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용소를 겪어 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안에서의 생활을 감상이나 연민 같은 분위기로 오해하기 쉽다. 수감자 사이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생존 싸움이 어떤 것인지 전혀 상상하지 못할 거다. 매일의 빵과 목
숨을 위해,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투쟁을 벌였다.
수감자 가운데 얼마를 다른 수용소로 이동시킨다는 발표가 났을 경우를 떠올려 보자. 사람들은 최종 목적지가 당연히 가스실일 것으로 짐작한다. 수감자 가운데 병에 걸렸거나 몸이 쇠약해져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을 뽑아 가스실과 화장터가 있는 큰 수용소로 보내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뽑는 과정은 수감자들이나 수감자 집단과 집단이 서로 치고받고 싸우게 되는 원인이 된다. 어떻게 해서든 명단에서 자기 이름이나 친구 이름을 지워야 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구하면 다른 사람이 희생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실어 가는 사람 수는 정해져 있었다. 수감자에게는 모두 번호가 있었고, 수감자 한 사람 한 사람은 번호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누가 실려 가느냐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수용소로 들어올 때 - 적어도 아우슈비츠에서는 그랬다 - 수감자 신상이 적힌 모든 서류는 소지품과 함께 압수당했다. 그래서 수감자는 가짜 이름이나 직업을 댈 수 있었으며, 여러 가지 이유로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수용소에서 관심을 가진 건 단지 잡혀 온 사람들의 번호뿐이었다. 번호는 수감자의 살갗에 문신으로 새겨지기도 했고, 바지나 윗도리, 외투에 수놓아지기도 했다. 감시병이 어떤 수감자를 벌주겠다고 마음먹으면 그저 번호를 힐끗 보기만 하면 됐다. 그 눈초리를 얼마나 무서워했던지! 그는 절대 이름을 묻지 않았다.
- [1부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 ‘도덕도 윤리도 없는 살아남기 위한 싸움’ 중에서
나는 종종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하나둘씩 빛을 잃고, 아침을 알리는 연분홍빛이 짙은 먹구름 뒤에서 서서히 퍼져 가고 있었다. 내 머릿속은 온통 아내 모습뿐이었다. 나는 아내의 모습을 아주 정확하게 머릿속으로 그렸다. 아내가 대답하는 소리를 들었고, 아내가 웃는 것을 보았다. 진솔하면서도 용기를 주는 듯한 아내의 시선을 느꼈다. 실제 그렇든 아니든 그때 아내의 모습은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보다도 더 밝게 빛났다.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나 많은 시인들이 시로 노래하고, 그렇게나 많은 사상가들이 최고의 지혜라고 외쳤던 하나의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 진리란 인간이 추구할 궁극적이고 가장 숭고한 목표가 사랑이라는 거였다. 인간의 시와 사상과 믿음이 말하는 숭고한 비밀, 그 의미를 꿰뚫어 보았다.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
그때 나는 이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라고 해도) 여전히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완전히 소외된 상황에서 자신을 드러내어 표현할 수 없을 때, 주어진 고통을 적절하고 명예로운 방법으로 견디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라도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 [1부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