민낯이 드러난 순간에도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되는 거라고. 폭탄이 다른 이의 민낯까지 고스란히 드러낼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고객님의 전화가 꺼져 있으니,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소리샘으로 연결된 후….” 아라는 전화를 끊었다. 계속해서 전화를 받지 않던 현이 급기야 핸드폰의 전원을 끈 것이다. 아라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눈을 감았다. 뉴스로 접한 소식에 머리끝까지 화가 나 전화를 걸었지만, 막상 받는다고 해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폭탄을 보내려 했었냐고? 죽기를 바란 거냐고? 오피스텔을 구한 게, 빚이 있다는 사실이, 협박을 받고 있었다는 날들이 폭탄과 무슨 상관이라고. 조금만 이성을 차리면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걸 알 수 있지만, 모든 것이 한꺼번에 쏟아져 머릿속을 헤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