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적막하고, 때로는 막막하게ㆍ 마포麻浦 15 오누나 가누나ㆍ 왕십리往十里 25 이슬비 오는 날, 낯선 소년이ㆍ 종각鐘閣에서 동대문東大門까지 35 그리고 많은 사람이 울었다ㆍ 중구中區 50
자본만이 풍경이 되어
헌책방 거리를 찾아서ㆍ 창신동昌信洞 61 바람부는 날이면ㆍ 압구정狎鷗亭 73 아무 일이 없을 때도 만났다ㆍ 대학로大學路 92 스스로 저버린 것이다ㆍ 청계천淸溪川 103
모두를 전생으로 만든다
이파리 하나하나에 걸려 있어ㆍ 삼청동三淸洞 129 봄을 이렇게 노래했다ㆍ 인왕산仁王山 139 스스로 그러한 오늘의 시간을 위하여ㆍ 선유도仙遊島 151 또 우리의 손때를 입히자ㆍ 인사동仁寺洞 162
때때로 많은 것을 허물었지만
물질을 잃고, 출렁이는 물그림자ㆍ 종묘宗廟 175 많은 이야기가 담배 연기처럼ㆍ 장충단로奬忠壇路 186 언덕이 조개로 덮여ㆍ 충정로忠正路 195 접근하기가 상당히 어려운ㆍ 자하문로紫霞門路 205
그곳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그날 우리는 아현 고개를 넘어갔다ㆍ 신촌新村 217 주차장 골목의 아이들ㆍ 홍대弘大 230 경복궁 주변ㆍ 서촌西村 247 그 집, 茶(다), 菓(과)ㆍ 필동筆洞 265 영추문 옆의 집ㆍ 효자로孝子路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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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시인이 그린 그림과 골목을 걷다 보면 계절을 건너는 게 두렵지 않을 것이다.
작가들이 사랑하는 도시 여행자 건축가이자 시인 함성호의 서울 이야기
게으른 시인의 택도 없는 ‘소망’ 매일 사라지는 서울도 그의 문장과 그림이 되었다.
건축가이자 시인인 함성호는 순하다. ‘순하리 소주’보다 순하다. 아름다운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선 것에 분노는 하지만 저항방식은 강정마을에 작은도서관을 짓는 식이다. 바닷가에서 자랐던 시인은 복잡한 도시로 떠나왔지만 그 도시는 조용필 노래 <꿈>에 나오는 “그 곳은 춥고도 험한 곳/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그 누구도 말을 않는다”는 ‘뜨거운 눈물을 먹는 곳’만은 아니다. 시인은 이 번잡스런 서울이라는 도시가 복잡스런 활력이 있어 마음에 든다고 한다. 어느 지자체할 것 없이 ‘걷고 싶은 길’을 만든다고 가로를 정비하고 나무도 심고 벤치도 가져다 놓는 등 야단법석을 떤다. 정돈된 거리는 깨끗하지만 난잡한 풍경이 주던 활력을 잃어버려 아쉽긴 하다. 그러나 그 역시 도시의 욕망이기에 자연스럽다고 시인은 긍정한다. 건축평론가이기도 한 저자는 갖은 이유로 서울에, 도시에 치를 떠는 이들에게 권한다. 자신이 사는 곳의 ‘옆’을 자세히 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많은 이야기 우리가 무심히 걷는 이 거리에 많은 이야기가 스며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역사와 사연이 묻어있는 경복궁 영추문, 김소월이 시로 그려낸 ‘왕십리’는 이성계가 한양을 수도로 잡을 때의 스토리가 묻어있다. 지금도 젊음이 넘쳐나는 홍대앞 주차장 골목은 시인이 청춘시절에도 풋풋한 젊음 새로운 음악과 미술과 문화가 흐르는 해방공간이었다. 신동엽 시인은 종로5가와 청계천5가 사이의 거리에 있는 동대문시장, 광장시장 인근에서 만난 소년에게서 그의 아버지는 도시 노동자로, 누나는 매춘부로 전락했다는 사연을 듣는다. 말은 하지 않지만 충북 보은 속리산 기슭 어딘가 무너진 마을에서 왔을 것이라고 시인은 읽는다. 어디 그뿐이랴 중구, 창신동, 압구정동, 대학로, 삼청동, 종묘, 장충단, 충정로, 신촌 등 서울 곳곳에는 역사와 자연과 사람이야기로 넘쳐난다. 자본과 도시의 욕망이 불도저로 밀어버린 이 괴물 같은 수도서울에도 미처 무너뜨리지 못한 자연이 남아있다고 함성호는 말한다. 서울 어느 동네라도 조그만 물줄기라도 흐르지 않는 곳이 없고, 야트막한 동산 하나는 있다. 옥수역 근처 야트막한 봉우리에 지천으로 핀 응봉 개9나리, 늦은 저녁 청색의 황홀경을 선사하는 당산철교, 서울과 일산 사이 강가를 비현실적으로 날아드는 철새들, 나룻배를 타고 건너는 착각에 빠지게 하는 잠수교……. 이 책, 『사라진 서울을 걷다』는 서울이라는 거리를 너무도 말하고 싶은 함성호의 수다이다. 그는 이 거리를 알게 되면 더욱 걷고 싶은 거라고 자신한다. 자신의 글이 누군가의 일상 여행에 참고가 되었으면, 그 누군가의 바쁜 걸음을 멈추게 하고 자신이 걷는 주변을 잠시라도 두리번거리게 할 수 있게 한다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나온 시인의 게을렀던 작업의 결과물이다.
책속에서
김소월이 꼭 이런 전설을 따른 것은 아니겠지만 그의 시에서도 왕십리는 쉽게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정한으로 가득 차 있다. 왕십리는 예부터 남태령 고개와 함께 서울의 관문으로 통했다. 시의 화자도 아마 왕십리에서 누군가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인데 그 이별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가는 이는 이미 떠났는데 화자의 생각은 계속 이별의 장소 왕십리에 머물러 있다. 몸은 돌아오고 마음은 떠난 이와 함께 계속 천안, 아니면 그 사람이 가는 어디까지 같이 가는 것이다. -오누나 가누나
아버지는 도시 노동자로, 누나는 매춘부로 전락한, 이 피폐한 현실이 종로와 동대문까지 쭉 이어져 있다. 동대문 시장의 역사는 종로5가와 청계천5가 사이 광장시장과 같이 한다. 광장시장은 1905년 7월 5일 대한제국 한성부 개설 허가를 받아 탄생한 국내 최초의 근대적 시장으로 지금 동대문시장의 모체이다. 당시 주력 물품은 포목이었고 1일장, 격일 장, 3일장, 5일장, 7일장으로 열리던 것을 매일 장으로 상설화하여, 한국 전쟁 때는 실향민들이 청계천에서 노점상을 시작했고 군복, 담요 등으로 옷을 제조, 판매했으며 평화를 기원하는 뜻에서 평화시장으로 명명되었다. -이슬비 오는 날, 낯선 소년이
유하가 압구정 연작시를 발표한 것도 그즈음이었고, 진이정 형이 예의 가죽점퍼 차림으로 한국 시인의 촌스러움을 강변하며, 우리도 이제 여배우들과 격 없이 지내며, 스스로 고급 예술의 촌스러운 벽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익살맞게 주장했던 때도 그때니까,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바람부는 날이면