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각국사 혜심이 고칙古則 공안과 그에 대해 조사들이 다양한 형식으로 풀어낸 비평적 평설들을 선별하고 짜임새 있게 구성한 책이 『선문염송』이다. 공안은 공개된 비판의 자이다. 누구나 비판의 말을 붙일 수 있도록 열려 있는 이 자리에 상하의 계급이라곤 있을 수 없다. 앞서 던진 말은 그 누구라도 뒤집어엎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말을 무참하게 끌어내리는 상대의 훈수를 즐겁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자타의 어떤 말이나 견해일지라도 틀어박혀 사는 보금자리가 되어서는 안 되는 탓이다. 이 한 칙 한 칙의 이야기에 훈수를 둔 당사자가 염송가拈頌家들이라면, 그 견지를 또 다시 파 뒤집어 각색한 이들이 각운을 비롯한 혜심의 제자들이다. 『염송설화』에 그 성과가 담겨 있다. 이에 기대어 현대의 우리는 해파리가 새우의 눈에 의지하듯 인식을 확장할 수 있는 갈피를 잡게 되었다. 위의 두 책을 회편한 책이 『선문염송 염송설화 회본』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도 찾을 수 없으며 숭고한 이념 따위는 더구나 획득할 수 없다. 도리어 비대해지는 훈시와 온갖 끈적한 속박을 털어 내는 도구로서의 쓰임이 이 책의 주요 소임이며, 역주자는 그 독법 제시에 충실하고자 하였다. 한 공안의 처음이나 그 마지막이나 더듬으며 애쓸 여지는 전혀 없다. 공안마다 알고 싶은 일체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결코 밖에서 이런 저런 위력적인 말을 끌어다 의지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공안에서 조사들이 지시하는 결정적인 부호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